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이와 용이 — 제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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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가 이쁜이에게 마음을 두고 나려오는 몇 달 동안에 그의 사랑의 대적을 여러 개 발견하였다. 첫째는 보통학교에 다닌다는 개구진 장난꾼 아이가 하나 이 마을에 있었다. 그 아이는 열 칠팔 세 가량 된 아이로서 이쁜이가 밤저녁으로 물 길러 다니는 틈을 타서 장난을 부린다. 돌팔매로 물동이를 맞추어서 남을 놀래주기, 꽃떨기나 단풍잎을 한 주먹 쥐어다가 이고 오는 동이 물 우에 들뜨르기, 언제인가 이 광경을 본 용이는 참을 수가 없어서 쫓아가 그 아이를 붙들고 혼구녁을 주던 일도 있었고 또 하나는 그 면서기 퇴물이란 자가 낮이 되어 최첨지네 집에 사나이가 없는 꼴을 볼 때에는 뒤 울 넘어로 와서 기웃기웃하며 엿보는 것이었다. 용이가 두 번째나 그 꼴을 보았을 때에 그만 최 점지에게 일러바치서 최 첨지와 그 면서기 퇴물이 서로 말성이 되던 일도 있었다. 또 하나는 건넌 마을에 사는 부자 강 면장이 나이 오십에 이때껏 자식을 보지 못하여서 첩 장가를 들려고 중간에 사람을 노아서 최 첨지에게 말을 들여보낸다는 것은 얼마 전에 들은 일인데 최첨지가 오전 밤에 그 죽다 싶이 하고 살아난 뒤 요새와서는 앓던 신병도 그만하게 되니까 그 문제가 다시 대두를 한다는 데 최 첨지의 의향이 많이 그리로 쏠린다는 말을 용이 제 동무에게 듣고는 낙심 천만에,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되었다. 그리하여 용이는 요새 입맛까지 제첫는지 그다지도 많이 먹던 밥도 잘 먹지를 못하는 터이다.
이날 아침에도 용이가 봉당에 앉아 밥상을 받고는 몇 숫갈 뜨는 둥 마는 둥하고 숟갈을 놓아버렸다. 이때, 숭늉 그릇을 들고 와 상 앞에 놓던 이쁜이는 몇 발짝 부엌 쪽으로 물러나가 서드니만 우둑허니 용이를 바라다보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딱하여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넉넉히 읽을 수 있었다. 물그릇을 집어든 용이는 전일보다 검은 빛이 더 돌고 자위가 더 꺼진 듯한 눈으로 이쁜이의 얼굴을 노략질하여 볼 때, 두 시선은 마주쳤다. 이 찰나에 이쁜이의 날카로운 신경은 은침으로 쪼으는듯 꼭꼭 찔리었다. 용이의 눈은 근심과 원망의 빛으로 가득 찬 듯싶었다. 그리하여 그는 용이의 심사를 가장 잘 짐작하는 것 같았다. 거진 무의식적으로 물그릇을 집어다 입에 댄 용이는 물 한 목음을 입에 물자말자 마당에서 홱 품어버리고는 물그릇을 소반 우에 탕 놓으며 벌떡 일어서 이쁜이의 얼굴을 다시 쳐다볼 때, 그 이쁜이의 눈에는 눈물이 글성글성함을 보았다. 그는 마당으로 껑충 뛰여내려와 사릿문 밖까지 무의식적으로 걸어나오다가 발길을 탁 멈추고 홱 돌이켜 서며 부엌 쪽을 바라다볼 때, 그때 이쁜이는 부엌 흙실엉(부엌입구에 있는 토대)턱에다가 이마를 대이고 손으로 치맛자락을 쥐어다 눈에다 가려바치고서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어깨도 들석들석 하였다. 비통한 눈빛으로 한참이나 그를 바라다보고 있던 용이는 다시 몸을 홱 돌이켜 걸어나오며
"오냐 보자 어느 놈이 죽나…"
그는 갑자기 증오의 감정이 불붙듯 타올랐다. 그것은 자기가 없다는 것을 한탄하는 그런 소극적 생각이 아니라 지금 세상에서 사람의 참된 모든 것을 그릇 털이고 꺾어놓는, 있다는 것, 있다는 놈들이 몹시도 미운 생각이 났었다. 건너 마을 강부자의 얼굴이 눈에 떠오르자 그 사람이 눈앞에 서 있는 듯이 핏대선 눈알을 굴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용이의 분노도 이쁜이의 에처러워함도 아무런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길에 건너 마을에서 꽃가마 한 채가 이 마을로 떠들어오더니만 최첨지네 집에 가서 얼마 동안 지체하다가는 도루 건너 마을로 건너갔었다. 가마채 멘 사람들의 다리가 올 때보다 갈 때가 더욱 무거워 보이는 것을 볼 때에는 그 속에다 이쁜이를 담아 갔음은 분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