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리틀 브리튼



워싱턴 어빙





내가 쓰는 바는 진실되니, 내 곁에 그러한 사례를 적은 책 한 권이 놓여 있어, 만일 이를 모두 펼쳐 내놓는다면 (보우 종소리가 들리는 권내의) 점잖은 옛 어른들이 나를 박정타 여기시리라. ―내쉬.





대도시 런던의 한가운데에 작은 동네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좁다란 거리와 뒷골목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유서 깊되 노쇠한 집들이 빼곡한 곳으로, 이름하여 리틀 브리튼(Little Britain)이라 한다. 서쪽으로는 크라이스트 처치 스쿨과 성 바솔로뮤 병원이 경계를 이루고, 북쪽으로는 스미스필드와 롱 레인이 막아서며, 동쪽으로는 올더스게이트가가 마치 바다 한 줄기처럼 흘러 동편 시가와 갈라놓는다. 한편 불 앤 마우스가의 너른 어귀는 부처 레인과 뉴게이트 일대를 다른 쪽으로 떼어 놓는다. 이렇듯 사방이 뚜렷이 에둘린 이 작은 영지(領地) 위로, 패터노스터 로와 에이멘 코너, 에이브 마리아 레인의 즐비한 집들 너머로 솟은 성 바울 대성당의 거대한 돔이, 어머니가 자식을 굽어보듯 자애로이 내려다본다.

이 동네 이름이 리틀 브리튼이 된 까닭은, 옛적에 이곳이 브르타뉴 공작들의 거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런던이 점점 커져 가자 신분과 유행은 서편으로 굴러갔고, 장사꾼들이 그 뒤꿈치를 따라 슬며시 들어와 그들이 버리고 간 집들을 차지하였다. 한동안 리틀 브리튼은 학문의 큰 장터가 되어, 분주하고 번성하는 서적상들의 무리로 가득 찼다. 그러나 이들 또한 점차 이곳을 떠나, 뉴게이트가의 너른 길목을 건너 패터노스터 로와 성 바울 묘지 쪽으로 옮겨 가서 자리 잡았으니, 오늘날까지도 그곳에서 불어나고 흥성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듯 쇠잔해 가는 가운데에도 리틀 브리튼은 여전히 옛 영화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곧 무너질 듯한 집이 여럿이고, 그 정면에는 오래된 떡갈나무 조각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어, 흉측한 얼굴들과 이름 모를 새, 짐승, 물고기, 그리고 박물학자조차 분류하기 막막한 과실과 꽃들이 빼곡하다. 또 올더스게이트가에는 한때 너르고 위풍당당했던 유서 깊은 저택의 자취가 남아 있는데, 근래에 와서는 여러 채의 셋방으로 쪼개져 버렸다. 이 안에는 변변찮은 가게라도 차려 놓은 영세 상인의 식솔이 자리 잡아, 보잘것없는 가구를 들여놓고는, 천장에 격자 장식이 새겨지고 금장 코니스가 둘러진, 거대한 대리석 벽난로가 있는 너른 방, 세월에 얼룩진 방 안에서, 옛 호사의 잔해 사이를 굴 파듯 비집고 사는 모습이 흔히 눈에 띈다. 골목과 안뜰에는 그만큼 웅장하지는 않으나 작은 집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마치 시골의 자그마한 옛 향사(鄕士)들처럼 옹골차게 제 집안의 유서 깊음을 내세운다. 박공면이 길 쪽을 향해 있고, 납으로 짠 마름모꼴 유리창이 끼워진 큼직한 활창에, 기괴한 조각이며 나지막한 아치형 출입문이 달려 있다.

바로 이 더없이 유서 깊고 아늑한 작은 둥지에서 나는 몇 해 동안 조용히 세월을 보내고 있다. 가장 작되 가장 오래된 건물 한 채의 이층에 편안히 깃들어 사는 것이다. 거실은 자그마한 판자가 줄지어 박힌 옛 판벽 방으로, 잡다한 가구들이 늘어서 있다. 그중에서도 등받이가 높고 발이 짐승 발처럼 생긴 의자 서너 개를 나는 각별히 아끼는데, 빛바랜 비단 자수로 덮인 그 의자들은 한때 좋은 시절을 보았음 직한 자국을 지녔고, 필시 리틀 브리튼의 옛 저택 가운데 어느 곳인가를 빛내었을 것이다. 그것들은 서로 모여 의젓이 자리 잡고서, 가죽 깔개를 댄 이웃 의자들을 군주(君主)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듯하니, 이는 영락한 향사가 어쩔 수 없이 어울려야 하는 평민 사이에서 콧대를 세우고 있는 모습 그대로다. 거실 정면 전부는 활창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 유리창에는 여러 대(代)에 걸친 옛 거주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사이사이에는 신사풍이라기엔 꽤 변변찮은 시 구절들이 곁들여져 있어, 글씨가 어찌나 흐릿한지 거의 알아보기조차 어렵다. 그 시들은 오래오래 전에 피었다 지고 사라져 버린 리틀 브리튼 미인들의 자태를 칭송하고 있다. 나는 별다른 직업도 없이 한가로이 지내는 사람이고 셋돈은 매주 어김없이 치르는지라, 이 동네에서 유일한 자유 신사 양반으로 통한다. 또 본디 저들끼리 닫혀 있는 듯한 이 동네의 속사정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 터라, 어찌어찌 이 고장의 온갖 일과 비밀에 슬며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리틀 브리튼은 참으로 이 도시의 심장 한복판이라 할 만하니, 진짜 존 불 정신의 아성이다. 좋던 시절의 런던 한 조각이 옛 사람과 옛 풍속을 그대로 안은 채 떨어져 나와 있는 셈이다. 이곳에서는 옛적 명절놀이와 풍습 여럿이 잘 보존되어 활발히 살아 있다. 주민들은 참회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팬케이크를 부쳐 먹고, 성 금요일에는 핫 크로스 번을, 미가엘 축일에는 거위 구이를 즐긴다. 발렌타인 데이에는 연애 편지를 보내고, 11월 5일에는 교황 모형을 태우며, 크리스마스가 되면 겨우살이 아래에서 처녀들마다 빠짐없이 입맞춘다. 또한 로스트 비프와 플럼 푸딩은 거의 신앙처럼 떠받들고, 포트와 셰리주만이 진정한 영국 술이며 그 밖의 술은 모두 천한 외국 음료라 여긴다.

리틀 브리튼에는 시정의 진귀한 것들이 길게 줄을 잇고 있는데, 주민들은 이를 곧 세상의 진기(珍奇)함이라 여긴다. 이를테면 한번 울리면 모든 맥주를 시어지게 한다는 성 바울 대성당의 거대한 종, 시각이 되면 종을 치는 성 던스턴 교회의 인형들, 런던 대화재 기념비, 런던 타워의 사자들, 그리고 길드홀의 나무 거인들 따위가 그것이다. 이들은 아직도 꿈과 점복을 믿으니, 불 앤 마우스가에 사는 한 노파는 도난당한 물건을 찾아내고 처녀들에게 좋은 신랑감을 점쳐 주며 그럭저럭 입에 풀칠을 하고 있다. 혜성과 일월식이 나타나면 마음을 졸이며, 밤에 개가 구슬프게 울면 동네에서 누군가가 세상을 뜨리라는 확실한 징조로 여긴다. 게다가 유령 이야기가 자못 많은데, 특히 옛 저택을 둘러싼 것들이 그러하다. 그 가운데 몇 채에서는 때때로 기이한 광경이 보인다고 하는데, 머리를 풍성히 늘어뜨린 가발에 늘어진 소매와 검을 찬 신사들과, 떨림 장식을 단 보닛에 코르셋과 후프, 금란 옷을 두른 귀부인들이 달밤이면 인적 없는 너른 방을 오가는 모습이 목격되었다고 하니, 이들은 옛 주인들이 궁정 의례복 차림으로 떠도는 혼령이라 여겨진다.

리틀 브리튼에는 또한 현자(賢者)와 거물 들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첫 번째 인물이 키 크고 비쩍 마른 노신사인 스크라임 씨로, 작은 약방 하나를 운영한다.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은 옴폭 들어간 데와 불거진 데로 가득하고, 양 눈가에는 갈색 둥근 자국이 둘러져 있어 마치 뿔 달린 안경을 쓴 듯하다. 노파들은 그를 여간 떠받드는 게 아닌데, 가게에 박제 악어 두세 마리가 매달려 있고 병에 든 뱀 여럿이 있는지라 그를 일종의 술사(術士)쯤으로 여기는 까닭이다. 그는 연감과 신문을 즐겨 읽고, 음모, 모반, 화재, 지진, 화산 폭발 따위 불길한 소식들을 들여다보는 데 골몰하니, 특히 화산 폭발은 시대의 징조라 여긴다. 단골에게 약을 지어 줄 적마다 늘 그런 음울한 이야기 한 토막을 함께 내미니, 이리하여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어지럽힌다. 그는 전조와 예언을 굳게 믿어, 로버트 닉슨과 쉽튼 어머니의 예언을 외우고 있다. 어떤 사람도 그처럼 일식을, 또 평소보다 어두운 날조차도 그토록 그럴듯하게 부풀려 내지는 못한다. 지난번 혜성 꼬리를 단골들과 문하생들 머리 위로 흔들어 대니, 그들이 거의 혼이 빠져 달아날 지경이었다. 근래에는 어떤 민간의 전설인지 예언인지를 손에 넣어, 평소보다 더욱 열변을 토해 왔다. 옛적부터 이런 것들을 소중히 간직해 온 늙은 점녀(占女)들 사이에 전해 오는 말이 있었으니, 왕립 거래소 꼭대기의 메뚜기와 바우 교회 첨탑 꼭대기의 용이 손을 맞잡는 날에 무서운 일이 일어나리라 하였다. 그런데 이 기이한 만남이 더없이 기이하게 정말로 일어나고 만 것이다. 마침 같은 건축가가 거래소 둥근 지붕과 바우 교회 첨탑의 보수를 동시에 맡게 되었는데, 두려이 말하자면, 용과 메뚜기가 그의 작업장 마당에 뺨을 맞대고 나란히 누워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남들이야,” 스크라임 씨는 늘 이렇게 말하곤 한다. “별을 우러러 바라보며 하늘에서 별의 만남을 찾을지도 모르나, 여기 우리 코앞 땅 위에 만남이 있으니, 그 어떤 점성가의 징조나 셈도 능가하는 일일세.” 이렇듯 불길한 풍신(風信)들이 머리를 맞댄 이래, 놀라운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졌다. 여든두 해를 사신 어진 노왕(老王)이 어느 한순간에 숨을 거두시고, 다른 왕이 보위에 오르셨으며, 한 왕족 공작이 갑자기 세상을 뜨고, 또 한 사람은 프랑스에서 시해되었다. 또 왕국 곳곳에서는 급진파 집회가 벌어졌고, 맨체스터의 유혈 사건이 일어났으며, 케이토가의 큰 음모가 있었고, 무엇보다 왕비가 영국으로 돌아오셨다! 이 모든 흉조들을 스크라임 씨는 신비스러운 표정에 침울한 고갯짓을 곁들여 늘어놓는다. 이 이야기들이 그의 약과 함께 손님들 마음에 새겨지고, 박제된 바다 괴물들과 병에 든 뱀들과 그 자체가 한 권의 환난서(患難書)인 그의 얼굴과 한데 얽혀, 리틀 브리튼 사람들의 마음에 짙은 음영을 드리우게 되었다. 이들은 바우 교회 곁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흔들며 이른다. 옛적 휘팅턴과 그의 고양이 이야기가 일러 주듯, 옛적에는 오로지 좋은 소식만을 알리던 그 첨탑을 헐어 내리는 일에서 좋은 결말이 나오리라고는 애초에 기대한 적이 없노라고.

리틀 브리튼에 또 한 사람의 신탁자가 있으니, 옛 명문가 저택 한 자락에 살림을 차린 풍채 좋은 치즈 장수다. 이 사람은 자기네 체셔치즈 한 덩이 한복판에 박힌 둥글둥글한 진드기처럼 으리으리한 거처에 들어앉아 있다. 실로 작지 않은 위엄과 비중을 지닌 사람이라, 그 명성이 허긴 레인과 래드 레인을 넘어 올더먼베리에까지 미친다. 국사(國事)에 관한 그의 견해는 자못 무게가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일요신문을 빠짐없이 읽어 왔고, 거기에 ‘젠틀맨스 매거진’과 라팽의 ‘영국사’, ‘해군 연대기’까지 두루 통달한 까닭이다. 그의 머릿속은 수백 년 세월의 시험을 견뎌 온 값진 격언들로 가득 차 있다. 그가 굳게 믿는 바는 이러하다. 영국이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한 어떤 것도 이 나라를 흔들지 못하리니,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하는 것이다. 또 그가 즐겨 들먹이는 화제는 국채(國債) 문제로, 어찌 된 셈인지 그는 그것이 위대한 국가의 방벽이자 축복이라고 입증해 보인다. 그는 평생의 거의 전부를 리틀 브리튼 어귀에서 보냈으나, 근래 살림이 넉넉해지고 주일용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위신이 생긴 뒤로는 슬슬 즐길 거리를 찾고 세상 구경에도 나서고 있다. 그리하여 햄스테드와 하이게이트, 그 밖의 인근 마을로 몇 차례 소풍을 다녀왔는데, 그 마을들에서는 망원경으로 도성을 굽어보며 성 바솔로뮤 첨탑을 찾아내 보려고 오후 내내 매달리기도 했다. 불 앤 마우스가의 어떤 역마차 마부도 그가 지나갈 때면 모자에 손을 얹어 인사하지 않는 이가 없으며, 성 바울 묘지의 거위와 석쇠 역참 사무소에서는 거의 후원자 격으로 대접받는다. 식구들은 마게이트로 한번 다녀오시기를 그토록 졸라 대지만, 그는 신식 노리개인 증기선이 영 미덥지 않고, 자기는 바닷길에 나서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 여긴다.

리틀 브리튼에도 이따금 파벌과 분쟁이 일어나는데, 한때 동네에 맞수 ‘장의 공제회’ 둘이 들어서면서 당파심이 자못 거세진 적이 있다. 한쪽 모임은 백조와 편자에서 열렸고 치즈 장수가 후원했으며, 다른 한쪽은 수탉과 왕관에서 열려 약제사가 뒤를 봐주었으니, 후자가 한결 번창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도 양쪽에서 저녁을 한두 번씩 보내며 자못 값진 견식을 얻었다. 이르되 가장 좋게 묻히는 법, 묘지마다의 우열, 그리고 특허 철제 관을 둘러싼 갖가지 조언이 그것이다. 이 철제 관이 너무 썩지 않는다는 까닭으로 그것을 금지하는 일이 적법한가 하는 문제도 사면팔방으로 논의된 바 있다. 이 모임들이 빚은 반목은 다행히 근래에 가라앉았으나, 한동안은 줄곧 화제의 한가운데였으니, 리틀 브리튼 사람들은 장례의 영광과 편안히 묻히는 일에 누구보다 마음을 쓰는 까닭이다.

이 두 장례 모임 외에 또 한 모임이 있는데, 성격이 자못 다르며, 동네 전체에 흥겨운 햇살을 비추는 구실을 한다. 이 모임은 매주 한 번씩 구식 작은 집에서 열리는데, 왜그스태프라는 호탕한 술집 주인이 차린 집으로, 간판에는 더없이 매혹적인 포도송이를 곁들인 빛나는 반달이 그려져 있다. 옛 건물 외벽은 목마른 길손의 눈을 사로잡으려 갖가지 문구로 뒤덮여 있어, 가령 “트루먼·핸버리 상회의 술”, “포도주, 럼, 브랜디 저장소”, “올드 톰, 럼 그리고 혼합주” 따위가 그것이다. 실로 이곳은 아득한 옛날부터 바쿠스와 모무스의 신전이었다. 줄곧 왜그스태프 집안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왔으니, 그 내력은 지금의 주인이 자못 잘 간직해 두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의 한량과 기사 들이 즐겨 드나들었고, 찰스 2세 때의 재사(才士)들도 가끔씩 들여다보고 갔다. 그러나 왜그스태프가 가장 자랑하는 일은 따로 있으니, 헨리 8세께서 야밤의 한 외출길에 그 유명한 지팡이로 그의 선조 한 분 머리를 깬 일이 그것이다. 다만 이 일은 주인의 다소 미덥지 못한 자랑쯤으로 여겨지기는 한다.

이곳에서 매주 모임을 갖는 클럽은 ‘리틀 브리튼의 호기로운 사내들’이라 불린다. 이들은 그 고장에서만 전해 내려와 다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옛 카치와 글리, 그리고 빼어난 옛이야기 들로 그득하다. 그중에는 흥겨운 노래 한 가락에 따를 자가 없는 광기 어린 장의사도 있지만, 클럽의 주역이자 리틀 브리튼 으뜸가는 재담꾼은 두말할 것 없이 호걸 왜그스태프 자신이다. 그의 선조들은 모두가 익살꾼이었으니, 술집과 함께 노래와 농담의 두툼한 살림이 대물림되어 왔고, 이는 가전(家傳)의 보물이나 다름없다. 그는 말쑥하고 자그마한 사내인데, 다리는 휘었고 배는 불룩하며, 얼굴은 붉고 눈빛은 촉촉하고 흥겨우며, 뒤통수에는 한 줌 흩어진 회색 머리가 달려 있다. 클럽의 밤이 시작될 때마다 그가 불려 와 ‘신앙고백’을 부르는데, 이는 ‘가머 거튼의 바늘’에서 따온 그 유명한 옛 주가(酒歌)다. 그는 그것을 부르되, 아버님 입에서 받은 바대로 여러 변주를 곁들이는데, 이 노래는 지어진 이래로 ‘반달과 포도송이’의 단골 애창곡이었다. 아니, 그의 말로는 자기 선조들이 종종 귀족과 향사 들 앞에서, 리틀 브리튼이 한창 영화롭던 시절 크리스마스 가면극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영광을 누렸다고 한다.

클럽이 열리는 밤이면 이 흥겨운 저택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며 노래 가락이며, 또 이따금씩 어우러지는 예닐곱 명의 어긋난 합창을 듣는 일이 그야말로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이런 때에는 거리가 귀 기울이는 사람들로 늘어서니, 과자점 진열창을 들여다보거나 음식점에서 풍겨 나오는 김을 들이마시는 즐거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리틀 브리튼에는 한 해에 두 번, 큰 들썩임과 흥분을 몰고 오는 행사가 있으니, 곧 성 바솔로뮤 박람회와 런던 시장 취임일이다. 박람회는 인접한 스미스필드 일대에서 열리는데, 그 동안에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오직 수다와 어슬렁거림뿐이다. 평소 조용하던 리틀 브리튼의 거리에 낯선 모습과 얼굴 들이 떼 지어 들이닥치고, 어느 선술집이건 떠들썩한 소동과 향연의 무대로 변한다. 술청에서는 깡깡이 소리와 노랫소리가 아침이고 한낮이고 밤이고 끊이지 않으며, 창마다 술친구들이 한 무리씩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니, 반쯤 감긴 눈에 모자는 한쪽으로 비뚜름히 얹고 입에는 파이프, 손에는 술잔을 들고서, 잔을 어루만지며 지껄이고 게슴츠레 노래를 흥얼거린다. 평소 내 이웃집들 사이에 엄히 지켜지던, 개인 가정의 점잖은 예법조차도 이 사투르날리아 앞에서는 무력하다. 문 안에 가정부를 붙잡아 두는 일이 도무지 가능하지 않다. 펀치 인형극과 회전목마, 폴리토 단장과 불 먹는 사나이, 유명한 패아프 씨와 아일랜드 거인이 그네들의 머리를 단단히 휘저어 놓아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아이들 또한 명절 용돈을 모조리 장난감과 금박 진저브레드에 쏟아붓고, 북과 나팔과 페니 호각의 자그마한 소음으로 집안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정말 큰 기념일은 런던 시장 취임일이다. 리틀 브리튼 주민들이 보기에 런던 시장은 지상 최고의 권능자요, 여섯 마리 말이 끄는 그분의 금장 마차는 인간 영화의 정점이며, 셰리프와 시참사관 들을 모조리 거느린 행렬은 이 땅에서 가장 거창한 의식이다. 임금 자신조차도 템플 바 문턱에 먼저 와 두드리고 시장께 들어가게 해 주십사 청하지 않고는 도성에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에 그들은 얼마나 우쭐하는지 모른다. 만일 그러지 않고 들어왔다가는, 어이쿠 천지신명이여!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시장 앞에서 말을 모는 갑옷 입은 사내가 곧 도성의 수호자이니, 도성의 위엄을 거스르는 자라면 누구든 베어 버리라는 명을 받았다. 또 의전 마차 창가에는 머리에 벨벳 포린저를 얹은 자그마한 사내가 자리해 있으니, 장창대만큼 긴 도성의 검을 받쳐 들고 있다. 어이쿠 맙소사! 그가 한번 그 검을 뽑는 날에는, 폐하 자신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이러한 강대한 권능자의 비호 아래 리틀 브리튼의 어진 주민들은 두 발 뻗고 잠을 잔다. 템플 바는 안으로부터의 모든 적을 막아 내는 든든한 방벽이요, 외적이 쳐들어온다 한들 시장께서 런던 타워에 들어앉아 민병대를 불러 모으고 비프이터 상비군을 무장시키시기만 하면, 천하를 향해 큰소리를 쳐도 무방하다!

이렇듯 자기네 일, 자기네 풍습, 자기네 견해 속에 폭 싸인 채로, 리틀 브리튼은 오랜 세월 이 거대한 곰팡이 같은 도성의 건강한 심장 노릇을 해 왔다. 나는 이곳을 일종의 선택받은 자리로 여기며 흐뭇해했으니, 여기에는 우직한 존 불 정신의 정수(精髓)가 씨앗처럼 갈무리되어 있어 국민성이 황폐하고 타락한 끝에 다시 갈아엎을 때를 대비하고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곳 전체에 흐르던 화목한 기운도 나에겐 마음 뿌듯한 일이었다. 이따금 치즈 장수와 약제사를 따르는 무리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고 장의 공제회들 사이에 잠깐의 다툼이 있기는 했어도, 그것은 곧 흩어지는 한 점 구름일 뿐이었다. 이웃들은 너그러이 만나고 악수로 헤어지며, 서로를 욕하는 일이라곤 등 뒤에서가 아니면 결코 없었던 것이다.

소소한 잔치에 끼었던 일도 자랑 삼아 풀어놓을 만한 게 한둘이 아니다. 거기서는 올포어스, 포프조앤, 톰컴티클미 같은 고풍스러운 옛 놀이를 즐겼고, 때때로는 ‘서 로저 드 커벌리’ 가락에 맞추어 점잖은 옛 영국식 시골 춤도 추었다. 또 한 해에 한 번씩은 이웃들이 한데 모여 에핑 숲으로 들놀이를 나가곤 했다. 거기서 우리가 나무 아래 잔디에 둘러앉아 흥청대던 광경을 보았다면 누구의 마음이라도 푸근해졌으리라. 자그마한 왜그스태프와 흥겨운 장의사의 노래에 우리들이 어찌나 웃어 댔던지, 숲이 떠나가도록 메아리쳤다. 식후에는 또 젊은 패들이 장님놀이와 숨바꼭질을 했다. 가시덤불에 옷자락이 걸린 모양이며, 덤불 사이에서 이따금 까르륵 비명을 지르는 발랄한 처녀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게 여간 흥겨운 일이 아니었다. 나이 든 이들은 치즈 장수와 약제사 둘레에 모여 정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시골에 와서 시간을 죽이려고 으레 신문을 호주머니에 챙겨 오곤 했던 까닭이다. 이따금 논쟁이 좀 격해지기는 했지만, 그 다툼은 언제나 어느 점잖은 늙은 우산 장수에게 회부되어 결판이 났다. 두 번 턱이 진 그 양반은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어찌어찌 양쪽 모두의 손을 들어 주는 식으로 매번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어느 철학자인지 사학자인지가 이르기를, 모든 제국은 변동과 혁명을 면할 수 없다 했다. 사치와 신풍조가 슬며시 스며들고, 파벌이 일어나며, 야심과 음모로 온 체계를 흩어 놓는 가문이 이따금 생겨난다. 그리하여 근래에 들어 리틀 브리튼의 평온이 자못 어지러워졌으니, 그 황금 같은 소박한 풍습이, 한 은퇴한 푸줏간 영감 식솔의 야심으로 말미암아 통째로 뒤엎일 위협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램 가는 동네에서 가장 잘되고 평판 좋은 집안 가운데 하나로 오랫동안 손꼽혀 왔으며, 램 가의 따님들은 리틀 브리튼의 미인들이었다. 그러니 램 영감이 가게를 닫고 문에 놋쇠 명패를 박아 놓을 만큼 돈을 벌었을 때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들 기뻐하였다. 그러나 어느 흉한 날, 램 가의 따님 한 분이 시장 부인의 큰 연회에서 시중드는 영광을 입었으니, 그날 그녀는 머리에 우뚝 솟은 타조 깃 세 개를 꽂았던 것이다. 그 집안은 이 일에서 끝내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길로 상류 생활의 열병에 휩쓸려, 외말 마차를 한 대 사고 심부름꾼 아이의 모자에 금실 띠를 두르고는, 그날 이래로 줄곧 동네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리며 미움의 대상이 되어 왔다. 따님들은 더는 포프조앤이나 장님놀이 따위에 끌려 들지 않으려 들었고, 콰드릴 외에는 어떤 춤도 견디지 못하게 되었으니, 리틀 브리튼에서는 콰드릴이라는 이름조차도 들어 본 사람이 없었다. 또 소설책을 들기 시작하고, 어설픈 프랑스어를 입에 올리며,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변호사 사무실에 견습으로 들어가 있던 오라비도 댄디며 비평가로 자처하니, 이 동네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인종이었다. 그가 킨이며 오페라며 ‘에든버러 리뷰’를 입에 올려 어진 동네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더욱 한심한 일은, 램 가가 큰 무도회를 열고는 옛 이웃들을 단 한 사람도 청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시오볼즈 로드며 레드 라이언 스퀘어, 그 밖의 서편 동네에서는 점잖은 손님들이 줄지어 왔고, 오라비의 친구들 중에서는 그레이스 인 레인과 해튼 가든의 멋쟁이 청년 여럿이, 또 시참사관 부인이 따님들을 데리고 자그마치 셋이나 모여들었다. 이는 결코 잊을 일도, 용서받을 일도 아니었다. 채찍 후리는 소리, 가엾은 말들이 매를 맞는 소리, 삯마차의 덜커덕대며 짤랑이는 소리에 리틀 브리튼 전체가 아우성을 쳤다. 동네 험담꾼들이 창마다 잠모자 쓴 머리를 내밀고 그 별난 마차들이 굴러가는 모양을 지켜보았으며, 은퇴한 푸줏간 영감 댁 바로 맞은편 집에서는 고약하기 짝이 없는 옛 단짝들이 한 무리 진을 치고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마다 일일이 살펴보고 흠을 잡았다.

이 무도회는 거의 공공연한 전쟁의 발단이 되어, 동네 사람들 모두 다시는 램 가와는 말을 섞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램 부인은 상류층 친구들과 약속이 없을 때면 옛 단짝들에게 소소한 다과회를 베풀곤 했는데, 본인의 말마따나 “순전히 친구로서” 부르는 자리였다. 또한 초대받은 이들이 앞서 다짐했던 결의에도 불구하고 늘 응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 어진 부인들은 자리에 앉아 램 가 따님들의 음악에 황홀해하기까지 했으니, 따님들이 짐짓 황송한 듯이 그분들을 위해 아일랜드 가락을 피아노로 짚어 드리는 까닭이었다. 또 램 부인이 늘어놓는 일화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기울였으니, 포츠오큰 워드 플렁킷 시참사관 댁 이야기며 크러치드 프라이어스의 부유한 상속녀 팀버레이크 가의 따님들 이야기 같은 것들이었다. 다만 그러고 나서 부인들은 자기 양심을 달래고 한 패의 책망을 모면하려고, 다음번 험담 모임에서는 그날 있었던 일들을 죄다 입에 올려 램 가와 그날 모인 이들을 통째로 헐뜯었다.

그 식구 가운데 도무지 유행에 물들지 않은 사람은 은퇴한 푸줏간 영감 자신뿐이었다. 정직한 램 영감은 이름이 양같이 순할지언정, 거칠고도 호탕한 늙은이로, 사자 같은 목소리에 구두솔처럼 까만 머리, 자기네 쇠고기 덩어리처럼 얼룩덜룩한 너른 얼굴을 지녔다. 따님들이 늘 그를 “노신사 어른”이라 부르고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파파”라 일컬으며, 가운과 슬리퍼며 신사 풍속을 그에게 들이밀어 보아도 헛수고였다. 어떻게 해도 이 푸줏간 영감을 길들일 도리가 없었다. 그의 우직한 성품은 따님들의 온갖 그럴싸한 단장(丹粧)도 뚫고 솟아났다. 그에게는 도무지 누를 수 없는 걸쭉한 호인의 익살이 있었으니, 농담 한 마디 한 마디가 예민한 따님들을 몸서리치게 했다. 또한 그는 한사코 아침마다 푸른 무명 외투를 걸치고, 두 시에 식사를 들며, “찻상에 소시지 한 토막을 곁들이는” 버릇을 지키려 들었다.

그러나 그 또한 식구들이 사고 있던 미움을 함께 나눌 운명이었다. 옛 동무들이 점차 차갑고 형식적으로 변해 가는 것을 그는 눈치챘다. 더는 그의 농담에 웃어 주지 않았고, 이따금 “어떤 사람들”이라고 비꼬는 말이며 “양반네 행세” 운운하는 빈정거림을 던지곤 했다. 이는 정직한 푸줏간 영감의 부아를 돋우면서도 머리를 싸매게 하였으니, 부인과 따님들은 더 영리한 성(性) 특유의 노련한 책략으로 이 틈을 비집고 들어, 오후 한때 왜그스태프 술집에서 즐기던 파이프와 술잔을 끝내 그에게서 거두어들이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그는 식후에 홀로 앉아, 진저리치는 포트 한 잔을 들이켜고는, 외롭고 음울한 양반 행세 속에서 의자에 앉은 채 꾸벅거려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제 램 가의 따님들은 프랑스식 보닛을 쓴 채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를 멋쟁이 청년들을 거느리고 거리를 하늘하늘 거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또한 어찌나 큰 소리로 말하고 웃어 대는지, 그 소리가 닿는 곳의 어진 부인들마다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따님들은 이른바 후원이라는 것에까지 손을 뻗어, 정말로 한 프랑스인 무용 선생을 동네에 들여놓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리틀 브리튼의 어진 주민들이 이에 노발대발하여 그 가엾은 골(Gaul, 프랑스 사람) 사람을 어찌나 들볶았던지, 그는 결국 깡깡이와 춤신을 챙겨, 하숙비조차 치르지 못한 채 정신없이 줄행랑을 쳐야 했다.

처음 한동안은 나도 흐뭇한 마음에, 동네의 이 거센 분개가 옛 좋은 영국식 예법을 사랑하는 열정과 새 풍조에 대한 진저리에서 우러난 것이려니 여겼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토록 목소리 높여 표현하던, 신흥 거만함과 프랑스 풍속, 그리고 램 가의 따님들에 대한 무언의 멸시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내 나는 그 전염병이 손아귀를 뻗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비난하던 이웃들이 슬슬 그 본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은 내 하숙집 마님이 남편을 졸라 댁의 따님들에게 한 학기 동안 프랑스어와 음악을 배우게 하고 콰드릴도 몇 번쯤 익히게 해 주십사 떼쓰는 것을 들었다. 또한 몇 주일이 채 못 가서 리틀 브리튼 거리에 램 가 따님들의 것과 똑같은 프랑스식 보닛이 자그마치 다섯 개나 활보하고 다니는 광경도 보았다.

나는 여전히 이 모든 어리석음이 차차 사라지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램 가가 동네에서 이사를 가거나, 죽거나, 변호사 견습들과 눈이 맞아 도망치거나 한다면, 다시 평온과 소박함이 동네로 돌아오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새로운 적수가 등장하였다. 부유한 기름 장수가 죽고, 두둑한 유산을 받은 미망인이 토실토실한 따님 여럿을 거느린 채 남았다. 따님들은 신중한 아버지의 검소함에 우아한 포부를 줄곧 짓눌려 온 터라, 오랫동안 속으로 한숨만 짓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묶일 데가 없게 되자 그 야심이 활활 타올라, 푸줏간 영감 댁을 향해 공공연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실 램 가는 출발이 빨랐던 만큼 유행이라는 경주에서 자연스레 한발 앞서 있었다. 어설픈 프랑스어를 조금 할 줄 알았고, 피아노를 쳤으며, 콰드릴을 추었고, 신분 있는 교제도 트고 있었다. 그러나 트로터 가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램 가가 모자에 깃 두 개를 꽂고 나타나면 트로터 가의 따님들은 네 개를 꽂았으니, 빛깔도 두 배는 곱고 화려한 것들이었다. 램 가가 무도회를 열면 트로터 가도 결단코 뒤지지 않았다. 그쪽 손님들의 격은 이쪽만 못했을지언정, 수는 두 배요 흥겨움도 두 배였다.

마침내 동네 전체가 이 두 집안을 깃발 삼아 두 유행 파벌로 갈라서고 말았다. 옛 놀이 포프조앤이며 톰컴티클미는 깡그리 자취를 감추었고, 점잖은 시골 춤 한 번 잡아 보기조차 어려워졌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내가 어느 젊은 처녀에게 겨우살이 아래에서 입맞추려 했다가 야무지게 거절을 당하고 만 일이 있는데, 램 가의 따님들이 그 풍속을 두고 “충격적이게 천박”하다고 선언한 까닭이라 했다. 또 가장 멋진 동네 한 자락이 어디인가를 두고도 쓰라린 경쟁 의식이 불거졌으니, 램 가는 크로스 키스 스퀘어의 위엄을 내세우고, 트로터 가는 성 바솔로뮤 인근을 내세웠다.

이리하여 이름값을 하는 위대한 제국마냥, 이 작은 영지도 파벌과 내분으로 찢기고 있다. 그 결말이 어찌 될지는 그 약제사 자신조차도, 그 모든 예언의 재간을 동원하더라도 가늠하기 어려우리라. 다만 짐작건대, 이는 진정한 존 불 정신의 완전한 몰락으로 끝날 듯싶다.

당장의 여파는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거북하다. 나는 홀몸이고, 앞서 말했듯 다소 한가하고 게으른 사내인지라, 이곳에서 직업 삼아 신사 노릇을 하는 유일한 인간으로 통한다. 그리하여 양쪽에서 두루 총애를 받으며, 그네들의 온갖 밀실 회의와 서로에 대한 험담을 죄다 들어 주는 처지에 놓였다. 게다가 부인네들에게 어느 자리에서든 맞장구를 치지 않을 만큼 무례할 수도 없는 까닭에, 그 반대편을 험담하는 일에 끔찍하게도 두 패 모두에게 깊이 발을 담그고 말았다. 양심에 비추어서야 이 일을 그럴싸하게 둘러댈 길이 있다. 본디 내 양심은 더없이 너그러운 까닭이다. 그러나 나의 처지에 비추어 둘러댈 길은 없으니, 만일 램 가와 트로터 가가 언젠가 화해하여 서로의 이야기를 맞춰 본다면, 나는 끝장이다!

그리하여 나는 때맞춰 물러나기로 마음을 정했고, 이 큰 도시 안에서 어디 다른 둥지가 없을지 지금 한창 찾고 있다. 옛 영국식 풍속이 여전히 살아 있고, 프랑스라면 먹지도 마시지도 추지도 입에 올리지도 않는 곳이며, 은퇴한 장사꾼의 유행깨나 좇는 가문이 들어와 있지 않은 곳을. 그런 곳을 찾아내면 나는 노련한 쥐처럼, 낡은 집이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리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뜨리라. 지금의 거처에 길고도 서글픈 작별을 고하고, 맞수 파벌인 램 가와 트로터 가에게는 어지러운 리틀 브리튼의 영지를 마음껏 나눠 가지도록 남겨 둘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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