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이쁜이와 용이
Table of Contents
이쁜이와 용이
조명희
Reading Settings
Font size
18px
Theme
Light
Dark
Sepia
Eye care
Line spacing
Reading mode
Translation Pagera AI
Original Public Domain
Chapter 3 of 10

이쁜이와 용이 — 제3장

3

이 뒤부터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최 첨지네 일과 이쁜이의 일을 알려고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만 어느 입에서든지 나오기만 하면 귀가 번쩍 띄고 번쩍 띄었다. 언제는 동네 일꾼들과 같이 일들을 하다가 나무 그늘 밑에서 쉴 때이다. 그때도 마침 이쁜이네 이야기들을 하다가 나 젊은 쇠똥 아버지가 용이를 놀리는 말이다.

"총각 자네 최 첨지네 데릴사위로 들어갔다네 그려."

"사람을 공연히 놀리지 마소."

하고 그 말을 부정하였으나 속으로는 빈 말이라도 듣는 것이 퍽으나 반가웠다. 이때 옆에 앉았던 중늙은이 먹돌 아버지는 자연스러운 말로

"실상이야 무엇 저 총각 같은 사위만 얻어도 잘 얻는 셈이지."

고맙기 짝이 없는 이 말에는 그만 수집은 생각이 나서 고개를 돌려 딴전을 아니 볼 수 없었다. 이런 때에 또 그 옆에 앉았던 깎아머리 면서기 퇴물 통칭 박 서기란 자가 질투스러운 눈빛으로 용이를 흘끔 쳐다보며

"무엇 아직 사위 재목을 정치는 않은 모양이대만 딸이 제법 똑똑히 생겨 그런지 선 머슴꾼은 안줄 모양이던구먼, 더구나 불알만 덜걱덜걱하는 농군에게야 이를 이 있나"

용이는 이 말이 몹씨도 귀에 거슬리게 들였다. 그 자가 미웁게도 생각되었다. '선 머슴꾼', '농군', 불알만 덜걱덜걱하는 농군' 이런 말이 몹씨도 뼈에 박이는 듯싶었다. 그 반대로 '놀고 지내며 유식하다는 놈', '웃 갓하고 행세한다는 놈', '돈 있다는 놈'들이 미운 생각이 버럭 났었다.

좌우간 최 첨지의 사위 재목을 아직 정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히 알았다. 그는 어찌하였든지 정성만은 드려볼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최 첨지네 일이라면 뼈가 빠지게 일을 하여대며 동네 사람 더구나 최 첨지의 칭찬을 받고 눈에 들도록 힘을 쓰는 터이다. 그것이 그의 먹은 마음을 성공함에는 으뜸가는 효과가 되는 것임으로 사실 용이가 최 첨지 마음에 들어가는 것도 분명한 일이다. 그의 사나이다운 품, 농군으로서도 제법 미끈하게 생긴 품, 꺽지고 성실한 품, 이 모든 것이 좋게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위 재목으로 골른다고 하기까지는 아직 꿈에도 생각치 않은 터이다.

이쁜이는 올해 나이 열 일곱 살 열 다섯 살이 먹을 때까지도 털 벗지 못한 중강아지같이 몸에 잔 줄음이 달렸드니 작년 봄을 접어들며부터 색씨태가 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올해쯤은 거의도 처녀가 되어 간다고 할 만큼 키가 홀쭉 커 올라가며 머리가 치렁치렁하여진다. 그는 야살구진 동네 여편네들에게 가끔 가다가 놀림도 받으며 선머슴 군들에게 장난도 당하여 보았지마는 그것은 잠간 잠간 때 일이오. 이때껏 용이 같은 젊은 사나이를 집에다 두고 아침저녁으로 대하기는 처음 일이다.

용이를 대한다는 것이라야 한끝 먼 빛으로 흘금흘금 도적질하여 볼 뿐이요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와 용이와 같이 앉은 봉당 한 구석에다 밥상을 들어다 슬그머니 놓고는 굴 밖에 나왔던 쥐 모양으로 얼른 부엌이라는 굴속으로 몸을 감출 뿐이었다.

처음에 용이를 볼 때에는 그 후리후리한 허우대, 큼직한 눈방울이 모기에 무서운 생각도 났었다. 하나 날이 가고 눈에 익어 갈수록 그 떡 벌어진 어깨바디, 손, 어귀차 보이는 두 팔, 가슴 그럼 것이 모두 어떤 무섭고 강한 것을 물리치고 외롭고 약한 것을 얼싸 않을 듯이 그럴듯하게 느끼게 되었다. 어떤 가냘 핀 물체보다 튼튼한 것이 도리어 든든하고 좋아 보였다.

어떤 때 일이다. 혼자 들밭에 가서 큰 둥구미로 둘이나 되게 다홍 고추를 따서 놓고는 두 둥구미는 고사하고 한 둥구미도 머리에 들어 일 수가 없어서 약한 두 팔로 들었다 놓았다 하며 애를 쓸 판이다. 이때 마츰 들에서 풋베를 비어 한짐 잔뜩 질머지고 주춤주춤하며 밭뚝길로 지나던 용이가 이 꼴을 보고는 달려오더니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내 가져가지"

하고는 두 둥구미를 한참에 번쩍 들고 일어선다. 수집기도 하고 미안스럽기도 하여 어쩔 줄 모르는 이쁜이는 햇살에 익은 두 볼이 더욱 붉어지고 눈과 입에는 가는 웃음이 방글방글 돌며 부끄러운 태도로 서있었을 뿐이다. 만일에 용이가 이때, 이 이쁜이의 모양을 눈역여 보았으량이면 이때껏 그를 보던 가운데서도 제일 귀엽게 보았으리라.

용이가 그 고추 둥구미를 들어다가 볏단 실은 짐 우에다 얹으며 다시 지게를 지고는 거침없이 산둥성이 길로 걸어가 버리고 말았다.

Chapter 3 of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