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한마디로 자비 깊은 사람이라 하면,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베푸는 사람,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곧장 들어주는 사람, 어떤 일이라도 남을 위해서라면 사양하지 않는 사람, 이렇게 못박아 두는 것이 보통이겠지요. 그것은 분명 그러하겠지요, 그것이 자비 깊은 사람이 남을 대하는 원칙이니까요.

그러나 원칙이라는 것은 결국 원칙입니다. 모든 일이 원칙 그대로 단순하게 풀려서 끝난다면 세상은 의외로 만만한 것이지요. 의사도 원칙대로 모든 환자를 척척 처리할 수 있다면, 어느 의사든 다 병리학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으면 수고로울 일이 없겠지요. 굳이 까다로운 임상학을 익히고 실지 연구에 몇 해를 들일 필요가 없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 필요가 있습니다. 있고말고요, 바로 거기에 임기응변, 불교에서 이르는 ‘때, 곳, 자리(時·處·位)’에 들어맞는 방법으로 원칙을 실지에 응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참된 자비란, 여기 정말로 무언가 베풀기에 마땅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있다, 그때 그 사람에게 알맞은 만큼만 베푼다, 그것이 참된 자비입니다. 여기 한 게으름뱅이가 있어, 그가 입에 발린 말로 매달려 왔다고 합시다. 그 능숙한 말솜씨에 넘어가 무엇인가를 주었다 합시다. 그것은 자비를 닮았으되 자비가 아닙니다. 부추김에 넘어간, 어수룩한 자의 어리석은 짓이지요. 그럴 때엔 베푸는 대신, 그 게으르고 입에 발린 자의 뺨에 손바닥으로 한 대 갈겨 주는 편이 낫습니다. 따끔한 가르침이 되고 분발의 자극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 편이 참된 자비입니다.

남이 하는 말을 들어주면 그만이라며 사람을 응석받이로 만드는 것만이 자비는 아닙니다. 설탕만 넣고 끓인 요리는 도리어 맛이 없습니다. 한 자밤의 소금을 넣으면 단번에 맛의 어울림이 잡히지 않습니까. 때로는 인자함 가운데 살짝 곁들이는 잔소리 한 자밤도 넣지 않고서는 온전한 자비가 되지 않겠지요.

애정뿐이고 지혜의 분별이 따르지 않는 자비는 왕왕 이기주의의 자비가 됩니다. 모처럼 자기는 선량한 자비심으로 하고 있다고 여기던 일이 이기주의의 자비심이 되어서야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톨스토이의 작품 가운데 있던 예라고 기억합니다. 무슨 직업을 지닌 사람이었는지 잊었습니다만, 어쨌든 자비를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는 어느 사내가 있었습니다. 어느 겨울밤, 무척 날씨가 거칠었습니다(어쩌면 눈 내리는 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자비 깊은 사내는 바깥의 추위를 헤아리면서, 방 안 난로 불에 몸을 녹이며 의자에 푹신하게 몸을 묻고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는데 바깥 눈보라 속에 한 사람의 바이올린 켜는 늙은 거지가 서 있다가, 이윽고 추위에 움츠러들어 주인의 방 유리문에 들러붙듯 몸을 기대 왔습니다. 주인은 본디부터 자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잠시 바이올린 켜는 거지의 모습을 가엾이 여기며 바라보다가, 마침내 마음을 정하고 유리문을 열었습니다. 주인은 그러고는, 그저 황송해하기만 하는 바이올린 켜는 자를 방 안으로 들이고, 따뜻한 먹을 것을 주고, 난로 불을 자꾸자꾸 더 지펴서, 오랫동안 눈보라 속을 떠돌며 얼어붙어 온 늙은 거지의 몸을 녹여 주었습니다.

이튿날, 그 다음 날이 되니 눈은 개고 길도 좋아졌습니다. 바이올린 켜는 노인은 자꾸만 주인의 저택에서 물러나 다시 떠도는 길을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자기 저택 안에 머물게 하여, 가엾은 거지 악사를 편안하게 살게 해 주려고 마음먹었지요. 그런데도 바이올린 켜는 노인은 자꾸만 작별하려 듭니다. 그러면 더더욱 주인은 만류합니다. 거의 강제로 붙들어 둡니다.

어느 날 밤, 주인은 바이올린 켜는 노인이 별안간 한마디 없이 저택 안을 빠져나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자취를 감춘 것을 알았습니다. ‘아아, 그는 역시 하늘을 나는 새였구나.’ 이렇게 깨달은 것이 주인이었는지 독자인 나였는지는 잊었습니다만, 어쨌든 이기주의의 자비를 보여 주는 본보기로 이 이야기는 쓸모가 있습니다. 곧 주인은 바이올린 켜는 자의 본질을 달관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떠도는 운명을 빚어낸 성품을 꿰뚫어 보지 못했지요. 그의 살아가는 길은, 어떠한 슬픈 고생을 하더라도 들로 산으로, 거리로 마을로 떠돌아다니는 편이 그 성품에 들어맞는 길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렇게 살게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의 행복은 결코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며 부잣집에 길러져 사는 살림 가운데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주인에게 붙들려 있는 동안 얼마나 갑갑하였고, 길이며 떠돎이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그에게는 주인의 호의가 차라리 폐가 되었을 테지요. 주인의 자비는 그에게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거추장스러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자기가 자비를 행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을 느꼈겠지요. 자기 ‘뜻’을 세우는 것만 생각하던 주인은, 그 때문에 상대가 어떤 부자유와 폐를 느끼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곧 자기만족, 이기주의의 자비란 이런 것입니다.

달갑잖은 호의에 대해서도 한마디 더 보태자면, 어느 외국에 백육십 세 가까운 장수자가 있었습니다. 황실에서는 그것을 가상히 여기시어, 불러들이시고 좋은 옷과 좋은 음식으로 대접하셨습니다. 장수자는 곧 죽었습니다. 거친 음식 덕에 오래 살아 있던 목숨이, 좋은 음식을 만나 그만 상해 버렸다는 것이지요.

요컨대 참된 자비란, 상대의 처지와 본질을 헤아려, 자기의 자선적 감정 본위가 아닌 베풂에서야 본연의 다다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도서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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