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꽃은 거의 다 졌고, 그 이름 드높은 겹벚꽃만이 군데군데 남아 있을 뿐인데, 이쯤 되면 꽃도 어딘가 추레해진다. 그렇다고 등꽃에는 아직 이르다.
그런 철에 우리는 나라(奈良)의 산속을(분명히 산중이라 불러야 옳을 곳이다) 쓰키히테이(月日亭)에서 가스가(春日) 신사 쪽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있고,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살이 산뜻하다. 낭랑하면서도 어렴풋한 산새 소리가 들려온다. 게다가 우리 말고는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우리라 함은 나와 아내, 그리고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다. 우리는 그를 길잡이로 삼아, 기차가 떠나기까지 세 시간 남짓을 산책 삼아 이곳저곳 둘러볼 참이었다. 나는 예전에 두 차례 이곳에 놀러 온 적이 있다. 아내는 처음이다. 들으니 시가 나오야(志賀直哉) 씨는 이곳에 영영 눌러살 작정으로, 다카하타(高畑)에 사백 평쯤 되는 땅을 마련해 두었다고 한다. 이런 산책 구역을 가질 수 있는 시가 씨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나도 그림이라도 그리는 사람이 되어, 이 고장에 살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니자키는 가스가 신사에서 가구라(神楽, 신을 모시는 춤)를 보자고 한다. 가구라보다도 무녀들 가운데 한 사람, 미즈타니 야에코(水谷八重子)를 닮은 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다니자키는 그 어여쁜 무녀를 우리에게 보여 줄 셈이었던 듯하다. 아니, 그도 소문만 들었을 뿐 아직 본 적이 없다고 하니, 자기 자신도 보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 무녀라는 이는 화가 누구누구 댁으로 조루리(浄瑠璃)를 배우러 다니는데, 나이가 아직 어리다 보니 사설 속에 에로틱한 대목이 끼어 있어도 그 뜻을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표정을 바꿔 가며 그것을 노래하는 모습이 자못 운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말일세, 그 아이를, 시가 씨 댁에 술을 들고 찾아왔다는 인도인이 색시로 삼고 싶어 한다지 뭔가.”
시가 씨 댁에는 그 전날 밤, 다니자키와 둘이서 들렀다. 한밤중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는데, 시가 씨를 처음 뵌 것은 십이삼 년쯤 전 단 한 번뿐이고, 그 뒤로 두세 차례 편지를 주고받기는 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 있는 분인지라 오랜만일수록 이번 방문은 즐거웠다. 예전에는 시가 씨가 어려워 주뼛거렸으나, 이번에는 그런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내 쪽만의 변화는 아니다. 시가 씨도 무척 원숙해져서, 그래서 손님을 편안하게 해 주신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전에 뵈었을 때, 시가 씨는 지금의 나보다도 서너 살은 젊으셨을 터다. 문득 인생이 덧없이 빨리 흘러간다는 것을 느꼈다. (어젯밤, 그 댁에서 돌아오는 길에 인력거 위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시가 씨 댁에서 양주를 두세 잔 대접받았다. 술병이 서너 가지 있었다. 시가 씨는 그것을 누가 가져온 선물이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그것을 들고 온 사람에 대해 다니자키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내가 모르는 분이었지만, 그가 인도인이고, 오사카나 고베쯤에서 댄스홀 같은 것을 차리고 싶어 한다는 정도는, 이야기 흐름으로 나도 알 수 있었다.
가스가의 무녀가 활동사진 여배우를 닮았다는 것도 좋고, 그런 무녀를 인도인이 사모한다는 것도 참으로 재미있다 싶었다.
와카미야(若宮)에 이르러, 금 이 엔을 봉납하고, 마침내 가구라를, 아니 무녀를 우러러볼 차례가 되었다. 이 엔이면 짧은 곡 하나와 긴 곡 하나를 볼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과연 그 로맨틱한 이야깃거리의 주인공인 무녀가 나와 줄 것인가였다. 최고액인 오 엔쯤 큰맘 먹고 내면 무녀가 여럿 나올 터이니, 그러면 틀림없이 볼 수 있었으리라. 오 엔으로 할 걸 그랬다고, 우리는 작은 소리로 주거니 받거니 했다.
두 무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됐다. 분명히, 한 사람은 야에코를 닮았다. 이야기 속 여주인공이 틀림없었다.
마흔과 쉰 사이쯤 되어 보이는 노파가 고토(琴, 일본의 13현 거문고)를 탔다. 금 이 엔의 영수증을 써 주던 젊은 사내가 낭영(?)을 했다. 두 무녀는 다홍색 하카마 자락을 끌면서, 흰 소매를 펄럭이며 춤을 추었다. 짧은 곡은 금세 끝났다. 긴 곡 쪽도 그리 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긴 곡에서는 오삼보(三宝, 신찬용 받침대) 위에 모셔 둔 방울을 집어 들고, 그것을 높이 치켜들고 흔들며 춤을 추었다. 흰빛과 다홍빛이 갯바닷가 문주란 잎처럼 겹겹이 포개진 옷깃 위로 솟은 무녀의 얼굴은 하관이 둥글고 도톰하며 입매가 작고, 표정 없이 부드럽고 단정하여, 조금이나마 옛 일본의 환영을 떠올리게 했다. 아름답지 않은 쪽 무녀는 어떠했는가 하면, 나는 그쪽은 그다지 보지 않았기에 잘 모른다.
춤이 끝나자 두 무녀는, 저마다 신주(神酒)와 그것을 따랐던 토기 잔 자체를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돌아가려고 가구라전 옆쪽으로 돌아섰는데, 방금 춤을 췄던 무녀 가운데 아름답지 않은 쪽이 그 다홍색 하카마를 입은 채 나와 종종걸음으로 길을 가로질렀다. 길 건너편 나무 그늘에 있는 변소로 뛰어든 것이다. 여기에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시취(詩趣)가 있었다. 어여쁜 무녀는 야에코보다 훨씬 낫다는 데에 일행의 의견이 한데 모였다. 그 아이를 색시로 삼고 싶다는 인도인은 제법 안목이 있는 사람이다. 나도 저 의상 그대로라면 그녀가 시집온다 한들 마다할 까닭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가스가의 무녀는, 예로부터 시집을 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런 짓을 하면 신령의 질투로 신벌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평생을 무녀로 보내야 한다는 셈이니, 시집을 가려 하면 일단 무녀를 그만두고 두세 해를 지나서야 시집을 간다고 한다. 이것은 다니자키의 설명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 무녀는 그 인도인에게 시집을 갈까. 설령 간다고 한들, 인도인은 두세 해를 신령에게 삼가느라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까.
대불전(大仏殿)을 나와, 종루(鐘楼)께에 이르렀다. 나는 종을 한번 쳐 보고 싶어졌다.
내가 마련한 당목(撞木)은, 아직 충분히 당겼다고 여기기도 전에 종에 닿아 버렸다. 종은 작은 소리로 울렸다. 종지기는 나를 딱하게 여겨, 한 번 더 쳐도 된다고 일러 주었다. 나는 다시 했다. 내 다음으로 다니자키가, 또 일 전을 내고 종을 쳤다. 그는 나보다도 솜씨 좋게, 힘차게 쳤다. 나는 다니자키가 당목 줄을 잡아당기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지금까지 머릿속에 어른거리던 짧은 이야기 한 자락을 마무리 지었다.
그것은 그 인도인이 실연하여 풀이 죽은 답답한 마음을, 이 커다란 종을 열 번쯤 쳐 울리는 것으로 잊어 보려 애쓰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