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지(知)와 의심

데라다 도라히코

물리학은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지(知)의 학문이며 동시에 또한 의심의 학문이다. 의심하기에 알게 되고, 알기에 의심하게 된다. 캄캄한 밤에 촛불을 들고 한 걸음을 내디디면 밝음도 한 걸음 나아가고 어둠 또한 한 걸음 나아간다. 그리하여 어둠은 무한대이며 밝음은 유한하다. 어둠은 일체이며 밝음은 미분이다. 비관하는 사람은 여기에 이르러 자포자기한다. 미분만 알 뿐 일체를 알지 못한다면 안다 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고 말하며 학문을 비웃고 학자를 헐뜯는다.

인간이란 하나의 미분이다. 그러나 사람의 지(知)가 미칠 수 있는 미분은 인간에게는 무한대인 것이다. 한 덩이 행성(遊星)이 우주의 미분자이듯 인간은 그 행성의 어느 한 알 위의 미분자이다. 이는 한낱 크기에 한한 이야기이지만, 지식의 dimensions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공간에 대하여 무한임과 동시에 시간에 대하여도 무한이다. 시간과 공간으로 짜낸 민코프스키의 세계(Minkowski의 Welt)에는 여기 이상으로는 손이 미치지 않는다는 한계가 없는 것이다.

의심은 지(知)의 토대이다. 잘 의심하는 자가 잘 아는 사람이다. 남양 외딴섬의 추장이 동도(東都)를 찾아와 철도마차의 말을 보고는 놀라 저것이 사람을 잡아먹는 짐승이냐고 묻는다, 듣고서 웃지 않는 사람이 없다. 웃는 사람은 말의 이름을 알고 말의 쓰임을 알고 말의 성정과 형태를 알지언정, 끝내 말을 안다고는 할 수 없다. 말을 알고자 하는 자는 우선 말을 보고 크게 놀라야 하며, 다음으로 크게 의아해해야 하며, 그다음 크게 의심하여야 한다.

사원에 매달린 등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놀라며 의아하게 여긴 아이가 이탈리아 피사에 한 사람 있었기에 진자의 법칙이 세상에 나왔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의아해한 사람이 있었기에 만유인력의 법칙이 우주 만물을 한 가닥 실로 꿰었다는 것은 사람들이 곧잘 하는 이야기이다. 기초적인 원리와 원칙을 더듬어 짚어내는 큰 과학자는 언제나 가장 무지하고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 교과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선인의 연구를 그 재인용으로써 알며, 더 이상 의심하는 바 없이 그것을 알아 박학다식해진 자는 이러한 일을 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크게 놀라고 크게 의심하는 무지한 자, 어리석은 자가 되기 위해서는 또한 두루 알고 깊이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위에 말한 갈릴레오와 뉴턴의 발견에 얽힌 일화는 사실 믿기 어려운 속설이지만, 그러나 이러한 발견을 해내기 위해서는 비범한 준비와 소양이 필요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르베리에가 해왕성을 발견한 것도, 천왕성의 운동을 정밀히 알고 그 운동에 대한 설명이 어려운 작은 불규칙을 의아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근년에 역학과 물리학을 그 뿌리부터 새로 짜는 기운을 낳은 이른바 상대성(相対率)의 원리 같은 것도, 만일 전자의 운동에 관한 실험상의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오늘날과 같은 진경을 보이지는 못하였으리라.

앎이라 하여도 또한 갖가지 다양한 앎이 있다. 지구상의 물체가 땅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이를 안다. 이것도 앎이다. 공기의 저항이며 그 밖의 것을 없앤다면 거의 일 초에 구 점 팔 미터의 가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은 중등교육을 받은 자라면 어쨌든 한 번은 물리학 교과서에서 배운다. 그러나 이만한 단순한 법칙의 뜻을 참으로 이해하고 언제든 응용할 수 있을 만큼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더 나아가 이 법칙을 실제로 응용함에 있어 공기의 저항이 어떠한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가를 아는 사람은 더욱 적다. 또한 스스로 기구를 들고 이를 실험하여 자연 그 자체로부터 확실한 지식을 얻으려는 사람은 더욱더 적은 것이다.

예로부터 일본화가(邦画家)는 선인의 화풍을 그대로 좇는 데에 그치고 새로운 길을 여는 사람은 참으로 새벽별처럼 드물었다. 이들은 모두 알고도 의심하지 않은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의심하여 생각하고 또한 자연에 대하여 직접 스승을 구한 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 새로운 천지를 열어 가는 모습이 있다.

독서는 본래 매우 필요한 일이다. 다만 하나를 읽으면 열을 의심하고 백을 생각하는 일이 필요하다. 인간의 지식을 한 걸음 진전시키려 하는 자는 현재 지식의 경계선까지 나아가야 함은 물론이다. 이미 경계선에 서서 선 너머의 자연을 거머쥐려고 하는 자는, 부질없이 눈을 감고 망상에 잠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눈을 뜨고 자연 그 자체를 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손에 들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크게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단지 주의하여야 할 것은 색안경을 끼고서 보지 않는 일이다. 자기가 색안경을 끼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하려면, 다시금 돌이켜 이미 알고 있던 자연을 살피고 또한 크게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됨은 물론이다.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매우 많다. 지(知)에 결함이 있는 자 가운데 가장 심한 자이며 또한 무지한 자 가운데 가장 심한 자이다. 비 오는 날은 날씨가 나쁘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다, 비가 내려도 날씨 좋은 날이 있음을 아는 사람이 적은 까닭이다. 일에 일을 더하면 둘이 됨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일에 일을 더해도 둘이 되지 않는 일이 있음을 아는 사람이 적다.

어느 노인에게 액체 공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노인이 이르기를 “공기가 물이 되는 것은 무어 신기할 일이 아닐세. 여름에 컵에 우물물을 따라 두면 잔 바깥에 물방울이 맺히는 것이 곧 그것 아닌가” 한다.

의심하는 사람에는 대체로 두 종류가 있다. 선인의 지식을 추구하여 그 끝을 의심하는 자는 인간 지식의 정묘함을 끝까지 다하고 미세함을 끝까지 살피는 사람이다.

누구도 의심하는 바 없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지식계에 한 시대를 긋는 사람이다.

한 사람으로서 그 둘을 겸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이를 두루 갖춘 사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석학이라는 이름을 얹기에 족하리라. (다이쇼 4년경)

Chapter 1 of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