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사형 신문
2장. 오빠의 사형 신문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이상."
머리를 끄떡해 보인다. 그는 한숨을 후 쉬었다. 말로나마 동무들은 이리 위로하여 주건만 정작 위로하여 줄 의사만은 입을 다문 채 오히려 모르는 체한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괘씸하고 분하여서 그 앞에서는 조금도 슬픈 빛을 띠지 않으려 적심을 다 기울이는 것이다.
효숙이는 영실의 눈이 까스스해지는 것을 보고 돌아서서 바께쓰를 가지고 수도 곁으로 가서 솨르르 수도를 틀어 놓았다. 머리에 꽂힌 모자는 깨울하였고, 그 밑으로 토실한 목덜미가 나부룩한 머리에 덮이었다. 나까가와는 눈을 껌벅이면서 주사기, 핀셋, 존데 같은 기계를 한 줌 쥐고 소독가마[消독 ]곁으로 와서 나사를 틀어 놓으니 물이 쏼쏼 끓고 더운 김이 팡팡 기어오른다. 거기에 기계들을 집어넣고 물러난다. 금시코 밑에 땀이 송알송알 맺히었다.
영실이는 힘없는 다리를 옮겨서 그의 사무상으로 왔다. 손은 벌써 흐뜨러진 책상 위를 정동하는 것이다. 누런 뚜껑을 한 의서에서 호르르 오르는 담뱃내와 가오루( :향기) 내, 그는 의사의 숨결을 문득 볼에 느낀다. 일변 눈을 찌푸리고 생각을 돌리려 효숙의 분주한 양을 바라보았다. 약간 푸른기를 띤 새하얀 간호부복에서 또한 의사의 옷갈피를 홀연히 발견하는 것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빠는 사형당하였다. 천장에 시커멓게 쓰여지는 것을 또한 보게 된다.
효숙이는 걸레로 마루를 닦고 책상, 의자, 도다나(戶 :찬장)를 닦으면서 열심히 조잘거리고 있다. 머리 까딱이는 몸짓하는 게 나까가와 보다 훨씬 능란한 것 같다. 나까가와는 푸시시한 머리를 소독가마에서 오르는 김에 뽀얗게 적시우고 서서 기계를 꺼내어 하나하나 탈지면으로 닦으며 "그래" "참말"하고 효숙의 말을 받고 있다. 그들은 아무 걱정도 없어 보인다.
소제가 끝나자 둘이는 머리를 까딱해 보이고 밖으로 통통 뛰어나간다. 이어 점심 종소리가 댕그릉 댕그릉 울려온다. 그는 엊저녁부터 굶었건만 밥 먹고 싶지 않았다. 이십여 일 전 의사가 약혼할 당시부터 굶기 시작한 것이 그 후로 한두 끼는 예사로 굶게 되는 것이다. 보다도 그때로부터 밥맛을 잃어버렸다.
그는 복도로 통한 문을 닫고 포켓에 손을 넣었다. 신문이 바스락 만져진다. 몸이 흠칫해지고 솜치가 오스스해진다. 손을 빼어 볼에 대었다. 잘못 본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 알 수가 있나, 손은 다시 포켓 속으로 들어간다. 땀이 뿌찐뿌찐 나고 팔이 후루루 떨린다. 신문을 쥐었다. 놓았다. 망설였다. 살금살금 끌어내었다. 눈에 칼날이 스치는 듯 산득산득해서 바로 볼 수가 없다. 절반 머그러진 사형수들의 사진 틈에 목이 상큼하게 패인 오빠가 툭 뛰어들었다. 그는 머리를 돌리고 같은 사람도 있지, 이름으로 눈을 옮기자 신문을 와락 접어 던졌다. 순간 철사로 그를 숨쉴 수 없어 꽁꽁 동였음을 느낀다. 아무리 벗어날래야 날 수 없는 그런 철망에 감긴 것을…… 오빠! 어머님께 뭐라고 하라우! 이때까지는 속여왔지만 이제는 뭐라고……
어제 이맘때 의사의 손을 거쳐 떨어지던 이 신문 호외! 얼마나 기막힌 소식이었던가. 그는 당장에 기색하였던 것이다. 그때 아주 피어나지 말았던들 이 아픈 양은 당하지 않을 것을, 그는 부지중에 손등을 꽉 물어 떼었다. 피가 봉긋이 솟아오른다. "오빠는 나쁜 사람이야. 그 어머님께 죽음을 뵈어. 너무 해, 너무 해, 어머님께 뭐라고 여쭐까." 그는 벌떡 일어나 빙빙 돌았다. 어머니만 아니면 약이라도 먹고 금방 이 괴롬을 잊고 싶다. 한데 칠순이 다 된 어머니가 있지 않나. 아들이 나오면 만나보겠다고 눈이 깜해서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지 않나.
영실아, 우리가 사형 언도를 받은 것은 신문지상으로 벌써 알았겠구나. 하지만 봐라, 결코 우리는 죽지 않는다. 언제든지 나가서 어머니와 너를 대할 날이 있을 터이니 그때를 기다려라. 어머니께는 당분간 숨겨다오, 누이야
최후심에서 사형 언도를 받는 오빠에게서는 이러한 편지가 왔던 것이다. 온 세상이 뭐라고 떠들든지 그는 오빠의 이 말을 믿고 싶었으며 또한 믿어지던 것이다. 하나 결국은 사형을 당하고야 말지 않았나, 그는 신문을 와락 당기어 올올이 찢어 창 밖으로 던졌다.
저편 정원엔 한창인 화단이 눈이 시릴만큼 번거로왔고, 정원을 둘러싼 비수리나무 울타리는 요새 가지깎음을 받아 가지런하게 돌아갔다. 거기엔 이제야 봄이 툭툭 쥐어발렸다.
참일까, 거짓이지, 오늘이라도 오빠에게서 편지가 올지 모르지. 그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물소리가 났다. 누가 편지를 들고 들어오는 것 같아 왁 울음이 나오는 것을 참고 머리를 돌렸다. 의사가 무심히 들어오다가 흠칫하였으나 태연히 들어와서 의자에 걸어앉는다. 그의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일변 담배를 피어 문다.
코끝에까지 울음이 빼듯이 내어민 것을 억지로 삼키려니 자꾸만 입이 비죽거려지고 숨이 가쁘다. 그러나 눈엔 독이 파랗게 서리고 있다. 혀를 꼭 깨물고 책상을 힘껏 붙들었다. 혀끝에서 피가 나는지 간간한 맛이 머리에까지 따끔따끔 느껴지고 있다. 의사는 성큼 일어나더니 도나다 곁으로 가서 담숙담숙 쌓아논 알콜 십뿌를 집어 손을 닦고 있다.
"점심 먹었어?"
이 물음에 영실의 보풀락한 눈등은 찢어질 듯이 팽팽하여졌다.
"왜 대답이 없어?"
말 끝에 씩 웃는다. 그의 말버릇이 그렇게만 지금에 있어서는 자신의 처지를 비웃는 웃음 같아 더 참을 수 없는 분이 왈칵 내밀치므로 눈을 쏘아 보았다.
포마드를 발라 넘긴 머리카락은 보기 싫게 흔들거리고 거무틱틱한 눈에 거만함이 숭글숭글 얽히었다. 의사는 그의 시선을 피하여 열심히 손끝만 보고 부비친다. 전날에 고상해 보이던 그의 인격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찾을 수 없고 머리에서 발끝에까지 야비함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저런 사나이에게 귀한 처녀를 빼앗기었나, 보다도 오빠만을 고이 생각던 누이의 맑은 맘을 송두리째 빼앗기었나, 하니 자신의 어리석음이 기막히게 분하여진다. 그만 달려가서 저 사니이를 푹푹 찔러죽이고 싶다.
의사는 그의 눈치를 채었음인지 슬금슬금 나가버린다. 그는 의사가 보이지 않도록 쏘아보다가 일어나 위층 쯔메쇼(話所:대기실)로 올라왔다.
활짝 열어제친 창으로 오빠를 잃은 저 하늘이 찰찰 넘쳐 흐르고 책상 위의 두어 송이의 백합이 그 하늘을 갸웃이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노라니 층대를 올라오는 신발소리가 아득히 들린다. 의사인가 싶어 휙 돌아보니 소사인 김서방이 바쁘게 올라온다. 울어서 부은 눈을 아무에게도 보이기 싫어서 머리를 돌렸다. 한참 후에 무심히 머리를 돌리니 그의 옆에 김서방이 우뚝 섰지 않느냐. 그는 와락 반가운 맘이 들어 벌떡 일어났다.
"편지 왔소?"
김서방은 뭣이 들어앉아 쭉 펴지 못하는 그의 굵단 손으로 반백이나 되는 머리를 어색하게 슬슬 어루만지며 차마 영실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섰다.
"아니유."
"오늘은 꼭 편지가 와얄 텐데 어쩌나!"
그는 애처로이 김서방을 보았다. 입을 중긋중긋 하던 김서방은 눈을 번쩍 떠서 마주 본다. 항상 벙글거리던 그 눈에 웃음이 간 곳 없고 슬픈 빛이 뚝뚝 흘러내린다. 저도 알았구나, 하자 눈물이 핑그르르 돌아 떨어진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씻으려고도 아니하고 눈을 점점 더 크게 떠서 김서방을 보았다. 얼굴은 캄캄하게 어리우나 왼편으로 깨울히 내려온 흰수염 긑이 영실의 눈에 가득히 어리운다.
"너무 너무 그렁마슈."
김서방은 발끝을 굽어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김서방! 하고 힘껏 부르려 했으나 목이 메어 나가지 않았다.
이 병원에서 가장 오랜 연조를 가진 김서방과 자신, 가장 가난한 처지에서 헤매이는 김서방과 자기, 그래서 의사와 자기 사이도 아는 것 같고 역시 오빠의 죽음에 대하여도 누구보다도 이해가 깊은 것을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