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모가미강(最上川)

사이토 모키치

모가미강은 내 고향의 강이라,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내 고장 자랑」의 하나로서 적을 거리가 산더미만큼 있을 듯이 여겨지지만, 나는 소년 시절에 도쿄로 와 버려서, 철이 들어 사물을 분간하게 된 이후, 특히 글을 짓기 시작한 이후의 경험이 참으로 적은 까닭에, 그 변변찮은 경험을 엮어 보면, 그저 그리운 강으로서 마음속에 남아 있을 따름이다.

열세 살 때 가미노야마(上山) 소학교의 훈도(訓導)가 우리 다섯 학생을 인솔하고 여행을 떠났다. 첫째 날은 가미노야마 뒷산을 넘어 모가미강 가의 도메키(ドメキ, 百目木)라는 곳에서 일박하였다. 여기에 오니 강폭은 이미 어지간히 넓고, 이렇게 넓은 강을 보는 것은 태어나 처음이다. 또 맞은편 단애를 따라 좁다란 평지를 배를 끌고 거슬러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이 두셋이 앞으로 굽혀 쓰러질 듯이 밧줄을 잡아당기며 올라가고 있다. 이런 광경 또한 태어나 처음이다. 저물 무렵이 된다. 강의 규모가 큰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번에는 작은 돛을 단 배가, 반대 방향으로 화살처럼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것은 끌배(曳舟)와는 또 다른 특별한 인상이다. 그때 「모두들 알고 있겠지, 모가미강은 일본 삼대 급류의 하나란다」 하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날 저녁 식사에는 은어 구이가 세 마리나 곁들여졌고, 이튿날 아침에는 또 피라미 구이가 다섯 마리나 곁들여졌다. 무엇이든 소년들에게는 신기하다. 십이 전쯤씩 숙박료를 치르고 그곳을 떠났다.

「은어 맛있었지 응」 「맛있었지 응, 나는 머리도 다 먹었지」 「너는 속도 먹었나」 「응 속도 먹었지, 뼈도 우적우적 먹었지」

둘째 날은 유도노산(湯殿山) 근처의 시즈(志津)에서 일박, 다음 날은 길잡이를 고용하여 육십 리 고개(六十里越)를 넘어 쇼나이(荘内)로 들어갔다. 육십 리 고개는 아직 일면 눈이었으나, 산골 소년들은 그런 일에는 조금도 굴하지 않는다. 「선생님은 후쿠시마 중좌(福島中佐) 같지 응」 「맞아, 선생님은 후쿠시마 중좌야」 이런 이야기를 하며 소년들은 고개를 넘었다. 쇼나이의 쓰루오카(鶴岡)에서 일박, 유하마(湯浜)에서 일박,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다.

그러고서 모가미강의 지류를 배로 내려가 사카타(酒田)로 갔다. 사카타는 모가미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이다. 도메키에서 보았던 기세 좋던 모가미강의 물이, 여기에 오면 어느덧 밋밋해져 버려, 그것이 일본해와 이어지는 모양은, 만만(漫々)이라 해야 할까, 표묘(縹茫)라 해야 할까, 소년은 그런 형용사를 알지 못했지만, 무엇인가 정체 모를 것을 눈앞에서 본 것이었다. 또, 가미노야마에서는 태양이 산에서 나와 산으로 들어가는데, 여기에서는 그 묘묘만만(渺々漫々)한 기이한 천연 속에 구름이 붉게 물들고 그 속으로 태양이 들어간다. 소년들은 놀라 버렸다.

바쇼가 『오쿠노 호소미치』에서 「뜨거운 해를 / 바다에 들이누나 / 모가미강아」(あつき日を海に入れたり最上川)라 읊은 곳이 이 사카타의 히요리야마(日和山)라는 곳이었다. 소년이었던 우리는 물론 바쇼의 하이쿠 따위 알지 못하였고, 훈도 또한 그 무렵 바쇼의 하이쿠를 운운하는 이가 없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하이쿠가 있는 줄조차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날 밤은 소년들을 모두 재워 두고, 선생님은 다른 방에서 하녀와 술을 드셨다. 하녀라 하여도, 호쿠리쿠도(北陸道)의 에치고(越後), 이 쇼나이, 사카타로부터 우고(羽後)의 해안 일대에 걸쳐, 여인의 얼굴 모습과 살결이 특별히 아름답다. 선생님은 소년들을 인솔하시어 전부 도보로 산의 험한 길을 넘어 오신 것이니, 여기에서 남몰래 술을 드셨다는 일은 참으로 그지없는 정취가 있는 일이지만, 소년에게는 그런 까닭을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이튿날 아침 「선생님은 어젯밤에 술 드셨다. 그치만 일기에 쓰지 말어」 하고 매우 흥겨워 하시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쇼와 13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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