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0

이쁜이와 용이 —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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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도 다 타 가는데 왜 밤중까지 불을 켜놓고 앉아서 대고 담배만 피워 대여, 아랫방에도 벌써 불 끈 지가 오랜데."

"다 걱정되는 일이 많으니까 그렇지… 나도 이녁 같이 잠이나 씩씩 잤으면 좋겠구먼…"

"누구는 걱정이 안 되남. 하지만 걱정만 대고 하면 네미…"

안해는 말끝을 흐리고 획 돌아눕는다. 이것은 이 집 웃방에 며칠 전에 이사온 간난네 양주가 이윽한 밤에 두설두설하는 이야기다.

"음―"하고 남편은 목기침 한번을 길게 하더니

"잠들었어… 간난 어머니… 응"

"응…"

아렴풋한 대답이다.

"잠 좀 그만 자고 내 말이나 좀 들어 봐 응…"

간난 어머니는 몸을 돌려 누우며 잠을 깨인 눈으로 남편의 얼굴을 뻔히 쳐다보았다.

새마을 언덕 박이 해묵은 감나무는 늦은 가을철을 접어들며 붉기도 하다. 지붕 마루턱이마다 동굴얗게 봉박아 놓은 고추 빛같이 맵고도 곱고 붉을 수야 있으랴 마는 그래도 그 크고도 보암즉한 품이 이 가을 이 마을의 영화를 저 홀로 거두워서 선 듯싶었다. 더구나 그 언덕 넘어도 줄줄이 늘어선 뽀푸라 나무들은 이 감나무의 붉은 빛을 반이라도 닮으랴는 듯이 나날이 더 누르러 가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 붉은 잎 누른 잎이 서릿바람을 마저 하나씩 둘씩 떨어지기 시작하자 인제는 제법 우수수 우수수 하고 돌려나려 떨어진다.

가여운 일이다―그 떨어진 잎잎은 다시 논틀로 밭틀로 뜰로 샘으로 이 구렁 저 구렁 이리저리 굴을 뿐이로구나.

응달 샘뚝성이에 앉은 이쁜이는 박아지로 물 우에 뜬 단풍잎을 이리 저리 가르며 물을 한 바가지 떠서는 동이에 담고 또 떠서는 담고 할 제, 어떤 때는 우에서 떨어지는 잎이 일부러 뜬 잎을 가르고 뜬 박아지 물 우에 뚝 떨어질라치면 그는 얄궂다는 듯이 동굴안 눈으로 언덕 우에 선 감나무를 핼끔 쳐다보며

"감나무 잎도 떨어지기도 한다 온…"

이런 때에 빈 동이를 머리 우에 이고 샘뚝 깊 옆에 서서 말없이 빙그레 웃고 있던 중늙은이 양순 어머니는 이 말을 받아

"요새는 낙엽이 어찌 지는지 몰라."

"아이고 난 누구라고 양순 어머니일세, 언제 거기와 서 섰어요, 오시는 기척도 없이…"

"네 뒷모양이 하도 태가 나고 이쁘길래 구경 좀 하느라고 그랫지."

"아이고 온…양순 어머니도 사람을…"

말끝을 더 물지 못하는 이쁜이의 포동포동한 두 볼은 이른 단풍 빛같이 불그레하여지며 고개를 푹 숙이고 물만 푸기 시작하였다.

"네 웃 네가 해 입었니?"

"네"

"치마 저고리 물빛도 곱다 바느질도 서툴지 않고나."

"저고리 물빛이 좀 지튼 것 같아요."

"아니 지틀 것 없어 분홍빛이 그만이나 해야지 더구나 한창 낫세에 말하자면 치마에 남물이 좀 과하게 들었다."

저쪽 대답이 없을 제, 그는 혼자 잇달아

"네 아버지 홀로 너를 저 만큼이나 키워 노았으니…네가 여북 귀엽겠니…얼른 사위를 보아야 할 텐데 좋은 사위를…"

이내 이쪽에서는 아모 말이 없다. 그는 무심코 사방을 돌아보다가 뒤에 오는 억쇠어머니를 보며

"남이 물을 길러 왔는데 왜 또 와."

"당신은 왜 왔어 이런 제기…"

받아치는 말솜씨만 보아도 걱실걱실하고 말이 행락이 아닌 억쇠어머니다. 그는 동이를 샘뚝에 내려놓더니만 한바탕 떠들어댄다.

"아이고 너 이쁜이구나, 옷 빛도 곱고 머리도 곱게 빗고… 얼굴도 이쁜 이름과 같은 우리 이쁜이 언제 와서 물을 깃나, 어허 절시구 우리 이쁜이 서발가옷 삼단머리 발 뒷굼치 치렁치렁 어허 절시구 음전할시구 우리 동내 이쁜이…"

손벽장구를 쳐가며 무당 푸닥거리하듯 주서대는 억쇠어머니 푸념바람에 양순넨 좋아라고

"흥흥 허허…"

하는 웃음 딸아 내며 야단들이었다. 억쇠네 푸닥거리는 딸아 나온다.

"시집가기도 늦었다. 어허 절시고 우리 이쁜이 남 중 일색을 얻으랴나, 헌헌장부를 얻으랴나, 김 부자 집으로 가려나 이 부자 집으로 가려나 앞뜰에도 노적가리 뒤뜰에도 노적가리 분통같이 꾸민 방에 곱게 단장들이 앉어 시부모 공경하기 남편의 시중들기 어허 절시고 옥동자 금동자 낳고…" 끊임없는 입술에 부끄럼의 우박이 온 몸에 퍼부어 나리는 듯이나 견딜 수 없는 이쁜이는 물동이를 '어서 어서'하는 듯이 머리에다 두집어 이고는 그만 뺑손이를 치며

"아이고 억쇠어머니는 참 고약도 해…"

하고는 동이 밑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손끝으로 훔쳐 뿌리고는 또 뿌리며 달아난다. 걸음이 재일수록 몸동작이 자저질쑤록 뒤에 따아 늘어진 머리는 동작의 '리즘'을 딸아 너풀거렸다. 참 좋은 처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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