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ark Twain
마크 트웨인
삽화 레스터 랠프
이브의 일기
원문에서 옮김
토요일. 나는 이제 거의 하루나 됐다. 어제 도착했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인다. 분명 그래야 한다. 만약 그저께라는 게 있었다면, 그때 내가 거기 없었으니까. 있었다면 기억해야 마땅하다. 물론 그저께가 정말 있었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좋다, 이제부터는 잘 살펴봐야지. 그저께라는 게 또 일어나면 잊지 않고 적어 둘 것이다. 처음부터 똑바로 시작해서 기록을 헝클어뜨리지 말아야 한다. 어쩐지 본능적으로 알겠다. 이 모든 사소한 기록이 언젠가 역사가에게 중요한 자료가 되리라는 걸. 나는 실험체 같다는 기분이 든다. 정확히 실험체가 된 기분이다. 누구라도 나보다 더 ‘실험체 같은’ 기분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점점 확신하게 된다. 내가 바로 그것이라고. 실험체. 그저 실험체일 뿐, 그 이상도 아니라고.
그렇다면 내가 실험체라면, 내가 실험체의 ‘전부’일까? 아닐 것이다. 나머지 것들도 이 실험의 일부라고 본다. 나는 그 주된 부분이지만, 나머지 것들도 한몫을 차지한다. 내 자리는 굳건한가, 아니면 내가 살피며 돌봐야 하는가? 아무래도 후자인 듯하다. 어떤 본능이 내게 속삭인다. 으뜸의 자리는 영원한 경계로 지켜진다고. (한낱 어린 나에게 꽤나 그럴싸한 문장이지 싶다.)
오늘은 모든 게 어제보다 한결 보기 좋다. 어제는 마무리가 너무 황급했는지, 산들은 들쑥날쑥 거친 채로 남고, 평원 어떤 곳들은 잡동사니와 부스러기가 잔뜩 어질러져 있어 보기에 영 흉했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서둘러 만들어서야 쓰겠는가. 이 장엄한 새 세상은 정말이지 더없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더구나 그 짧은 시간을 생각하면, 거의 완벽에 가깝다. 어떤 곳에는 별이 너무 많고 어떤 곳에는 너무 적지만, 그건 곧 손볼 수 있을 게다. 분명히. 어젯밤엔 달이 풀려 미끄러져 내려와 그만 자리에서 빠져 버렸다. 큰 손실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무너진다. 그 모든 장식과 꾸밈 중에 아름다움과 마무리에서 달에 견줄 만한 게 또 없는데. 더 단단히 매어 두었어야 했다. 다시 찾아오기만 한다면――
하기야 어디로 갔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누가 줍든 분명 감춰 둘 것이다. 나라면 그럴 테니까. 다른 일이라면 모를까, 정직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내 천성의 한가운데에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 아름다움을 향한 열정이 자리한다는 걸 벌써 깨닫고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달을 맡겨 두고 그 사람이 내가 가진 줄 모를 때, 나에게 맡겨 두기에는 안전하지 않다. 낮에 발견한 달이라면 포기할 수 있다. 누군가 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어둠 속에서 발견한 거라면, 분명 입을 다물 핑계 하나쯤은 만들어 낼 게다. 나는 달을 사랑한다. 어찌나 어여쁘고 낭만적인지. 다섯이나 여섯쯤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잠자리에 들지 않고, 이끼 둑에 누워 그것들을 올려다보아도 결코 지치지 않을 텐데.
별들도 좋다. 몇 개 따다 머리에 꽂으면 좋겠다. 하지만 영영 그러지 못할 것 같다. 별들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거다. 보기엔 도무지 그렇게 멀어 보이질 않으니까. 어젯밤, 별들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막대기로 몇 개 떨어뜨려 보려고 했는데, 닿지 않아 어찌나 놀랐는지. 그래서 흙덩이를 던져 보았다. 기진맥진할 때까지 던졌지만, 하나도 맞히지 못했다. 내가 왼손잡이라 던지는 솜씨가 영 시원치 않은 탓이다. 노리지 않은 별을 노린 건데도 정작 다른 별을 맞히지 못했다. 그래도 꽤나 아슬아슬했다. 흙덩이의 검은 점이 황금빛 무리 한복판으로 휙 날아들어 가, 마흔 번이나 쉰 번쯤 간발의 차로 비껴 나가는 걸 똑똑히 봤으니까.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하나쯤은 잡을 수 있었으련만.
그래서 나는 조금 울었다. 내 나이엔 자연스러운 일이지 싶다. 좀 쉬고 나서 바구니를 들고, 별들이 땅 가까이 내려와 손으로 딸 수 있을 만한 곳, 동그란 가장자리의 가장 끝 지점으로 향했다. 그게 어차피 더 나았다. 손으로 따면 살살 모을 수 있어 깨뜨리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멀어, 결국엔 포기해야 했다. 너무 지쳐서 발을 한 걸음도 더 끌 수 없었다. 게다가 발이 까져서 무척 아팠다.
집까지는 도저히 못 가겠고, 너무 멀고, 또 추워졌다. 그러다 호랑이 몇 마리를 만나 그 사이에 폭 파묻혀 누웠는데, 어찌나 사랑스럽도록 포근하던지. 숨결도 달큼하고 향긋했다. 호랑이는 딸기를 먹고 사니까. 호랑이는 그때 처음 봤지만, 줄무늬를 보고 단번에 알아봤다. 그 가죽 한 장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멋진 가운이 될 텐데.
오늘은 거리에 대해 좀 더 나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예쁜 것이라면 무엇이든 손에 넣고 싶어 안달이 나서, 어떤 때는 너무 멀리 있는데도 들떠 덥석 손을 뻗었고, 또 어떤 때는 6인치밖에 안 떨어진 게 1피트는 되어 보였는데, 아아, 그 사이엔 가시가 있더라!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내 머리에서 처음으로 격언 하나를 지었다. 진짜 첫 번째다. ‘긁힌 실험체는 가시를 멀리한다.’ 한낱 어린 나에게 꽤나 훌륭한 격언이지 싶다.
어제 오후, 나는 다른 실험체를 멀찍이서 따라다녔다.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아낼 수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그건 아무래도 사람인 것 같다.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꼭 사람처럼 생겼다. 분명 사람일 게다. 다른 어떤 파충류보다도 그것에 호기심이 더 인다. 파충류라면 말이지만. 아마 파충류가 맞을 것이다. 머리털은 부스스하고 눈은 파랗고, 영락없이 파충류처럼 생겼으니까. 엉덩이가 없다. 마치 당근처럼 아래로 갈수록 가늘어지고, 서 있을 땐 데릭처럼 양다리를 쩍 벌리고 선다. 그래서 파충류라고 봐야겠지. 아니면 건축물일 수도 있다.
처음엔 그것이 무서워서, 돌아설 때마다 달아나기 시작했다. 나를 쫓아오려는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그저 도망치려고만 하는 거였다. 그 뒤로는 더 이상 겁먹지 않고, 한 스무 발짝쯤 뒤에서 몇 시간이고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자 그것은 안절부절못하며 시무룩해졌다. 결국 어찌나 노심초사했는지 나무 위로 올라가 버렸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똑같다. 또 나무 위에 올려놓았다.
일요일. 아직도 거기 매달려 있다. 보아하니 쉬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건 핑계다. 일요일은 쉬는 날이 아니다. 안식일은 토요일이니까. 내가 보기엔 그것은 쉬는 일에 무엇보다 관심이 많은 생물 같다. 그렇게 줄곧 쉬기만 한다면 나는 지쳐 버릴 텐데. 그저 앉아서 그 나무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지친다.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한 번도 무엇 하나 하는 걸 보지 못했다.
어젯밤 그분들이 달을 돌려주었다. 어찌나 ‘기뻤는지’! 정말 정직한 분들이지 싶다. 그런데 또 미끄러져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마음 졸이지 않았다. 그런 이웃이 있는데 왜 걱정하겠나. 또 가져다줄 텐데.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별이라도 좀 보내드리고 싶다. 우리에겐 다 쓰지 못할 만큼 많으니까. 우리라기보다는 ‘나’다. 그 파충류는 그런 것엔 도무지 관심이 없다는 걸 안다.
그것은 취향이 저속하고 다정함도 없다. 어제저녁 어스름 무렵에 내가 그곳에 갔더니, 나무에서 슬그머니 내려와 못에서 노는 작은 얼룩무늬 물고기들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흙덩이를 던져 다시 나무로 쫓아 올려보내고, 물고기들을 그냥 두게 해야 했다. 혹시 그것의 쓸모가 ‘그것’인가? 마음이 없는 건가? 그 작은 생물들을 향한 측은한 마음이 한 톨도 없는 건가? 그런 거친 일을 하라고 설계되고 만들어진 걸까? 그런 생김새이기는 하다. 흙덩이 하나가 귀 뒤를 맞히자 그것은 ‘말’을 했다. 짜릿했다. 내 것 말고 다른 누군가의 말을 들은 게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어쩐지 표정이 풍부한 말처럼 들렸다.
그것이 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새로운 흥미가 생겼다. 나는 말하는 걸 무척 좋아하니까. 하루 종일, 잠결에도 말을 한다. 나는 정말이지 흥미로운 화자다. 그런데 만약 말을 나눌 누군가가 또 있다면, 두 배는 더 흥미로워지고, 청해 주는 한 끝없이 떠들 수 있을 텐데.
만약 이 파충류가 사람이라면, ‘그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것’이라 하면 문법에 맞지 않을 테고, 아무래도 ‘그’라고 해야겠지.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활용해야 한다. 주격 ‘그’, 여격 ‘그에게’, 소유격 ‘그의 거’. 좋다, 이제부터 ‘그’를 사람으로 여기고 ‘그’라고 부르겠다. 다른 무엇으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렇게 하는 편이 갈피 못 잡고 헤매는 것보다 한결 편할 테다.
다음 주 일요일. 일주일 내내 ‘그’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며 친해지려 애썼다. 말은 다 내가 했다. 그가 수줍어해서. 그래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도 내가 곁에 있는 게 싫지 않은 듯했다. ‘우리’라는 사교적인 말을 자주 썼다. 함께 묶어 주면 으쓱해하는 눈치라.
수요일. 이제는 정말이지 사이가 좋아졌고,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가 더는 나를 피하려 들지 않는다. 좋은 신호다. 내가 곁에 있는 걸 그가 즐긴다는 뜻이니까. 흐뭇하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그에게 도움이 되도록 궁리한다. 그가 나를 한층 더 마음에 들어 하도록.
지난 하루 이틀 사이, 만물에 이름을 붙이는 일을 그의 손에서 죄다 가져와 내가 떠맡았다. 그에게는 큰 짐을 덜어 주는 일이다. 그쪽으로는 영 재능이 없으니. 보아하니 무척 고마워한다. 머리를 쥐어짜도 그럴싸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 모자람을 눈치챈 척하지 않는다. 새 생물이 한 마리 나타날 때마다, 그가 어색한 침묵으로 자기 약점을 드러내기 전에 내가 먼저 이름을 붙여 준다. 이렇게 해서 그를 여러 번 머쓱한 자리에서 구해 줬다. 나에게는 이런 모자람이 없다. 어떤 동물에게 눈길을 주는 그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잠깐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알맞은 이름이 곧장 튀어나온다. 영감이 떠오른 듯이. 분명 영감이지 싶다. 30초 전만 해도 내 안에 없던 이름이니까. 그 생물의 생김과 행동만 보고도 어떤 동물인지 척 알아맞히는 것 같다.
도도새가 나타났을 때, 그는 그게 살쾡이라고 여겼다. 그 눈빛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를 구해 주었다. 그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저 자연스러운 반가움을 담아 가볍게 한마디 했다. 정보를 흘려 줄 셈이라는 티를 내지 않으면서. ‘어머나, 도도새네!’라고. 그러고는 도도인 줄 어떻게 아는지 ‘설명하는 듯이 보이지 않게’ 슬쩍 풀어 주었다. 그가 나만 그 생물을 알아본 데에 살짝 비위가 상한 것 같긴 했지만, 분명 나를 감탄하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게 어찌나 흐뭇하던지, 잠들기 전까지 한 번 두 번 그 일을 떠올리며 흡족해했다. 인정받았다고 느낄 때, 작디작은 일도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목요일. 처음으로 슬픈 일이 있었다. 어제 그가 나를 피했다. 내가 말 거는 걸 원치 않는 것 같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무슨 오해가 있겠거니 싶었다. 나는 그와 함께 있는 걸 좋아하고, 그가 말하는 걸 듣는 게 좋은데,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어떻게 그가 나에게 무정해질 수 있을까? 그러나 결국 그게 사실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발길을 돌려, 우리가 만들어졌던 그 아침 처음 그를 보았던 자리에 외롭게 앉았다. 그때 나는 그가 무엇인지 몰랐고, 그에게 무관심했다. 그런데 이제 그곳은 슬픔에 잠긴 자리가 되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다 그를 떠올리게 했고, 가슴이 몹시 아렸다. 왜 그런지 분명히 알 수는 없었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으니까. 겪어 본 적이 없으니, 모든 게 수수께끼였고, 도무지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밤이 오자 그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어, 그가 새로 지어 둔 거처로 찾아갔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떻게 하면 바로잡고 다시 그의 다정함을 되찾을 수 있는지 묻고 싶어서. 그러나 그는 나를 빗속으로 내쫓았다. 그것이 내 첫 번째 슬픔이었다.
일요일. 다시 화창해졌다. 행복하다. 그러나 그날들은 무거웠다. 일부러 떠올리고 싶진 않다.
그에게 사과 몇 알을 따다 주려고 해 봤지만, 똑바로 던지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 실패했다. 그래도 마음만은 그를 흐뭇하게 한 것 같다. 그것들은 금지되어 있다. 그가 말하길, 내가 화를 입을 거란다. 하지만 그를 기쁘게 하다가 입는 화라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월요일. 오늘 아침 그에게 내 이름을 알려 주었다. 그가 흥미를 가질까 싶어서. 그런데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상하다. 그가 자기 이름을 알려 준다면, 나는 신경 쓸 것이다. 그 이름은 내 귀에 어떤 소리보다 더 듣기 좋게 들릴 텐데.
그는 말이 무척 적다. 어쩌면 영민하지 못해 그것을 의식하고는 감추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그토록 마음에 걸린다는 게 안쓰럽다. 영민함이라는 게 별것이겠는가. 가치는 마음에 있는걸. 다정하고 선한 마음이야말로 부유함이고, 그것만으로 충분한 부유함이라는 사실을, 그것이 없다면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가난이라는 사실을, 그가 알아주면 좋겠다.
말은 비록 적게 하지만, 어휘는 제법 풍부한 편이다. 오늘 아침 깜짝 놀랄 만큼 좋은 단어를 하나 썼다. 그도 자신이 그게 좋은 단어라는 걸 알았는지, 그 뒤로 슬쩍슬쩍 두 번 더 끼워 넣었다. 자연스레 흘리는 솜씨가 좋았다. 그래도 그에게 어느 정도 분별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일이었다. 분명히, 그 씨앗을 잘 가꾸면 자라게 할 수 있겠다.
그는 도대체 그 단어를 어디서 주워들었을까? 내가 그 말을 쓴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 그는 내 이름에 도통 흥미가 없었다. 실망을 감추려 했지만, 잘 안 된 것 같다. 자리를 떠 이끼 둑에 가서 발을 물에 담그고 앉았다. 누군가의 곁이 그리울 때, 누군가를 바라보고 누군가에게 말 걸고 싶을 때 가는 곳이다.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못 위에 그려진 그 사랑스러운 흰 형상만으로는. 그래도 무언가는 된다. 무언가라도 있는 게 그저 외롭기만 한 것보단 낫다. 그는 내가 말하면 말을 한다. 내가 슬프면 같이 슬퍼한다. 그 다정한 공감으로 나를 위로한다. 이렇게 말한다. ‘기죽지 마. 가엾고 친구 없는 소녀야.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 줄게.’ 그는 정말 좋은 친구다. 하나뿐인 친구. 내 자매다.
처음 그녀가 나를 떠난 그날! 아아, 결코 잊지 못하리라. 결단코, 결코. 가슴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나는 외쳤다. ‘그녀는 내게 있는 전부였는데, 이제 가 버렸어!’ 절망에 빠져 외쳤다. ‘부서져라, 내 가슴아. 더는 이 삶을 견딜 수 없다!’ 그러고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지만, 어떤 위안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잠시 뒤 손을 떼자, 그녀가 다시 거기 있었다. 희고 빛나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는 그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이 완전한 행복이었다. 전에도 행복을 안 적이 있지만, 이런 건 아니었다. 이건 황홀이었다. 그 뒤로는 결코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한 시간쯤, 또 어떤 때는 거의 하루 종일 자리를 비웠다. 그래도 나는 의심 없이 기다렸다. 이렇게 말하면서. ‘바쁜 거야. 아니면 어디 다녀오는 거고. 곧 올 거야.’ 정말로 늘 그랬다. 어두우면 밤에는 오지 않았다. 그녀는 겁 많은 작은 존재니까. 하지만 달이 떠 있으면 와 주었다. 나는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녀는 나보다 어리다. 내가 태어난 뒤에 태어났으니까. 정말 자주, 정말 많이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내 위안이고 내 피난처다. 삶이 고될 때면. 사실 삶은 대체로 고되니까.
화요일. 아침 내내 동산을 가꾸는 일에 매달렸다. 그러면서도 일부러 그를 멀리했다. 그가 외로워져 나를 찾아오기를 바라며. 그러나 그는 오지 않았다.
정오에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했다. 벌과 나비들 사이를 이리저리 날듯이 거닐며 꽃들 속에서 흠뻑 즐겼다. 하늘에서 신의 미소를 받아 간직하는, 저 아름다운 생물들 속에서. 꽃을 따 화관과 꽃다발을 엮어 몸에 두르고 점심을 먹었다. 사과였다, 물론. 그러고는 그늘에 앉아 그를 바라며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오지 않았다.
하긴, 어차피 와 봐야 무엇하랴. 그는 꽃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데. 그는 꽃을 ‘쓰레기’라 부르고, 어느 게 어느 것인지 분간조차 못한다. 그렇게 무덤덤한 게 잘난 거라 여긴다. 그는 나도 좋아하지 않고, 꽃도 좋아하지 않고, 저녁녘 물든 하늘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좋아하는 게 도대체 있긴 한가? 깨끗한 빗줄기를 피해 자기를 가둘 움막 짓기, 멜론 두드려 보기, 포도 맛보기, 나무에 달린 과일을 만져 보며 그 ‘농산물’이 잘 자라는지 살피기, 그 말고 무엇이 있는가?
나는 마른 막대기를 땅에 뉘고 다른 막대기로 그 안에 구멍을 뚫으려 했다. 머릿속에 그려 둔 계획이 있었기에. 그런데 끔찍하게 놀라고 말았다. 얇고 푸르스름한 투명한 막이 구멍에서 피어오르자, 모든 걸 내팽개치고 달아났다!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어찌나 무서웠던지! 뒤를 돌아보니 따라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바위에 기대 가쁜 숨을 고르고, 사지가 떨림이 멎을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 그러고는 살금살금 다시 다가갔다. 경계하며, 살피며, 일이 생기면 곧장 도망칠 채비를 하고. 가까이 다가가 장미덤불의 가지들을 헤치고 살짝 들여다보았다. 마침 그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하고 바라며. 내가 어찌나 영리하고 예뻐 보이던지! 그런데 그 정령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곳으로 가 보니 구멍 안에 가녀린 분홍빛 가루가 한 자밤 남아 있었다. 손가락을 넣어 만져 보았는데, ‘앗 뜨거!’ 하고 얼른 빼냈다. 잔인하리만치 아팠다.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한 발에 섰다가 다른 발에 섰다가 끙끙 신음을 내며 한참을 그러는 동안, 고통이 어느 정도 가셨다. 그제야 호기심이 솟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분홍 가루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 순간 이름이 불쑥 떠올랐다.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도. 바로 ‘불’이었다! 사람이 세상의 어떤 일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굳은 확신만큼이나 분명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그렇게 이름 지었다. ‘불’이라고.
나는 전에는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 세상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에 새로운 하나를 더한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내가 이뤄 낸 일이 자랑스러웠다. 그에게 달려가 알려 주려 했다. 그의 마음에서 내 자리를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겠다 싶어서.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고 그만두었다. 아니, 그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게다. 이건 무엇에 쓸모가 있느냐고 물을 텐데, 무어라 답하랴? 만약 그것이 무언가에 ‘쓸모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면, 그저 아름답기만 한 거라면――
그래서 한숨을 내쉬고 가지 않았다. 사실 그것은 어디에도 쓸모가 없었으니까. 움막을 지을 수도 없고, 멜론을 더 좋게 만들 수도 없고, 과일이 빨리 익게 할 수도 없었다. 쓸데가 없고, 어리석은 짓이고, 헛된 일이었다. 그는 그것을 업신여기며 모진 말을 던질 게다. 그러나 내겐 결코 업신여길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말했다. ‘오, 너 불아, 사랑한다. 너 가녀린 분홍빛 생물아. 너는 정말 아름답잖아. 그것으로 충분해!’ 그러고는 가슴에 품으려 했다. 그러나 멈췄다. 이어서 머릿속으로 또 하나의 격언을 지어냈다. 처음 것과 너무 비슷해 표절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덴 실험체는 불을 멀리한다.’
나는 다시 일했다. 불가루를 충분히 만든 다음, 한 줌의 마른 갈색 풀에 쏟아부었다. 집으로 가져가 늘 곁에 두고 가지고 놀 작정이었다. 그런데 바람이 불자 가루가 흩어져 사납게 내 쪽으로 튀어 올랐다. 나는 떨어뜨리고 달아났다. 돌아보니 푸른 정령이 솟아오르며 점점 펼쳐져 구름처럼 굴러갔다. 그 순간 나는 그것의 이름을 떠올렸다. ‘연기’! 정말이지, 연기라는 말은 그전에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도.
이내 노란빛과 붉은빛이 환히 솟아올라 연기 사이로 번쩍였다. 나는 곧장 이름을 붙였다. ‘불꽃!’ 게다가 내가 옳았다. 비록 이것이 세상에 처음으로 일어난 불꽃이었지만. 그것들은 나무를 타고 올랐고, 점점 부풀어 굴러가는 거대한 연기 속을 들락날락하며 눈부시게 번쩍였다. 나는 손뼉을 치고 웃으며 황홀하게 춤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어찌나 새롭고 낯설고 경이롭고 아름다운지!
그가 달려와서 멈춰 서서 바라보았고, 한참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아, 그가 그렇게 직설적으로 물어 오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답해야 했다. 그렇게 했다. 불이라고 말했다. 내가 알고 그가 물어야 하는 처지가 되어 그가 짜증이 났다면, 그것은 내 탓이 아니다. 나에게도 그를 짜증나게 할 마음은 없었으니까.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가 다시 물었다.
“이건 어떻게 된 거야?”
또 직설적인 질문이라, 직설적인 답을 해야 했다.
“내가 만들었어.”
불이 점점 더 멀리 번져 갔다. 그는 타 버린 자리의 가장자리로 가서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것들은 뭐야?”
“불씨야.”
그는 살펴보려고 하나를 집었다가, 마음을 바꿔 도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가 버렸다. 그 어느 것도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흥미가 일었다. 잿더미가 있었다. 회색에 부드럽고 가녀리고 어여뻤다. 무엇인지 단번에 알았다. 그리고 잉걸불도 있었다. 잉걸불도 단번에 알았다. 사과들을 찾아내 갈퀴로 끌어모으니 기뻤다. 나는 어리고 식욕이 왕성하니까.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사과들은 모조리 터져 버려 못 먹게 되어 있었다. 보기엔 그랬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날것보다 한결 더 맛있었다. 불은 아름답다. 언젠가는 쓸모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싶다.
금요일. 지난 월요일 해 질 무렵 잠깐 그를 보았다. 그저 잠깐. 동산을 가꾼 것을 칭찬해 주리라 기대했다. 좋은 마음으로, 또 정말 열심히 일했으니까. 그러나 그는 흐뭇해하지 않았고, 등을 돌려 자리를 떠 버렸다. 다른 일에서도 그는 시큰둥했다. 폭포로 내려가는 일을 그만두라고 또 한 번 설득해 봤기 때문이다. 그건 불이 내게 새로운 감정을 일러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이미 알게 된 사랑, 슬픔, 그 밖의 다른 감정들과는 또렷이 다른, 아주 새로운 감정. 바로 ‘두려움’이었다. 끔찍하다! 알게 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것은 어두운 순간을 가져오고, 행복을 망치고, 떨고 흔들리고 몸서리치게 한다. 그러나 그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그는 아직 두려움을 알지 못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