芥川龍之介
一
어느 봄날 해 질 무렵의 일입니다.
당나라 도읍 낙양의 서문 아래에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젊은이의 이름은 두자춘이라 하여, 본래는 부잣집 아들이었으나, 지금은 재산을 모두 탕진하여 그날그날의 끼니조차 잇기 어려울 만큼 딱한 신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무렵 낙양이라 하면, 천하에 견줄 곳 없이 번성을 극한 도읍이었으므로, 거리에는 아직도 끊임없이 사람과 수레가 오가고 있었습니다. 성문 가득 비추는 기름 같은 석양빛 속에, 노인이 쓴 사(紗) 모자며, 터키 여인의 금 귀고리며, 백마를 장식한 색실 고삐가 끝없이 흘러가는 광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두자춘은 여전히, 성문 벽에 몸을 기댄 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늘에는 벌써 가느다란 초승달이, 아련히 나부끼는 노을 속에, 마치 손톱 자국인가 싶을 만큼, 희미하게 하얗게 떠 있었습니다.
“해는 저물고, 배는 고프고, 게다가 이제 어디를 가도 재워 줄 곳은 없을 것 같으니……이런 고생을 하며 살아 있느니, 차라리 강에라도 몸을 던져 죽어 버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두자춘은 혼자서 아까부터, 이런 두서없는 생각에 잠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어디서 왔는지, 느닷없이 그의 앞에 발을 멈춘, 애꾸눈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 노인이 석양빛을 받아 커다란 그림자를 성문에 드리우고는, 뚫어지게 두자춘의 얼굴을 바라보며,
“네 놈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 하고 거만하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 말입니까. 저는 오늘 밤 잘 곳도 없어서, 어찌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노인의 물음이 하도 갑작스러웠으므로, 두자춘은 저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고, 그만 솔직하게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그것 참 딱하구나.“
노인은 잠시 무언가 궁리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거리에 비치는 석양빛을 가리키며,
“그러면 내가 좋은 수를 하나 가르쳐 주마. 지금 이 석양 속에 서서, 네 그림자가 땅에 비치거든, 그 머리에 해당하는 곳을 한밤중에 파 보아라. 틀림없이 수레 가득한 황금이 묻혀 있을 테니.“
“정말입니까.“
두자춘은 놀라서 내리깔았던 눈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그 노인이 어디로 갔는지, 이미 주위에는 그럴 듯한 그림자도 자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하늘의 달빛은 아까보다 한층 하얘져서, 쉼 없는 거리의 인파 위로는, 벌써 성미 급한 박쥐 두세 마리가 펄럭이며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二
두자춘은 하루아침에, 낙양 도읍에서도 둘도 없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노인의 말대로, 석양에 그림자를 비추어 보아, 그 머리에 해당하는 곳을, 한밤중에 살며시 파 보았더니, 커다란 수레에도 넘칠 만큼 황금이 한 무더기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큰 부자가 된 두자춘은, 곧장 훌륭한 저택을 사들여, 현종 황제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호사스러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난릉의 술을 사들이게 하는가 하면, 계주의 용안육을 가져오게 하고, 하루에 네 번 빛깔이 변하는 모란을 뜰에 심게 하는가 하면, 백공작을 여러 마리 방사하고, 옥을 모으는가 하면, 비단을 짜게 하고, 향목으로 수레를 만들게 하는가 하면, 상아로 의자를 맞추게 하는 등, 그 호사를 일일이 적자면 이 이야기가 도무지 끝나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런 소문을 듣고, 지금까지는 길에서 마주쳐도 인사조차 하지 않던 벗들이, 아침저녁으로 놀러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날마다 수가 불어, 반년쯤 지나는 사이에, 낙양 도읍에서 이름난 재자와 미인 가운데, 두자춘의 집에 오지 않는 이는 한 사람도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두자춘은 이 손님들을 상대로, 매일 연회를 벌였습니다. 그 연회의 성대함이란, 도저히 말로는 다 할 수 없습니다. 아주 간추린 것만 말씀드려도, 두자춘이 금잔에 서역에서 온 포도주를 따르며, 천축 태생의 마법사가 칼을 삼키는 재주에 넋을 잃고 있으면, 그 둘레에는 스무 명의 여인이, 열 명은 비취 연꽃을, 열 명은 마노 모란을, 저마다 머리에 꽂고서, 피리와 거문고를 흥겹게 연주하고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부자라 해도, 돈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 아무리 호사가인 두자춘이라 해도, 일 년 이 년 지나는 사이에, 차츰 가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인간이란 박정한 것이어서, 어제까지 매일 찾아오던 벗도, 오늘은 문 앞을 지나면서도 인사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마침내 삼 년째 되는 봄, 두자춘이 다시 예전처럼 빈털터리가 되어 보니, 넓은 낙양 도읍 안에, 그에게 잠자리를 내주겠다는 집은 한 채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아니, 잠자리는커녕, 이제는 사발에 물 한 잔조차 베풀어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날 저녁, 다시 한번 낙양의 서문 아래로 가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막막한 심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역시 옛날처럼, 애꾸눈 노인이 어디선가 모습을 나타내어,
“네 놈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 하고 말을 걸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두자춘은 노인의 얼굴을 보자,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그날도 다정하게 같은 말을 되풀이하므로, 이쪽도 전과 마찬가지로,
“저는 오늘 밤 잘 곳도 없어서, 어찌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겁을 먹은 듯 대답했습니다.
“그래. 그것 참 딱하구나. 그러면 내가 좋은 수를 하나 가르쳐 주마. 지금 이 석양 속에 서서, 네 그림자가 땅에 비치거든, 그 가슴에 해당하는 곳을 한밤중에 파 보아라. 틀림없이 수레 가득한 황금이 묻혀 있을 테니.“
노인은 이렇게 말하는가 싶더니, 이번에도 또 인파 속으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두자춘은 그 이튿날부터, 순식간에 천하제일의 큰 부자로 되돌아갔습니다. 그와 동시에 여전히, 제멋대로 호사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뜰에 핀 모란꽃, 그 속에 잠들어 있는 백공작, 그리고 칼을 삼켜 보이는 천축에서 온 마법사……모든 것이 옛날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니 수레 가득했던 그 엄청난 황금도, 또다시 삼 년쯤 지나는 사이에, 깡그리 없어져 버렸습니다.
三
“네 놈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
애꾸눈 노인은, 세 번째로 두자춘의 앞에 와서 같은 말을 물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낙양의 서문 아래에서, 가늘게 노을을 뚫고 비치는 초승달 빛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던 것입니다.
“저 말입니까. 저는 오늘 밤 잘 곳도 없어서, 어찌할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것 참 딱하구나. 그러면 내가 좋은 수를 가르쳐 주마. 지금 이 석양 속에 서서, 네 그림자가 땅에 비치거든, 그 배에 해당하는 곳을 한밤중에 파 보아라. 틀림없이 수레 가득한……“
노인이 여기까지 말하자, 두자춘은 불쑥 손을 들어 그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아닙니다. 돈은 이제 필요 없습니다.“
“돈이 필요 없다고? 허허, 그러면 호사를 부리는 데 마침내 싫증이 난 모양이로구나.“
노인은 살피는 듯한 눈길로, 뚫어지게 두자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닙니다, 호사에 싫증이 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것에 정이 떨어진 것입니다.“
두자춘은 못마땅한 얼굴로, 퉁명스럽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 참 재미있구나. 어째서 인간에게 정이 떨어졌느냐?“
“인간이란 모두 박정합니다. 제가 큰 부자일 때에는 아첨에 아부를 떨더니, 한번 가난해져 보십시오. 상냥한 낯빛 하나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설령 다시 한번 큰 부자가 된들, 아무 소용이 없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노인은 두자춘의 말을 듣자, 갑자기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아니, 너는 젊은 놈 치고는 기특하게도 사리를 아는 놈이로구나. 그러면 이제부터는 가난해도, 마음 편히 살아갈 작정이냐.“
두자춘은 잠깐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곧 결연한 눈을 들더니, 호소하듯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것도 지금의 저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제자가 되어, 선술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숨기실 것 없습니다. 당신은 도덕이 높은 신선이시지요. 신선이 아니고서야, 하룻밤 사이에 저를 천하제일의 큰 부자로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부디 저의 스승이 되어, 신묘한 선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동안 묵묵히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다시 빙그레 웃으며,
“과연 나는 아미산에 사는, 철관자라는 신선이다. 처음 네 얼굴을 보았을 때, 어딘가 사리에 밝은 구석이 있어 보여서, 두 번이나 큰 부자로 만들어 주었거니와, 그토록 신선이 되고 싶다면, 내 제자로 거두어 주마.“ 하고 흔쾌히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두자춘이 기뻐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노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이마를 땅에 대고, 몇 번이고 철관자에게 큰절을 올렸습니다.
“아니, 그리 감사할 것 없다. 아무리 내 제자로 삼은들, 훌륭한 신선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너 자신에게 달린 일이니 말이다. 어쨌든 우선 나와 함께, 아미산 깊은 곳으로 가 보아라. 오, 마침 여기 죽지팡이 한 자루가 떨어져 있구나. 그럼 어서 이것에 올라타고, 단번에 하늘을 건너가도록 하자.“
철관자는 그곳에 있던 푸른 대나무 한 자루를 집어 들더니, 입속으로 주문을 외우면서, 두자춘과 함께 그 대나무에 말이라도 타듯 걸터앉았습니다. 그러자 놀랍지 않겠습니까. 죽지팡이는 순식간에 용처럼, 기세 좋게 대공으로 치솟아, 맑게 갠 봄날 저녁 하늘을 아미산 쪽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두자춘은 간담이 서늘해지면서, 조심조심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래에는 다만 푸른 산들이 석양빛 아래 보일 뿐, 저 낙양 도읍의 서문은 (벌써 노을 속에 묻혀 버린 것이겠지요.) 어디를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철관자는, 하얀 구레나룻을 바람에 나부끼며,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는 북해에서 노닐고, 저녁에는 창오에 이르네.
소매 속의 청사, 담기 거칠도다.
세 번 악양에 들었으되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맑게 읊조리며 동정호를 날아 지나가네.
四
두 사람을 태운 푸른 대나무는, 이윽고 아미산에 내려앉았습니다.
그곳은 깊은 골짜기에 면한, 폭이 넓은 너럭바위 위였는데, 과연 높은 곳인 듯, 허공에 드리운 북두칠성이 찻사발만 한 크기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본디 인적이 끊긴 산이라, 사위는 쥐 죽은 듯 고요했고, 가까스로 귀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뒤편 절벽에 자란 뒤틀린 소나무 한 그루가 쏴아, 쏴아 밤바람에 울리는 소리뿐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이 바위 위에 이르자, 철관자는 두자춘을 절벽 아래에 앉히고서,
“나는 이제부터 하늘로 올라가, 서왕모를 뵙고 올 터이니, 너는 그동안 여기 앉아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거라. 아마 내가 없어지면 온갖 마귀가 나타나, 너를 현혹하려 들 것이다만,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절대로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만일 한마디라도 입을 열면, 너는 도저히 신선이 될 수 없는 것으로 각오하여라. 알겠느냐. 천지가 갈라지더라도, 잠자코 있어야 한다.“ 하고 말했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절대로 소리 따위는 내지 않겠습니다. 목숨이 끊어진대도, 잠자코 있겠습니다.“
“그래.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안심이 되는구나. 그럼 나는 다녀오마.“
노인은 두자춘에게 이별을 고하더니, 다시 저 죽지팡이에 걸터앉아, 밤중에도 깎아 세운 듯한 산들의 하늘로, 일직선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두자춘은 홀로, 바위 위에 앉은 채, 고요히 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반 시진쯤 지나, 깊은 산의 밤 기운이 살을 에듯 얇은 옷에 스며들 무렵, 돌연 허공에서 소리가 울려,
“거기 있는 놈은 누구냐!“ 하고 호통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두자춘은 신선의 가르침대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참 지나자, 역시 같은 소리가 울려,
“대답하지 않으면 당장에 목숨이 없는 줄 알아라.“ 하고, 위엄 있게 으르는 것이었습니다.
두자춘은 물론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디서 기어올라왔는지, 이글이글 눈을 빛내는 호랑이 한 마리가, 홀연히 바위 위에 뛰어올라, 두자춘의 모습을 노려보며, 한 소리 높이 포효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머리 위의 소나무 가지가 맹렬히 우수수 흔들리는가 싶더니, 뒤편 절벽 꼭대기에서는 사두통만 한 흰 뱀 한 마리가, 불꽃 같은 혀를 내밀며, 보는 사이에 가까이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두자춘은 그러나 태연히,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호랑이와 뱀은, 한 먹잇감을 놓고 서로 빈틈이라도 노리는 것인지, 한동안 으르렁 대치하고 있더니, 이윽고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한꺼번에 두자춘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 이빨에 물리는가, 뱀의 혀에 삼켜지는가, 두자춘의 목숨이 순식간에 끊어질 것 같던 바로 그때, 호랑이와 뱀은 안개처럼, 밤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려, 뒤에는 다만 절벽의 소나무가 아까 그대로 쏴아, 쏴아 가지를 울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두자춘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이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마음속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 줄기 바람이 일더니, 먹 같은 검은 구름이 사방을 뒤덮는가 하면, 연보랏빛 번개가 느닷없이 어둠을 두 쪽으로 갈라, 무시무시하게 천둥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천둥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함께 폭포 같은 비도 대뜸 쏴아 쏟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두자춘은 이 천변 속에서도, 겁먹은 기색 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바람 소리, 빗줄기, 그리고 끊임없는 번갯불……한동안은 아무리 아미산이라 해도 뒤집어질 것 같았지만, 그러는 사이에 귀가 찢어질 듯한 엄청난 뇌성이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하늘에 소용돌이치는 검은 구름 속에서, 새빨간 불기둥 하나가 두자춘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두자춘은 저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고, 너럭바위 위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곧 눈을 떠 보니, 하늘은 이전처럼 맑게 개어, 맞은편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 위에도, 찻사발만 한 북두칠성이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방금의 큰 폭풍우도, 저 호랑이와 흰 뱀처럼, 철관자가 자리를 비운 틈을 노린 마귀의 장난에 틀림없었습니다. 두자춘은 겨우 안심하여,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다시 바위 위에 똑바로 앉았습니다.
그러나 그 안도의 한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그가 앉아 있는 앞으로, 금빛 갑옷을 입은, 키가 석 장은 되어 보이는, 위엄 당당한 신장(神將)이 나타났습니다. 신장은 손에 삼지창을 들고 있었는데, 대뜸 그 삼지창 끝을 두자춘의 가슴팍에 겨누며, 눈을 부릅뜨고 호통치는 것을 들으니,
“이놈, 네놈은 대체 무엇이냐. 이 아미산이란 산은, 천지개벽 때부터 내가 살아온 곳이다. 그것도 꺼리지 않고 감히 혼자서, 여기에 발을 들여놓다니, 설마 보통 인간은 아니겠지. 자, 목숨이 아깝거든, 한시바삐 답하여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두자춘은 노인의 말대로,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대답하지 않겠느냐. 않겠다고. 좋다. 하지 않겠다면 하지 않는 대로 알아서 해라. 그 대신 내 수하들이 네놈을 갈기갈기 베어 버릴 것이다.“
신장이 삼지창을 높이 들어, 맞은편 산 위의 하늘을 향해 손짓했습니다. 그 순간 어둠이 확 갈라지더니, 놀랍게도 무수한 신병들이, 구름처럼 하늘에 가득 차서, 모두 창과 칼을 번뜩이며, 당장이라도 이쪽으로 한꺼번에 밀려들 기세였습니다.
이 광경을 본 두자춘은, 저도 모르게 앗 하고 외칠 뻔했지만, 곧 다시 철관자의 말을 떠올리고, 필사적으로 잠자코 있었습니다. 신장은 그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자, 노하기를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 괘씸한 놈. 기어코 대답하지 않겠다면, 약속대로 목숨을 거두어 주마.“
신장은 이렇게 외치기가 무섭게, 삼지창을 번뜩여, 단 한 번에 두자춘을 찔러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아미산도 진동할 만큼, 까르르 높이 웃으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물론 이때에는 이미 무수한 신병도, 불어오는 밤바람 소리와 함께, 꿈처럼 사라진 뒤였습니다.
북두칠성은 다시 쓸쓸히, 너럭바위 위를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절벽의 소나무도 여전히, 쏴아, 쏴아 가지를 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자춘은 벌써 숨이 끊어져, 그곳에 벌렁 자빠져 있었습니다.
五
두자춘의 몸은 바위 위에 벌렁 자빠져 있었으나, 두자춘의 넋은 고요히 몸에서 빠져나와, 지옥 밑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승과 지옥 사이에는, 암혈도(闇穴道)라는 길이 있어, 그곳은 일 년 내내 캄캄한 하늘에,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이 휘이, 휘이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두자춘은 그 바람에 실려, 한동안은 그저 나뭇잎처럼,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으나, 이윽고 삼라전(森羅殿)이라는 현판이 걸린 장엄한 궁전 앞에 이르렀습니다.
궁전 앞에 있던 무리 지어선 귀졸들은, 두자춘의 모습을 보자마자 곧장 그를 에워싸고, 섬돌 앞에 끌어다 앉혔습니다. 섬돌 위에는 한 분의 대왕이, 새까만 도포에 금관을 쓰고, 위엄 있게 사방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이분이야말로 일찍이 소문에 듣던 염라대왕에 틀림없었습니다. 두자춘은 어찌 될 것인가 싶으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그곳에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이놈, 네놈은 무엇 때문에 아미산 위에 앉아 있었느냐?“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우레처럼, 섬돌 위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두자춘은 당장 그 물음에 답하려 했으나, 문득 다시 떠오른 것은 “절대로 입을 열지 마라.“ 하는 철관자의 경계의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벙어리처럼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들고 있던 쇠홀을 쳐들며, 얼굴의 수염을 죄다 곤두세우고,
“네놈은 여기를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어서 대답하면 다행이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지체 없이 지옥의 형벌에 처하리라.“ 하고 기세등등하게 꾸짖었습니다.
그래도 두자춘은 여전히 입술 하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를 본 염라대왕은, 곧 귀졸들을 돌아보며, 사납게 무언가 분부하자, 귀졸들은 일제히 엎드렸다가, 금세 두자춘을 끌어일으켜, 삼라전의 허공으로 날아올랐습니다.
지옥에는 누구나 알다시피, 칼의 산이나 피의 못 외에도, 초열지옥이라는 불꽃의 골짜기며 극한지옥이라는 얼음의 바다가, 칠흑 같은 하늘 아래 줄지어 있었습니다. 귀졸들은 그런 지옥 속으로, 번갈아 두자춘을 내던졌습니다. 그래서 두자춘은 참혹하게도, 칼에 가슴이 꿰뚫리는가 하면, 불꽃에 얼굴이 타고, 혀가 뽑히는가 하면, 가죽이 벗겨지고, 쇠공이로 찧기는가 하면, 기름 가마에 삶기고, 독사에게 골수를 빨리는가 하면, 수리매에게 눈알을 쪼이는 등……그 고통을 일일이 헤아리자면, 도저히 끝이 없을 만큼, 온갖 형벌을 당한 것입니다. 그래도 두자춘은 꿋꿋하게, 이를 악문 채,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에는 아무리 귀졸들이라 해도, 어이가 없어진 것이겠지요. 다시 한번 밤 같은 하늘을 날아, 삼라전 앞으로 돌아오더니, 아까처럼 두자춘을 섬돌 아래에 끌어다 앉히고는, 궁전 위의 염라대왕에게,
“이 죄인은 아무래도 말할 기색이 없사옵니다.“ 하고 입을 모아 아뢰었습니다.
염라대왕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동안 궁리에 잠겨 있더니, 이윽고 무언가 떠오른 듯,
“이놈의 부모가 축생도에 떨어져 있을 터이니, 어서 이리 끌고 오너라.“ 하고 귀졸 하나에게 분부했습니다.
귀졸은 순식간에 바람을 타고, 지옥의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그러더니 또 별똥별처럼, 두 마리 짐승을 몰며, 삼라전 앞으로 내려왔습니다. 그 짐승을 본 두자춘은, 놀라기를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두 마리 모두 생김새는 초라한 여윈 말이었으나, 얼굴은 꿈에도 잊을 수 없는, 돌아가신 부모님 그대로였기 때문입니다.
“이놈, 네놈은 무엇 때문에 아미산 위에 앉아 있었느냐? 솔직히 다 불지 않으면, 이번에는 네놈의 부모에게 아픈 꼴을 당하게 해 주마.“
두자춘은 이렇게 으름장을 놓여도,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불효자 같으니. 네놈은 부모가 고통받든 말든, 자기만 편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느냐.“
염라대왕은 삼라전도 무너질 듯,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때려라. 귀졸들아. 저 두 마리 짐승을 살과 뼈까지 부수어 버려라.“
귀졸들은 일제히 “예!“ 하고 대답하며, 쇠채찍을 잡고 일어서더니, 사방에서 두 마리 말을 사정없이 후려쳤습니다. 채찍은 휘이, 휘이 바람을 가르며, 가리지 않고 비 오듯 말의 가죽살을 찢어 발겼습니다. 말은……축생이 된 부모님은, 괴로운 듯 몸을 비틀며, 눈에 피눈물을 머금은 채, 차마 보기 어려울 만큼 울부짖었습니다.
“어떠냐. 아직도 네놈은 불지 않겠느냐.“
염라대왕은 귀졸들에게, 잠시 채찍질을 멈추게 하고, 다시 한번 두자춘의 대답을 재촉했습니다. 이미 그때 두 마리 말은 살은 찢기고 뼈는 부서져, 숨도 끊어질 듯이 섬돌 앞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두자춘은 필사적으로 철관자의 말을 떠올리며, 굳게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때 그의 귀에, 거의 소리라 할 수도 없을 만큼, 가느다란 목소리가 전해져 왔습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야 어찌 되든, 네가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단다. 대왕이 무어라 하시든, 말하기 싫은 것은 잠자코 있거라.“
그것은 틀림없이 그리운, 어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두자춘은 저도 모르게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말 한 마리가, 기운 없이 바닥에 쓰러진 채, 슬픈 듯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이처럼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 귀졸들의 채찍에 맞은 것을 원망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큰 부자가 되면 아첨하고, 가난뱅이가 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세상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고마운 마음이겠습니까. 얼마나 대견한 결심이겠습니까. 두자춘은 노인의 경계도 잊고, 넘어지듯 그 곁으로 달려가, 두 손으로 빈사의 말 목을 끌어안고, 주르르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 하고 한마디 외쳤습니다……
六
그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자춘은 역시 석양을 받으며, 낙양의 서문 아래에, 멍하니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노을 낀 하늘, 하얀 초승달, 끊임없는 사람과 수레의 물결……모든 것이 아직 아미산에 가기 전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어떠냐. 내 제자가 된들, 도저히 신선은 될 수 없겠지.“
애꾸눈 노인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습니다.
“될 수 없습니다. 될 수 없지만, 그러나 저는 되지 못한 것이 오히려 기쁜 마음이 듭니다.“
두자춘은 아직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저도 모르게 노인의 손을 잡았습니다.
“아무리 신선이 될 수 있다 한들, 저는 저 지옥의 삼라전 앞에서 채찍을 맞고 계신 부모님을 보고서, 잠자코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만약 네가 잠자코 있었더라면……“ 하고 철관자는 갑자기 엄숙한 얼굴이 되어, 뚫어지게 두자춘을 바라보았습니다.
“만약 네가 잠자코 있었더라면, 나는 그 자리에서 네 목숨을 끊어 버렸을 것이다. 너는 이제 신선이 되겠다는 바람도 품고 있지 않겠지. 큰 부자가 되는 것은 진작 정이 떨어졌을 터이고. 그러면 너는 이제부터 무엇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느냐.“
“무엇이 되든, 인간답게, 정직하게 살아갈 작정입니다.“
두자춘의 목소리에는 이제껏 없던 맑고 후련한 울림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 말을 잊지 마라. 그러면 나는 오늘을 끝으로, 두 번 다시 너와 만나지 않을 터이니.“
철관자는 이렇게 말하는 사이, 벌써 걸음을 옮기고 있었으나, 문득 다시 발을 멈추고 두자춘 쪽을 돌아보더니,
“오, 마침 지금 생각났다만, 나는 태산 남쪽 기슭에 집을 한 채 가지고 있다. 그 집을 밭째 네게 주마. 어서 가서 살도록 하여라. 지금쯤이면 마침 집 둘레에 복숭아꽃이 한 면에 피어 있을 게다.“ 하고, 참으로 유쾌한 듯 덧붙였습니다.
(다이쇼 9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