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기관차를 보면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내 아이들은 기관차(機關車) 흉내를 내고 있다. 물론 멈춰 선 기관차가 아니다. 팔을 흔들거나 “칙칙” 소리를 내거나 하며, 달리는 기관차의 흉내를 내고 있다. 이것이 내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기관차 흉내를 내는가? 기관차에서 어떤 위력(威力)을 느끼기 때문이다. 혹은 아이들 자신도 기관차처럼 격렬한 생명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욕구를 품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어른들의 기관차는 말 그대로의 기관차가 아니다. 그러나 저마다 돌진(突進)하고, 또한 궤도(軌道) 위를 달린다는 점은 기관차와 다르지 않다. 이 궤도는 혹은 금전이고, 혹은 명예이며, 마지막으로 혹은 여인일 것이다. 우리는 아이와 어른을 막론하고 마음껏 돌진하고 싶은 욕망을 지니면서, 그 욕망을 지니는 순간 이미 저절로 자유를 잃는다. 이것은 조금도 역설(逆說)이 아니다. 역설적인 인생의 사실이다. 우리 안에 깃든 무수한 조상들과 한 시대 한 나라의 사회적 약속은 다소나마 이런 욕구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욕구는 태고(太古)로부터 우리 안에 잠들어 있다. ……
나는 높은 제방 위에 서서, 아이들과 함께 기관차가 달리는 것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방 너머에는 또 하나의 제방이 있고, 거기에는 반쯤 시들어가는 구실잣밤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서 있었다. 저 기관차——3271호는 무솔리니(Mussolini)다. 무솔리니가 달리는 궤도는 혹은 빛으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궤도든 그 끝에는 단 한 번도 기관차가 지나지 않은, 녹슨 두세 자의 구간이 있음을 생각하면, 무솔리니의 일생도 아마 우리의 일생처럼 늙어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뿐만 아니라——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어디까지고 돌진하고 싶은 욕망을 품으면서, 동시에 궤도 위를 달리고 있다. 이 모순을 적당히 눈감아 넘길 수는 없다. 우리의 비극(悲劇)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거기서 발생한다. 맥베스(Macbeth)는 물론이거니와 고하루·지헤이(小春·治兵衛)[역주1]도 필경(畢竟)은 기관차다. 고하루·지헤이는 맥베스처럼 강한 성격을 갖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연애를 위해 역시 무작정 돌진하고 있다. (서양인들의 비극론은 여기서는 불행히도 통하지 않는다. 비극을 만드는 것은 인생이다. 미학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 비극을 제3자의 눈에 비추면, 온갖 동기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온갖 동기가 분명해지기를 비극 속의 인물에게도 기대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저 헛되이 돌진하고, 헛되이 정지——혹은 전복(顛覆)하는 것을 볼 뿐이다. 그리하여 희극(喜劇)이 되어버린다. 즉 희극이란 제3자의 동정을 통과하지 못한 비극이다. 필경 우리는 크고 작음을 불문하고 모두 기관차와 다름없다. 나는 저 구식 기관차——굴뚝이 높은 3236호에서 나 자신을 느낀다. 전차대(轉車臺) 위에 올라 천천히 위치를 바꾸고 있는 3236호에서.
그러나 한 시대 한 나라의 사회와 우리의 조상은 그 기관차들에 얼마나 제동을 걸 수 있을까? 나는 거기서 제동을 느끼는 동시에 엔진을——석탄을——타오르는 불을——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다. 실은 기관차처럼 긴 역사를 쌓아온 존재다. 그뿐만 아니라 무수한 피스톤과 톱니바퀴(齒車)의 집합이기도 하다. 더구나 우리를 달리게 하는 궤도는, 기관차 스스로 알 수 없듯 우리 자신도 알 수 없다. 이 궤도도 아마 터널과 철교로 통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해방은 이 궤도 때문에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금지되어 있다. 이런 사실은 두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사실임에 틀림없다.
기관차만 튼튼하다면——그마저도 기관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떤 기관사(機關士)를 어떤 기관차에 태울지는 변덕스러운 신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다만 대부분의 기관차는 어쨌든 완전히 녹슬어 쓸모없게 될 때까지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모든 기관차의 겉모습에 깃든 장엄(莊嚴)은 바로 거기서 빛날 것이다. 마치 기름을 바른 쇠처럼. ……
우리는 모두 기관차다. 우리의 일은 하늘을 향해 연기와 불꽃을 던져 올리는 것뿐이다. 제방 아래를 걷는 사람들도 이 연기와 불꽃으로 기관차가 달리고 있음을 알 것이다. 혹은 이미 달려가 버린 기관차가 있었음을 알 것이다. 연기와 불꽃은 전기 기관차라면 그 울림으로 대체해도 좋다. “인간은 무(無), 작품이 전부”라는 플로베르(Flaubert)의 말이 나를 움직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종교가, 예술가, 사회 운동가——모든 기관차는 자신의 궤도에 따라 필연적으로 어딘가를 향해 돌진해야 한다. 더 빨리——그 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기관차를 볼 때마다 저절로 우리 자신을 느끼게 되는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니다. 사이토 료쿠우(斎藤緑雨)[역주2]는 하코네 산(箱根山)을 넘는 기관차가 “뭐야, 이 정도 산이, 뭐야, 이 정도 산이”라고 외친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우스이 고개(碓氷峠)[역주3]를 내려가는 기관차는 한층 기쁨에 넘칠 것이다. 그 기관차는 언제나 경쾌하게 “타카포코 다카사키 타카포코 다카사키”라고 노래하고 있다. 전자를 비극적 기관차라 한다면, 후자는 희극적 기관차일지도 모른다.
(쇼와 2년 7월)
[역주1] 치카마츠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의 정사물 조루리 “心中天網島”(1721)의 등장인물. 기생 고하루와 지물포 상인 지헤이가 함께 목숨을 끊는다.
[역주2] 메이지 시대 소설가·비평가(1867-1904). 날카로운 풍자와 잠언풍 문체로 알려졌다.
[역주3] 군마현과 나가노현 경계의 급경사 철도 고개. 내리막에서 기관차가 속도를 얻어 경쾌하게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