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몰아 사다
배를 몰아 사다
하루는 허생이 돌이를 데리고 강경의 강가에를 나갔습니 다.
시월 보름사리 물이 강언덕에 출렁출렁 들어왔는데 적은 배 큰 배들이 수없이 강가에 매여서 물결을 따라 오르락 내 리락 합니다. 배 위에서는 술이 취하여 얼굴이 벌겋고 개가 죽 저고리 입은 뱃사람들이 무어라고 지껄거리고, 웃고 싸 우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짐을 올리고 내리고 합니다. 시월 보름사리면 금년 치고는 마지막 사리라저 함경도 평안도에 서 물기 젓갈 같은 것을 싣고 왔던 배들은 득하고 찬바람이 불고 강물이 얼어 붙기 전에 어서어서 곡식을 무역배 가지 고, 혹은 영평 바다와 장산곶을 지나 서해 바다로, 혹은 동 래 울산이며 강릉 삼척의 무서운 파도를 헤치고 동해 바다 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배들 중에는 혹은 운이 좋아 이 한여름 동안에 다가졌 더라도 군산 강경의 좋은 풍류에 다 녹여보리고, 쓸데 없는 후회에 어쩌면 좋은가 하고 눈만 껌벅거리고, 앉았는 이도 있을 것이외다.
어생은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한참 동안이나 들고 나는 배 를 바라보더니 곧 주인집으로 돌아와 주인더러,,
『내가 적이 쓸 곳이 있으니, 지금 강경 포구에 들어온 배 를 값을랑 달라는 대로 주고 살 수 있는 대로 사라.』
하였습니다. 주인은 눈이 둥그레지며,
『그것은 그렇게 많이 사서 무엇합니까?』
하고 허생을 물끄러미 봅니다.
『주인이 힘쎄 주는 공로는 후하게 갚을 것이니 어서 오늘 내일 안으로 배를 사고, 또 뱃사람들도 요를 갑절을 주어 얻게 하라.』
하였습니다. 모양은 거지같은 초라하나 안성서 한 달내에 십만냥을 남긴 이상한 양반의 말이라 주인은 다시 두말 없 이 여러 차인들을 데리고 나가서 배를 사기 시작하였습니 다. 마침 이 해에 남중일경이 흉년이 들고, 게다가 고기잡이 도 시원치 아니하여 배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앓던 중이라 달라는 것이 값이라는 말에 나도 나도 하고 배들을 파는 통에 그날 하루에 배 스무척을 흥정을 하였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나가 본즉, 강가에 매인 것이 모두 다 허생 원의 배라 돌이는 공연히 종아서 이 배에서 저 배로 왔다갔 다하면서,『이게 다 우리댁 배여!』하고 사람들이 그 곁에 얼른하지를 못하게 합니다. 허생은 돌이를 시켜 뱃머리에 꼭 같은 붉은 기를 꽂게 하고, 요를 갑절씩 주어 얻은 뱃사 람들을 한곳에 모아 세우고, 위선 첫날 요금과 술값을 행하 였습니다. 뱃사람의 수효가 이백여 명이나 됩니다.
그 이튿날은 마침 강경 장이라 사방 장수들이 시월 보름 마지막 사릿목을 보노라고 꾸역꾸역 모여 듭니다. 이날은 강경 장에 제일 사람이 많이 모여 드는 날이라 하여 먼데 장사들도 여러 날 길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모여 들며 강경 바닥 사람들은 이날 많은 술과 고기와 떡을 준비하여 저마 다 장거리에 나서서,
『우리 집 술이 좋소. 안주가 좋소.』
『우리집 애송아지 고기가 맛나오.』
『지금 밥이 끊었소. 방이 덥소.』
하고 손님들을 끌어들입니다. 부엌에서들은 맛난 김과 냄 새가 나오고, 방안에서들은 술취한 사람들의 지껄이는 소리 가 들립니다.
『비싸오. 감하시오.』
『안 비싸오. 못 감하겠소.』
하고 흥정하는 소리,
『기름이야.』
『점이야.』
하고 빽빽한 사람들 틈으로 길 비키란 소리, 가끔 가다이 구석 저 구석에서,
『이놈 네가…….』
『사람 따리네. 아이고고.』
하고 싸우는 소리, 당나귀 우는 소리, 송아지 부르는 소리, 말방울 소리, 마치 벌둥지 모양으로 와글와글 왁자지껄 야 단입니다.
장에 난 것은 모조리 사라 허생의 명령을 받으 주인집 차인들은 장바닥으로 돌아다니 며 가는 무명, 굵은 무명, 가는 배, 굵은 배, 각각색 철물, 탱기, 오대, 끈목이며 함지박, 뚝배기, 동이같은 것까지 달라 는 값에 갑절씩을 주고, 모조리 사들여서는 강가에 매어 놓 은 배에 올려 실습니다. 장사아치들은 모두 비인 가게, 비인 당나귀 비인 보통이가 되어 구렁이 같은 엽전 꾸러미를 일 변에 세고, 일변 들여 쌓고, 어떤 이는 섬거적에 싸서 당나 귀에 시드는다. 어떤 이는 전대에 넣어서 허리에 둘러 찬다.
모두 다 물건 한 점에 돈 한 점 물건 한 바리에 돈 한 바리 를 벌어 가지고,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좋아들 합니다.
『대체 저것은 어떤 부잔데 저렇게 돈도 많담.』
『대관절 물건은 저렇게 많이 사서 무엇을 한담.』
하고 장군들은 눈이 둥그러젰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디 그 부자를 한 번 보아야.』
하고 이 구석 저 구석 기웃기웃 찾아 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나 허생은 여전히 꾀죄 흐르는 모양으로 장바닥으로 슬슬 돌아다니건마는, 아무도 그것이 강경 장 물건을 모조 리 사들인 부자라고는 알아 보는 사람이 없고, 다만 그 사 람이 곁에 올 때마다 혹은 옷에 기름때가 오를까봐, 혹은 보리알 같은 여러 해 묵은 이가 옮을까봐 무서워하는 듯이 슬슬 피합니다. 만일 그가 허생인 줄을 알았더라면 그 때문 에 버선짝이라도 핥을 사람이 몇 백명은 되었을 것을…….
이렇게 허생을 알아본 이는 하나도 없었건마는 그래도 사 람마다 허생을 보았노라 합니다. 어떤 이는,
『그 사람이 속속들이 비단으로만 내려 감았더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그 사람이 어떻게 돈이 많은지 금담뱃대를 물었어.』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아주 정말 자세히 본 것처럼,
『아니어, 그 사람이 서울 갑분데, 수염이 허옇고 얼굴이 갸름하고 아주 점잖지.……김 진사라고 나도 두어번 보았는 걸.』
합니다. 허생은 이런 광경을 복 듣고 혼자 빙그레 웃으면 서,
『어허, 돈 십만 냥에 이렇게 수천명이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하였습니다. 참말 그날 날이 맞도록 강경 장은 마치 무슨 큰 잔치나 하는 것 같았습니다. 집집에 술주정이요. 사람마 다 노래요, 아이들까지도 오늘은 푼푼한 김에 팔뚝 같은 커 다란 엿가락을 물로 단 침을 흘리며 띠들고 돌아다닙니다.
술 취한 농촌 사람들이 술에 붉은 얼굴에 갓을 기우듬히 쓰 고, 집들을 항햐고 돌아갈 때에도, 갑작 부자들이 된 장돌림 들과 뱃사람들은 밤이 깊도록 먹고 마시고 지껄입니다.
웬 일인지 밤이 깊도록 돌아가 돌아 오지를 아니합니다.
허생은,『이것이 또 어디 가서 일을 저지른 게로군.』하고 사방을 사람을 놓아 찾았으나 찾을 길이 바이 없습니다. 이 모양으로 야단이 나는 중에 문밖에서 와자지껄하고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몽둥이 든 사람 십여 명이 돌이를 잔뜩 비끌 어매어 가지고 들어오며,
『이놈아! 너는 돈만 있으면 아무런 짓을 하여도 그만이란 말이냐.』
하고 허생에게 달려들려 합니다. 허생은 손으로 몽둥이를 막으며, 『대관절 어찌된 일이요? 만일 내 하인인 무슨 죄 를 지었거든 말을 하시오. 내가 좋도록 조치를 할 것이요.』
하였습니다. 그러나 몽둥이 든 사람들은 듣지 아니하고, 함 부로 문을 치고, 방바닥을 두드리고, 허생께 대하여서도 욕 설을 하며, 주먹질조차 합니다. 사세가 심히 위험한 것을 보 고, 허생이 공중을 향하고 무슨 소리를 지르니 사방으로서 몽둥이와 바를 든 시커먼 뱃사람 수백명이 우 모여 듭니다.
그들은 몽둥이를 들고, 허생을 대항하려던 패를 두들기려 하는 것을 보고 허생이 손을 들어 말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