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전하여 듣건대, 당나라 장안 도읍에 장생(蒋生)이라 하는 자가 있었으니, 그 고을 관원 집안의 번듯한 도련님이라. 어떤 댁 자제로서, 쏙 빼어난 색남(色男)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이런 자가 없을 법하나, 연두색 깃에 진홍 고름을 달고, 제법이라는 듯 옷깃을 풀어헤쳐 오호홈 하며 무릎을 슬며시 쓸어내리고는 허리를 뒤로 젖힌다.
풍류를 즐기며 홀로 산보하노라는 것인즉, 마침 일육 장날이라 어슬렁 나선 참이다. 품안에는 당시선(唐詩選)을 지참할 요량이라. 세간에서는 저자는 차남이라 하여 공경하는 척 멀리하면서, 굳이 차남 도련님이라 부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맏이는 얼간이인 데다, 삼남이 삼대째 이런 당물(唐物) 풍조로 나온다 하면, 이제 새삼스러울 것은 없으나, 부모의 민망함이란 것이 외람되나마 미루어 짐작되는 바이다.
그런데 이 장 재자(蒋才子), 오늘도 또 예의 그 (풍류 산보)랍시고, 신발 밑창 찰랑 소리를 내며 나서서, 해대문(海岱門)이라 하는, 우선은 성 끝자락이라 할 신주쿠 대목문 일대를 어슬렁어슬렁, 저 특유의 허리 젖힌 자태로 걸으며, 여인이 마주쳐 주면 좋으련만 하는 속셈을 품고 거닌다.
행색이 어딘가 딱하게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못하였던 모양이다. 물론 토박이 허세꾼이라 속으로 일컫는 무리는, 품안 사정이 어떠하든 간에, 그토록 구차한 요량이 으레 예부터 제 본색으로 굳어져 있는 법이다.
이미 그 문을 벗어나 이윽고 들길로 접어드는 참에, 옆길에서 앞으로 나와 지나는 수레 위에, 장생이 평소 지극히 좋아하는, 기막히다 싶은 것이 타고 있었다.
곁눈으로 흘끗 보고서는,
“어라.” 하고 허리를 젖혀, 멍하니 선 채로 있었다. 그러고는 종종걸음으로 옷매무새를 고치고는 그 수레를 뒤따르기 시작하였다. 여인도 눈치를 챘는지 이따금씩 이쪽을 돌아본다. 장생은 히죽히죽 웃으며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고 미행하노라니, 이곳이 당나라인지라 여인이 탄 것은 우차(牛車)임에 틀림없다. 잠자리 꼬리에 낚인 듯 마음이 달아올라도, 마차라면 그리 숨이 이어지지 않는 법이다.
이따금 바짝 다가서서는 수레를 슬쩍 올려다보는지라, 이윽고 그 여인이 쌀쌀하게 고개를 돌리며 실례로군 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허나 그런 일에 놀랄 위인이라면, 도무지 토박이 허세꾼 노릇을 못 한다. 이래저래 한 번 밀어붙여야지 하며 어디까지고 뒤따라가노라니, 그 요염한 여인이 빙그레 웃으며 마부에게는 알리지 않고, 희디흰 손을 파란 소맷부리 사이로 홱 내밀어 손짓하고는 다시 빙그레 웃었다.
장생이란 자, 하인 연처럼 실에 달린 신세로, 비틀비틀 가슴이 들떴다. 뜻밖에 기쁜 일이라(喜出意外) 함이 무리가 아니었다.
이로부터 천하 공인 배웅 늑대가 되어, 요염하고 또 그만큼 아름다운 여인도 수레 위에서 몇 번이고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데, 그것이 일부러가 아니라 정이 담겨 있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대목이야말로, 신혼미탕불지양족요산야(神魂迷蕩不知兩足※跚也). 한자만 보면 거창하지만, 너무 기쁜 나머지 허리가 빠질 것 같았다는 뜻이다.
걸어가기를 반 리쯤, 시골이면서도 당당한 채비의, 우러러볼 만한 검은 대문 안으로, 수레바퀴 자국을 따라 스르르 수레가 사라진다.
무지개를 탄 원숙한 미인을 구름 속에서 놓쳐버린 듯한 낯빛으로, 장생은 어스름이 내리는 문 밖에 멍하니 서서 바라보기도 하고, 목만 내밀어 들여다보기도 하고, 얼른 문짝 뒤에 몸을 숨기기도 하고, 별안간 기합을 넣고 돌아서기도 하다가, 또 꾸물꾸물 되돌아오기도 하였다.
그때, 문 안 수풀에 몸을 가린 어린 시녀가 쪼르르 달려 나와 아무 말도 없이 눈짓을 하고는, 담을 따라 이쪽으로 하는 시늉으로 앞에 서는지라, 그러하오리다 하고 어깨를 흔들며 발을 뛰어 뒤따라가노라니, 작은 쪽문 안으로 끌려 들어가게 되었다. 영리해 보이는 눈을 또렷이 뜨고 장생을 찬찬히 살피더니,
“저어, 이따가 아씨께서 몰래. 꼭 기다리세요. 여기서. 괜찮겠사옵니까.” 하고 귓속말을 하고는, 이내 쪼르르 자취를 감춘다.
“예.” 하고 생각지도 않게 입에서 나온 것을 얼른 막는 색남이라, 참는 자세는 가상하나, 그 손으로 납작한 코를 막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바로 그 서 있는 곳이 측간 앞이었으니, 이를 어찌할거나. 장생이 냄새를 참으며 숨을 죽이고 한참 동안 견디었다(蒋忍臭穢屏息良久)는 것이 두렵다.
주위의 쓰레기마저 새까맣게 어두워질 만큼 해가 푹 저물자, 아까의 소녀가 쥐처럼 또 나타나 “쉿, 조용히.” 한마디만 하고는 아무 말도 못 하게 소매를 끄는지라, 장생은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듯 흙바닥의 큰 부뚜막 앞을 지나 들판처럼 넓은 부엌을 지나서, 두 칸 세 칸, 차차 점점 깊은 안쪽으로 들어가노라니…… 등불의 흰 그림자가 희미하게 비추며, 눈앞에 홱 붉은 발(簾)이 나부낀다. 꽃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심경이었다.
더욱더 연두색 깃을 여미고 황홀해진 채로 그 발을 걷어 열어, 맑은 물이 졸졸 흐르듯 빛나는 미남이, 얼굴을 안으로 들이밀었는데, 아뿔싸.
상단이 딸린 큰 넓은 방, 정면 한 단 높은 곳에, 다다미 두 장은 될 듯한, 마치 불꽃의 연못 같은 황동 대형 화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을 앞에 두고, 오직 한 사람의 대장부가 앉아 있었다. 옻칠 같은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번뜩이며, 얼굴 전체가 수염으로 덮인 데다, 두 허벅지를 내놓은 털투성이로, 고슴도치 같은 큰 책상다리를 틀고서 장생을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는가 하더니, 흑수염 대인이 붉게 불길에 물들어 “이놈은 누구냐!” 하고 고함치는 것이 우렁차게 울렸다. 앗 소리도 못 하고 색남이 흔들리듯 부들부들 몸을 배배 꼬다가, 맥없이 허리부터 먼저 털썩 무릎이 꺾인다.
잠시 눈이 아찔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가, 찌르르 거문고가 절로 울리는 듯한, 구슬과 황금이 스치는 소리에 정신이 드는 기분이 들어, 가만히 구석 쪽에서 눈을 떠보니, …… 수레 위의 미인이 긴 옷자락 끌며 걷어 올린 옷자락 끝, 따오기 빛 분홍의 늘어뜨린 허리띠 차림으로, 저 흑수염 대인의 큰 무릎에 가냘프게 나긋나긋하게 끌어당겨져, 흰 꽃 핀 덩굴풀처럼 걸쳐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 애송이야.” 하고 불러, 수염 사이로 붉은 입을 크게 벌리고서는,
“어떠냐, 곱지? 옥이(お玉)라 하여 내 첩이다. 흐음, 그래도, 두더지 같은 놈이긴 하나, 이것을 곱다고 눈독 들인 안목만은 가상하구나. 다만 이놈, 이 정도 되는 물건에는 반드시 임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라. 네놈이 감히 천룡의 고기를 먹으려 하였느냐(汝竟想喫天龍肉耶), 이 바보 녀석아.”
말을 마치고 옥이의 어깨에 손을 얹어, 눈처럼 흰 가슴에 털투성이 손을 거리낌 없이 올리고, 옆으로 끌어안아 히죽히죽 웃는다. …… 그러자 여인도 마다하지 않고 목덜미며 등이며 저절로 기울어지는 듯 보인다.
그 꼴을 보게 된 장생은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힘이 다 빠지고 견디다 못하여,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자비를, 돌아가겠습니다, 돌려보내 주십시오.” 하고 마구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었다.
그 얼굴도 들게 하지 않고, 흑수염은 크게 고함을 지르며,
“안 된다!” 하고 소리쳤다.
“모처럼 왔는데 그냥은 돌려보내지 않겠다. 이놈, 우선 이름을 대라. 뭐라 하고, 어디서 온 풋내기냐.”
거짓을 아뢰었다가는 가랑이부터 찢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창피스럽게도 어버이의 성과 제 이름을 말한다.
“자비를,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를 듣고 흑수염은 환하게 웃음을 머금으며,
“하아, 거짓말은 않겠지, 이 바보 녀석아. 네 애비와 나는 의형제 사이다. 이놈.”
“야, 숙부님!” 하고 장생이 되살아난 듯한 기분이 들어, 처음으로 평소 버릇인 새된 가는 목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켠다.
“닥쳐라! 조카 주제에 숙부님의 첩을 넘보다니. 더욱더 패악한 놈이로구나. 달팽이를 달여 먹이고 쫓아내려 했거니와, 그리 들었으니 그냥은 못 넘기겠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아 하인들에게 분부하여, 가져오게 한 굵다란 지팡이 두 개.
“이놈 볼기짝을 후려쳐라.”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하고, 좌우에서 목덜미를 잡아 고꾸라뜨리려 하는데, 첩이 얼굴을 가린 때에, 흑수염이 눈살을 찌푸리며,
“야, 때리는 건 집어치워, 지팡이가 더러워진다, 이 놈 샅바가 지저분하다.”
실로 기가 막히고, 부모의 고생이 절로 떠오른다. 우선 얼굴을 들게 해라. 그리하여 맑은 물처럼 생긴 녀석을 찬찬히 뜯어보며,
“흐음. 과연 저 낯짝, 아비를 닮지 않은 낮은 코꼬락을 봐라. 있으나 없으나 매한가지인 물건이니, 베어주마.”
하고 단칼을 번쩍 빼어 든다.
이제는 마침내,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는 목소리도 쉬어버리고, 장생이 걷잡지 못하여 와! 하고 울음을 터뜨리니, 눈물이 빗물 쏟아지듯 흐른다는 것을 들으면, 측은하기도 하고 또 가련하기도 하다.
“이제 됐사와요, 나으리, 용서해 주세요.”
하고 고운 목소리로 무릎을 비비며, 그 미인이 나서서 중재를 해도, 수염을 흔들며 듣지 않는지라.
“그 대신, 어제 소작인에게서 받아들인 겉보리가 다섯 말 있었지요, 당나귀도 병이 들어 있고요, 당나귀 대신 밀을 갈아 죄를 씻음(代驢磨麺贖罪)이라 하옵니다.” 하고 말한다.
“당나귀 대신이라니 재미있구나. 어떠냐. 이놈, 보리를 찧겠느냐.”
장생, 연거푸 응낙한다.
“네, 네, 네, 아무쪼록, 자비를,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자, 이제, 안녕히 주무세요, 호호호호.”
하며 여인이 소매를 여미는지라, 사르르 발(簾). 그 붉은 장막 바깥으로,
“썩 꺼지거라.”
하고 하인 둘이, 다리에 힘도 없는 장생을 끌어안아 뒷문으로 쿵 내동댕이쳤다.
영차, 으랏차 하고 보리를 짊어지고, 그 하인들이 다시 나와 장작개비를 손에 쥐고서,
“이놈, 당나귀 새끼야.”
“게으름 피우면 한 대 선물해 주마.”
대낮처럼 환한 달밤에 서서, 쿵덕쿵덕 보리를 찧었다는 것이다.
절 앞 장날 구경 다니는 젊은이들아,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당나라 숙부님께서 이르시느니라.
메이지 43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