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
제5장
그날 새벽에 안협집이 무사히 왔다. 머리에 지푸라기가 묻고 몸매무시가 말 아니다.
"에그, 어떻게 왔어! 응?"
주인은 눈에 눈물이 괴어서 어루만진다.
"무얼 어떻게 와요? 밤새도록 놈하고 승강이를 하다가 그대로 왔지."
"그대로 놓아 주던가?"
"놓아 주지 않고, 붙잡아 두면 어찌할 테야?"
일이 너무 싱겁다. 삼돌이놈만 혼자말처럼,
"내가 잡혔더면 콩밥을 먹었을걸. 여편네니까 무사했지."
주인은 그래도 미진해서,
"그래, 잘 놓아 주었으니 다행이지. 그러나저러나 뽕은 어떻게 되었노."
"아 뺏겼죠!"
"인제는 아무 일 없겠소?"
"일이 무슨 일예요."
그날 밤에 삼돌이란 놈은 혼자 앉아서 생각하기를, '복 없는 놈은 하는 수가 없거든. 그러나 내가 다 눈치를 채었으니까, 노름꾼놈이 오거든 이르겠다고 위협을 하면 년도 발이 저려서 그대로는 못 있지. 내 입을 안 씻기고 될 줄 아는 게로구먼.'
그 후부터는 삼돌이란 놈이 안협집을 보고는,
"뽕지기놈 보고 싶지 않습나?"
하고 오며 가며 맞대놓고 빈정대기도 하고 빗대 놓고도 비웃는다.
"뽕이나 또 따러 가소."
이러는 바람에 온 동리에서 다 알았다. 안협집은 분해서 죽겠는데 하루는 삼돌이란 놈이 막 안협집이 이불을 펴고 누우려는데 찾아와서 추근추근 가지도 않고,
"삼보 김서방이 올 때도 되었습네그려."
하며 눈치를 본다. 안협집은 졸음이 와서 눈꺼풀이 뻣뻣하여 오는데 삼돌이란 놈이 가지도 않는 것이 귀찮아서,
"누가 아우.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겠지."
하고 담벼락에 비스듬히 기대앉는다.
삼돌이의 눈에는 그 고단해하면서 비스듬히 누워서 눈을 감을랑말랑 한 안협집의 목덜미 살쩍 밑이며 볼그레한 두 볼이 몹시 정욕을 일으켰다.
그래서 차츰차츰 말소리가 음흉해 간다.
"임자는 사람을 너무 가려 봅디다. 그러지 마슈. 나도 지금은 남의 집 머슴놈이지마는 안집 지체라든지 젊었을 적에는 그래도 행세하는 집에서 났더라우. 지금은 그놈의 원수스런 돈 때문에 이렇게 되었지마는."
하고 말을 건네려 하는데, 안협집은 별 시러베자식 다 보겠다는 듯이 대답이 없다.
"자, 그럴 것 있소. 오늘은 내 청을 한번 들어주소그려."
하고 바싹 달려드는 바람에 반쯤 감았던 안협집의 눈은 똥그래지며 어느결에 삼돌의 뺨에 손뼉이 올라가 정월의 떡치듯 철썩 한다.
"이놈! 아무리 쌍녀석이기로 이게 무슨 버르장머리냐, 냉큼 나가거라!"
하고 호령이 추상 같다. 삼돌이란 놈은 따귀를 비비면서 성이 꼭두까지 일어나서,
"무엇이 어쩌고 어째. 횡! 어디 또 한번 때려 봐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자기가 하려던 것은 이루고 마는 것이 상책이다. 이래도 소문은 날 것이요, 저래도 소문은 날 것이니 이왕이면 만족이나 채우고 소문이 나더라도 나는 것이 자기에게는 이로울 것 같았다.
더구나 안협집으로 말을 하면 온 동리에서 판박아 놓은 화냥년이니 한 번 화냥이나 두 번 화냥이나, 남이나 내가 무엇이 다를 것이 있으랴 하는 생각이 났다. 도리어 자기의 만족을 한 번 얻는 것이 사내자식으로서의 일종의 자랑인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는 두 팔로 안협집을 힘껏 껴안고,
"내가 호랑이 삼돌이다! 네가 만일 내 말을 들으면 무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두지는 않을 터이야! 너, 네 남편이 오기만 하면 모조리 꼬아바칠 터이야! 뽕 따러 갔던 날 일까지 모조리!"
무식한 놈이라 야비한 곳이 있다. 안협집은 그 소리가 얼마나 사내답지 못하였는지 알 수 없었다. 쇠 같은 팔이 자기 허리를 누를 때 눈을 감고 한 번만 허락할까 하려다가 그 말을 듣고서 고만 침을 얼굴에 뱉었다.
"이 더러운 녀석! 네가 그까짓 것으로 나를 위협한다고 말을 들을 줄 아니."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삼돌이는 손으로 안협집의 입을 막았으나 때는 늦었다. 마침 마을 다녀오던 이장의 동생이 이 소리를 듣고 문을 열었다.
삼돌이란 놈은 무안해서 얼굴이 붉어지며 안협집을 놓았다. 안협집은 분해서 색색하며,
"저놈 보시소. 아닌밤중에 혼자 자는데 와서 귀찮게 굽니다. 저 죽일 놈이오. 좀 끌어내다 중치를 좀 해주시오."
이장의 동생은 안협집의 행실을 아는 고로 삼돌이만 보내려고,
"이놈이 할 일이 없거든 자빠져 자기나 하지, 왜 아닌밤중에 남의 계집의 방에서 지랄이야? 냉큼 네 집으로 가거라!"
두 눈이 등잔만하여진다.
"네, 그런 게 아니라, 실없이 기롱을 좀 했삽더니……."
"듣기 싫여! 공연히 어름어름하면서, 이놈아, 너는 사람을 죽여도 기롱으로 아느냐?"
삼돌이는 쫓겨났다. 이장의 동생은 포달을 부리며 푸념을 하는 안협집을 향하여,
"젊은것이 늦도록 사내녀석들을 방에다 붙이니까 그런 꼴을 당하지."
"누가요?"
"고만둬! 어서 잠이나 자."
하며 문을 닫쳐 주고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