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너희들이 자라서 한 사람 몫의 인간으로 다 컸을 때 ― 그때까지 너희들의 아빠가 살아 있을지 없을지,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 아버지가 적어 남긴 글들을 펼쳐 볼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때 이 작은 글도 너희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너희들의 아버지인 내가 그때 너희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내가 지금 이곳에서 지나가려 하는 시대를 비웃고 가엾게 여기듯이, 너희들도 내 케케묵은 마음씨를 비웃고 가엾게 여길지 모른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 그렇게 되기를 빈다. 너희들은 거리낌 없이 나를 발판 삼아, 높고 먼 곳으로 나를 뛰어넘어 나아가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을 얼마나 깊이 사랑한 자가 이 세상에 있는가, 또는 있었는가 하는 사실은 영원히 너희들에게 필요하리라 나는 생각한다. 너희들이 이 글을 읽고 내 사상이 미숙하고 완고함을 비웃는 동안에도, 우리들의 사랑은 너희들을 따뜻하게 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인생의 가능성을 너희들의 마음에 맛보게 하고야 말 것이라 나는 믿는다. 그래서 이 글을 나는 너희들에게 부쳐 쓴다.

너희들은 작년에 단 한 사람뿐인 엄마를 영원히 잃고 말았다. 너희들은 태어나자마자 생명에 가장 소중한 양분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너희들의 인생은 그 자리에서 이미 어둡다. 얼마 전 어느 잡지사가 “나의 어머니”라는 짧은 감상문을 써 달라고 보내왔을 때, 나는 별 생각 없이 “내 행복은 어머니가 처음부터 한 분으로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것이다”라고 적어 보냈다. 그리고 만년필이 그것을 다 쓰기도 전에 나는 곧 너희들 생각이 났다. 내 마음은 나쁜 짓이라도 한 것처럼 아렸다.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다. 나는 그 점에서 행복했다. 너희들은 불행하다. 회복할 길 없이 불행하다. 불행한 자들이여.

새벽 세 시부터 느슨한 진통이 일기 시작해 불안이 온 집안에 퍼진 것은 지금 생각하면 칠 년 전 일이다. 그날은 눈보라도 그런 눈보라가 없었다. 홋카이도에서조차 좀처럼 보기 드문 지독한 눈보라가 치는 날이었다. 시가지를 벗어난 강가의 외딴집은 날아갈 듯 흔들렸고, 창유리에 들이친 가루눈은 솜구름에 갇힌 햇빛을 두 겹으로 가려 밤의 어둠이 좀처럼 방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전등이 꺼진 어슴푸레한 가운데, 흰 천에 감싸인 너희들의 어머니는 꿈결처럼 신음하며 괴로워했다. 나는 학생 한 사람과 식모 한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가며 불을 지피고 물을 끓이고 심부름꾼을 보냈다. 산파가 눈으로 새하얗게 된 채 굴러들어 왔을 때는 온 집안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지만, 정오가 되어도 정오를 지나도 출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산파와 간호부의 얼굴에 나에게만 보이는 염려의 빛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나는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서재에 틀어박혀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산실로 내려가 산모의 두 손을 단단히 붙잡는 역할을 맡았다. 진통이 일어날 때마다 산파는 꾸짖듯이 산모를 격려하며 1분이라도 빨리 출산을 마치게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잠시의 고통 뒤에 산모는 곧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코까지 골며 모든 것을 잊은 듯 편안해 보였다. 산파도, 뒤늦게 달려와 준 의사도,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한숨만 쉴 따름이었다. 의사는 혼수가 올 때마다 무언가 비상한 수단을 써야 하지 않을까 궁리하고 있는 듯했다.

정오를 지나자 바깥의 눈보라는 점점 잦아들어, 짙은 눈구름 사이로 새어 나오는 옅은 햇빛이 창에 쌓인 눈에 와서 살며시 장난을 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산실 안의 사람들에게는 점점 더 무거운 불안의 구름이 덮여 왔다. 의사는 의사대로, 산파는 산파대로, 나는 나대로, 저마다 불안에 사로잡혀 버렸다. 그 가운데 아무런 위해도 느끼지 않는 듯이 보이는 것은, 가장 무서운 운명의 깊은 못 앞에 임해 있는 산모와 태아뿐이었다. 두 생명은 가물가물 죽음 쪽으로 잠들어 갔다.

마침 세 시쯤이라 여겨질 때 ― 산기가 들고 나서 열두 시간째에 ― 저녁이 들 듯한 빛 속에서, 마지막이라 여겨지는 격렬한 진통이 일어났다. 육신의 눈으로 무서운 꿈이라도 꾸듯이, 산모는 번쩍 눈꺼풀을 떴다. 정처 없이 한곳을 노려보며 괴로운 듯하기보다 무서운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고는 내 상체를 자기 가슴 위로 끌어당겨, 등을 날개로 감싸듯이 끌어안아 왔다. 만약 내가 산모와 같은 정도로 힘을 주고 있지 않았다면, 산모의 팔은 내 가슴을 짓눌러 버렸을 것이다. 거기 있던 사람들의 마음은 자기도 모르게 모두 곤두섰다. 의사와 산파는 자리도 잊은 듯 큰 소리로 산모를 격려했다.

문득 산모의 악력이 풀린 것을 느끼고 나는 얼굴을 들었다. 산파의 무릎 앞에는 핏기 없는 갓난아이가 반듯이 누워 있었다. 산파는 공이라도 두드리듯 그 가슴을 격렬하게 두드리면서, 포도주 포도주 하고 외쳤다. 간호부가 그것을 들고 왔다. 산파는 얼굴과 말로 그 술을 대야 안에 부으라고 지시했다. 격렬한 향내와 동시에 대야의 더운물은 피와 같은 빛으로 변했다. 갓난아이는 그 안에 잠겼다. 잠시 후에 가느다란 첫울음이 숨도 쉴 수 없는 긴장의 침묵을 깨고 가늘게 울려 퍼졌다.

크나큰 하늘과 땅 사이에 한 사람의 어머니와 한 사람의 아이가 그 찰나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때 새로운 어머니는 나를 보고 가냘프게 미소 지었다. 나는 그것을 보자 까닭 없이 눈물이 눈시울에 배어 나왔다. 그것을 너희들에게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나는 모르겠다. 내 생명 전체가 눈물을 내 눈에서 짜내었다고 하면 좋을까. 그때부터 생활의 모든 양상이 눈앞에서 변해 버렸다.

너희들 가운데 가장 먼저 이 세상의 빛을 본 자는 이렇게 해서 세상의 빛을 보았다. 둘째도 셋째도, 태어남에 난이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준 신비로운 인상에는 변함이 없다.

이렇게 해서 젊은 부부는 차례차례 너희들 셋의 부모가 되었다.

나는 그 무렵 마음속에 갖가지 문제를 차고 넘치도록 안고 있었다. 시종 안달복달하면서도 무엇 하나 자신을 “만족”에 가깝게 해 줄 만한 일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 혼자 곱씹어 보는 내 성품이라, 표면으로는 남들 만큼의 생활을 살고 있으면서도, 내 마음은 자칫하면 치밀어 오르는 불안에 안달이 났다. 어느 때는 결혼을 후회했다. 어느 때는 너희들의 탄생을 미워했다. 어찌하여 내 생활의 깃발 빛깔을 더 선명히 해 두지도 못한 채 결혼 따위를 했단 말인가. 아내가 있는 까닭에 뒤로 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짐 몇 가지를, 무엇하러 좋아서 허리춤에 매달았는가. 어찌하여 두 사람의 육욕의 결과를 하늘이 내린 선물처럼 여기지 않으면 안 되는가. 가정을 세우는 데 들이는 노력과 정력을, 나는 다른 데 써야 하지 않았던가.

나는 내 마음의 흐트러짐 때문에 너희들의 어머니를 자주 울리고 외롭게 했다. 너희들도 박정하게 다루었다. 너희들이 조금 끈덕지게 울거나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무언가 잔혹한 짓을 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 원고지를 마주하고 있던 참에 너희들의 어머니가 사소한 가사 상담을 가지고 오거나, 너희들이 울며 떠들거나 하면, 나는 자기도 모르게 책상을 두드리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뒤에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 휩싸일 것을 익히 알면서도, 거친 말을 쓰거나 너희들에게 엄한 매를 들거나 했다.

그러나 운명이 내 제멋대로와 몰이해를 벌할 때가 왔다. 도저히 너희들을 보모에게 맡겨 둘 수가 없어, 매일 밤 너희들 셋을 자기 머리맡과 좌우로 눕혀 놓고, 밤새도록 한 사람을 재우거나 한 사람에게 우유를 데워 먹이거나 한 사람에게 소변을 보게 하거나 하면서, 변변히 깊이 잘 짬도 없이 사랑의 한도를 다해 주던 너희들의 어머니가, 사십일 도라는 무서운 열을 내며 풀썩 자리에 누웠을 때의 놀람도 보통 일은 아니었지만, 진찰하러 와 준 두 의사가 입을 모아 결핵의 징후가 있다고 했을 때는, 나는 그저 까닭도 없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객담 검사의 결과는 의사들의 감정을 뒷받침해 주고 말았다. 그리하여 네 살, 세 살, 두 살이 되는 너희들을 남기고, 시월 말의 쓸쓸한 가을날, 어머니는 입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몸이 되어 버렸다.

나는 낮의 일을 마치면 날아갈 듯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너희들 한둘을 데리고 병원으로 서둘렀다. 내가 그 동네에 살기 시작한 무렵 일을 거들어 주던 야무진 종갓집 노파가 병실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 노파는 너희들의 모습을 보면 몰래몰래 눈물을 닦았다. 너희들은 침대 위의 어머니를 발견하면 달려가 매달리려 했다. 결핵임을 아직 알리지 않은 너희들의 어머니는, 보물이라도 끌어안듯 너희들을 그 가슴에 모으려 했다. 나는 적당히 둘러대 너희들이 침대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해야만 했다. 충심을 다하려 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극단의 오해를 받으면서, 그것을 변명해서는 안 되는 처지에 놓인 사람의 심정을 나는 몇 번이고 맛보았다. 그래도 나는 이미 화낼 용기는 없었다. 떼어 내듯이 너희들을 어머니에게서 멀리하고 귀로에 오를 즈음에는, 대개 가로등의 빛이 어슴푸레 길을 비추고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면 고용인들만이 집을 보고 있었다. 두세 명이나 있으면서도, 남겨 둔 갓난아기의 기저귀를 갈아 줄 줄도 몰랐다. 기분 나쁘다는 듯이 울부짖는 갓난아기의 사타구니 아래는 흔히 흠뻑 젖어 있곤 했다.

너희들은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을 따르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간신히 너희들을 재워 놓고 나서 나는 살그머니 서재로 들어가 자료를 뒤졌다. 몸은 지치고 머리는 흥분해 있었다. 일을 마치고 잠들려 하는 열한 시 무렵이 되면, 신경이 예민해진 너희들은 꿈 따위를 꾸며 놀라 깨어나곤 했다. 새벽녘이 되면 너희들 가운데 한 사람이 젖을 찾아 울기 시작했다. 그것에 깨워지면 내 눈은 이미 아침까지 감기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나면 나는 빨개진 눈으로, 굳은 심장 같은 것이 박힌 머리를 안고 일하러 나섰다.

북녘 땅에는 겨울이 눈에 띄게 다가왔다. 어느 때 병원을 찾아가 보니, 너희들의 어머니는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내 얼굴을 보자 빨리 퇴원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창밖의 단풍나무가 저렇게 된 것을 보니 마음이 허전하다는 것이다. 과연 입원했을 때만 해도 불타듯 가지를 장식하고 있던 그 잎들이 한 장도 남김없이 다 떨어졌고, 화단의 국화도 서리에 다쳐, 시들 때도 아닌데 시들어 있었다. 나는 이 쓸쓸함을 매일 보여 두는 것만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진짜 마음은 그런 데 있는 게 아니라, 너희들에게서 한순간도 떨어져 있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드디어 퇴원한다는 날은, 싸락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휘잉휘잉 부는 궂은 날이었다. 나는 그만두게 하려고 일을 마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병실은 텅 비어 있었고, 그 노파가 받은 물건이며 방석이며 다기 같은 것을 방구석에서 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다. 서둘러 집에 돌아와 보니, 너희들은 이미 어머니 주위에 모여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자 눈물이 흘렀다.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섯 식구는 쉼 없이 들이닥치는 추위 앞에서, 작게 뭉쳐 몸을 지키려는 잡초 포기처럼, 서로 가까이 다가가 온기를 나누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녘의 추위는 우리 다섯 사람의 온기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추웠다. 나는 한 사람의 환자와 철없는 너희들을 어루만져 가며, 떠도는 기러기처럼 남쪽을 향해 달아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첫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는 밤의 일이었다, 너희들 셋을 낳아 길러 준 땅을 뒤로하고 길을 떠난 것은. 잊을 수 없는 몇몇 얼굴들은 어두운 정거장 플랫폼에서 우리에게 작별을 아쉬워했다. 음울한 쓰가루 해협의 바다 빛깔도 뒤로 멀어졌다. 도쿄까지 따라와 준 한 학생은, 너희들 가운데 가장 어린 자를 어머니처럼 밤새도록 안고 있어 주었다. 그런 일을 적자면 한이 없다. 어쨌든 우리는 다행히 다친 데 없이, 이틀의 우울한 여행 끝에 늦가을의 도쿄에 닿았다.

지금까지 있던 곳과는 달리, 도쿄에는 많은 친척과 형제들이 있어 우리에게 깊은 동정을 보내 주었다. 그것이 내게 얼마만한 힘이 되었던가. 너희들의 어머니는 머지않아 K 해안에 자그마한 임대 별장을 빌려 살게 되었고, 우리는 근처의 여관에 묵으며 거기서 병문안을 다녔다. 한때는 병세가 매우 누그러진 듯이 보였다. 너희들과 어머니와 나는 해안의 모래언덕에 가서 햇볕을 쬐며 두세 시간을 즐겁게 보낼 정도가 되었다.

어떤 셈으로 운명이 그런 작은 평온을 우리에게 베풀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운명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이뤄야 할 것을 이루어 두고야 말았다. 그 해가 저물 무렵 너희들의 어머니는 잠깐의 감기로부터 그대로 나쁜 쪽으로 향해 갔다. 너희들 가운데 한 사람도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에 시달렸다. 그 병에 대해 나는 어머니께 알릴 마음이 일지 않았다. 병든 아이는 병든 아이대로 잠시도 나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너희들의 어머니로부터는 내 무소식을 나무라는 편지가 왔다. 나는 마침내 쓰러졌다. 병든 아이와 베개를 나란히 두고, 지금까지 겪은 적 없는 고열로 신음하며 괴로워했다. 내 일? 내 일은 내게서 천 리도 떨어져 멀어져 버렸다. 그래도 나는 이제 자신을 후회하려 하지 않았다. 너희들을 위해 끝까지 싸우려는 열의가 병의 열보다 높이 내 가슴 안에서 타오르고 있을 따름이었다.

설 초하루부터 비극의 절정이 닥쳐왔다. 너희들의 어머니는 자신의 병의 진상을 알리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였다. 그 어려운 역할을 맡아 준 의사가 돌아간 뒤, 너희들의 어머니의 얼굴을 본 내 기억은 평생 나를 채찍질할 것이다. 새파랗고 맑은 얼굴로 베개에 머리를 누인 채, 어머니는 차가운 각오를 미소에 담아 조용히 나를 보았다. 그곳에는 죽음에 대한 체념(Resignation)과 함께 너희들에 대한 끈질긴 집착이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처참하기까지 했다. 나는 처참한 느낌에 사로잡혀 자기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고 말았다.

드디어 H 해안의 병원에 입원하는 날이 왔다. 너희들의 어머니는 완전히 낫지 않는 한 죽어도 너희들과 만나지 않겠다는 각오의 단단한 매듭을 짓고 있었다. 두 번 다시 입지 않으리라 여겨지는 ― 그리고 실제로 입지 않은 ― 나들이옷을 입고 자리에서 일어선 어머니는, 안팎의 어머니들 눈앞에서 흐느껴 울며 무너졌다. 여자치고는 기상이 한층 강한 너희들의 어머니는, 나와 둘만 있는 자리에서도 우는 얼굴 따위는 보인 적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는데, 그때의 눈물은 닦는 자리마다 자꾸자꾸 흘러내렸다. 그 뜨거운 눈물은 너희들만의 귀한 소유물이다. 지금은 말라 버렸다. 큰 하늘을 건너는 구름의 한 조각이 되었는지, 골짜기 시냇물의 한 방울이 되었는지, 큰 바다의 거품 하나가 되었는지, 또는 뜻밖의 누군가의 눈물 곳간에 갈무리되어 있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뜨거운 눈물은 어쨌든 너희들만의 귀한 소유물이다.

자동차가 와 있는 곳에 이르자, 너희들 가운데 열병을 앓고 난 한 아이는 다리에 힘이 없어 식모에게 업혀서 ― 한 아이는 아장아장 걸어서 ― 가장 어린 막내는 어머니를 너무 괴롭게 할 거라는 조부모들의 염려로 데려오지 않은 채로 ― 어머니를 배웅하러 나와 있었다. 너희들의 철없는 놀라운 눈은 큰 자동차에만 향해 있었다. 너희들의 어머니는 그것을 쓸쓸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너희들은 식모의 권유로 군인처럼 거수경례를 했다. 어머니는 웃으며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너희들은 어머니가 그 순간부터 영원히 너희들에게서 떠나 버린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불행한 자들이여.

그로부터 너희들의 어머니가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의 일 년 칠 개월 동안, 우리들 사이에는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어머니는 죽음에 대해 최상의 자세를 취하기 위해, 너희들에게 최대의 사랑을 남겨 주기 위해, 나를 가감 없이 이해하기 위해. 나는 어머니를 병마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에게 닥쳐오는 운명을 사내답게 어깨에 떠메기 위해. 너희들은 신비로운 운명에서 자신을 해방하기 위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처지 속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피투성이가 되어 싸웠다고 해도 좋다. 나도 어머니도 너희들도 몇 번이나 탄환을 맞고, 칼자국을 입고, 쓰러지고, 일어서고, 또 쓰러졌던가.

너희들이 여섯 살, 다섯 살, 네 살이 되는 해 팔월 이일에 죽음이 쇄도했다. 죽음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구했다.

너희들의 어머니의 유언장 가운데서 가장 숭고한 부분은 너희들에게 주어진 한 구절이었다. 만일 이 글을 읽을 때가 오거든 동시에 어머니의 유서도 읽어 보아라. 어머니는 피눈물을 흘리며 울면서도, 죽어도 너희들과 만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뒤집지 않았다. 그것은 병균을 너희들에게 옮길까 두려워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 너희들을 봄으로써 자신의 마음이 무너질까 두려워했기 때문만도 아니다. 너희들의 맑은 마음에 잔혹한 죽음의 모습을 보여 너희들의 일생을 더없이 어둡게 할 것을 두려워하고, 너희들의 무럭무럭 자라 나가야 할 영혼에 조금이라도 큰 상처를 남길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죽음을 알리는 것은 무익할 뿐 아니라 유해하다. 장례 때는 식모를 너희들에게 붙여 즐겁게 하루를 보내게 해 주기 바란다. 그렇게 너희들의 어머니는 적고 있다.

“자식을 생각하는 어버이의 마음은
대를 넘어 세상을 비추는 햇빛과 같아라”

하고도 읊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너희들은 마침 신슈의 산 위에 있었다. 만일 너희들이 어머니의 임종에 함께하지 못한다면 평생 한으로 여길 거라고까지 적어 보내 준 너희들의 삼촌에게 굳이 부탁하여, 너희들을 산에서 돌아오게 하지 않았던 나를 너희들이 잔혹하다고 생각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지금 열한 시 반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방 옆방에 너희들은 베개를 나란히 하고 자고 있다. 너희들은 아직 어리다. 너희들이 내 나이가 되거든 내가 한 일을, 곧 어머니가 시키려 하셨던 일을 값지게 여기게 될 때가 올 것이다.

나는 그동안 어떤 길을 지나왔던가. 너희들의 어머니의 죽음으로 나는 자신이 살아가야 할 큰길로 헤매어 나왔다. 나는 자신을 아끼고 그 길을 잘못 들지 않고 통과해 가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일찍이 한 작품 속에서 아내를 희생시키기로 결심한 한 남자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사실에 있어 너희들의 어머니는 나를 위해 희생이 되어 주었다. 나처럼 가지고 있는 힘의 쓰는 법을 모르는 인간은 없다. 내 주위 사람들은 나를 한 명의 소심하고 노둔하고 일할 수 없고 가엾은 사내로밖에 보지 못했다. 내 소심함과 노둔함과 무능력을 끝까지 꿰뚫어 보아 주려는 자는 없었다. 그것을 너희들의 어머니가 이루어 주었다. 나는 자신의 약함에서 힘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일할 수 없는 곳에서 일을 발견했다. 대담해질 수 없는 곳에서 대담함을 발견했다. 예민하지 못한 곳에서 예민함을 발견했다. 말을 바꾸어 말하면, 나는 예민하게 자신의 노둔함을 꿰뚫어 보고, 대담하게 자신의 소심함을 인정하고, 노역하면서 자신의 무능력을 체험했다. 나는 이 힘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남을 살릴 수 있을 듯하다. 너희들이 내 과거를 바라볼 일이 있거든, 나도 헛되이 살지는 않았음을 알고 기뻐해 주리라.

비 같은 것이 진종일 내려 우울한 기분이 집안에 가득 차는 날 같은 때에, 어쩐 일인지 너희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잠자코 내 서재에 들어온다. 그러고는 한마디 “아빠” 하고 부른 채, 내 무릎에 기대어 흐느껴 울기 시작하고 만다. 아아 무엇이 너희들의 철없는 눈에 눈물을 요구하는가. 불행한 자들이여. 너희들이 까닭 없는 슬픔에 무너지는 것을 보는 일만큼 이 세상을 쓸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또 너희들이 기운차게 내게 아침 인사를 하고 나서, 어머니의 사진 앞으로 달려가 “엄마 안녕하세요” 하고 활달하게 외치는 순간만큼, 내 마음 밑바닥까지 푹 찌르고 지나가는 순간은 없다. 나는 그때 흠칫하며 무궁한 세계를 눈앞에 본다.

세상 사람들은 내 술회를 바보 같다고 여길 게 틀림없다. 왜냐하면 아내의 죽음이라는 것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진절머리가 날 만큼 흔한 일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중대시할 만큼 세상 사람들은 한가하지 않다. 그것은 분명 그렇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뿐 아니라 너희들도 머지않아 어머니의 죽음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슬프고 분하게 여길 때가 온다. 세상 사람들이 무관심하다 해서 그것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 된다.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 흔한 일들 가운데서도 인생의 쓸쓸함과 깊이 부딪쳐 볼 수 있다. 작은 일이 작은 일이 아니다. 큰일이 큰일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 하나에 달렸다.

어쨌든 너희들은 보기에 가슴 아픈 인생의 새싹이다. 울든, 웃든, 즐거워하든, 쓸쓸해하든, 너희들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가슴 아프게 다친다.

그러나 이 슬픔이 너희들과 나에게 얼마만큼의 강함이 되는지를 너희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우리는 이 상실 덕분에 삶에 한층 깊이 들어선 것이다. 우리들의 뿌리는 얼마간이라도 대지로 뻗어 내린 것이다. 인생을 사는 이상 인생에 깊이 들어서지 않는 자는 재앙스러운 자다.

동시에 우리는 자신의 슬픔에만 잠겨 있어서는 안 된다. 너희들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까지 금전의 굴레로부터는 자유로웠다. 마시고 싶은 약은 무엇이든 마실 수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우연한 사회 조직의 결과로 이런 특권 아닌 특권을 누렸다. 너희들 가운데 누군가는 어렴풋이라도 U씨 일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죽은 아내에게서 결핵이 옮은 U씨가, 그 이지적인 성품을 지녔으면서도 천리교를 믿고 그 기도로 병을 고치려 했던 그 마음을 생각하면, 나는 견딜 수가 없다. 약이 듣는지 기도가 듣는지 그것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U씨는 의사의 약을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U씨는 매일 하혈을 하면서 관청에 다녔다. 손수건을 두르고 또 두른 목에서는 쉰 목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일을 하면 병이 무거워질 것은 뻔히 알려진 일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U씨는 기도를 의지 삼아, 늙은 어머니와 두 아이의 생활을 이어 가기 위해, 굳세게 끝까지 일했다. 그리고 병이 무거워지고 나서, 얼마 안 되는 돈을 들여 맞은 고가액 주사는, 시골 의사의 부주의로 정맥에서 빗나가 격렬한 열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U씨는 무자산의 늙은 어머니와 어린아이들을 뒤에 남기고 그 때문에 쓰러져 버렸다. 그 사람들은 우리들의 이웃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운명의 빈정거림이란 말인가. 너희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리는 동시에, U씨를 떠올리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무서운 도랑을 메울 궁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들의 어머니의 죽음은 너희들의 사랑을 거기까지 넓혀 놓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말하는 것이다.

충분히 인생은 쓸쓸하다. 우리는 그저 그렇게 말하고 시치미를 떼고 있을 수 있을까. 너희들과 나는, 피를 맛본 짐승처럼 사랑을 맛보았다. 가자,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우리들의 주위를 쓸쓸함에서 구해 내기 위해 일하자. 나는 너희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한다. 너희들로부터 부모로서의 보답을 받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너희들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 준 너희들에게 내가 요구하는 것은, 그저 내 감사를 받아 주었으면 한다는 것뿐이다. 너희들이 한 사람 몫으로 자라났을 때, 나는 죽어 있을지도 모른다. 열심히 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노쇠해 아무 쓸모 없게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너희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내가 아니다. 너희들의 젊디젊은 힘은 이미 내리막을 향하려 하는 나 따위에게 거치적거려서는 안 된다. 쓰러진 어버이를 다 먹어 치우고 힘을 쌓는 사자 새끼처럼, 힘차고 씩씩하게 나를 떨쳐 버리고 인생에 나서 가거라.

지금 시계는 한밤중을 지나 한 시 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다. 쥐 죽은 듯 고요해진 밤의 침묵 속에 너희들의 평화로운 숨결만이 어슴푸레 이 방에 들려온다. 내 눈앞에는 너희들의 이모가 어머니에게라며 보내 주신 장미꽃이 사진 앞에 놓여 있다. 그것에 부쳐 떠오르는 것은, 내가 그 사진을 찍어 주던 때의 일이다. 그때 너희들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자가 어머니의 태에 깃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신비한 바람과 두려움으로 시종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 무렵의 어머니는 유난히도 아름다웠다. 그리스의 어머니를 본받는다며 방 안에 좋은 초상을 장식해 두었다. 그 가운데에는 미네르바의 상이며, 괴테며, 크롬웰이며, 나이팅게일 여사의 초상이 있었다. 그 소녀 같은 야심을 그때의 나는 가벼운 빈정거림의 마음으로 보고 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저 웃어 넘길 수만은 도저히 없다. 내가 너희들의 어머니의 사진을 찍어 주마 하니, 한껏 단장을 하고 가장 좋은 나들이옷을 입고는 내 이층의 서재로 들어왔다. 나는 차라리 놀라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쓸쓸히 웃으며 내게 말했다. 산은 여자의 출진(出陣)이다. 좋은 아이를 낳거나 죽거나, 그 둘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죽을 때의 차림을 한 것이다. ― 그때도 나는 마음 없이 웃어 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도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깊은 밤의 침묵은 나를 엄숙하게 한다. 내 앞에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너희들의 어머니가 앉아 있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그 어머니의 사랑은 유서에 적힌 대로 너희들을 지키지 않고는 두지 않을 것이다. 잘 자거라. 알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의 작용에 너희들을 맡기고 잘 자거라. 그리고 내일은 어제보다 크고 슬기롭게 자라 잠자리에서 뛰쳐나오너라. 나는 내 역할을 끝까지 다하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이다. 내 일생이 아무리 실패할지라도, 또 내가 어떠한 유혹에 지더라도, 너희들이 내 발자취에서 불순한 어떠한 것도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일만큼은 한다. 반드시 한다. 너희들은 내가 쓰러진 곳에서 새로이 걸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가는, 어슴푸레하나마 너희들은 내 발자취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자들이여. 불행하고 동시에 행복한 너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축복을 가슴에 새기고 인생의 길에 오르라. 앞길은 멀다. 그리고 어둡다. 그러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워하지 않는 자 앞에 길은 열린다.

나아가라. 씩씩하게. 작은 자들이여.

●도서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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