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선택받았다는 것의

황홀과 불안

둘 다 내 안에 있어

베를렌

죽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올해 정월, 어딘가에서 옷감을 한 필 받았다. 세뱃돈으로 받은 것이다. 옷감의 천은 삼베였다. 쥐색의 가는 줄무늬가 짜여 있었다. 이건 여름에 입는 옷일 것이다. 여름까지 살아 있어 보자고 생각했다.

노라도 또한 생각했다. 복도로 나와 등 뒤의 문을 쾅 닫았을 때 생각했다. 돌아갈까.

내가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돌아왔을 때, 아내는 웃는 얼굴로 맞아주었다.

그날그날을 끌려가듯 살아갈 뿐이었다. 하숙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고, 홀로 취해서, 그러고는 몰래 이불을 펴고 잠드는 밤은 유난히 괴로웠다. 꿈조차 꾸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무엇을 하든 귀찮았다. 『재래식 변소는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라는 책을 사 와서 진지하게 연구한 적도 있었다. 그는 당시, 종래의 인분 처리 방식에 꽤나 진절머리가 나 있었던 것이다.

신주쿠 보도 위에서, 주먹만 한 돌멩이가 어슬렁어슬렁 기어가는 것을 본 것이다. 돌이 기어가는구나. 그저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돌멩이는 그의 앞을 걸어가는 꾀죄죄한 아이가 실로 묶어 끌고 가는 것임을 곧 알아챘다.

아이에게 속은 것이 쓸쓸한 게 아니었다. 그런 천변지이마저도 태연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자기 자신의 자포자기가 쓸쓸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평생 이런 우울과 싸우다 죽어가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제 몸이 가엾기도 했다. 푸른 논이 한순간 부옇게 흐려졌다. 운 것이다. 그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런 싸구려 감상에 눈물을 흘린 것이 조금 부끄러웠던 것이다.

전차에서 내릴 때 형이 웃었다.

“완전히 풀이 죽었구나. 야, 힘 좀 내봐.”

그러고는 류의 작은 어깨를 부채로 톡 두드렸다. 땅거미 속에서 그 부채가 무서울 만큼 희끄무레했다. 류는 뺨이 달아오를 만큼 기뻐졌다. 형이 어깨를 두드려 준 것이 고마웠던 것이다. 언제나 적어도 이만큼이라도 마음을 터놓아 주면 좋겠는데, 하고 부질없이 바라는 것이었다.

찾아간 사람은 부재중이었다.

형은 이렇게 말했다. “소설을, 시시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에겐 그저 조금 답답할 뿐이야. 단 한 줄의 진실을 말하고 싶어서 백 페이지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어.” 나는 말하기 어려운 듯, 곰곰이 생각하며 대답했다. “정말로, 말은 짧을수록 좋아요. 그것만으로 믿게 할 수 있다면.”

또 형은, 자살을 우쭐한 짓이라며 싫어했다. 그러나 나는, 자살을 처세술 같은 타산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던 참이었기에, 형의 이 말이 의외로 느껴졌다.

자백하시지. 응? 누구의 흉내냐?

물이 이르면 도랑이 생긴다.

그는 열아홉 살 겨울, “애모기(哀蚊)”라는 단편을 썼다. 좋은 작품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그의 생애의 혼돈을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형식에서는 “히나(雛)”의 영향이 보였다. 그러나 마음은, 그의 것이었다. 원문 그대로.

이상한 유령을 본 적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제가 소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무렵의 일이옵니기에, 어차피 환등처럼 흐리멍덩하게 흐려져 있음에 틀림없사옵니다. 아니옵니다, 그러나, 그 푸른 모기장에 비춘 환등 같은, 흐릿한 추억이 기묘하게도 저에게는 한 해 한 해 더욱 또렷이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옵니다.

아무튼 언니가 신랑을 맞으시고, 아, 마침 그날 밤의 일이옵니다. 혼례의 밤이었사옵니다. 기생들이 저희 집에 많이 와 있었사오며, 그 가운데 어여쁜 한교쿠(반쯤 큰 어린 기생) 한 분이 제 옷의 터진 자국을 꿰매주신 일도 기억하옵고, 아버님이 별채의 캄캄한 복도에서 키 큰 기생 한 분과 씨름을 하시던 것도 그날 밤의 일이었사옵니다. 아버님은 그 이듬해 돌아가시었고, 지금은 저희 집 객실 벽의 큰 사진 속에 들어 계시옵는데, 저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그날 밤의 씨름을 반드시 떠올리는 것이옵니다. 저희 아버님은, 약한 자를 괴롭히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시는 분이셨으니, 그 씨름도, 분명 기생 누군가가 무엇인가 몹시 잘못된 짓을 하였기에 아버님께서 그것을 꾸짖고 계셨던 것이옵니다.

이것저것 맞추어 보면, 분명 그것은 혼례의 밤임에 틀림없사옵니다. 참으로 황송하옵니다만, 무엇이고 모든 것이, 마치 푸른 모기장의 환등 같은, 그런 모양이오니, 어차피 만족스러우실 만큼의 이야기를 해드리지 못하겠사옵니다. 그래도 꿈 이야기, 아니옵니다, 그러나, 그날 밤 애모기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때의 할마님의 어여쁜 눈과, 그리고, 유령, 그것만은, 그것만은, 어느 분이 무어라 말씀하시더라도 결코 결코 꿈이 아니옵니다. 꿈이라느니 어리석은 말씀, 이 보십시오, 이렇게 또렷이 눈앞에 떠오르지 않사옵니까. 저 할마님의 어여쁜 눈과, 그리고.

그러하옵니다. 저의 할마님처럼 어여쁘신 할마님도 그리 흔치 않사옵니다. 작년 여름 돌아가시었습니다만, 그 임종의 얼굴이라 함은, 무서울 만큼 아름답다는 것은 그것을 두고 하는 말이옵니다. 백랍 같은 양 볼에는, 저 여름 나무 그늘이 비치기라도 할 듯하였사옵니다. 그토록 어여쁘심에도, 인연이 멀어, 평생 오하구로(이를 검게 물들이는 풍습)를 하지 않으신 채 사시었사옵니다.

“이 만년 흰 이를 미끼 삼아, 이 백만의 재산을 이루었느니라”

도미모토 가락에 길든 그윽한 목소리로 생전에 자주 이렇게 말씀하시었으니, 분명 거기에는 재미난 인연이라도 있었음이리이다. 어떤 인연이었느냐 따위 멋없게 캐묻지는 마옵소서. 할마님이 우시옵니다. 라고 하옵는 것은, 저의 할마님은, 그것은 그것은 멋스러우신 분이옵셔서, 끝내 한 번도 치리멘 누이몬 하오리(비단 자수 겉옷)를 손에서 놓으신 적이 없으셨사옵니다. 사범을 방으로 부르시어 도미모토 연습을 시작하신 것도, 무척 오래 전부터의 일이었사옵니다. 저 같은 것도 철이 들고 나서는, 온종일, 할마님의 ‘오이마쓰’니 ‘아사마’니 흐느끼는 듯한 애조 속에서 넋을 놓고 있던 때가 종종 있을 정도였사오니, 세간에서 ‘은퇴 기생’이라 놀려대고, 할마님 자신도 그것을 들으시면 어여쁘게 웃으시었던 듯하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저는 어릴 때부터 이 할마님이 무척 좋아서, 유모에게서 떨어지면 곧 할마님 품으로 뛰어들어 가곤 하였사옵니다. 게다가 어머님은 병약하시었던 까닭으로, 아이에게 그다지 마음을 써주지 않으셨사옵니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할마님의 친자식이 아니시니, 할마님은 어머님 쪽에는 별로 놀러 가지 않으시고 사시사철 별채 방에만 계셨으므로, 저도 할마님 곁에 붙어서 사흘이고 나흘이고 어머님 얼굴을 못 보는 일이 드물지 않았사옵니다. 그러므로 할마님께서도, 저의 언니 같은 이보다 훨씬 저를 귀애해 주시어, 매일 밤처럼 구사조시(옛 그림책)를 읽어 들려주시었사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저 야오야 오시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감격은 저는 지금도 사무치게 음미할 수가 있사옵니다. 그리고 또, 할마님께서 장난삼아 저를 “기치사” “기치사”라 부르시어 주시던 그때의 그 기쁨이라니. 등잔의 노란 불빛 아래서 시무룩이 구사조시를 읽고 계시던 할마님의 어여쁘신 모습, 그러하옵니다, 저는 모두 다 잘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그중에서도 그날 밤의 애모기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저에게는 잊을 수가 없사옵니다. 그러고 보니 그것은 분명 가을이었사옵니다.

“가을까지 살아남아 있는 모기를 애모기라 한단다. 모기향은 피우지 않는 법. 가엾어서 말이다”

아아, 한 마디 한 구절 그대로 저는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할마님은 누우신 채 가라앉는 듯한 어조로 그렇게 말씀하시었고, 그래 그래, 할마님은 저를 안고 주무시게 될 때에는, 어김없이 제 두 발을 할마님의 다리 사이에 끼우시어, 따뜻하게 해주시던 것이옵니다. 어느 추운 밤 같은 때엔, 할마님께서 제 잠옷을 모두 벗겨 내시고, 할마님 자신도 빛이 날 만큼 어여쁘신 맨살을 드러내시어, 저를 안으시고 누우시어 따뜻하게 해주신 일도 있었사옵니다. 그토록 할마님은 저를 소중히 여기시었사옵니다.

“무어. 애모기는 나이지. 덧없는……”

그리 말씀하시면서 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시었사온데, 그토록 어여쁘신 눈도 따로 없사옵니다. 안채의 혼례의 떠들썩함도, 이미 잠잠해져 있는 듯하였사옵고, 아무래도 한밤중 가까이 되었음이리이다. 가을바람이 사르락사르락 덧문을 쓰다듬고, 처마의 풍경이 그 때마다 가냘프게 울리고 있던 것도 어렴풋이 떠올릴 수가 있사옵니다. 예, 유령을 본 것은 그날 밤의 일이옵니다. 문득 눈을 떠서, 쉬, 하고 저는 말씀드렸사옵니다. 할마님의 대답이 없으시므로, 잠결에 주위를 둘러보았사오나, 할마님은 계시지 않으셨사옵니다. 마음이 허전하면서도, 혼자서 살그머니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번들번들 검게 빛나는 느티나무 목조의 긴 복도를 무서움에 떨며 측간 쪽으로, 발바닥만은 몹시 차갑사오나, 어쨌거나 졸려서, 마치 깊은 안개 속을 흐느적흐느적 헤엄치고 있는 듯한 기분, 그때이옵니다. 유령을 본 것이옵니다. 길고 긴 복도의 한 구석에, 하얗게 시무룩이 쪼그리고, 꽤 멀리서 본 것이오니, 필름처럼 작게, 그러나 분명히, 분명히, 언니와 오늘 밤의 신랑께서 주무시고 계신 방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옵니다. 유령, 아니옵니다, 꿈이 아니옵니다.

예술의 미는 결국, 시민에 대한 봉사의 미이다.

꽃에 미친 목수가 있다. 귀찮다.

그러고는, 마치코는 눈을 내리깔고 이런 말을 속삭였다.

“저 꽃의 이름을 알고 있어? 손가락을 대면 톡 터져서, 더러운 즙을 튀기고, 순식간에 손가락을 썩게 만드는, 저 꽃의 이름을 알 수만 있다면.”

나는 비웃으며,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는 대답했다.

“이런 나무의 이름을 알고 있어? 그 잎은 질 때까지 푸르다. 잎의 뒷면만이 바싹바싹 말라 벌레에 먹히고 있는데, 그것을 슬쩍 감춰 두고, 질 때까지 푸른 척한다. 저 나무의 이름이라도 알 수만 있다면.”

“죽어? 자넨 죽을 거야?”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고바야카와는 생각했다. 작년 가을이었던가, 어쩐지 아오이의 집안에 소작 쟁의가 일어나거나 해서 이런저런 골치 아픈 일이 아오이의 신상에 닥친 듯했는데, 그때도 그는 약물 자살을 시도해 사흘이나 혼수상태에 빠진 적까지 있었던 것이다. 또 바로 얼마 전에도, 내가 이렇게 방탕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도 결국은 내 몸이 아직 방탕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리라. 거세된 듯한 사내라도 되면 나는 비로소 일체의 감각적 쾌락을 피하고, 투쟁을 위한 재정적 부조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여, 사흘 정도 연이어 P시의 병원을 다니며, 그 전염병동 옆 흙도랑의 물을 떠 마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벼운 설사를 했을 뿐 실패였어, 라고 그 일을 나중에 아오이가 뺨을 붉히며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고바야카와는, 그 인텔리 냄새 풍기는 유희를 더없이 불쾌하게 느꼈으나, 그러나, 그토록까지 절박하게 생각한 아오이의 마음이, 적잖이 그의 가슴을 친 것도 사실이었다.

“죽으면 제일 좋은 거야. 아니, 나뿐만이 아니야. 적어도 사회의 진보에 마이너스 작용을 하고 있는 놈들은 전부, 죽으면 되는 거야. 아니면 자네, 마이너스인 놈이라도 무엇이든 사람은 모두 죽어서는 안 된다는 과학적인 어떤 이유라도 있는 거야?”

“마, 말도 안 돼”

고바야카와에게는 아오이가 하는 말이 갑자기 우스꽝스러워졌다.

“웃지 마. 그렇잖아 자네, 그렇잖냐고. 조상을 모시기 위해서 살아 있어야 한다든가, 인류의 문화를 완성시켜야 한다든가, 그런 거창한 윤리적 의무로서밖에 우리는 지금까지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고. 어떤 과학적인 설명도 주어지지 않은 거라고. 그러니까 우리 같은 마이너스 인간은 모두, 죽는 편이 좋은 거야. 죽으면 제로야.”

“멍청한 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도대체, 자네,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어. 그야 과연, 자네도 나도 전혀 생산에 관여하지 않는 인간이지. 그렇다고 해서, 결코 마이너스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자네는 도대체, 무산계급의 해방을 바라고 있는 건가. 무산계급의 대승리를 믿고 있는 건가. 정도의 차는 있지만, 우리는 부르주아지에 기생하고 있어. 그건 분명해. 하지만 그것은 부르주아지를 지지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의미가 달라. 일의 프롤레타리아트로의 공헌과, 구의 부르주아지로의 공헌이라고 자네는 말했지만, 무엇을 가리켜 부르주아지로의 공헌이라고 하는 거야. 일부러 자본가의 주머니를 불려주는 점에서는, 우리든 프롤레타리아트든 똑같은 거라고. 자본주의적 경제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배신이라면, 투사에는 어떤 신선이 되어야 한다는 건가. 그런 말이야말로 울트라라는 거다. 소아병이라는 거다. 일의 프롤레타리아트로의 공헌, 그것으로 충분해. 그 일이 귀한 거야. 그 일만을 위해서 우리는 악착같이 살아가야 하는 거야. 그리고 그것이 훌륭하게 플러스의 생활인 거야. 죽는 건 멍청한 짓이야. 죽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수 교과서를 손에 들었다. 작은 판형의, 새카만 표지. 아아, 안의 숫자 나열이 얼마나 아름답게 눈에 사무쳤던가. 소년은, 한참을 그것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으나, 이윽고, 권말 페이지에 모든 해답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소년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던 것이다. “무례하구나.”

밖엔 진눈깨비,
무엇을 웃느냐
레닌 동상.

숙모가 말한다.

“너는 외모가 별로니, 애교라도 좋게 가꾸어라. 너는 몸이 약하니, 마음이라도 좋게 가꾸어라. 너는 거짓말을 잘하니, 행동이라도 좋게 가꾸어라.”

알면서 그 고백을 강요한다. 이 무슨 음험한 형벌인가.

보름달의 밤. 빛나서는 무너지고, 굽이쳐서는 무너지고, 거꾸로 솟구치고, 몸부림치는 파도 속에서 서로 떨어지지 말자고 잡은 손을 괴로움에 못 이겨 내가 일부러 뿌리쳤을 때 여자는 순식간에 파도에 삼켜져, 높이 이름을 불렀다. 내 이름이 아니었다.

나는 산적. 너의 자존심을 빼앗으리라.

“설마 그런 일은 없을 테지만, 없을 테지만, 만약, 내 동상을 세울 때, 오른발을 반걸음만 앞으로 내고, 느긋하게 몸을 뒤로 젖히고, 왼손은 조끼 속에, 오른손은 실패한 원고를 움켜쥐어 구겨, 그러고는 머리는 붙이지 말 것. 아니아니, 아무 의미도 없다. 참새 똥을 코끝에 뒤집어쓰는 따위, 나는 싫은 것이다. 그리고 좌대에는, 이렇게 새겨다오. 여기 한 사내가 있다. 태어나서, 죽었다. 평생을, 실패한 원고를 찢는 데 썼다.”

메피스토펠레스는 눈처럼 흩날리는 장미 꽃잎에 가슴을 뺨을 손바닥을 태워 그을려 죽었다고 적혀 있다.

유치장에서 대엿새를 보내고, 어느 날 한낮에, 나는 그 유치장의 창에서 까치발을 들고 밖을 내다보니, 안마당은 봄날 같은 햇살을 가득 받고, 창 가까이의 세 그루 배나무는 모두 점점이 꽃을 피우고 있었으며, 그 아래에서 순경이 이삼십 명쯤 모여 교련을 받고 있었다. 젊은 순경 부장의 호령에 따라, 모두가 일제히 허리에서 포승을 꺼내거나, 호각을 불어대거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순경 한 사람 한 사람의 집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산속 온천장에서 기약 없는 혼례를 올렸다. 어머니는 내내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여관 하녀의 머리 모양이 기묘해서 웃는 것이라고 어머니는 변명했다. 기뻤던 것이리라. 무학의 어머니는, 우리를 화로 옆으로 불러, 훈계했다. 너는 열여섯 별자리이니, 라고 말을 꺼내다가, 자신을 잃은 것이리라, 더 무학인 신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응, 그렇지요, 하고 동의를 구했다. 어머니의 말은, 맞았는데도.

아내의 교육에, 꼬박 삼 년을 들였다. 교육이, 다 되었을 무렵부터, 그는 죽으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앓는 아내여
머물러 있는 구름
억새 귀신.

붉디붉은 연기가, 뭉게뭉게 구렁이 몸뚱이마냥 하늘로 솟아올라, 부풀어, 흐느적 흘러갔다, 묵직하게 큰 물결을 쳤다, 빙글빙글 소용돌이쳤다, 이윽고, 불길이, 노노노노 사납게 일고, 땅을 울리며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했더라. 산이, 꼭대기까지, 환하게 밝아졌더라. 우렁차게 타오르는 천 그루 만 그루 겨울 나무를 누비며, 사람을 태운 새카만 말이, 바람처럼 달려갔더라. (고향 말로)

단 한 마디 알려다오! “Nevermore”

하늘이 푸르게 갠 날이면, 고양이는 어디선가 와서, 마당의 산다화 아래에서 졸고 있다. 서양화를 그리는 친구는, 페르시안이 아니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들고양이겠지, 라고 대답해 두었다. 고양이는 누구에게도 따르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아침으로 먹을 정어리를 굽고 있는데, 마당의 고양이가 나른하게 울었다. 나도 툇마루로 나와, 야옹, 하고 말했다. 고양이는 일어나, 조용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정어리를 한 마리 던져주었다. 고양이는 도망갈 자세를 취하면서도 먹은 것이다. 내 가슴은 물결쳤다. 내 사랑이 받아들여졌노라. 고양이의 흰 털을 쓰다듬고 싶어, 마당으로 내려갔다. 등의 털에 닿자마자, 고양이는, 내 새끼손가락의 살을 뼈까지 사각 물어뜯었다.

배우가 되고 싶다.

옛날의 니혼바시는, 길이가 삼십칠 간 사 척 오 촌이었으나, 지금은 이십칠 간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강폭이 좁아진 것이라 여겨야 한다. 이렇게 옛날에는, 강이라 할 것 없이 사람이라 할 것 없이, 지금보다 훨씬 컸던 것이다.

이 다리는, 까마득한 옛날 게이초 7년에 처음 놓였고, 그 후 열 번쯤 다시 지어졌으며, 지금의 것은 메이지 44년에 낙성된 것이다. 다이쇼 12년의 진재(震災) 때에는, 다리의 난간에 장식되어 있는 청동 용의 날개가, 불길에 휩싸여 새빨갛게 달구어졌다.

내가 어릴 적에 좋아하던 목판화 도카이도 오십삼 역참 스고로쿠에서는, 이곳이 출발점으로 되어 있어서, 여러 명의 종자(從者)가 저마다 긴 창을 들고 이 다리 위를 걸어가는 그림이, 한가로이 그려져 있었다. 본디 이런 식으로 번화하였을 것이나, 지금은, 몹시 쇠락하고 말았다. 어시장이 쓰키지로 옮겨가고 나서는, 한층 더 이름이 시들어, 현재로는, 웬만한 도쿄 명소 그림엽서에서 빠져 있다.

올해, 12월 하순의 어느 안개 짙은 밤에, 이 다리 어귀에서 외국인 여자아이가 많은 거지 떼에서 홀로 떨어져 우두커니 서 있었다. 꽃을 팔고 있던 것은 이 여자아이이다.

사흘쯤 전부터, 황혼녘이 되면 한 다발의 꽃을 들고 이곳에 전차로 와서, 도쿄시의 둥근 문장(紋章)에 매달리듯 붙어 있는 청동 사자상 아래에서, 서너 시간쯤 잠자코 서 있는 것이다.

일본 사람은, 영락한 외국인을 보면, 어김없이 백계 러시아인이라 단정해 버리는 얄미운 습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 이 짙은 안개 속에서 장갑의 해진 곳을 신경 쓰며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작은 아이를 보아도, 대개의 일본 사람은, 아아 러시아 아이가 있구나, 하고 편한 기분으로 중얼거릴 것이 틀림없다. 더구나, 체호프를 읽은 적이 있는 청년이라면, 아비는 퇴역 육군 중위이고, 어미는 거만한 귀족, 하고 황홀한 듯 멋대로 단정하면서, 조금 걸음을 늦출 것이다. 또, 도스토옙스키를 들춰보기 시작한 학생이라면, 어, 넬리! 하고 소리 내어 외치며, 황급히 외투의 깃을 세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뿐이고, 그 이상으로 여자아이에 대해 깊은 탐색을 해보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 한 사람은 생각한다. 왜, 니혼바시를 고르는가. 이런, 인적도 드문 어슴푸레한 다리 위에서, 꽃을 팔자고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인데, ―― 왜?

그 의문에는, 단순하지만 자못 낭만적인 해답을 줄 수 있다. 그것은, 그녀의 부모들이 니혼바시에 대해 품은 환영(幻影)에서 비롯된다. 니혼에서 가장 번화한 좋은 다리는 니혼바시임에 틀림없다, 라는 그들의 온화한 판단에 다름 아니다.

여자아이의 니혼바시에서의 장사는 매우 시원찮았다. 첫째 날에는, 빨간 꽃이 한 송이 팔렸다. 손님은 무용수였다. 무용수는, 살짝 벌어지기 시작한 빨간 봉오리를 골랐다.

“피겠지”

하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여자아이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피웁니다”

둘째 날에는, 술에 취한 젊은 신사가, 한 송이 샀다. 이 손님은 취해 있으면서도,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거나 좋아”

여자아이는, 어제 팔다 남은 그 꽃다발에서, 흰 봉오리를 골라 주었던 것이다. 신사는 훔치듯이, 살그머니 받아 들었다.

장사는 그뿐이었다. 셋째 날은, 곧 오늘이다. 차가운 안개 속에 오랫동안 서 있었으나, 누구도 돌아봐 주지 않았다.

다리 건너편에 있는 남자 거지가, 목발을 짚으며, 전찻길을 건너 이쪽으로 왔다. 여자아이에게 구역 문제로 트집을 잡은 것이다. 여자아이는 세 번이나 머리를 숙였다. 목발을 짚은 거지는, 새카만 콧수염을 깨물며 궁리했다.

“오늘까지다”

하고 낮게 말하고는, 다시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자아이는, 곧 돌아갈 채비를 시작했다. 꽃다발을 흔들어 보았다. 꽃집에서 못 쓰는 꽃을 떨이로 받아, 이렇게 팔러 나오고 나서, 벌써 사흘이나 지났으므로 꽃은 어지간히 시들어 있었다. 무겁다는 듯 고개를 떨군 꽃이, 흔들리는 때마다, 다 함께 머리를 떨었다.

그것을 살그머니 옆구리에 끼고, 가까운 중국식 메밀국숫집 포장마차로, 추운 듯 어깨를 움츠리며 들어갔다.

사흘 밤 연이어 이곳에서 완탕을 먹는 것이다. 그곳의 주인은, 중국 사람으로, 여자아이를 한 사람의 손님으로서 대해 주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기뻤던 것이다.

주인은, 완탕 피를 빚으면서 물었다.

“팔리셨습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아니요. ……돌아갑니다”

이 말이, 주인의 가슴을 쳤다. 귀국하는 것이다. 분명 그렇다, 하고 곱게 벗어진 머리를 두세 번 가볍게 흔들었다. 자신의 고향을 떠올리며 가마에서 완탕 알맹이를 건져내고 있었다.

“이거, 다른 거요”

주인에게서 받은 완탕의 노란 그릇을 들여다보며, 여자아이가 당혹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상관없습니다. 차슈 완탕. 제가 대접합니다”

주인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완탕은 10전이지만, 차슈 완탕은 20전인 것이다.

여자아이는 한참 동안 머뭇거리고 있었으나, 이윽고, 완탕의 작은 그릇을 내려놓고, 팔에 안고 있던 꽃다발에서 큰 봉오리가 달린 풀꽃 한 송이를 뽑아, 내밀었다. 드리는 것이라고.

그녀가 그 포장마차를 나와, 전차 정류장으로 가는 도중에, 시들어가는 못 쓰는 꽃을 세 사람에게 건넨 것을 콕콕 후회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길가에 쪼그리고 앉았다. 가슴에 십자를 긋고, 알 수 없는 말로

격렬한 기도를 시작한 것이다.

마지막에 일본어로 두 마디 속삭였다.

“피기를. 피기를”

편안한 살림을 하고 있을 때는, 절망의 시를 짓고, 짓밟힌 살림을 하고 있을 때는, 삶의 기쁨을 써 내려간다.

봄이 가까운가?

어차피 죽을 것이다. 잠드는 듯한 좋은 로망스를 한 편만이라도 써 보고 싶다. 사내가 그렇게 기원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생애 중에서 아마도 가장 우중충한 시기에 있어서였다. 사내는,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다, 마침내 그리스의 여류시인, 사포에게 황금 화살을 쏘았다. 가엾어라, 그 향기로운 재색(才色)을 지금에 이르도록 전해지고 있는 사포야말로, 이 사내의 어수선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유일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사내는, 사포에 관한 한두 권의 서적을 펼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사포는 미인이 아니었다. 살빛이 검고 이가 튀어나와 있었다. 파온이라 부르는 아름다운 청년에게 죽도록 반했다. 파온에게는 시가 통하지 않았다. 사랑의 투신을 하면, 설령 죽지 않더라도, 그 사무친 가슴의 그리움이 사라진다는 미신을 믿고, 류카디아의 곶에서 노도(怒濤)를 향해 몸을 던졌다.

생활.

좋은 일을 한 다음에

한 잔의 차를 마신다

차의 거품에

고운 내 얼굴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비치고 있는 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도서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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