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명인전
나카지마 아쓰시
조(趙)나라 한단(邯鄲)의 도읍에 사는 기창(紀昌)이라는 사내가 천하제일의 활 명인이 되리라 뜻을 세웠다. 자신이 스승으로 모실 만한 인물을 찾고자 하니, 요즘 활을 잡으면 명수 비위(飛衞)에 미칠 자가 있으리라 여겨지지 않는다. 백 보 떨어진 자리에서 버들잎을 쏘아 백발백중한다는 달인이라는 것이다. 기창은 멀고 먼 길을 마다 않고 비위를 찾아가 그 문하에 들어갔다.
비위는 갓 들어온 문인에게 우선 눈을 깜빡이지 않는 것을 익히라고 명했다. 기창은 집으로 돌아와, 아내가 베를 짜는 베틀 밑으로 기어들어 그 자리에 벌렁 누웠다. 눈과 닿을락 말락 한 거리에서 베틀 발판이 분주히 오르내리는 것을 깜빡이지 않고 가만히 응시하고 있겠다는 궁리였다. 까닭을 모르는 아내는 크게 놀랐다. 무엇보다 묘한 자세를 묘한 각도에서 남편에게 들여다보이게 되니 곤란하다는 것이다. 꺼리는 아내를 기창은 호통쳐 무리하게 베 짜기를 계속하게 하였다. 날이면 날마다 그는 이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로 깜빡이지 않는 단련을 거듭한다. 두 해가 지나자, 분주히 오가는 잉앗실대가 속눈썹을 스쳐도 결코 깜빡이는 일이 없어졌다. 그는 비로소 베틀 밑에서 기어 나온다. 이제는 날카로운 송곳 끝으로 눈꺼풀을 찔러도 깜빡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불시에 불티가 눈에 튀어 들어와도, 눈앞에 별안간 잿가루가 자욱이 일어도, 그는 결코 눈을 끔뻑거리지 않는다. 그의 눈꺼풀은 이제 그것을 닫게 하는 근육의 사용법조차 까맣게 잊어버려, 밤에 깊이 잠들어 있을 때조차 기창의 눈은 휑하니 크게 뜨인 채 그대로였다. 마침내 그의 눈의 속눈썹과 속눈썹 사이에 자그마한 거미 한 마리가 집을 짓기에 이르러서야, 그는 비로소 자신을 얻어 스승 비위에게 이를 고했다.
그 말을 듣고 비위가 이르기를. 깜빡이지 않는 것만으로는 아직 활쏘기를 가르치기에 부족하다. 다음에는 보는 법을 익혀라. 보는 데 익숙해져, 작은 것을 보기를 큰 것 보듯, 미세한 것을 보기를 뚜렷한 것 보듯 할 수 있게 되거든, 와서 내게 고하라고.
기창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속옷의 솔기에서 이[虱] 한 마리를 찾아내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것을 묶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남쪽 창에 매달아 두고 종일 노려보며 지내기로 하였다. 매일같이 그는 창에 매달린 이를 응시한다. 처음에는 물론 그것은 한 마리의 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삼 일이 지나도 여전히 이다. 그런데 열흘 남짓 지나자, 마음 탓인지 어쩐지 그것이 아주 조금이나마 커 보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석 달째가 끝날 무렵에는 분명 누에만 한 크기로 보이게 되었다. 이를 매단 창 너머의 풍경은 차츰 옮겨 변한다. 따사로이 비치던 봄볕은 어느새 모진 여름빛으로 바뀌고, 맑은 가을 하늘 높이 기러기가 건너간다 싶더니, 어느새 으슬으슬 차가운 잿빛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흩날린다. 기창은 끈기 있게 머리카락 끝에 매달린 유문류(有吻類)·최양성(催痒性)의 자그마한 절지동물을 계속 응시했다. 그 이도 수십 마리가 갈아치워지는 동안에 어느덧 세 해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창의 이가 말만 한 크기로 보이고 있었다. 됐다고, 기창은 무릎을 치며 밖으로 나간다. 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사람은 높은 탑이었다. 말은 산이었다. 돼지는 언덕 같고, 닭은 성루(城樓)로 보인다. 뛸 듯이 기뻐하며 집으로 되돌아온 기창은 다시 창가의 이를 마주하고서, 연각(燕角)의 활에 삭봉(朔蓬)의 화살을 메겨 이를 쏘니, 화살은 보기 좋게 이의 심장을 꿰뚫고도 이를 묶은 머리카락마저 끊지 아니하였다.
기창은 곧장 스승의 처소로 가서 이를 보고한다. 비위는 펄쩍 뛰어 가슴을 치며 비로소 「해냈구나!」 하고 칭찬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활쏘기의 오묘한 비전(秘傳)을 남김없이 기창에게 전수하기 시작하였다.
눈의 기초 훈련에 다섯 해를 들인 보람이 있어, 기창의 솜씨는 놀랄 만큼 빠르게 늘었다.
오의(奧義) 전수가 시작되고 열흘 뒤, 시험 삼아 기창이 백 보 떨어진 자리에서 버들잎을 쏘니 이미 백발백중이다. 스무 날 뒤에는 가득 물을 채운 술잔을 오른팔 팔꿈치 위에 올려놓고서 강한 활을 당겨도 겨냥이 어긋남이 없음은 물론, 잔 속의 물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한 달 뒤, 백 발의 화살로 속사를 시험해 보니, 첫 화살이 과녁에 맞으면 잇따라 날아간 둘째 화살은 어김없이 첫 화살의 오늬에 맞아 박히고, 다시 간발의 차도 없이 셋째 화살의 살촉이 둘째 화살의 오늬에 단단히 물려 든다. 화살에 화살이 잇닿고, 발(發)에 발이 미쳐, 뒤 화살의 살촉은 반드시 앞 화살의 오늬에 박혀 들기에 결코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백 발의 화살은 한 발의 화살처럼 서로 이어지고, 과녁에서 일직선으로 이어진 그 마지막 오늬는 마치 시위를 머금고 있는 듯이 보인다. 곁에서 지켜보던 스승 비위도 자신도 모르게 「잘하였다!」 하고 말했다.
두 달 뒤, 마침 집에 돌아가 아내와 다툰 기창이 아내를 위협하려고 오호(烏號)의 활에 기위(綦衞)의 화살을 메겨 팽팽히 당겨 아내의 눈을 쏘았다. 화살은 아내의 속눈썹 세 가닥을 잘라 저 너머로 날아갔으나, 쏘인 당사자는 도무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깜빡이지도 않고 남편을 욕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대저 그의 지극한 솜씨가 빚어낸 화살의 속도와 겨냥의 정묘함은 실로 이러한 경지에까지 다다라 있었던 것이다.
이제 더는 스승에게서 배워 익힐 것이 없어진 기창은 어느 날 문득 좋지 않은 생각을 일으켰다.
그가 그때 홀로 곰곰이 생각하기를, 이제 활을 들고 자기와 겨룰 만한 자는 스승 비위 외에 따로 없다. 천하제일의 명인이 되려면 어떻게든 비위를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은밀히 그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에, 어느 날 마침 들 가운데에서 맞은편으로부터 홀로 걸어오는 비위와 마주쳤다. 순간 결심한 기창이 화살을 잡고 겨냥을 잡으니, 그 기색을 알아챈 비위 또한 활을 잡고 응한다. 두 사람이 서로 쏘면, 화살은 그때마다 한복판에서 서로 부딪쳐 함께 땅에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화살이 가벼운 먼지조차 일으키지 않은 것은 두 사람의 솜씨가 모두 신묘의 경지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비위의 화살이 다하였을 때, 기창 쪽은 아직 한 발을 남기고 있었다. 됐다고 기세를 몰아 기창이 그 화살을 놓으니, 비위는 순간적으로 곁에 있던 들장미의 가지를 꺾어, 그 가시 끝으로 호되게 살촉을 두드려 떨어뜨렸다. 마침내 비도(非道)한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기창의 마음에, 만일 성공하였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도의적 부끄러움이 이때 홀연히 솟아올랐다. 비위 쪽에서는 또한 위기를 벗어났다는 안도와 자기 기량에 대한 만족이 적에 대한 미움을 깡그리 잊게 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달려가, 들판 한가운데에서 서로 끌어안고 한참 동안 아름다운 사제(師弟)의 정에 눈물지었다. (이러한 일을 오늘날의 도의관(道義觀)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미식가인 제(齊)의 환공(桓公)이 자기가 아직 맛보지 못한 진미를 구하였을 때, 주방장이었던 역아(易牙)는 자기 아들을 쪄 구워 이를 권하였다. 열여섯 살의 소년인 진(秦)의 시황제(始皇帝)는 아비가 죽은 그날 밤에 아비의 애첩을 세 차례 덮쳤다. 무릇 그러한 시대의 이야기다.)
눈물에 잠겨 서로 끌어안으면서도, 다시 제자가 이러한 모의를 품는 일이 있어서는 매우 위험하다고 여긴 비위는, 기창에게 새로운 목표를 주어 그 마음을 돌려놓는 것보다 나은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위험한 제자를 향해 말했다. 이미 전할 만한 것은 모조리 전했다. 허나 만일 이보다 더 이 길의 깊은 경지를 다하기를 바란다면, 가서 서쪽으로 대행산(大行山)의 험한 길을 올라, 곽산(霍山)의 정수리에 이르러라. 그곳에는 감승(甘蠅) 노사(老師)라 하여 고금에 견줄 자가 없는 이 길의 대가가 계실 터이다. 노사의 솜씨에 견주면 우리의 활쏘기 따위는 거의 어린아이의 장난에 가깝다. 그대가 스승으로 모실 만한 자는 이제 감승사(甘蠅師) 외에 없으리라고.
기창은 곧 서쪽을 향해 길을 떠난다. 그분 앞에 나서면 우리의 솜씨 따위는 어린아이의 장난과 같다 한 스승의 말이 그의 자존심에 사무쳤다. 만일 그것이 정녕 사실이라면, 천하제일을 지향하는 그의 바람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셈이다. 자기 솜씨가 어린아이의 장난에 비할 바인지 어떤지를 어쨌든 한시바삐 그분을 만나 솜씨를 견주고 싶다는 조바심에, 그는 오로지 길을 재촉한다. 발바닥이 갈라지고 정강이를 다치며, 위태로운 바위를 기어오르고 사다릿길을 건너, 한 달 뒤에 그는 비로소 목적한 산꼭대기에 이른다.
기세 등등한 기창을 맞이한 이는, 양처럼 온화한 눈을 한, 그러나 몹시 늙어 비실거리는 노인이었다. 나이는 백 살이 넘었으리라. 허리가 굽은 탓도 있어, 흰 수염은 걸을 때조차 땅에 끌리고 있었다.
상대가 귀머거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큰 소리로 분주히 기창은 찾아온 뜻을 아뢴다. 자기 솜씨의 정도를 봐 주십사 청하더니, 조바심이 인 그는 상대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대뜸 등에 멘 양간마근(楊幹麻筋)의 활을 풀어 손에 잡았다. 그러고는 석갈(石碣)의 화살을 메기자, 마침 하늘 높이 날아가던 새 떼를 향해 겨냥을 정한다. 시위 소리에 응하여 화살 한 발에 다섯 마리 큰 새가 산뜻하게 푸른 하늘을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제법 할 줄은 아는구나, 하고 노인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말한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지사(射之射)라 하는 것, 호한(好漢)은 아직 불사지사(不射之射)를 모르는 것 같구나.
발끈한 기창을 인도하여, 늙은 은자(隱者)는 그곳에서 이백 보쯤 떨어진 절벽 위까지 데려온다. 발아래는 글자 그대로 병풍과도 같은 벽립천인(壁立千仭)의 벼랑, 까마득히 바로 아래에 실처럼 가늘게 보이는 골짜기 물을 잠시 들여다보기만 해도 곧 어지럼증이 이는 높이다. 그 단애에서 절반쯤 허공으로 내민 위태로운 바위 위로 노인은 성큼성큼 뛰어 올라, 돌아보며 기창에게 말한다. 어떤가. 이 바위 위에서 방금의 솜씨를 다시 한 번 보여 주지 않겠는가. 이제 와서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 노인과 자리를 바꾸어 기창이 그 바위를 밟았을 때, 바위는 미세하게 휘청 흔들렸다. 억지로 마음을 다잡아 화살을 메기려 하니, 마침 벼랑 끝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그 행방을 눈으로 좇았을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기창은 바위 위에 엎드렸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땀은 흘러 발뒤꿈치에까지 이르렀다. 노인이 웃으며 손을 내밀어 그를 바위에서 내리고, 스스로 그 자리를 대신해 올라서더니, 그러면 활쏘기라 하는 것을 보여 주마, 하고 말했다. 아직 두근거림이 가라앉지 않아 새파래진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기창은 곧 정신이 들어 말했다. 한데 활은 어찌하시려는지요? 활은? 노인은 맨손이었던 것이다. 활? 하고 노인은 웃는다. 활과 화살이 필요한 동안에는 아직 사지사일 뿐이지. 불사지사에는 오칠(烏漆)의 활도 숙신(肅愼)의 화살도 필요치 않다네.
마침 그들의 바로 위, 하늘의 더없이 높은 곳을 한 마리의 솔개가 유유히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 깨알만큼이나 작아 보이는 모습을 한참 올려다보던 감승이 이윽고 보이지 않는 화살을 형체 없는 활에 메겨, 보름달처럼 한껏 당겨 슝 하고 놓으니, 보라, 솔개는 날갯짓도 하지 못한 채 허공에서 돌처럼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기창은 소름이 돋았다. 이제야 비로소 예도(藝道)의 깊은 못을 들여다본 듯한 심정이었다.
아홉 해 동안 기창은 이 노명인의 곁에 머물렀다. 그 사이 어떠한 수련을 쌓았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아홉 해가 지나 산을 내려왔을 때, 사람들은 기창의 얼굴 모양이 변한 것에 놀랐다. 예전의 지기 싫어하던 매서운 풍모는 어느 곳엔가 자취를 감추고, 아무런 표정도 없는, 목우(木偶)와도 같고 어리석은 자와도 같은 용모로 바뀌어 있었다. 오랜만에 옛 스승 비위를 찾아갔을 때, 비위는 이 얼굴을 한번 보더니 감탄하여 외쳤다. 이래야말로 천하의 명인이다. 우리 따위는 발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단의 도읍은 천하 제일의 명인이 되어 돌아온 기창을 맞이하여, 머잖아 눈앞에 펼쳐질 것이 분명한 그 묘기에 대한 기대로 들끓었다.
그런데 기창은 도무지 그 요청에 응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활조차 도통 손에 잡으려 하지 않는다. 산에 들어갈 때 지니고 갔던 양간마근의 활도 어딘가에 버리고 온 모양이다. 그 까닭을 물은 한 사람에게 답하여 기창은 나른한 듯 말하였다. 지위(至爲)는 함이 없고, 지언(至言)은 말을 떠나며, 지사(至射)는 쏘는 일이 없는 것이라고. 과연이라고, 더없이 분별 있는 한단의 도성 사람들은 곧 알아들었다. 활을 잡지 않는 활의 명인은 그들의 자랑이 되었다. 기창이 활을 만지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의 무적이라는 평판은 더욱 자자하게 퍼져 나갔다.
갖가지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매일 밤 삼경(三更)을 지날 무렵, 기창의 집 지붕 위에서 누가 내는지 모를 활시위 소리가 난다. 명인의 안에 깃든 사도(射道)의 신(神)이 주인이 잠든 사이에 몸 안에서 빠져나가, 요사스러운 마귀를 물리치고자 밤새 지킴에 나서 있는 것이라 한다. 그의 집 가까이에 사는 한 상인은 어느 날 밤 기창의 집 상공에서, 구름을 탄 기창이 보기 드물게도 활을 손에 들고 옛 명인 양유기(養由基) 두 사람을 상대로 솜씨를 겨루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말하였다. 그때 세 명인이 쏘아 보낸 화살은 저마다 밤하늘에 푸르스름한 광채를 끌며 삼수(參宿)와 천랑성(天狼星) 사이로 사라졌다고. 기창의 집에 몰래 잠입하려다, 담장에 발을 걸친 순간에 한 줄기 살기(殺氣)가 적막한 집 안에서 내달려 나와 정통으로 이마를 때리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바깥으로 굴러떨어졌다고 자백한 도둑도 있다. 그 뒤로 사심을 품은 자들은 그의 거처 십 정(町, 약 1km) 사방을 피해 멀리 돌아갔고, 영민한 철새들은 그의 집 위 하늘을 지나지 않게 되었다.
구름처럼 자욱이 깔린 명성의 한복판에서 명인 기창은 차츰 늙어 간다. 일찍이 활쏘기를 떠난 그의 마음은 갈수록 고담허정(枯淡虛靜)의 경지로 들어간 듯이 보였다. 목우와도 같은 얼굴은 한층 표정을 잃고, 말하는 일도 드물어져, 마침내는 숨결의 있고 없음마저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이미 나와 남의 분별, 옳고 그름의 구분을 알지 못한다. 눈은 귀와 같고, 귀는 코와 같으며, 코는 입과 같이 여겨진다.」 이것이 노명인 만년의 술회이다.
감승사(甘蠅師)의 곁을 떠나고 사십 년 뒤, 기창은 고요히, 참으로 연기처럼 고요히 세상을 떠났다. 그 사십 년 동안 그는 결코 활쏘기를 입에 담는 일이 없었다. 입에조차 담지 않을 정도였으니, 활과 화살을 잡고 행한 활동 따위는 있을 리가 없다. 물론 우화 작자로서는 여기서 노인에게 대미를 장식하는 큰 활약을 시켜, 명인이 참으로 명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을 분명히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나, 한편으로는 또 무슨 일이 있어도 옛 글에 적힌 사실을 굽힐 수는 없다. 실제로 노후의 그에 대해서는 그저 무위(無爲)로 화하였다고만 할 뿐, 다음과 같은 묘한 이야기 외에는 무엇 하나 전해지지 않으니까.
그 이야기라 하는 것은 그가 죽기 한두 해 전의 일인 듯하다. 어느 날 늙은 기창이 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갔더니, 그 집에서 한 가지의 기물(器物)을 보았다. 분명 본 기억이 있는 도구이건만, 도무지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고 그 쓰임새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노인은 그 집의 주인에게 물었다. 그것은 무어라 부르는 물건이고, 또 무엇에 쓰는 것인가 하고. 주인은 손님이 농담을 하는 것이라고만 여겨, 빙긋이 시치미를 떼는 웃음을 지었다. 늙은 기창은 진지해져 다시 묻는다. 그래도 상대는 모호한 웃음을 띤 채 손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세 번째로 기창이 진지한 얼굴로 같은 물음을 되풀이하였을 때, 비로소 주인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어렸다. 그는 손님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상대가 농담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정신이 흐트러진 것도 아니며, 또 자기가 잘못 들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거의 두려움에 가까운 낭패를 보이며 더듬거리며 외쳤다.
「아아, 부자(夫子)께서――고금 무쌍의 활의 명인이신 부자께서, 활을 깡그리 잊어버리셨더란 말씀입니까? 아아, 활이라는 이름도, 그 쓰임새도!」
그 뒤로 한동안 한단의 도읍에서는, 화가는 그림붓을 감추고, 악공은 슬(瑟)의 줄을 끊으며, 공장(工匠)은 자와 곡척을 손에 잡는 일을 부끄러워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