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이와 용이 — 제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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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뒤부터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최 첨지네 일과 이쁜이의 일을 알려고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만 어느 입에서든지 나오기만 하면 귀가 번쩍 띄고 번쩍 띄었다. 언제는 동네 일꾼들과 같이 일들을 하다가 나무 그늘 밑에서 쉴 때이다. 그때도 마침 이쁜이네 이야기들을 하다가 나 젊은 쇠똥 아버지가 용이를 놀리는 말이다.
"총각 자네 최 첨지네 데릴사위로 들어갔다네 그려."
"사람을 공연히 놀리지 마소."
하고 그 말을 부정하였으나 속으로는 빈 말이라도 듣는 것이 퍽으나 반가웠다. 이때 옆에 앉았던 중늙은이 먹돌 아버지는 자연스러운 말로
"실상이야 무엇 저 총각 같은 사위만 얻어도 잘 얻는 셈이지."
고맙기 짝이 없는 이 말에는 그만 수집은 생각이 나서 고개를 돌려 딴전을 아니 볼 수 없었다. 이런 때에 또 그 옆에 앉았던 깎아머리 면서기 퇴물 통칭 박 서기란 자가 질투스러운 눈빛으로 용이를 흘끔 쳐다보며
"무엇 아직 사위 재목을 정치는 않은 모양이대만 딸이 제법 똑똑히 생겨 그런지 선 머슴꾼은 안줄 모양이던구먼, 더구나 불알만 덜걱덜걱하는 농군에게야 이를 이 있나"
용이는 이 말이 몹씨도 귀에 거슬리게 들였다. 그 자가 미웁게도 생각되었다. '선 머슴꾼', '농군', 불알만 덜걱덜걱하는 농군' 이런 말이 몹씨도 뼈에 박이는 듯싶었다. 그 반대로 '놀고 지내며 유식하다는 놈', '웃 갓하고 행세한다는 놈', '돈 있다는 놈'들이 미운 생각이 버럭 났었다.
좌우간 최 첨지의 사위 재목을 아직 정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히 알았다. 그는 어찌하였든지 정성만은 드려볼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최 첨지네 일이라면 뼈가 빠지게 일을 하여대며 동네 사람 더구나 최 첨지의 칭찬을 받고 눈에 들도록 힘을 쓰는 터이다. 그것이 그의 먹은 마음을 성공함에는 으뜸가는 효과가 되는 것임으로 사실 용이가 최 첨지 마음에 들어가는 것도 분명한 일이다. 그의 사나이다운 품, 농군으로서도 제법 미끈하게 생긴 품, 꺽지고 성실한 품, 이 모든 것이 좋게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위 재목으로 골른다고 하기까지는 아직 꿈에도 생각치 않은 터이다.
이쁜이는 올해 나이 열 일곱 살 열 다섯 살이 먹을 때까지도 털 벗지 못한 중강아지같이 몸에 잔 줄음이 달렸드니 작년 봄을 접어들며부터 색씨태가 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올해쯤은 거의도 처녀가 되어 간다고 할 만큼 키가 홀쭉 커 올라가며 머리가 치렁치렁하여진다. 그는 야살구진 동네 여편네들에게 가끔 가다가 놀림도 받으며 선머슴 군들에게 장난도 당하여 보았지마는 그것은 잠간 잠간 때 일이오. 이때껏 용이 같은 젊은 사나이를 집에다 두고 아침저녁으로 대하기는 처음 일이다.
용이를 대한다는 것이라야 한끝 먼 빛으로 흘금흘금 도적질하여 볼 뿐이요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와 용이와 같이 앉은 봉당 한 구석에다 밥상을 들어다 슬그머니 놓고는 굴 밖에 나왔던 쥐 모양으로 얼른 부엌이라는 굴속으로 몸을 감출 뿐이었다.
처음에 용이를 볼 때에는 그 후리후리한 허우대, 큼직한 눈방울이 모기에 무서운 생각도 났었다. 하나 날이 가고 눈에 익어 갈수록 그 떡 벌어진 어깨바디, 손, 어귀차 보이는 두 팔, 가슴 그럼 것이 모두 어떤 무섭고 강한 것을 물리치고 외롭고 약한 것을 얼싸 않을 듯이 그럴듯하게 느끼게 되었다. 어떤 가냘 핀 물체보다 튼튼한 것이 도리어 든든하고 좋아 보였다.
어떤 때 일이다. 혼자 들밭에 가서 큰 둥구미로 둘이나 되게 다홍 고추를 따서 놓고는 두 둥구미는 고사하고 한 둥구미도 머리에 들어 일 수가 없어서 약한 두 팔로 들었다 놓았다 하며 애를 쓸 판이다. 이때 마츰 들에서 풋베를 비어 한짐 잔뜩 질머지고 주춤주춤하며 밭뚝길로 지나던 용이가 이 꼴을 보고는 달려오더니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내 가져가지"
하고는 두 둥구미를 한참에 번쩍 들고 일어선다. 수집기도 하고 미안스럽기도 하여 어쩔 줄 모르는 이쁜이는 햇살에 익은 두 볼이 더욱 붉어지고 눈과 입에는 가는 웃음이 방글방글 돌며 부끄러운 태도로 서있었을 뿐이다. 만일에 용이가 이때, 이 이쁜이의 모양을 눈역여 보았으량이면 이때껏 그를 보던 가운데서도 제일 귀엽게 보았으리라.
용이가 그 고추 둥구미를 들어다가 볏단 실은 짐 우에다 얹으며 다시 지게를 지고는 거침없이 산둥성이 길로 걸어가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