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章: 을지문덕의 노래
第二章: 을지문덕의 노래
그 소리 비장강개하여 울 만도 하며 뛸 만도 하더라.
한놈은 일곱 사람의 대표로 '내 친구'란 노래로 대답하였는데 왼머리는 다 잊어 이 책에 쓸 수 없고 오직 첫 마디의,
"내가 나자 칼이 나고 칼이 나니 내 친구다."
단 한 구절만 생각난다.
답가를 마치고 일곱 사람이 서로 손목을 잡고 동편을 바라보고 가니 날도 좋고 곳곳이 꽃 향기, 새 소리로 우리를 위로하더라.
몇 걸음 못 나아가 하늘이 캄캄하고 찬 비가 쏟아진다. 일곱 사람이 한결같이,
"찬 비가 오거나 더운 비가 오거나 우리는 간다."
하고 앞길만 찾더니 또 바람이 모질게 불어 흙과 모래가 섞이어 나니 눈을 뜰 수 없다.
"눈을 뜰 수 없어도 가자."
하고 자꾸 가니 몇 걸음 못 나가서 가시밭이 있거늘,
"오냐, 가시밭길이라도 우리가 가면 길 된다."
하고 눌러 걷더니 또 몇 걸음 못 나가서 땅에다 시퍼런 칼 같은 것을 모로 세워 밟는 대로 발이 찢어져 피 발이 된다.
"피 발이 되어도 간다."
하고 서로 붙들고 가더니 무엇이 머리를 꽉 눌러 허리도 펼 수 없고 한 발씩이나 되는 주둥이가 살을 꽉꽉 물어 떼여 아프고 가려워 견딜 수 없고 머리털 타는 듯 고추 타는 듯한 냄새가 나 코를 들 수 없고 앞뒤로 불덩이가 날아와 살이 모두 데이니 일곱째놈이 딱 자빠지며,
"애고, 나는 못 가겠다."
한놈과 및 다섯 친구들이 억지로 끌어 일으키나 아니 들으며,
"여기 누우니 아픈 데가 없다."
하거늘 한놈이,
"싸움에 가는 놈이 편함을 구하느냐?"
꾸짖고 할 수 없이 일곱 친구에 하나를 버리니 여섯 사람뿐이다.
"우리는 적과 못 견디지 말자."
하고 서로 권면하나 길이 어둡고 몸이 저려 기다, 걷다, 구르다, 뛰다 온갖 짓을 다 하며 나가는데 웬 할미가 앞에 지나가거늘 일제히 소리를 쳐,
"할멈, 싸움터를 어디로 가오?"
하니 지팡이를 들어,
"이리 가라."
하고 가리키는데 지팡이 끝에 환한 광선이 비치더라.
"이곳이 어데요?"
물은데,
"고됨 벌이라."
하더라.
광선을 따라 나아가니 눈앞이 환하고 갈 길이 탁 트인다. 일변으로는 반갑기도 하지만 일변으로는 눈물이 주르르 쏟아진다.
"살거든 같이 살고 죽거든 같이 죽자고 옷고름 맺고 맹세하며 같이 오던 일곱 사람에 일곱째놈 하나만 버리고 우리 여섯은 다 오는구나. 일곱째놈아, 네 조금만 견디었으면 우리같이 이 구경을 할 걸 네 너무도 참지 못하여 우리는 오고 너는 갔고나. 그러므로 마지막 씨름에 잘 하여야 한단 말도 있고 최후 오 분간을 잘 지내란 말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쓸데 있나, 이 뒤에 우리 여섯이나 조심하자."
하고 받고 차며 이야기하며 가더니 이것이 어디기에 이다지 좋은가, 나무 그늘 가득한 곳에 금잔디는 땅에 깔리고 꽃은 피어 뒤덮였는데 새들은 제 세상인 듯이 짹짹이고 범이 오락가락하나 사람 보고 물지 않고 온갖 풀이 모두 향내를 피우며 길은 옥으로 깔렸는데 얼른얼른하여 그 속에 한놈의 무리 여섯이 비치어 있고 금강산의 만물상같이 이름 짓는 대로 보이는 것도 많으며 평양 모란봉처럼 우뚝 솟아 그린 듯한 빼어난 뫼며, 남한산의 꽃버들이며, 북한산의 단풍이며, 경주의 삼기팔괴(三奇八怪)며, 원산의 명사십리 해당화며, 호호 탕탕 한강물에 뛰노는 잉어며, 천안 삼거리 늘어진 버들이며, 송도 박연에 구슬 뿜듯 헤치는 폭포며, 순창 옷과 대발이며, 온갖 풍경이 갖추어 있어 한놈의 친구 여섯 사람으로 하여금 '아픈 벌'에서 받던 고통은 씻은 듯 간 데 없다. 몸이 거뜬하고 시원함을 이기지 못하여 서로 돌아보며,
"이곳이 어데인가? 님의 나라인가? 님의 나라야 싸움터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새 왔을 수 있나?"
하며 올 것이 가는 판이러니 별안간 사람의 눈을 부시게 빛이 찬란한 산이 멀리 보이는데 그 위에 붉은 글씨로 '황금산'이라 새기었더라. 앞에 다다라 보니 순금으로 쌓은 몇만 길 되는 산이요, 한 쌍 옥동자가 그 산이마에 앉아 노래를 한다.
노래 소리 맑고 고와 듣는 사람의 귀를 콕 찌르니 엿째놈이 그 앞에 턱 엎드러지며,
"애고, 나는 못 가겠소. 형들이나 가시오."
한놈의 친구가 또 하나 없어진다. 기가 막혀 꼬이고 꾸짖으며, 때리며 끌며 하나 엿째놈이 그 산에 딱 들어붙어 일어나지 않더라.
하릴없이 한놈이 인제 네 친구만 데리고 가더니 큰 냇물이 앞에 나서거늘 한놈이 친구들을 돌아보며,
"이 내가 무슨 내인가?"
하며 그 이름을 몰라 갑갑한 말을 한즉 냇물에서 무엇이 대답하되,
"내 이름은 새암이라."
"새암이란 무슨 말이냐?"
한데,
"새암은 재주 없는 놈이 재주 있는 놈을 미워하며, 공 없는 놈이 공 있는 놈을 싫어하여 죽이려 함이 새암이니라."
"그러면 네 이름이 새암이니 남의 집과 남의 나라도 많이 망쳤겠구나."
"암, 그럼. 단군 때에는 비록 마음이 있었으나 도덕의 아래라 감히 행세치 못하다가 부여의 말년부터 내 이름이 비로소 나타날새, 금와(金蛙)의 아들들이 내 맛을 보고는 동명왕을 죽이려 했고, 비류(比流)란 사람이 내 맛을 보고는 온조왕과 갈라지고, 수성왕(遂成王)이 내 맛을 보고는 국조(國祖)의 부자(父子)를 죽이며, 봉상왕(烽上王)이 내 맛을 보고는 달가(達賈) 같은 공신을 베고, 백제의 신하인 백가( 加)가 동성왕을 죽이며 패업(覇業)을 꺾음도 나의 꾀임이며, 좌가려(左可慮)가 고국천왕(故國川王)을 싫어하며 연나(椽那)에 반(叛)함도 나의 홀림이라. 나의 물결이 가는 곳이면 반드시 화환(禍患)을 내어 삼국의 강성이 더 늘지 못함이 내 솜씨에 말미암음이라고도 할지나 그러나 이때는 오히려 정도(正道)가 세고 내가 약하여 크게 횡행치 못하더니 세강속 말하여 삼국의 말엽이 되매 내가 간 곳마다 성공하며, 백제에 들매 의자왕의 군신이 서로 새암하여 성충(成忠)이며, 흥수(興首)며, 계백(階伯)이 같은 현상맹장(賢相猛將)을 멀리하여 망함에 이르며, 고구려에 들매 남생(男生)의 형제가 서로 새암하여 평양이며, 국내성이며, 개모성 같은 명성을 적국에 바쳐 비운에 빠지고 복신(福信)은 만고의 명장으로 풍왕(豊王)의 새암에 장심(掌心) 꾀이는 악형을 받아 중흥의 사업이 꿈결로 돌아가고 검모잠(劍牟岑)은 개세의 열장부로 안승왕(安勝王)의 새암에 흉참(凶慘)한 주검이 되어 다물(多勿)의 장지(壯志)가 이슬같이 사라지고 이 뒤부터는 더욱 내 판이라. 고려 왕씨조나 조선 이씨조는 모두 내 손에 공기 노는 듯하여 군신이 의심하며, 상하가 미워하며, 문무가 싸우며, 사색(四色)이 서로 잡아먹으며, 이백만 홍건적을 쳐물린 정세운(鄭世雲)도 죽이며, 수십 년 해륙전에 드날리던 최영(崔瑩)도 베며, 팔 년 왜란에 바다를 진정하여 해왕의 웅명(雄名)을 가지던 이순신(李舜臣)도 가두며, 일개 서생으로 왜장 청정(淸正)을 부수고 함경도를 찾던 정문부(鄭文孚)도 죽이어 드디어 금수강산이 비린내가 나도록 하였노라."
한놈이 그 말을 듣고는 몸에 소름이 끼쳐 친구를 돌아보며,
"이 물이야 건널 수 있느냐?"
하니 넷놈 닷놈이 웃으며,
"그것이 무슨 말이요, 백이숙제(伯夷叔齊)가 탐천물을 마시면 그 마음이 흐릴까요."
하더니 벗고 들어서거늘 한놈, 둣놈, 셋놈, 세 사람도 용기를 내어 뒤에 따라 서며 도통사 최영이 지은,
한 시조를 읊으며 건너니라.
저편 언덕에 다다라서는 서로서로 냇물을 돌아보며,
"요만 물에 어찌 장부의 마음을 변할쏘냐? 우리가 아무리 어리다 해도 혹 국사에 힘써 화랑의 교훈을 받은 이도 있으며 혹 한학에 소양이 있어 공자, 맹자의 도덕에 젖은 이도 있으며, 혹 불교를 연구하여 석가의 도를 들은 이도 있으며, 혹 예배당에 출입하여 양부자(洋夫子)의 신약도 공부한 이 있나니 어찌 접싯물에 빠져 형제가 새로 새암하리요."
하고 더욱 씩씩한 꼴을 보이며 길에 오르니라.
싸움터가 가까워 온다. 임나라가 가까워 온다. 깃발이 보인다. 북소리가 들린다. 어서 가자 재촉할새 가장 날래게 앞서 뛰는 놈은 셋놈이더라.
넷놈이 따르려 하여도 따르지 못하여 허덕허덕하며 매우 좋지 못한 낯을 갖더니,
"저기 적진이 보인다."
하고 실탄 박은 총으로 쏜다는 것이 적진을 쏘지 않고 셋놈을 쏘았더라.
어화 일곱 사람이 오던 길에 한 사람은 고통에 못 이기어 떨어지고 또 한 사람은 황금에 마음이 바뀌어 떨어졌으나 오늘같이 서로 죽이기는 처음이구나!
새암의 화가 참말 독하다.
죽은 놈은 할 수 없거니와 죽인 놈도 그저 둘 수 없다 하여 곧 넷놈을 잡아 태워 죽이고, 한놈, 둣놈, 닷놈 무릇 세 사람이 동행하니라.
인간에서 알기는 도깨비가 임에게 대하여 만나면 으레 항복하고 싸우면 으레 진다 하더니 싸움터에 와보니 이렇게 쉽게는 말할 수 없더라.
임의 키가 열 길이 되더니 도깨비의 키도 열 길이 되고, 임의 손이 다섯 발이 되더니 도깨비의 손도 다섯 발이 되고, 임의 눈에 번개가 치면 도깨비의 눈에도 번개가 치고, 임의 입에 우뢰가 울며 임이 날면 도깨비도 날며, 임이 뛰면 도깨비도 뛰며, 임의 군사가 구구는 팔십일만 명(九九=八十一萬名)인데 도깨비의 군사도 꼭 그 수효이더라.
『고구려사』에 보면 동천왕이 위장(魏將) 모구검(母丘儉)을 처음에 이기고 웃어 가로되,
"이같이 썩은 대적을 치는 데 어찌 큰 군사를 쓰리요."
하고 정병은 다 뒤에 앉아 있게 하고 다만 오천 명으로써 적의 수만 명과 결전하다가 도리어 큰 위험을 겪은 일이 있더니 임나라에서도 이런 짓이 있도다.
싸움이 시작되자 임이 영(令)을 내리시되,
"오늘은 전군이 다 나갈 것 없이 다만 9분의 1 곧 1999만 명만 나서며 또 연장은 가지지 말고 맨손으로 싸워 도깨비의 무리가 우리 재주에 놀라 다시 덤비지 못하게 하여라."
하니 좌우는 안 될 것이라고 간하나 임이 안 들으신다.
진이 사괴매 임의 군사가 비록 날쌔나 어찌 연장 가진 군사와 겨루리요. 칼이며, 총이며, 불이며, 물이며 온갖 것을 다하여 임의 군사를 치는데 슬프다. 임의 군사는 빈 주먹이 칼에 부서지고, 흰 가슴이 총에 꿰뚫리며, 뛰다가 불에 타며, 기다가 물에 빠져 살 길이 아득하다. 입으로는,
"우리는 정의의 아들이다. 악이 아무리 강한들 어찌 우리를 이기리요."
하고 부르짖으나 강적 밑에서야 정의의 할아비인들 쓸데 있느냐? 죽는 이 임의 군사요, 엎치는 이 임의 군사더라.
넓고 넓은 큰 벌판에 정의의 주검이 널리었으나 강적의 칼은 그치지 않는다.
한놈의 동행인 닷놈이 고개를 숙이고 탄식하되,
"이제는 임의 나라가 고만이로구나, 나는 어디로 가노?"
하더니 청산 백운 간에 사슴의 친구나 찾아간다고 봇짐을 싸며, 셋놈은 왈칵 나서며,
"장부가 어찌 이렇게 적막히 살 수야 있나, 종살이라도 하며 세상에서 어정거림이 옳다."
하고 적진으로 향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