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옛날, 교토에서 가까운 아타고산(愛宕山)에 묵상과 독경에 여념 없는 고승이 한 분 살고 있었다. 그가 머무는 작은 절은 어느 마을에서나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 그처럼 외진 곳에서는 누군가 보살펴 주지 않으면 일상생활조차 불편하기 짝이 없었으련만, 신심 깊은 시골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어김없이 다달이 쌀이며 채소를 가져다가 이 고승의 살림을 받쳐 주었다.
이 선남선녀 가운데 사냥꾼이 한 사람 있었으니, 이 사내는 이 산으로 사냥감을 찾아 자주도 드나들었다. 어느 날, 이 사냥꾼이 절로 쌀 한 자루를 짊어지고 왔을 적에 스님이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한 가지 들려줄 이야기가 있네. 지난번 만난 뒤로 이곳에 신기한 일이 있었다네. 어찌하여 이 어리석은 중 같은 사람의 눈앞에 이런 일이 나타나는지 알 수가 없네. 허나 그대도 알다시피, 이 어리석은 중은 여러 해 동안 날마다 독경과 묵상을 거르지 않은 까닭에, 이번에 받은 은혜가 그 수행의 공덕이 아닌가도 싶지만, 그 또한 분명치는 않네. 다만 분명한 것은, 매일 밤 보현보살께서 흰 코끼리를 타시고 이 절로 모습을 드러내신다는 것이지. …오늘 밤 이 어리석은 중과 함께 여기 머물러 보게나. 그 부처님을 우러러 뵐 수 있을 것이네.”
“그처럼 거룩한 부처님을 뵐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기꺼이 함께 절을 올리겠습니다.” 사냥꾼은 그렇게 답하였다.
그리하여 사냥꾼은 절에 머물러 묵었다. 허나 스님이 근행(勤行)에 여념이 없는 사이에, 사냥꾼은 이제 곧 일어나리라는 그 기적을 두고 곰곰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이런 일이 과연 있을 법한지 어떤지를 두고 의심을 품기 시작하였다. 생각할수록 의심은 더해 갈 따름이었다. 절에는 어린 동승(童僧)이 한 명 있었으니, 사냥꾼은 틈을 보아 이 동승에게 슬쩍 물었다.
“큰스님 말씀으로는 보현보살께서 매일 밤 이 절로 모습을 드러내신다고 하시는데, 자네도 뵌 적이 있는가.” 사냥꾼은 그리 말하였다.
“네, 벌써 여섯 차례, 저는 공손히 보현보살을 뵈었습니다.” 동승은 그리 답하였다. 사냥꾼은 동승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으나, 이 답에 의심은 한층 깊어질 따름이었다. 동승은 도대체 무엇을 보았더란 말인가, 그 또한 머지않아 알게 되리라, 사냥꾼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약속한 출현의 때를 간절히 기다렸다.
한밤중이 되기 조금 전, 스님은 보현보살께서 모습을 보이실 채비를 갖춰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렸다. 작은 절의 문은 활짝 열어젖혀졌다. 스님은 얼굴을 동쪽으로 향한 채 입구에 무릎을 꿇었다. 동승은 그 왼편에 무릎 꿇었고, 사냥꾼은 공손히 스님의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구월 스무날 밤이었다. 쓸쓸하고 어둡고, 게다가 바람마저 모진 밤이었으니, 세 사람은 오래도록 보현보살의 출현을 기다렸다. 마침내 동쪽 하늘에 별처럼 한 점의 흰 빛이 비쳤으니, 이 빛은 재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점점 커져 가면서 산 비탈을 남김없이 비추었다. 이윽고 그 빛은 어떤 형상, 곧 여섯 개의 어금니를 지닌 눈처럼 흰 코끼리에 올라타신 거룩한 보살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그러고는 빛으로 환히 빛나는 그 분을 태운 코끼리는 곧장 절 앞에 다다랐으니, 달빛 어린 산처럼, 불가사의하면서도 어마어마하게 높이 솟아 그곳에 우뚝 섰다.
그때 스님과 동승은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려 남다른 정성으로 보현보살을 향한 독경을 시작하였다. 그러는데 별안간 사냥꾼이 두 사람의 등 뒤에 일어서더니, 손에 활을 잡고 보름달과도 같이 활시위를 잔뜩 당겨, 빛나는 보현보살을 향해 긴 화살을 휙 하고 쏘았다. 그러자 화살은 보살의 가슴에 깊이, 깃 부분까지도 박혀 들었다.
홀연, 벼락이 떨어지듯한 음향과 함께 흰 빛은 사그라지고, 보살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았다. 절 앞에는 그저 어두운 바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한심한 사내로다.” 스님은 회한과 절망의 눈물에 잠겨 외쳤다. “그대야말로 어찌 이리도 극악무도한 사람인가. 그대는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무슨 짓을 저질러 놓은 것인가.”
그러나 사냥꾼은 스님의 꾸짖음을 듣고도 후회하거나 분노하는 기색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다. 이어 자못 차분하게 말하였다.
“큰스님, 부디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제가 드리는 말씀을 들어 주십시오. 큰스님께서는 여러 해의 수행과 독경의 공덕으로 보현보살을 뵐 수 있게 되었다고 여기셨지요. 그렇다면 부처님은 저나 이 동승에게는 보이지 않으시고, 큰스님께만 모습을 드러내셔야 마땅하다 여겨집니다. 저는 무학한 사냥꾼이고, 제 생업은 살생입니다. 목숨을 거두는 일을 부처님께서는 미워하시지요. 그런 제가 어찌 보현보살을 뵐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사방팔방 어디에든 계시다 하나, 다만 범부는 어리석고 몽매한 까닭에 우러러 뵐 수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깨끗한 삶을 살아오신 고승이시기에 부처를 뵐 만한 깨달음을 얻으시겠으나, 생계를 위해 생물을 죽이는 자가 어찌 부처를 뵐 힘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도 이 동승도 둘 다 큰스님께서 보신 그대로의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큰스님께 감히 아뢰옵건대, 보신 것은 보현보살이 아니라, 큰스님을 속여, 어쩌면 큰스님을 해치려 든 어떤 둔갑한 요물(妖物)임에 틀림없습니다. 부디 날이 밝을 때까지 참아 주십시오. 그리하면 제 말이 그르지 않다는 증거를 보여 드리지요.”
해가 떠오르자 사냥꾼과 스님은 그 형상이 서 있던 자리를 살펴보아 옅은 핏자국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그 자국을 더듬어 몇 백 걸음 떨어진 나무 굴에 다다르니, 그곳에서 사냥꾼의 화살에 꿰뚫린 큼직한 너구리의 주검을 보았다.
박학하고 신심 깊은 사람이었으나 스님은 너구리에게 손쉽게 속아 넘어가 있었다. 그러나 사냥꾼은 무학에 신심도 없었으되, 굳건한 상식을 타고나서 지니고 있었으니, 이 타고난 상식만으로도 단번에 위험한 미혹을 간파해 낼 수 있었으며, 또한 그 미혹을 물리칠 수도 있었다.
●図書カー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