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하루나가바나시(春永話)

오리쿠치 시노부

알록달록 보이며 나부끼는 가오미세 노보리 깃발 어림을 지나서 왔노라

쇼와 10년(1935) 3월, 내가 지은 것이다. 노래는 자랑할 만한 것이 못 되지만, 이에 얽혀 나 홀로 떠올림을 금키 어려운 것이 있다. 교토의 가오미세(顔見世, 한 해 좌원 선보임)는 근래 12월에 행하기로 되어 있다. 11월 말에 임박해서 시작되는 까닭에, 12월 흥행이라 일컫는 형태를 띠게 되어 버렸다. 이는 아주 메이지 중기부터의 새로운 관행에 불과하다. 메이지 말, 다이쇼 초년 무렵, 교토의 가오미세라 하면 오사카에서도 보러 가는 풍습이 일기 시작했다. 어느 해 가오미세에서, 구상(口上, 인사 말씀) 막이 열리고 간지로(鴈治郎, 1대 나카무라 간지로)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앉았다. ……「교토의 손님 여러분. 매번 불러 주셔서 황공하옵게도 다행으로 여기옵나이다. 그러하오나, 가능하다면 가오미세 한 번뿐이 아니라, 다른 때에도 불러 주시기를 부디 청하옵나이다.」 대강 이런 말투였다. 그런 일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 교토 관객은 재미있다는 듯 「에헬, 에헬」 웃고 있었다. 교토의 검소한 살림을 찌르는, 지극히 무람없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인사말이었으나, 말하는 배우도 배우지만, 듣고서 「잘도 지껄이는구나」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있는 관객도 만만한 무리였다. 밖에 나오면 어두운 강가에서 우는 물떼새, 둑을 넘쳐흐르는 물소리, 그것조차 기억이라 할 만큼은 남아 있지 않다. 그 뒤 도쿄로 옮긴 지 어지간히 오래된 무렵, ――미나미자(南座)의 미우라노스케(三浦介) 무대에서 쓰러졌다. ――그렇게 도쿄까지 들려왔다―― 배우의 그 일을 특히 그리며 지은 노래로 보자면, 동기가 자못 희미한 듯한 느낌이 든다. 연극에 끌려가서, 자신도 폐를 끼치지 않고 남도 곤란하게 만들지 않게 되었던 무렵에는 이미 간지로·가토(我当)――후, 니자에몬(仁左衛門)――가 맞서 인기를 다투고 있던 시기였다. 어찌 외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가도자(角座)인지 벤텐자(弁天座)인지의 세로 간판에, 가토의 형 가도(我童, 11대 니자에몬)의 니자에몬 슈메이(襲名, 가명 상속) 피로 광언 「야마토바시(大和橋)」의 그림판이 있어, 이를 향해 한 손을 펴고 한 손을 땅에 짚은 채 놀란 모습의 마부 소매에, 우단지(右団治) ――후, 사이뉴(斎入)―― 의 가문(家紋)인 마쓰카와비시(松皮菱)에 담쟁이 잎이 붙어 있었다. 이 우단지가 야쿠가에(役変替, 배역 교체)를 거론한 일에서, 가도(我童)가 광사(狂死)하고, 가도를 편들던 도쿄의 인력거꾼이 오사카로 내려와 우단지를 노리고 있다는 식의 소문까지 귀에 남아 있다. 어디까지가 기억이고 어디서부터가 지식이 덧붙여진 것인지, 오늘에 와서는 자못 불안하다. 이보다 조금 앞서, 간지로 농화(弄花, 화투 노름) 사건이라 할 만한 경찰 사고가 일어나, 바느질집을 다니는 처녀들을 경악케 했다. 가도자(角座) 극장과 아사히자(朝日座) 사이에, 후에 이시카와 포목점이 된 같은 건물에서 배우 사진을 팔고 있었다. 시토미도(蔀戸, 내림문)를 올리고 쇼지(障子, 미닫이)로 둘러친 점포 마루를 내린 차분한 가게로, 명함판 대지에 붙인 무대 모습이며 콩알 사진을 붙인 실패 따위가 그곳의 상품이었다. 동네 동네의 바느질하는 처녀들이 그것을 사서는 수호 부적처럼 간직해 두었던 것이다. 그러한 간지로 편 처녀들이 얼마나 어깨를 옴츠리며 애태우다 지냈을까 생각하면, 옛날의 어이가 없을 정도의 한가로움에 웃음이 치밀어 오른다.

누구의 연극보다도 우단지(右団治) 일좌의 광언에 잘 익숙해져 있었다. 이 사람은 간지로와 한 좌에 함께 서는 일이 적어, 가토(我当)를 가키다시(書き出し, 배역 첫머리)로 하여 좌장(座頭)을 맡은 일이 이어진 뒤, 깔끔하게 좌장 양도식을 치르고 가토를 앞에 내세웠다. 이는 격을 갖춘 거동이라 할 만하니, 지금 와서 보면 그런 별것 아닌 일에 감복하던 세상이었다. 사이뉴 우단지(斎入右団治)가 그렇게 시원스레 매듭지은 데에는 까닭이 있었다. 노년에 접어들어, 그가 즐기던 「차(茶)」가 무게를 더해 갔던 면도 있었다. 신작 「이시카와 고에몬(石川五右衛門)」에서, 차의 종장(宗匠)이 되어 있는 은거 거처의 고에몬을 보았는데, 그가 자랑하던 쓰즈라누케(葛籠抜け, 고리짝 빠져 나오기)나 가마이리(釜煎り, 가마솥 형틀) 고에몬보다도 본성(性根)을 한결 잘 드러내, 이런 명인이 세상에 있을까 싶게 했다. 소년기를 막 벗어난 안목을 새삼 지켜낼 자신은 옅어졌으나, 어쨌든 좋은 배우였다. 다카야스(高安) 노선생이 연극을 즐기셨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으나, 근년 겟코(月郊) ――노선생의 장남――씨의 「다카야스 마을(高安の里?)」을 읽으니, 사이뉴를 인정하지 않으시는 듯이 비치는 문장이 있어, 내 기억이 옳기를 바라는 마음에 비관했다. 사이뉴는 천박한 얼굴의 사내였다고 적혀 있어 놀랐다. 겟코 씨는 사이뉴의 얼굴을 한 바퀴 키워 놓은 시조(時蔵) ――후 가로쿠(歌六)―― 와 기억을 바꾸어 놓고 계신 것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도쿄도 그렇거니와 가미가타(上方)에서도 또렷이, 좌장과 조연 배우 사이에는 격이 다르고 자라 온 길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시조는 아사히자(朝日座) 같은 데서는 좌장 격에 있어, 기예도 기교적이어서 재미가 있었으나, 나카시바이(中芝居), 가도시바이(角芝居)의 좌장이 어울리는 그릇은 아니었다. 차라리 맡지 않았기에 그 그릇이 되지 않았다는 편이 옳다. 이리(璃) 같은 데서도 지금은 기타무라(喜多村) 씨 등을 신처럼 떠받들지만, ――그리 말함으로써 그 불운한 달인을 전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역시 하마시바이(浜芝居) 좌장이거나 가키다시 자리에서 오랜 세월 솜씨를 닦아 온 분이라 큰 극장 좌장의 자문역으로는 이 이상 가는 분이 없으나, 예의 격은 낮았다고 본다. 시조와 비슷한 윤곽이지만, 오랜 좌장 경력이 사이뉴의 얼굴에 연극 장자(長者)다운 품격을 얹어 놓고 있었다. 참으로 오사카의 시바이 니시키에(芝居錦絵) ――그것 자체는 아름다움의 참된 잣대가 되지는 않으나―― 그대로의 얼굴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오사카 니시키에가 지닌 좋은 점 ――이라기보다 추한 점―― 이 그대로 그의 무대 모습에 드러나 있었다. 겟코 씨는 연극 옹호자로서의 전통을 잇는 분이지만, 그 한 분만은 아무래도 도쿄 가부키(歌舞妓)의 미감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분의 작품이며 평론에는 거의 마음으로 따르고 있으나, 사이뉴의 용모 평만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로쿠로(六郎) 선생 같은 분에게 여쭈어, 다카야스가(家)의 옳은 판단을 알고 싶다고 여기고 있다.

가도(我童)는 앞서 누이를 잃었다. 이 사람도 우물인지 어딘가에 빠져 죽었다. 거기다 선선대(先々代) 가키쓰(家橘) ――선대 우자에몬(羽左衛門)의 부친―― 을 잃은 도쿄 극단에서는, 그의 위에 그 환영(幻影)을 느끼고, 그 대신 자리에 앉히려 하던 가도(我童)가 누이와 같은 병에 걸렸다. 그 11대 니자에몬의, 제멋대로 마음껏인 듯 보이던 생활도, 한편으로는 외곬으로 마음을 다잡지 않기 위해 그때그때 발산을 마음 두었던 변덕이었다는 것을 헤아리면, 그 한평생에 이해가 닿는다. 가토(我当)는 오사카의 얕은 식견에 이끌리는 대로, 야마토(大和) 사쿠라이(桜井)에서도 1리(약 4킬로미터)나 더 들어간 시키시마무라(城島村)까지 가서, 「오사카노우치노 미사사기(忍阪内ノ陵)」 ――조메이(舒明) 천황릉―― 에 참배하여 형의 평유(平癒)를 빌고 있다. 그러므로 내게는 니자에몬에 관해 적는 쪽이, 빗맞아도 멀리는 가지 않는 가늠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마이니치(毎日) 신문과 아사히(朝日) 신문이 오사카 안의 가정을 양분하여, 편들기 다툼을 거듭케 하던 시대다. 간지로와 니자에몬도, 그 손쉬운 백석(白石)·흑석(黒石)으로 세워졌을 따름이다. 그뿐이라 한다면 거기까지지만, 우리 오사카에서 젊은 시절을 지낸 자에게는, 그뿐이라고는 그칠 수 없는 것이 있다.

청일전쟁(日清戦争, 1894~1895) 무렵, 무엇을 보고 지냈는지, 거의 닦여 나간 바둑판 면처럼 기억의 자국조차 없어져 있다. 그런데 단 하나, 하나미치(花道, 객석 통로 무대)에서 달려 나온 젊은 장교의 신변에서 몇 줄기의 화약 불꽃이 발화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무대에 몇 가닥의 줄이 매여 있어, 그것을 타고 불이 달려오는 장치였으리라. 그 장교, 칼을 들어 「돌격」 이라 외친 듯하다. 그 순간, 슈우 하고 다가온 불이 그 이마 언저리에서 작렬한다. 「당했다」고 말했던지, 설마 이 무렵에 「만세」라고는 외치지 않고 쓰러졌으리라 본다. 선 채로 그대로 막이 내릴 일은 없을 테지만, 내 기억은 거기서 끊겨 있다. 이가 마쓰자키(松崎) 대위이고, 자리는 아산(牙山) 성 밖이다. 연기하는 배우는 나카무라 간지로(中村鴈治郎)였다. 헤아려 보면, 이가 내 여덟 살 때다. 이 정도밖에 외고 있지 않은 편이 차라리 마땅하리라. 이전에도 연극에 데려다 주었다고 집안 사람은 일러 주었으나, 어쨌든 이 외에는 옛 무대의 인상이 없다. 성정(性情)으로 보자면, 니자에몬 쪽이 나에게는 어울린다. 그 무대도 사실 일찌감치 깊이 정이 든 바 있다. 그런데도 장년에 들어선 뒤, 간지로의 기예에 마음이 끌리는 일이 많았던 것은 어찌 된 까닭일까. 따져 보면 이런저런 인연 같은 것은 있다. 다만 어찌 됐건, 연극의 첫 만남에서 보았다는 사실이, 그 모든 것 위에 짓누를 만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 본다. 재미도 우습지도 않은 전쟁 연극, 거기다가 후년 이 무대 따위가 단초가 되어, 제 키에 맞지 않는 새 옷을 입고 싶어 하게 된 배우, 이가 내 첫 인상이라 한다면, 내 연극에 대한 이해도 무릇 가늠해 볼 수 있다. 다만 그것도 이것도 어찌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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