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유언

쿠니키다 돗포

이번 전쟁을 겪으며 문득 떠오른 일이 있다. 太沽(다구) 앞바다에 있는 우리 군함 안에서도 분명 비슷한 일이 있으리라 싶어 이야기해 두고자 한다. 요코스카(横須賀)에 사는 어느 해군 중좌(海軍中佐)가 들려준 회상이다.

우리 함대가 메이지 27년(1894년) 천장절(天長節)을 경축한 것은, 마침 육군의 화원구(華園口) 상륙 작전을 엄호하기 위해 베카 섬 그늘에 집결해 있던 때였다. 그날의 일이다. 나는 사관실에서 함장을 비롯한 여러 사관들과 함께 폐하의 만세를 외치며 축배를 든 뒤, 준사관실로 돌아갔다. 거기서는 우리 함장이 아직 배를 타기 전부터 해군에 몸담았다는 자랑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고 나서 홀(수병 식당)로 향했다.

전시에는 함내 생활 전반이 평상시보다 느슨했는데, 이날은 특히 관대하게 봐주는 터라 홀의 소란은 여느 날과 달랐다. 밥공기만 한 양철 잔, 아니 평소엔 국그릇으로 쓰는 그것으로 꿀꺽꿀꺽 들이켜면서, 어떤 자는 월금(月琴)을 꺼내 잡가를 노래하며 튕기고, 어떤 자는 사죽(四竹) 요타케를 아메리카 행진곡 박자에 맞춰 흥겹게 두드리고, 어떤 자는 비장한 목소리를 높여 롱사인을 부르고 있었다. 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채로 중얼거리는 자도 있었다. 다섯이고 열이고 여기저기 나뉘어 제각각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선 것을 보자마자, 한 수병이 느닷없이 “수뢰장(水雷長) 만세!” 하고 외쳤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나를 에워싸고 그 큰 잔을 들이밀었다. 나는 한두 잔 받아 마시면서, “청나라 수병들은 지금쯤 뤼순(旅順)이나 웨이하이웨이(威海衛)에서 혼쭐이 나고 있겠지. 어디, 저 자들의 만세라도 불러주는 게 어떻겠나” 하고 말했더니, 재미있다며 “짱 만세! 짱짱 만세!” 같은 소리를 제각각 질러댔다. 그 기세에는 이미 뤼순커우도 웨이하이웨이도 안중에 없었다. 나는 더 안쪽으로 그들 사이를 헤치며 나아갔다. 뱃머리 어뢰실 앞에 작은 구획이 있었는데, 그곳에 일곱여덟 명의 수병이 다른 동료들과 떨어져 한 무리를 이루어 마시고 있었다.

우리 수병들은 아무리 취해 있어도 상관에 대한 경례만큼은 잊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보자 일동 기립하여 경례를 올렸는데, 그 태도가 자못 엄숙하여 아직 충분히 취하지는 않은 듯했다. 한가운데에 버티고 앉아 있던 한 수병은 술버릇은 좋지 않으나 일은 잘한다는 이유로 사관들에게 인정받는 자였는데, 지금 막 재미있는 일을 시작하려던 참이라고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다들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고, 눈짓으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제지하는 자도 있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수병이 말하기를, 이 패거리가 요즘 고향에서 온 편지를 서로 돌려 읽는다는 것이었다. 꼭 곁에서 듣고 싶다고 하고는 자리를 잡았다. 보니, 다들 두세 통씩 서찰을 지니고 있었다.

그 방식이 재미있었다. 갑의 편지는 을이 읽는다는 약속이었고, 그 가운데 가장 심한 자에게 벌주를 명한다는 규칙이었다. ‘가장 심하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들의 정사(情事)에 관한 것임을 말하지 않아도 분명했다.

자, 시작해봐라, 하고 내가 재촉하자 서서히 읽기 시작했다. 내가 옆에서 듣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몹시 쩔쩔매는 자도 있었다. 무리도 아닌 것이, 읽히는 편지마다 나가사키에서, 요코스카에서, 혹은 시나가와에서 온 것들로, 처음부터 그런 것들만 가려 가져온 것이라 하나도 그들의 정사에 관계없는 것이 없었다. 하나같이 벌주를 명해야 할 물건들이었다. 이러는 동안, 내 맞은편에 앉은 이등수병이 안주머니에서 편지 묶음을 꺼내려다가 한 통을 탁자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는 얼른 그것을 집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나머지를 옆 수병에게 건넸다. 다른 자들은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드디어 읽기가 끝나자, 술버릇 나쁜 수병이 “이봐, 미즈노, 너 하나 숨겼잖아” 하며 “자, 내놔!” 하고 외쳤다. 못 된 놈이라며 다른 수병들도 모두 일어서서 “내놔라, 안 내면 열 잔 마셔라!” 하고 몰아붙였다. 나는 웃으면서 이를 지켜보았다.

미즈노는 이것만은 봐 달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다른 자들은 더욱 재미있어하며 몰아붙였고, 술버릇 나쁜 수병은 마침내 본성을 드러내어 소라껍데기 같은 큰 잔을 들이밀면서 벌주 대신 이것을 마시라고 외쳤다. 협박이었다. 내가 지나치다 싶어 말리려 하자, 미즈노가 벌떡 일어섰다. 그런 가벼운 협박은 무섭지 않지만, 안 읽으면 이상하게 볼 테니 읽겠다, 내가 직접 읽겠다며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한 말씀 올리나이다. 다퉁커우(大同口)에서 보내주신 편지 이제 막 도착하였나이다. 어머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눈물 흘리시면서 거듭거듭 읽어 보시었나이다.”

뭐야, 시시하네! 하고 수병 하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미즈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읽어 내려갔다.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이에 손수 답장을 쓰시겠다 분부하시옵기에 베갯머리에 붓과 벼루를 갖다 드렸사오나, 오랜 병환이시라 뜻은 급하시되 손이 뜻대로 따르지 아니하시니 애통하기 이를 데 없다 탄식하시옵기에, 그러면 대필을 하라 하시옵기에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그대로 받아 적나이다.

반드시 반드시 미련을 두지 말지어다.

어미의 몸도 이제 오래지 않아 오늘 내일을 알 수 없는 목숨이오니, 지금 이 말을 이승의 유언으로 알아 깊이 마음에 새겨 두기를 바라노라. 너의 아비는 순역(順逆)의 도를 그르치어 마에바라(前原) 일당에 가담하셨음으로 하여, 지금껏 우리마저 몸 둘 곳 없는 심정이었노라. 이번에야말로 너는 아비를 대신하고 형을 대신하여 대군(천황)을 위해 나라를 위해 용감히 싸우고, 목숨을 걸어 아비의 죄를 씻으며 우리 선조의 이름을 드높이기를 거듭거듭 부탁하노라.

사관이 되었더라면 하는 오늘 편지의 구절은 마음 약한 말이로다. 대장이든 병졸이든 대군을 위해 나라를 위해 바치는 목숨은 하나이니 둘이 아닌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참된 충의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이로다. 형은 네가 부러워 군부(軍夫)라도 따라나서고 싶다고 아침저녁으로 말하고 있노라. 이를 헤아린다면, 일개 병사라 하더라도 너의 복이 어찌 크지 아니하랴. 또 말할 것도 없으나 상관의 명령을 굳건히 따르고 동료들과는 두텁게 사귀어 어려움을 서로 도우며 마음을 하나로 모아 대군을 위해 힘쓰기를 오로지 빌고 비노라.

이상은 어미의 임종 유언으로 알고 반드시 반드시 나약한 행동이 있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나머지 자세한 것은 형수가 덧붙여 쓸 것이오이다.

이렇게 적고 난 뒤 어머님의 분부로 불단(仏壇)에 등불을 올리니, 제 손에 부축받으시어 어머님께서 자리 위에 일어나 앉으시고는 이 유언을 아버님 영전에도 고하겠노라 하시며 읽어 올리셨나이다. 그 목소리 슬프기가 한 구절 읽고는 눈물 닦으시고 한 구절 읽고는 목이 메이시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애처롭고 애처로웠던지……”

미즈노가 간신히 참아 온 눈물이 이에 이르러 구슬처럼 편지 위에 떨어졌다. 이를 보는 쪽에서도 가만히 참고 있던 이들이 전기에 감전된 듯 일제히 자리를 박찼으나, 감격에 겨워 아무도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였다. 형언할 수 없는 엄숙함이 그 구획을 가득 채웠다.

“미즈노 군 만세!” 하고 맨 먼저 외친 것은 바로 그 술버릇 나쁜 수병이었다. 그는 미치광이처럼 큰 잔을 휘둘렀다. 이때 나의 입에서 터져 나온 외침은,

천황 폐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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