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나는 요즘 신문사 근무를 계기로 창작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이 창작은 보기에 따라서는 가정 문제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세속의 욕심을 부려 이런저런 자료를 모아 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러일 전쟁 후의 큰 현상인 군인 유족, 곧 미망인을 주인공으로 한번 창작을 해 보려 한다.
「뜬구름(浮雲)」을 내놓은 이래 거의 이십 년, 머릿속으로 창작을 구상해 본 적이 없이 번역에만 골몰해 있던 까닭에, 한 치 앞이 캄캄하여 곤혹스럽다. 그래서 다른 문사 제군의 작품은 어떨까 싶어 고요(紅葉), 후요(風葉), 덴가이(天外) 그 밖의 두서너 사람의 작품을 읽어 보았는데, 어느 분이나 어느 분이나 종횡무진 자재한 필치로 능숙하게 메이지 현대의 생활을 그려 내고 계신다. 그 가운데서도 후요 씨의 「청춘(青春)」을 읽고 크게 감복했다. 문장의 기교는 어떨까 싶지만 내용으로 말하자면 고요 씨보다 낫다…… 「청춘」을 읽어 보면 메이지 현대 청년 남녀의 경향이 또렷이 보이지 않는가.
나는 「청춘」을 가지고 최근 일이 년 사이의 대작이라 추천하고 싶다. 다만 아직 신문에 연재 중이니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오늘날의 청년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본능주의가 무의식중에 전파되어 있다. 그것을 후요 씨는 능숙하게 붙잡아 소설로 풀어내고 있는 점이 훌륭하다.
내 소설은 솔개가 나올지 매가 나올지 난산 중이라 오늘 시점으로는 무어라 말할 수 없으나, 서른서넛쯤의 무르익은 미망인을 주인공으로 오륙십 회 정도 이어 보려 한다. 다만 문제가 문제인지라 나로서도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본디 나는 「정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는 재래의 도덕주의를 그르다 여기는 사람이며, 천하의 과부는 마땅히 재혼해야 한다는 논자다. 사정이 허락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아니, 보통의 사정쯤은 떨치고서라도 재혼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오늘날의 군인 유족은 아마도 내 주장을 받아들여 주지 않으리라.
여주인공은 소좌급 미망인이고, 남주인공은 학식 있는 신사, 그러니까 자산이 있는 대학교수쯤의 위치로 한다. 여주인공인 미망인과 이 대학교수의 부인은 학교 동무로, 거의 자매와 다름없는 사이. 그리고 이 교수 부인은 기독교 신자로서, 늘 박애 사업 따위에 앞장서 분주한 훌륭한 부인이기도 하다. 늘 동생처럼 친히 지내던 군인의 부인이 이번 전쟁으로 미망인이 되었으니, 교수 부인은 예의 그 성정대로 거의 자기 일처럼 슬퍼하며, 남편에게 권하여 그 미망인의 의논 상대가 되게 한 것이 잘못의 시작이었다. 결국 이 군인 미망인과 학식이 있고 지위가 있고 사려가 깊은 신사 사이에 부정한 연애가 성립되어, 모르는 사이에 간통의 죄악에 빠지게 된다. 재래의 도덕적 시각에서 말하자면 어지간한 비난이 있겠으나, 나는 진지하게 이 경로를 그려 보려 한다.
다만 남주인공은 어쨌든 사회 상류에 있는 사람이므로, 아무리 눈앞에 의지할 데 없는 미인이 자기를 오라비처럼 친히 여겨 의논 상대 삼아 날마다 가까이한다 해도, 그렇게 손쉽게 연애가 성립되는 법은 없다. 거기가 내가 풀어내야 할 클라이맥스다. 이 남주인공과 그 부인, 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정면에 내세우고 박애 사업에 관여하며 세간의 눈에는 현부인이라 불릴 만한 영부인 사이는, 세간의 눈에는 별다를 바 없이 오히려 겉모습은 지극히 평화로운 가정이다. 다만 이 영부인이 이상에 치우쳐 있는 만큼 어딘가 정애가 부족한 탓에, 남주인공인 대학교수는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지만 평소 어딘가 모르게 불만족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영부인에게 어떤 결점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딘지 불만족스러운 그 차에, 통통하고 천진한 스물서넛의 미인이 자기 부인을 언니로 받들고 자신을 오라비로 친히 여기며 날마다 찾아와 자질구레한 걱정거리에 시달려 매달려 오니, 현인 같은 얼굴을 한 아내에 견주면 어깨에 힘이 들지 않고 마음도 그저 잘 맞아, 마침내 상도를 잃게 된다. 이런 경로이지만, 이 부부 사이를 그려 내는 일은 양쪽 다 교육 있는 인물인 만큼 실로 곤란하기 짝이 없다.
특히 그 부인의 묘사가 힘이 든다. 부부 사이가 나쁘거나 혹은 부인을 나쁘게 그려서 간통을 보이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내가 그리려는 대학교수 부인은 앞서 말했듯이 기독교 신자다. 사회 사업에 종사하는 구미의 부인을 이상으로 삼는 현부인이다. 남편을 들볶는 악처와는 다르다. 그러므로 설령 남편에게 용서하기 어려운 큰 실책이 있어도,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그 죄를 용서한다, 이렇게 부인은 이상으로서는 그렇게 가고 싶을 테지만, 한아름이라도 버드나무는 버드나무라, 아무리 그리스도의 정신을 지닌 영부인이라 해도 막상 그런 처지가 되면 그리스도의 정신이고 무엇이고 있을 리 없다. 여느 여인의 푸념으로 되돌아가 요즘 세간에 유행하는 번민에 빠진다. 나는 온 힘을 모아 이런 처지에 놓인 영부인의 심리 상태를 그려 보려 하지만, 잘될지 어떨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요컨대 나는 간통을 당한 이 영부인보다도, 간통에 빠진 미망인 쪽으로 독자의 동정을 끌어 보려 생각하고 있다. 세간이 알아 주면 좋겠지만…… 어쨌든 미망인 재혼 문제는 탁상공론이 아니라 러일 전쟁이 전후에 남긴 인도 문제, 곧 사회 문제이니, 세상도 가볍게 다루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이번 전쟁으로 십 몇만이라는 미망인이 생겨 있으니 말이다.
내 소설은 미완성품이니 이쯤에서 매듭짓겠지만, 러시아 소설가도 요즘 부인 문제를 소설 가운데 다루고 있다. 일본에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베르비츠카야라는 여성 작가는 자신이 부인이기 때문인지, 늘 부인 문제를 소설 속에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 베르비츠카야의 걸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본 가운데 「행복(幸福)」이라는 단편이 있었다. 이 「행복」을 읽어 보면, 러시아도 교육 있는 일부 부인들 사이에는 직업이 문제가 되어 있는 모양이다. 혼인을 하려 해도 지참금이 없다, 그러면 직업을 구해 보려 해도 교육 있는 부인에게 맞는 직업이 없다, 그래서 교육은 있으나 직업이 없는 부인들이 이쪽저쪽 헤매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러시아에서 부인의 직업이라 하면 가정교사인데, 오늘날 러시아에서는 이 가정교사가 빽빽이 가득 차 있는 모양이다. 가장 품위를 떨어뜨리면 갖가지 직업이 있겠으나, 그렇게는 가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부인의 직업 문제가 일고 있는 듯한데, 혼인에 지참금을 준비해야 하는 나라이니만큼 일본보다는 어딘가 더 가혹한 듯하다. 일본은 아직 여자 대학 졸업생이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머지않아 러시아 같은 참상이 닥쳐올지도 모르겠다.
(메이지 삼십구년 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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