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3

농촌 사람들 — 제1장

농촌 사람들 — 제1장

1

아침에도 큰 두레방석만한 뻘건 해가 붉은 노을을 띠고 들 건너 동녘 봉우리 위로 쑥 솟아올랐다. 그것은 마치 이 세상을 '불'의 세계로 바꾸는 마당에 어떤 무서운 계시(啓示)의 첫 광경같이…….

그리하여 가뜩이나 말라 시들어 가는 여름철 넓은 세계의 생물들은 한때의 눈을 그리로 쏘며 다시 한번 더 떨지 아니할 수 없다.

"큰일났다! 영영 사람을 다 죽이고 만다!"

들녘 사람들은 입을 여나 안 여나 다 이와 같은 말을 하게 된다. 밝음의 공포―---백색의 공포는 오늘도 또 닥쳐왔다. 그러던 해가 벌써 한나절이 기울었다. 논밭의 곡식은 더 말할 게 없고 길 옆의 풀도 냇가의 잔디도 말랭이의 산풀도 모두 말라 시들다가 나중에는 빼빼 꼬여틀어져 간다. 어떤 때는 가을 풀밭 모양으로 누렇게 탄 데도 있다.

나뭇잎도 시들부들하여진다.

십리장야(十里長野) 한복판에 길게 내려 뚫고 누운 큰 내는 꾸불꾸불 말라 비틀어져 자빠진 무슨 큰 뱀의 배때기처럼 말라 뻗치어 있을 따름이다.

서쪽으로부터 동쪽 끝까지 이들 북녘을 둘러막은 북망산, 어찌 가다가 적은 나뭇개나 세워 놓고는 거진 다 벌거벗은 채로 있는 이 사태 무더기, 살가죽을 벗겨 놓은 사람의 등같이 보기에도 지긋지긋한 이 시뻘건 사태산. 이 산말랭이 남향폭 안을 불볕이 내리쪼일 제 시뻘건 흙빛은 이글이글 익어 더욱더 붉어지는 것 같다. 그러면 불볕은 더욱더 쏟아져서 하늘에서 쏟는 더위와 땅에서 뱉는 더위가 서로 엄불러 산과 들을 뒤덮을 제 이따금씩 바람에 불리는 나뭇잎까지 소름치며 떠는 것 같다.

가뭄도 벌써 한 달 반이나 되었다. 졸아붙은 봇물이나마 닿는 상토 한 귀퉁이나 또는 샘물을 파서 두레박질하여 대는 구렁텅이 논뙈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논바닥이 보얗게 말랐다. 엉거름(논바닥이 말라서 갈라진다는 말)이 땅땅 갔다. 벼이삭이 모두 비비 꼬여 간다. 어떤 때는 푸나무같이 말라서 불을 지르면 탈 듯싶다. 이해 농사는 아주 절망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애착을 버리지 못하였는지 삿갓 쓰고 종가래 짚은 어떤 농군은 논둑에 우두커니 서서 논바닥을 들여다보고 있다. 검누르게 들뜬 얼굴, 쑥 들어간 두 눈, 말없는 가운데 아픈 표정, 멀리서 자세히 보이지는 아니하나 짐작할 수 있다. 어떤 늙수그레한 여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논둑을 두드리며 통곡하는 이도 있다. 논에 물이 졸아들어 가기 시작할 때부터 졸이던 마음이 이날 이때까지 갈수록 더 바싹바싹 타들어 가던 터이다. 죽어 가는 자식의 꼴을 들여다보고 있는 어버이의 마음씨와도 같이 말라 죽어 가는 벼이삭의 운명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울고도 싶고 미칠 듯도 싶다.

"비를 내리지 않거든, 차라리 불을 내리라!"

악이 치받친 사람들의 입에서는 이러한 소리도 나온다.

이들이 들폭 안에 이 참혹한 광경을 홀로 우뚝 서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이 마을 앞에 서 있는 묵은 정자나무다. 이 정자나무는 그늘 좋기로 이름난 느티나무로서 잎과 가지가 뻗어 나가서 폭안도 굉장히 넓고 나무 밑 대궁도 여러 아름이나 되게 굵다. 마치 이 나무만이 이 마을에 묵은 역사를 다 말하는 듯이, 다른 때 같고 보면 평생 일도 할 줄 모르고 놀기만 하는 엇박이 친구들이나 이같이 바쁜 철에도 이 나무 그늘 밑에 모여들어 앉아서 장기나 바둑으로 기나긴 해를 넘겨 보낼 터인데, 지금은 한다하는 장정 일꾼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 앉아서 근심기 띤 얼굴을 하여 가지고 서로 바라보며 가뭄 걱정을 하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말거리다. 걱정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올 무서운 흉난리를 미리 느끼며 침울한 가운데에도 가슴이 은근히 떨린다.

사람이 어떤 공황에 눌릴 때에는 서로 모이고 싶은 마음이 다른 때보다 더 나는 것이다.

"인제는 더 말할 것 없이 아주 흉년이지?"

이것은 술타령만 잘하며 뻔들뻔들 놀기만 하고 농촌에 살면서도 농사 이치라고는 모르는 예전 아전 퇴물인 이불량의 말이다. 그는 아전 다닐 시절에 촌사람의 것이라면 속이고 어르고 해서 잘 떼어먹고 살던 터이므로 불량(不良)이라는 별호까지 얻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는 수 없이 이 농군들 틈에 와서 끼여 지내 가며 한층 떨어져서 벗 같은 것도 주고받고 하며 그럭저럭 지나가는 건달패다.

"흉년은 벌써 판단된 흉년이지. 그러나 지금이라도 비만 온다면 아주 건질 수 없게 된 말라 죽은 것 외에는 다소간 깨어날 것도 있을 테니까. 그러한 것은 한 마지기에 단 벼 몇 말을 얻어먹더라도……."

고추상투를 하여 가지고 줄부채를 왼손에 들고 슬쩍슬쩍 부치며 앉았던 반나마 늙은이의 참하게 대답하는 말이다.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볏말박을 건질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되며 건진다 하더라도 며칠이나 먹게 될 테야 그게."

여름에는 참외장수, 겨울에는 나무장수로 이름난 중년에 들어 보이는 눈껌적이의 말이다.

"그러고저러고 간에 필경에는 다 죽네 죽어."

눈껌적이와 같은 나쎄나 들어 보이는 세고패 상투쟁이의 하는 말이다.

"네기를 할…… 그럴 줄 알았더라면 매고 뜯지나 말 것을…… 공연히 없는 양식, 없는 돈에 술밥만 처들여 가며……."

또한 눈껌적이의 입맛 다시며 하는 말이다.

"지금 앉아서 그런 걱정이 다 소용 있는 걱정이겠나……."

곰방대에다가 담배를 담아 가지고 앉아서 지금 세상에 철늦게 부시를 쳐서 불을 붙인 부싯깃을 갖다가 대꼬바리에 박고는 뻑뻑 빨며 말대꾸하는 반나마 늙은이의 말이다.

"사람이 모두 굶어 죽어야 옳단 말인가? 품이라도 팔아 먹을 것이 있어야지."

이 말은 영남사투리를 써가며 말하는 곰보 총각의 말이다. 그가 영남서 이곳으로 올라와 남의집 머슴살이 한 적도 한두 해에 지나지 않는다 한다.

이 여러 사람들은 말이 이 입에서 터져 나오고 저 입에서 터져 나오고 하여 서로 어지럽게 또는 드문드문하게 지껄여 댄다.

"일본이나 가세그려."

"이 사람 말 말게. 갔다가 돌아오는 것들은 어쩌고. 돈벌이가 좋다더니만 까딱 잘못하면 사람을 무엇 감옥 속 같은 데로 속여 끌고 들어가서 그 안에다 가두고 죽도록 일만 시키고 돈도 먹을 것도 얼마큼씩 안 주고 한번 갇히면 세상 밖에도 잘 못 나온다네."

"다 그러할 리야 있으랴마는 자칫하면 그러는 수도 있다더구먼."

하고 이때껏 남의 말만 듣고 앉았던 떠꺼머리 총각의 받는 말이다.

그는 나이도 스물너더댓이나 되어 보이고 기운도 차 보이고 사람도 좋아 보이나 이때껏 장가도 들지 못한 터이다. 머리를 굵게 땋아서는 머리 위에 칭칭 감고 그 위에다가 베수건을 질끈 동인 꼴이 떠꺼머리 총각이란 말과 같이 쇠어 가는 밀대 모양으로 보기에도 좀 징글맞아 보인다. 그와 반대로 볏섬이나 쌓고 먹는다는 이 마을 높은 사랑집의 북상투 짠 열서너 살 먹은 새신랑의 꼴에다 서로 어루어 놓고 보면 그것도 이 열리지 못한 사회에서 예사롭지 않은 무슨 변으로 느껴진다.

"서간도는 올 같은 해에 가뭄도 안 들고 조가 아주 잘 되었다고 재작년에 들어간 그 이쁜이 아버지 천보 말이여, 그한테서 일전에 건넌마을 자기 당숙집에 편지가 왔더라네…… 거기나 갈까?"

"거기 가면 별수 있나. 거기도 관헌들과 지주들의 압제가 여간이 아니라네. 거기 가서 살던 사람들도 이리로 쫓겨가고 저리로 쫓겨간다네."

"그러면, 네미…… 우리 조선 사람은 살 곳도 없고 갈 곳도 없구나!"

이 소리는 뼈아프게 울려 나왔다.

둘러앉은 여러 사람은 말없이 땅만 굽어보고 있을 뿐이다. 무슨 생각에 잠긴 그들의 눈 속에는 엷지 않은 근심과 아픔의 빛이 또한 잠겨 있다. 침묵은 한참 동안이나 끌어 나갔다.

"네기를 할, 예전 의병 병리 같은 ○○○나 또 이 ○○○○○?"

하고 한 사람이 침묵을 깨뜨린다.

"사람이 조금만 더 배가 고파 봐, 악이 나서 무슨 짓을 못 하나."

"제발 벼락이나 치면 경칠 거!"

"흥 저것 봐, 바싹바싹 타들어 가는구나!"

한 사람이 고개를 들어 벌판을 바라다보며 기막힌 듯이 말한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모두 고개를 들어 들녘을 내어다본다. 그들은 보기가 하도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상을 찌푸리고 바라다본다. 잠시 동안 잊었던 공포가 다시 닥쳐왔다.

"하느님, 맙시사!"

이것은 늙은이의 부르짖는 말이다.

"죽여라! 죽여! 어디 견디어 보자. 경을 칠 거……."

이것은 젊은이의 부르짖는 말이다. 쓴 침묵은 또 끌어 나간다.

"서간도…… 서간도…… 그래도 거기나 가봐…… 그런데 그 이쁜네하고 같이 간 음전네는 서간도에 안 있데여. 거기서 더 들어가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고 말았다네그려."

"그래 그 음전네는 소식도 없대유?"

이것은 한옆에서 고누판을 그리고 앉았던 총각의 말이다.

"모른다네……."

떠나간 사람들의 자취가 덧없이 되었다는 것을 탄식하는 듯한 긴 말씨로 대답하던 사람은 또한 눈껌적이다.

"삼 년…… 벌써 삼 년이로구나!"

갑자기 서글픈 듯이 건넛산 고갯길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말하는 총각의 한숨 비슷한 말이다. 거듭 잇달아,

"제―기."

하고 다시 땅을 굽어보는 그의 눈과 얼굴에는 슬픈 빛이 띠어 있다. 아마도 아마도 그의 가슴에는 휘휘 틀어져 감겨 나오는 지나간 날 로맨스의 꿈이 다시 떠오르는 것이나 아닐까? 그 음전이란 처녀를 생각하고 그러는 것은 아닐는지?

이때 그 마을 앞 신작로에는 짐차가 온다. 한 채, 두 채, 세 채나 된다. 무거운 수레를 끌고 가는 소는 숨과 발이 한가지로 터벅거린다. 사람도 마음속까지 가뭄이 들어서 놀기에도 괴로운 터인데…….

"그게 뭐유? 벼입니까?"

영남 악센트로 말하는 곰보 총각이 마차꾼보고 묻는 말이다.

"쌀이라네."

마차꾼은 채찍으로 소 궁둥이를 툭 때리며 대답한다.

"뉘 집 쌀이유?"

마차꾼은 대답도 하기 전에 곰방대를 쇠꼬치로 후비고 앉았던 세곱상투가 말을 채서,

"물어 볼 거 무엇 있어. 김참봉네 쌀이지."

"김참봉네가 언제 그렇게 부자가 됐나?"

이것은 이때껏 잔뜩 찌푸린 상으로만 아무 말참례 없이 앉아 있던 원보의 말이다. 그는 금전판이고 대처 바닥으로 돌아다녀 머리까지도 깎았다는 사람이다.

"흥, 부자 될 수밖에. 요전까지도 그 부자(父子)가 다 돈벌이하였지. 작년부터 돈놀이하고, 더구나 지금은 동척회사 사음이고. 지독하게 긁어 모으니 부자 될 수밖에…… 게다가 세도가 좋지, 옛날의 닷 분〔五分〕세 뭉치니, 양반이니 하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군청이고 척식회사고 헌병소고 다 무엇 세도가 막 난당이지."

원보의 친구가 하는 말이다.

"주릿대를 안길 놈들, 그놈의 부자는 두 놈이 다 고약도 하더니……."

"고약하니께 돈 모은단다. 법에 숨어서 도적질하는 놈들이니께. 못난 우리 같은 것들이 공연히 섣불리 도적질하다가 법에 잡혀 들어가지."

이것은 그네의 말마따나 돌아다니며 널리 박람하여 귀가 열렸다는 원보의 말이다.

"참 그래."

원보의 힘있게 내어붙이는 말에 동감이라는 듯이 둘러앉은 청중에서 몇 사람은 잇대어 이와 같이 대답한다.

"보리알 꽁댕이도 얻어먹지 못하여 부황이 나서 사람의 얼굴이 모두 들뜬 판에……."

"어떤 놈은 쌀을 몇 차씩 산단 말인가."

눈알을 부리부리 굴리며 말하는 키가 작달막하고 뭉툭하게 생긴 원보의 한 친구의 말이다.

"무얼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 따위 놈의 것을 뺏어 먹을 수 있다면 뺏어 먹는 것이지."

이것은 원보의 말이다.

"그것은 자네 말이 글렀네."

이것이 마치 찌는 더위에 털끝 하나 꼼짝 못 하고 숨만 헐떡거리고 앉았는 오뉴월에 알을 품은 암탉 모양으로, 더위를 이기지 못하여 웅숭그리고 앉아 눈만 까막까막하며 거진 육십 줄에 들어 보이는 늙은 영감이 한탄하는 말이다.

"글르기는 무엇이 글러요? 누구나 굶어 죽게 생기면 있는 놈의 것을 뺏어다가라도 먹고 사는 것이 의당한 일이지 공연히 꼬장꼬장한 체만 하다가 굶어 죽지."

또한 원보의 하는 욕이다.

"그것은 이치가 틀린 말이야. 부자고 가난한 사람이고 다 제 팔자고 제 복이지."

하고 저쪽 늙은이 편을 드는 사람은 어물장사하여 돈냥이나 모았다는 젊은 자의 말이다.

"무엇, 제 팔자?"

하고 말끝을 주춤하던 원보는 얼굴에 핏대를 올려 가며 자기의 주장을 세워 말을 기다랗게 또는 힘있게 늘어놓았다. 또는 저편에서도 자기네 주장에 지지 않으려고 연달아 대거리를 하였다. 그리하여 판이 떠들썩하게 한참 동안이나 의론의 불꽃이 타올랐다. 또는 그 늙은이와 원보와는 의론 끝에 감정의 갈등이 나서 다툼까지 하였다.

"예끼 이 사람들! 말이 모두 억지고 맘씨가 몹쓸 맘씨로세. 그러한 맘보를 먹고 있다가는 제 명대로 살지도 못하리."

이 말에 원보는 들은 체 만 체하고 벌떡 일어나서 동네 안 골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가 일어서 빠져간 뒤의 좌중은 다시 쓰디쓴 침묵 속으로 잠겨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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