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여기 신슈(信州)의 로쿠몬센(六文錢)은 대대로 영용한 가문이라 함은 누구나 익히 아는 바이라. 처음 다케다 가(武田家)의 휘하 기치 무장으로 무명을 원근에 떨쳤으나, 가쓰요리(勝頼) 멸망 후 해를 거듭하여 도쿠가와 씨(徳川氏)에 귀순하니, 마쓰시로(松代) 10만석을 세습하여 마쓰노마즈메(松の間詰)로 들어 행세하는 격식 있는 가문이 되었더라.
호레키(寶暦) 시절, 이 성의 주인 사나다 이즈노카미 유키타카 공(眞田伊豆守幸豐公)은 나이 겨우 열다섯이면서도 재기가 영민하고 덕이 높으며, 총명 영달하다는 명성이 자자하였다.
낮에는 종일 병법을 닦고, 밤에는 등잔불 아래 옛 현인을 스승 삼아 치란흥폐(治亂興廢)의 이치를 강론하는 등, 자못 옛 어진 군주의 풍모가 있었다.
충실히 모시던 아무개(何某)라 하던 근시 무사가 있어, 영주를 생각하는 정이 간절하여 옥체의 건강을 염려한 나머지, 어느 날 어전에 나아가 아뢰었다. “영주께서 학문의 도에 침식을 잊으시는 것은 지극히 거룩하신 일이니 더 무어라 여쭐 말씀이 없사오나, 또한 마음을 푸실 길도 두지 않으시면, 너무 기운이 막히어 천금 같은 옥체에 거스를까 두렵사옵니다. 때때로 무엇 하나라도 위안 삼으실 거리를 가지시기를 바라옵니다.”
어린 영주는 기색이 흐뭇하여 “잘도 마음을 써 주었다. 나도 평소 그런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따로 이렇다 할 놀잇감도 없어 그쳐 있었느니라. 그대 무엇이든 떠오르는 바가 있거든 말해 보거라” 하고 흉금 터놓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다면 황송하옵니다. 따로 이거라 하여 영주께 권해 드릴 만한 것은 못 되오나, 문득 떠오른 것은 새 기르기이옵니다. 그것을 즐기시며 보아 주시옵소서” 하고 아뢴다. 어린 영주께서 “새 기르기는 좋은 것이냐” 하고 물으시니, “자못 위안이 되시오리이다. 첫째로 잠 깨시는 데에도 마땅하옵니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하면, 저들 새들은 이른 아침에 시각을 정하여 짹짹 우짖기 시작하옵는데, 그 소리를 신호 삼아 침소를 나서시면 절로 졸음도 가시고 기분도 상쾌하시오리이다” 하고 아뢴다. 어린 영주의 마음에 든 듯, “그렇다면 시험 삼아 길러 보겠노라. 만사를 그대에게 맡기는 터이니 잘 알아 처리해 다오” 하고 분부하셨다.
아무개는 황공히 받들어, 새장 높이 일곱 척, 길이 두 척, 너비 여섯 척으로 만들고, 다메누리(溜塗) 옻칠을 입히고, 금속 장식을 박아 훌륭히 마무리하라고 사쿠지 부교(作事奉行)에게 분부하였다. 부교가 그 뜻을 받아, 곧 성하의 솜씨 좋은 세공인을 불러내어, 영주의 어용품이니 비용은 따지지 말고 서둘러 만들어 올리라 명한 지 이레 만에 완성된 것을, 어거실 툇마루에 메어 놓으니, 선과 미를 다하여 눈을 놀라게 할 만하였다.
어린 영주께서 이를 보시고 흐뭇해하시는 듯한 기색이매, 그것을 권한 아무개는 면목이 서서, 그 새장을 좌로 보고 우로 보며 “과연 잘도 만들었구나” 하고 칭찬하며 영주의 기쁨을 아뢰었다. 어린 영주께서 그때 “이만하면 좋으냐” 하고 그자에게 물으셨다. “이 위로 더할 데 없이 훌륭하옵니다” 하고 그저 칭찬에 칭찬을 거듭하였다. 어린 영주께서 거듭 “과연 그대 마음에 드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말씀하실 것까지도 없사옵니다. 에도(江戸)의 쇼군 가(將軍家)께서 손수 기르시는 새장이라 한들 이보다 더할 수 있겠사옵니까. 일본 제일이옵니다” 하고 추호도 다른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대 마음에 좋다 여기면 나에게도 좋으니라” 하고 어린 영주께서도 흡족하시어 보이매, “그러시다면 영내의 새 가게마다 분부를 내려 온갖 작은 새를 마련해 어서 위안에 갖추어 올리겠나이다” 하고 신이 나 떨쳐 나서니, “아니, 그것은 추후의 일로 두자. 우선은 이대로 두라” 하시며 서두르시는 기색이 없으셨다. 아무개가 의아한 빛으로 꿇어 있는데, 어린 영주께서 “나는 그대가 마음에 드느니라. 그대가 좋다 여기는 일이라면 나도 무엇이든 좋다. 좀 색다른 청이오만, 그대 떠오르는 대로 차림표(獻立)를 차려 한 상 나에게 시험삼아 들게 해 다오” 하시니, 참으로 색다른 분부였다. 그자는 곤혹스러워, “여태 차림표를 차려 본 일도 없삽고, 그 도리는 조금도 알지 못하옵는지라 미숙하여 송구하옵니다. 이 일은 부디 다른 사람에게 분부하옵소서” 하고 난감해하는 모양이었다.
어린 영주께서 “아니, 나는 그대가 마음에 들었으니, 다른 사람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는다. 차림표는 어떻게든 좋다. 무릇 그대 마음에 이만하면 좋겠다 여기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니, 스스로 맛있다 여기는 것을 나에게 거리낌 없이 차리거라” 하고 또한 다른 마음 두지 않고 분부하시매, 마지못해 “받들겠나이다” 하고 답하고 물러갔다.
그리하여 수라간 번(御料理番)에게 따로 부탁하여, 이리 할까 저리 할까 의논한 끝에, 차림표 한 장을 적어 올렸다. 어린 영주께서 곧 펼쳐 보시고, “이는 한 가지 묘안이로다. 짝이 흥미로운 차림이로구나. 과연 그대 마음에 이로써 좋다 여기는가” 하고 물으시매, 황공히 엎드려 “소인이 미숙하여 어찌할 도리가 없삽고, 그것이 정성껏 차린 전부이옵니다” 하고 이마에 땀을 흘리며 아뢴다. 어린 영주께서 빙긋이 웃으시며 “좋다. 그대 마음에 좋다 여기면 나는 만족이라. 이 차림 그대로 두 사람 분, 내일 점심으로 마련하라고 수라간 번에 일러 두라. 여러모로 마음을 써 주었다. 쉬도록 하라” 하시며 물리셨다.
그리하여 그 이튿날, “어제의 차림이 마련되었사옵니다. 곧 드시도록 하시겠사옵니까” 하고 어선부방(御膳部方)에서 여쭙자, 잠시 가만 계시다가 그 아무개를 어전으로 부르시어, “머지않아 새를 들여놓을까 한다. 우선 새장 문을 열어 보거라” 하셨다.
아무개는 툇마루로 가 문을 열고, “자, 보아 주시옵소서” 하고 손을 짚었다. “잠시 그 안에 들어가 보거라” 하고 가벼이 말씀하시매, 그자는 “예이” 하고 별 생각 없이 새장에 들어갔다. 어린 영주께서 이를 보시고 “과연 모양이 좋구나” 하시며 손뼉을 치시니, “과연 좋사옵니다” 하고 새장 안에서 답하였다.
어린 영주께서 “기분이 좋거든 그 안에서 담배라도 한 대 피워 보거라. 그래그래” 하시며, 시동을 시켜 담배함(煙草盆)을 들여보내시니, 그자는 적이 당황하여, “이런, 그것은 거기에 두십시오” 하고 황급히 나오려 하매, “아니, 거기서 담배를 피우며 한가로이 이야기나 하라” 하시는, 사람을 곤란케 하는 위안이라, 영민해 보이시기는 하나 아직 어린 시절의 일이로다.
새장 안의 아무개는 나오자니 나올 수도 없고, 분부에 거스르면 책망이 있으리라 하여, 어쩔 수 없이 우두커니 담배를 피우매, 어린 영주께서 좌우를 돌아보시며 “이제 일러 둔 두 사람 분의 요리를 가져오라” 하고 분부하셨다. 이미 차림이 갖추어져 기다린 터라 곧장 수라상(御膳)을 어전에 받들어 올렸다. “나머지 한 상은 어찌하올까요” 하고 여쭈매, 어린 영주께서 “그렇거든 그 상은 새장 안으로 보내거라” 하시는 분부에, 관원들이 이상한 일이라 어전을 우러르며 머뭇거렸다.
어린 영주께서 진지한 얼굴로 “괘념 말고 어서 보내라” 하고 재촉하셨다. 그러시매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 하여 새장 안의 사람에게 가져다 두었다. 그자는 매우 곤혹스러워, 몸 둘 곳 없는 모양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머뭇거렸다.
그때 어린 영주께서 분부하시기를, “그대가 차린 요리이니 응당 맛있을 터, 나도 여기서 시험해 볼 것이라” 하시며 젓가락을 드시매, 그자는 두려워하며 “요리를 내려 주시는 것은 분에 넘치는 광영이옵니다만, 이 안에서 받는 일은 부디 면해 주시옵소서” 하고 처량히 아뢰었다. 어린 영주께서 “모두가 위안이로다. 사양 말고 그 안에서 함께 들라” 하시며 거듭 분부하셨다.
위안이라 하시매, 괴로운 시중을 든다 여기면서도, 돌을 씹고 모래를 핥는 듯한 심정으로 진귀한 채소와 좋은 안주의 맛이 도무지 들지 않아, 가까스로 함께 들고 있으매, 어린 영주께서는 자못 흥에 겨워하시어,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것을 마음껏 들라” 하고 자꾸자꾸 권하시며, 어과자, 고이차(濃茶), 우스차(薄茶) 같은 것을 새장 안이 비좁도록 내려 주셨다. 그럭저럭 식사가 끝나매, 이어서 시작되는 것은 사방 풍문 이런저런 이야기였다.
한 시각이 지나도 “나오너라” 하시지 아니하시고, 또한 내보내실 기색도 없으셨다. 그자는 견디다 못하여, “이제는 내어 주시옵소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고 빌어 아뢰었다.
어린 영주께서 매서워지시며, “결코 나오는 일은 안 된다. 일생을 그 안에서 살거라” 하고 얼굴을 바로 하고 말씀하시는 그 기색이 농으로는 보이지 않으매, 아무개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아니하고, 얼굴빛마저 새파래졌다.
어린 영주께서 “자, 무엇이든 좋아하는 음식을 청하라. 청하는 대로 줄 것이로다. 무료하거든 그 안에서 노가쿠(謠)며 춤이며 마음대로 하라. 다만 용변을 보러 가는 일 외에는 밖에 나오는 것을 허락지 않노라” 하고 던지시고는 자리를 일어나 가셨다.
어전 곁의 면면들이 새장을 빙 둘러서서 “어려운 처지 짐작이 가옵니다.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사옵니다” 하고 위로하는 자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이 또한 봉공인즉 게을리 마시고 잘 받드시구려. 위께서 위안 삼으시는 것뿐, 따로 번거로운 일이 있는 것도 아니오. 음식은 좋은 대로, 자고 일어나는 것도 마음대로니, 도리어 부러운 처지일세” 하고 농을 던지며 웃기도 하였다. 심한 자에 이르러서는, “여러분, 어전에 여쭈어 아무개 어른의 안방마님까지 한자리에 이 안에 들이는 것이 어떻겠소. 자웅이 없으면 풍취가 없지 않소이까” 하고 한껏 빈정거렸다.
새장 안의 사람은 목소리를 떨며, “심술궂은 분들이로다. 이런 곤경을 흥거리로 삼아 놀리시다니 무슨 일이오. 영주의 마음은 어찌 될 것이며, 참으로 마음이 서글프오” 하고 나이 무색하게 눈물을 흘리매, 곁의 면면들도 안쓰러이 여겨 “아니, 그토록 걱정 마시오. 영주께서 농 삼으심일 터이니, 우리가 잘 청하여 풀어 드리리다” 하고 말하였다. “부탁드리오” 하고 손을 모아 비는 듯하였다.
그러고 일동이 갖가지로 그를 어전에 빌어 주매, 어린 영주께서 다시 어전에 나오시어 새장 안의 사람을 향하시며, “그대 그토록까지 괴로우냐” 하시매, “과연 견디기 어렵사옵니다. 새 기르기를 권해 드린 것은 소인 일생의 잘못이오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고 그저 빌고 아뢰었다. “그렇다면 나오라. 굳이 그대를 괴롭게 하여 위안 삼을 생각은 아니로다” 하고 허락하시매, 한편 기뻐하고 한편 두려워하며, 새장에서 기듯 무릎걸음으로 빠져 나왔다. “가까이 오라. 일러 둘 말이 있느니라. 모두 이리로 오너라” 하시며 분부 내리시매, 어전 옆방에 대기하던 면면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좌우로 늘어서 자리하였다.
이즈노카미 유키타카 공께서는 손을 무릎에 두시고, 머리도 들지 못하고 엎드린 그 아무개를 매섭게 보시며, “잘 한번 생각해 보거라. 그대가 평소 거처하는 곳이, 여섯 첩인지 여덟 첩인지 알지는 못하나, 넓어야 열 첩에 지나지 않을 것이로다. 그에 견주어 보면, 새장 안은 좁다고는 하나 두 첩 남짓은 되리니, 그대 한 사람의 거처로 견디기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라. 게다가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요, 밤낮으로 마음대로 즐기게 하며, 음식은 청하는 대로 바다의 것이든 산의 것이든 청하는 대로 내어 주리니, 슬퍼할 까닭이 없는 셈이라. 그러한데도 두 시각을 견디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곤궁을 호소하고, 그저 새장에서 나오기만을 비니, 그대조차 그러한 처지로다. 하물며 새들은 광대무변한 천지를 집으로 삼고, 산을 가로지르며 바다를 건너 자유로이 허공을 오가며, 마음껏 모이를 쪼고, 가는 곳마다의 둥지에 깃들이는 것이라. 그것을 잡아 새장에 가두어 내놓지 않으면, 그 답답함이 어떠하랴. 또한 사람의 솜씨가 능하다 한들 조화옹의 아름다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자연의 좋은 맛은 사람이 짓지 못하는 것이라. 그러니 새장에 미를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모이를 먹인다 한들, 어찌 새들의 마음에 들 수 있으랴.”
“방금 그대가 시험해 본 그 고통으로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저들이라 한들 사람의 마음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남을 괴롭게 하여 위안 삼는 것이 마음 있는 자가 할 짓인가. 알아들었느냐” 하고, 나이 열다섯의 어린 영주께서 내리신 훈계의 이치에, 일동이 감탄하여 머리를 숙이고, 큰기침하는 자조차 없어, 이 너른 방이 적막하였다. 하물며 새 기르기를 권한 사람은 영주의 면전과 사람들의 시선에 사라져 들어가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어린 영주께서 얼굴을 부드럽게 하시며, “이리 말하면 그대는 자못 면목이 서지 않을 것이로다. 허나 충의의 깊이는 내가 안다. 평소 잘 섬겨 주매, 잘못이라 할 것이 따로 없거니와, 이번에 새를 권한 것 또한 나를 생각하는 진심에서 나온 것이매, 어찌 그것을 헛되이 여기겠느냐. 실은 기뻐하였느니라. 그러나 새 기르기는 좋은 놀이가 아닌데, 그대가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을 따름이로다. 세상에 새 기르기를 즐기는 자들도, 다 그 어질지 못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리라. 처음부터 물리쳐 쓰지 아니하였으면 그쳤을 일이로되, 그리한다면 모처럼의 그대 정성을 헛것으로 하고 충심도 드러나지 못할 것이며, 첫째 내 자신의 수양이 되지 못한다. 사람 마음의 변하기 쉬운지라, 지금이야 이렇듯 어진 척하여 새 기르기의 그릇됨을 일러두었으나, 내일을 알지 못하고 거듭 권하는 자가 있을 때엔, 나 또한 작은 새를 기를 마음에 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이를 헤아렸기에 죄 없는 그대를 괴롭힌 것이라. 그러니 오늘의 일을 아는 자, 누가 같은 놀이를 권하겠느냐. 설령 권하는 자가 있다 한들, 내 마음 그대에게 부끄러우니, 결코 기르는 일은 못 할 것이라. 본디 작은 일이오나 만사를 미루어 보매 다 이와 같으리라. 이후 내 몸의 삼감을 위하여, 더할 나위 없는 기념물로 삼아, 그 새장은 마루에 두고 보아 위안 삼을 것이로다. 이러한 풍문이 알려지면, 가중(家中)은 말할 것도 없고 영내의 농민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대를 본보기 삼아, 새 기르기의 놀이가 절로 그치게 될 것이라. 그리되면 쓸데없는 비용을 절감하리니, 그대 한 사람의 봉공이 만인의 이로움이 된즉, 좀처럼 얻기 어려운 충의로다. 죄 없는 그대를 욕보였으니, 자못 마음에 못마땅한 데가 있을 터이나, 나를 버리지 말고 견디어, 다시 이후를 부탁하노라” 하고 정겹게 말씀하시며, 물품 목록(目録)에 곁들여 금자 10냥(金子十兩)을 그 상으로 내리시니, 한때는 원망스럽게도 분하게도 여겼던 마음이, 이제는 다만 눈물에 젖어, 아아 이 영주를 위해서라면 여기서 죽으리라 하고 황송해할 따름이었다. 자리에 있던 노직 어른들이 서로 얼굴을 보며, 자기 나이가 부끄러웠다 한다.
이 영주에 이 신하 있더라. 10만석의 정치를 손바닥에 쥐어 부국강병의 기틀을 연 온다 모쿠(恩田杢)는, 유키타카 공의 활안(活眼)에 가려 뽑힌 사람이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