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유언
유언
오스기 사카에
사오 년 전 2월의 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메이지 대학 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지금 대학 강당에서 학예부 연설회를 열고 있으니 당장 와서 한마디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연설회 얘기는 전부터 H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법정경제 전문 학자들의 의견은 이미 질리도록 들었고, 국가니 정치니 법률이니 하는 권위에 속박된 주장 일색이라 재미도 없으니, 이번엔 방향을 완전히 바꿔 문예 방면의 신사상가들을 초청하고 싶다는 얘기가 나왔다. 인선 논의에도 잠깐 끼어들어 연사 가운데 한 명으로 이쿠타 조코 군을 추천해 두었다. 하지만 내 자신이 초대받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이 그런 자리에 불려 가는 일은, 절대로라 해도 좋을 만큼, 우선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지난 십수 년 동안 고토쿠가 한 번 와세다 대학에서 강연하고, 사카이가 한 번 게이오 의숙 대학에서 강연한 것, 딱 두 번뿐이었다. 물론 나도 한 번, 이삼 년 전에 와세다의 무슨 모임에서 초청을 받았다가 어떤 사정으로 중단된 적은 있다. 흔치 않은 기회다. 꼭 나가 보고 싶다. 그런데 부르는 것도 너무 갑작스럽다. 게다가 이 주일쯤 전부터 가성 이질 기운이 있는 병에 걸려, 겨우 하루이틀 전부터 보통 식사를 허락받고 아직 자리에 누워 있던 참이었다. 전화를 받으러 이층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몸이 휘청거렸다. 메이지 대학까지 나가 연설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사정을 설명하고 아쉽지만 거절했다.
“하지만 위원회에서 꼭 선생님도 모셔야 한다고 결정이 나서 제가 심부름을 온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잠깐 얼굴만 내밀어 주셔도 됩니다……그럼, 정말 황송하지만 어서 와 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저쪽에서도 얼굴만 비추면 된다고 한다. 이쪽도 활기 넘치는 학생들 얼굴이나 보면 그만이다. 어쨌든 좋은 기회니 가 보자. 즉각 그렇게 결심했다. 공교롭게 지갑이 텅 비어 있어, 기쿠자카의 하숙집에서 비틀거리며 걸어 스루가다이까지 갔다.
강당에 들어서니 청중으로 가득했다. 좌석이 모자라 뒤쪽에 사람들이 줄줄이 서 있고, 그 넘침이 복도까지 이어졌다. 천 명은 넘겠다 싶었다. 강단에서는 이쿠타 군이 특유의 거드름 피우는 몸짓과 말투로, 그만이 할 수 있는 사회 문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나는 강단 옆 연사석에서 바바 코초 군 옆자리를 차지했다.
이쿠타 군은 요 며칠 사회주의 후보 사카이의 선거 운동을 지원하면서 사회 문제에 한창 탄력이 붙어 있었다. 평소의 웅변보다 한층 달아올라 있었다. 회장 안에는 젊은 기운이 넘실댔다. 나도 어느새 그 분위기에 동화되어 버렸다. 오다가 한두 번은 돌아갈까 싶을 만큼 지쳤던 몸도 잊은 채, 기염을 토해 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때 H가 다가왔다.
“연제를 뭐라 해 둘까요. 지금 저기에 붙이려고 하는데요.”
H는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강단 뒤의 안내문을 가리켰다. 내 이름 위에는 ‘연제 미정’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대로 두면 되잖아. 실제로 아직 미정이니까.”
“예, 그래도 그렇게는 곤란하니까요, 뭔가 제목을……”
“이쪽도 곤란하지, 그렇게 갑작스러우면……”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으나, 물론 그렇게 급히 제목이 떠오를 리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조차 아직 정하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H가 빙그레 웃으며 잠자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으니 뭔가 말해야 했다.
“그럼 말이지, 무슨 얘길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좌담’ 정도로 해 줘.”
하는 수 없이 예전에 내 잡지 어느 잡록에 붙였던 제목을 떠올려 말했다. H가 자리를 뜬 뒤,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우선 몸이 아프다는 양해를 구하고, 연단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거기 걸터앉아 뭔가 이야기해 보자.
그렇게 마음먹고 나는 옆에 있던 바바 군 쪽을 바라보았다. 바바 군도 이쿠타 군과 함께 사카이 지원에 나섰던 참이었다. 두 사람 다 용케도 결심하고 사카이의 선거 유세에 나섰다 싶었다. 그리고 지금, 아마도 남다른 흡연 탓이겠거니 싶은, 바바 군의 묘하게 그을린 낯빛, 그 나이와 삶을 감안해도 너무 많이 여윈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예전에 바바 군이 했던 망형(亡兄)의 유언 이야기가 떠올랐다.
“제게 직접 남긴 유언은 아닙니다. 어쨌든 형이 어떤 사람을 통해 저한테 전한, 뭐 유언이라 할 만한 게 딱 하나 있어요. 그것도 꽤 색다른 유언이라 재미있습니다. 일본 같은 나라에서 조금이라도 인간다운 일을 하려면 어차피 감옥에 들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니 너도 그런 셈 치고 열심히 공부해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쩐지 이 유언은 좀처럼 이루기 어려울 것 같아서……”
바바 군이 웃으며 했던 이 말이 불현듯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이걸 얘기하자.’
생각지 못했던 좋은 이야기 소재를 붙잡은 나는, 이야기 순서를 구상하러 안뜰로 슬쩍 빠져나갔다.
그사이에 이쿠타 군의 이야기도 끝났고, 아리시마 이쿠마 군의 어떤 서양 화가 이야기도 끝났고, 바바 군의 근대 사회 문예에 관한 이야기도 끝났다. 한 사람을 남겨 두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잠깐 위원실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그러자 위원 한 명이 허둥지둥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야, 또 경찰에서 전화야. 오늘 연설회 책임자 바꿔 달라는데.”
“또 아까 그거겠지. 귀찮은 놈이네. 그래서 뭐라고 했어?”
“응, 오스기 선생은 누가 불렀냐, 선생이 연설하냐, 연제는 뭐냐, 별별 걸 다 캐묻는 거야. 난 귀찮아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 버렸는데. 어쨌든 기다리고 있으니까 누가 나가서 잘 좀 처리해 줘.”
“정말 귀찮은 놈이군. 그럼 두셋이 가서 다 같이 전화기 앞에서 왁자지껄 떠들어 대다가, 그래도 뭔가 귀찮은 소리를 해대면 상관없어, 바로 끊어 버리면 되잖아.”
“맞아, 그게 좋겠다, 그렇게 하자.”
젊은 학생 서너 명이 쿵쾅거리며 전화실 쪽으로 달려갔다. 잠시 뒤, 다 같이 큰 소리로 하하하 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돌아왔다.
“결국 끊어 버렸어요. 저쪽은 기습을 당해서 대혼란인데, 뭐 어때요.” 함께 갔던 H가 배를 움켜쥐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어쨌든 방해 들어오기 전에 빨리 해치우자고.”
하고 모두에게 말하면서,
“선생님도 어서 올라오세요.”
하고 외치더니 다들 다시 강당 쪽으로 달려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갔다. 강단에서는 학교 강사인 누구 씨가 뭔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위원 한 명이 뭔가를 종이쪽지에 써서 강단 위로 가져갔다. 그 강사는 그것을 보고는 갑자기 대충 말을 뭉개며 강단에서 내려왔다. H가 청중에게 나를 소개했다.
우렁찬 박수가 터졌다. 아까 생각했던 것처럼 의자에 걸터앉아 이야기하겠다는 한가한 마음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결국 괴로움을 꾹 참으며 한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이어 갔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이제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거니와, 또 여기서 그것을 발표할 자유를 가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연단에서 내려왔다. 위원 H는 폐회를 알렸다. 그러자 어느새 들어와 있던 형사들이 위원들을 붙잡고, 내 연설 속기록을 내놓으라며 우겨대고 있었다. 곧바로 속기사의 속기록을 낚아채듯 빼앗아 난로 안에 집어넣어 버렸다. 어안이 벙벙한 형사들을 뒤에 남겨 두고 돌아왔다.
나중에 들으니, 경찰에서는 그 실책을 덮으려 엉터리 보고를 해 버린 탓에 위에서도 따라서 학교에서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고, 다만 위험인물인 나를 불렀다는 명목으로 위원들이 사임한 것으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