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농촌 사람들
Table of Contents
농촌 사람들
조명희
Reading Settings
Font size
18px
Theme
Light
Dark
Sepia
Eye care
Line spacing
Reading mode
Translation Pagera AI
Original Public Domain
Chapter 3 of 3

농촌 사람들 — 제3장

3

이날 밤에, 밤이 이슥하여서 원보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었다. 지친 사립문을 슬그머니 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느 때고 여름철만 되고 보면 방 안에서는 빈대 벼룩에 쫓기어, 봉당에서 자다가 이제 봉당에서도 물것에게 쫓기어, 나중에는 마당으로 나와 한지 잠을 자게 되는 것이 전례다.

마당 멍석 자리 위에 그의 어머니가 손녀딸을 데리고 누워서 자는 모양이 눈에 먼저 뜨인다. 그는 봉당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서 누워 자는 자기 어머니의 꼴을 바라다보았다.

이날이야말로 스무날께 늦게 돋는 달이 벌써 하늘의 반쯤은 솟아서 올라 있다. 달빛이 바로 봉당마당 반쪽을 들이비추게 되었다. 달빛을 받은 그의 어머니의 얼굴은 말라서 쭉 빠졌던 살이 굶어서 부황이 났는지 부석부석하게 부어오른 것이 지금 보아도 넉넉히 알 수 있다. 다 죽어 가게 되었다는 어린 딸은 잠결에도 다만 하나인 그의 할머니만은 잃지 못한다는 듯이 손으로 할머니의 팔목을 붙든 채 잠들어 있다. 원보는 그 꼴을 보기가 어색하고 싫증도 나서 눈을 딴 데로 돌렸다. 그의 어머니의 누운 머리맡에는 낮에 깨어진 화로를 무엇으로 얽어 동여매어 가지고 그 안에는 푸나무로 모깃불을 놓아서 지금도 가는 연기가 실마리같이 달을 향하고 피어오른다. 이 화로를 바라다본 원보는 예전 생각이 번개같이 지나쳐 간다. 이 화로야말로 옛날에 들일하러 다닐 때에는 으레 이 화로에다가 왕겨 같은 것을 피워 담뱃불을 담아 가지고 다니던 터이다. 그는 지금 당하여 부질없는 옛 생각은 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하여 마음속에 번뜩거리는 생각의 그림자를 쫓아 버릴 양으로 눈을 딴 데로 또 돌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옛날에 물꼬 보러 다닐 제 들고 다니던 괭이가, 더구나 그 집 참봉 아들하고 물쌈할 때에 가지고 갔던 괭이가 눈에 뜨이게 되매 그는 새삼스러이 분노가 떠오르지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땅만 굽어보고 있는 그의 눈은 어둔 밤이 되어서 잘 보이지는 아니하나 대낮만 같고 보면 분명히 그 불량스러운 눈자위가 끄먹끄먹함을 볼 수 있으리라.

한참이나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그는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화로에 가서 불을 담아 피워 물고는 다시 앉았던 자리에 와서 앉았다. 그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부엌 쪽을 바라다보았다. 시커멓게 끄을은 섬거적 같은 것이 부엌문 어구에 놓여 있고 그 옆에는 목이 부러진 지게가 하나 놓여 있다. 여지없이 가난한 살림에 어찌하여 이같이 쓰지 못하게 된 헌 지게를 패어서 때지를 아니하였나 하는 의심도 나게 된다. 아마 이러한 것을 패어 때면 무슨 사위에 꺼리는 까닭인 듯도 싶다. 지금 눈에 뜨이는 이 지게야말로 이것 하나로 말미암아 원보의 과거가 십 년 전 일로부터 오늘까지 줄잡으면 삼 년 전 일까지 내려온 일을 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원보가 떠꺼머리 총각으로 겨우 열 살인가 열한 살인가 들던 해에 그의 아버지가 죽었다. 그리하여 중년 과부 된 그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만 마음을 붙이고 온갖 고생살이를 하며 이 외아들을 키워 왔던 것이다. 그때 원보의 어머니는 품팔이하고 원보는 나무장사하여 모자가 지악스럽게 굴어 돈냥이나 모은 탓으로 남에게 착실히 보여 장가까지도 잘 들게 되었었다.

장가든 뒤에는 더욱더 부지런하게 하여 눈이 쌓인 겨울 아침이라도 매일 아침 밝기 전에 일어나서 가을에 해서 쌓아 두었던 나뭇더미에서 무거운 나무짝 하나를 떼어 지고는 거진 십 리나 되는 읍내로 들어가서 팔고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에는 넉넉지 못한 돈냥에서도 자그만큼 떼어 내어 북어마리나 소고기 냥어치나 사서 들고 돌아온다. 어떤 때는 귀여운 아내의 소용감으로 왜밀이며, 분이나 바늘이나, 실이나, 또한 어떤 때에는 마음을 크게 먹고 자줏빛 관사나 제병 같은 비단 댕기 감을 떠가지고는 빈 지게 지고 혼자 돌아오며 추위도 잊어버리고 이생각 저생각에 골똘하여진다.

'이 왜밀을 갔다 주면, 이 분을 갔다 주면 여북 좋아할까.'

이렇게 생각하여 보며 그 아내의 방긋이 웃는 모양이 눈에 떠오를 때에는 팔짱 끼고 고개 숙이고 터덜거리며 오던 이 나무장수는 멋없이 혼자 벙긋 웃는다. 또는 댕기 감을 떠가지고 올 때에는,

'이것을 갖다가 주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렷다!'

하며 그 함치레하고 새까만 머리를 비비 틀어진 한가운데에 이 새뜻하고 빛나고 고운 댕기를 휘휘 감아 물린 모양을 속으로 그려 보고는, 바로 그것이 눈앞에 보이는 듯도 싶어 그 어여쁜 꼴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가 없다는 듯이 손을 내밀어 어루만져 보는 흉내도 내어 보았다.

그러다가 자기 집에 이르러 봉당가에 언 발을 탕탕 구르며 눈을 털고 들어설 때에 기다리고 있다가 때맞추어 방문을 열고 마중 나오는 아내에게 사온 것을 어머니 모르게 슬그머니 손에다 쥐어 줄 것 같으면 아니나다를까! 과연 아내는 이 세상에는 둘도 없이 가장 어여쁜 입을 방긋이 열어 생끗 웃으며 좋아라고,

"아이고 왜 인자 와?"

하였고, 그 어머니는 뒤따라,

"얘야, 여북 시장하고 추웠겠니, 어서 조반 차려 줘라."

한다.

아침을 먹고 난 원보는 눈 쌓인 겨울날에도 남과 같이 마실도 아니 가고 자기 집 방 안에 들어엎드려 신을 삼으며 어머니와 아내를 번갈아 쳐다보아 가며 웃고 이야기하는 것이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었다. 그럴 때에 또 어머니가 바깥을 나가 단둘이 있게 될 때에는 그 틈을 타서 서로 농을 하여 가며 깔깔대고 웃는 것도 세상에는 흔하지 않은 재미였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겨울날의 아랫목 이불 속같이 따뜻하고 푸근한 지나간 날의 꿈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 하염없는 일이다. 그의 아내는 지금 없다. 있는 곳조차 알 수 없었다.

"주리를 틀 년!"

하고 동이 뜨게 있다가 다시,

"그 오라를 질 년이 지금은 어디 가 있나? 죽일년, 자식 생각도 안 난단 말인가?"

하고 그는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이때 어린딸이 잠을 깨어 저의 할머니 옆으로 달려들며,

"할머니! 할머니!"

한다.

이 소리를 들은 원보는 별안간에 가슴속이 짜르르하였다. 그러자 또 그 어머니는 잠을 깨어 팔로 어린아이를 거더듬어 껴안으며,

"아가, 아가, 아프냐? 또 아파? ……어린 것이 물 한 모금도 못 얻어먹고 앓기만 하느라고……."

이 소리는 가늘게 떨려 나오는 목소리다. 이 말끝에는 또한,

"으흐―"

하며 길게 내어뽑는 한숨 소리다. 원보의 가슴은 뭉클하였다.

"어머니, 저녁도 못 끓여 잡수셨수?"

이 목소리는 분명히 떨렸다.

"아 너냐? ……놀랐구나…… 저녁이 어디서 나서 끓여 먹어? ……넨들 좀 시장할라구!"

"아니……."

하며 말끝을 흐리고 앞만 굽어다보고 한참이나 무슨 생각에 잠겨 있던 원보의 얼굴에는 어떤 무서운 빛이 돌며 무슨 결심이나 한 듯이 입을 딱 악물고 일어선다.

"아 너 이 밤에 어디를 또 가니?"

"에 어디를 좀……."

하고 원보는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그 이튿날, 이 마을에는 가뭄보다 더 무서운 새 공포가 닥쳤다. 그것은 헌병과 보조원이 수없이 쏟아져 나와 마을 사람들을 붙잡아다 놓고 묻고 따지고 하며 원보의 집과 그의 친구의 집을 들들 뒤지며 의심스럽다는 사람은 모조리 붙들어 가는 판이다. 동네 개도 짖지 못할 만큼 무서움에 싸여 있다. 한참 동안은 길에 사람조차 뜸하다가 저녁 나절이 되어서 정자나무 그늘에 몇 사람이 모여 황당한 얼굴로 서로 대하고 앉아 수선수선하며 지껄이고 있다. 그들의 말을 들을 것 같으면 간밤에 건넌마을 김참봉 집에 도적이 들어서 돈을 뺏으려다가 돈도 못 뺏고 사람만 상하고 그 도적은 헌병에게 붙잡혀 가기만 하였다고 한다. 또는 헌병과 보조원이 와서 원보의 집을 뒤지고 간 것을 본다든지 원보와 그 친구 한 사람이 간밤에 나간 뒤에 다시 들어오지 아니한 것을 보면――그 밖에도 몇 사람이 붙들려 갔지마는――그 도적이 분명히 원보와 그의 친구 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그럴 즈음에 아침 나절에 혐의자로 붙들려 갔던 머슴꾼의 떠꺼머리 총각 하나가 읍내로 통한 신작로로 헐레벌떡거리고 쫓아 올라오더니 여러 사람 옆을 지나치며 외치는 말로,

"원보가 죽었어!"

"어 어, 죽다니?"

"유치장에서 목 매어 죽었어……."

그는 바쁘게 대답하며 골목으로 달려들어간다.

조금 있다가 골목 안으로부터 비척비척하고 쓰러질 듯이 달려나오는 늙은 여편네는 원보의 어머니다. 갈팡질팡하고 정자나무 옆을 지나치며 미친 사람같이,

"이놈 봐라! ……이놈 봐라! ……죽다니? 네가 죽다니…… 원보야…… 이놈! 이 몹쓸놈아! 네가 죽다니……."

하고 숨이 콱콱 막힌 말씨로 울부짖으며 읍내로 가는 산모퉁이 길, 해지는 편을 바라다보고 걸어나간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간다.

"원보야―"

하고 쓰러졌다. 다시 일어났다. 또,

"원보야―"

멀리서 들리는 소리다. 해는 아주 떨어졌다. 그의 그림자도 산모퉁이 그늘 속으로 감추어지고 말았다.

이해에도 늦은 가을이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이 마을에서도 가물가물하게 멀리 보이는 들 건너 북망산 고갯길에는 이 마을에서 떠나가는 한 떼의 무리가 있었다. 봇짐 지고 어린아이 업고 바가지 찬 젊은이, 사내, 여편네, 적지 않은 떼가 몰려간다. 서간도로 가는 이사꾼이다. 이 고갯마루턱을 다 넘을 때까지 그들은 서로서로 번갈아 가며 두 걸음에 한 번씩 아득히 보이는 자기네 살던 마을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다보고는 걷고 한다. 울어서 눈갓이 부숙부숙한 여자도 있다. 그 가운데에는 원보의 어머니와 그의 어린 딸이 섞여 있음을 볼 수 있었다.

Chapter 3 of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