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2

내부 고리

1612년 허균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한글소설이다. 의적 홍길동을 소재로 한 내용이다. 조선 시대의 도적패 우두머리였던 홍길동(洪吉同)의 이야기를 허균이 소설로 꾸몄으리라 여겨지고 있다. 실존 인물인 홍길동(洪吉同)에 대한 이야기와 가상의 영웅담을 결합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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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 세종대왕 즉위 십오 년에 홍희문 밖에 한 재상이 있었으되, 성은 홍이요 이름은 문이니, 위인이 청렴강직하여 덕망이 거룩하니 당세의 영웅이라. 일찍 용문에 올라 벼슬이 한림에 처하였더니, 명망이 조정에 으뜸되매 전하 그 덕망을 높이 여기사 벼슬을 높여 이조판서로 좌의정을 하이시니, 승상이 국은에 감동하여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 보답하니 사방에 우환이 없고 도적이 없으매 시절이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드니 나라가 태평하더라.

하루는 승상이 난간에 기대어 잠깐 졸았더니, 한 바람이 길을 인도하여 한 곳에 다다르니, 청산은 아득하고 녹수는 넘실거리는데, 세류 천만 가지 녹음이 파사하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춘흥을 희롱하며 양류간에 왕래하거늘, 기화요초 만발한데 청학 백학이며 비취 공작이 춘광을 자랑하거늘, 승상이 경물을 구경하며 점점 들어가니 만장 절벽은 하늘에 닿았고, 구비구비 벽계수는 골골이 폭포 되어 오운이 어려있는데, 길이 끊쳐 갈 바를 모르더니, 문득 한 청룡이 물결을 헤치고 머리를 들어 고함하니 산악이 무너지는 듯하더니, 그 용이 입을 벌리고 기운을 토하여 승상의 입으로 들어오거늘, 깨다르니 평생 대몽이라. 내념에 헤아리되, ‘반드시 귀한 아이를 낳으리라.’ 하여, 즉시 내당에 들어가 부인을 이끌어 취침코자 하니,

“승상은 나라의 재상이시니 체위가 존중하시거늘, 백주에 정실에 들어와 노류장화같이 하시니 재상의 체면이 어디 있나이까?” 승상이 생각하시기를, 말씀은 당연하오나 대몽을 허송할까 하여 연하여 간청하시니, 부인이 옷을 떨치고 밖으로 나가시니, 승상이 무료하신 중에 부인의 도도한 고집을 애달파 무수히 탄식하시고 외당으로 나오시니, 마침 시비 춘섬이 상을 드리거늘, 좌우 고요함을 인하여 춘섬을 이끌고 원앙지락을 이루시니, 저기 울화를 더시나 심내에 못내 한탄하시더라.

춘섬이 비록 천인이나 재덕이 순직하였더라. 뜻밖에 승상의 위엄으로 친근히 하시니 감히 거역치 못하고 순종한 뒤로는 그날부터 중문 밖에 나지 아니하고 행실을 닦으니, 그달부터 태기 있어 십삭이 차매 거처하는 방에 오색 운무가 영롱하며 향내가 기이하더니 혼미 중에 해산하니 일개 기이한 사내아이라. 사흘 후에 승상이 들어와 보시니 일변 기꺼우나 그 천생됨을 아끼시더라. 이름을 길동이라 하니라.

이 아이가 점점 자라매 기골이 비상하여, 한 말을 들으면 열 말을 알고, 한 번 보면 모르는 것이 없더라. 하루는 승상이 길동을 데리고 내당에 들어가 부인을 대하여 탄식하며 이르시되,

“이 아이가 비록 영웅이오나 천생이라 무엇에 쓰리요. 원통할사, 부인의 고집이여. 후회막급이로소이다.” 부인이 그 연고를 물어보오니, 승상이 양미를 빈축하며 이르시되,

“부인이 전일에 내 말을 들으셨더라면 이 아이가 부인 복중에 났을 것이니, 어찌 천생이 되리요.” 이내 몽사를 설화하시니, 부인이 추연히 이르시되,

“이 또한 천수오니 어찌 인력으로 하오리까.” 세월이 여류하여 길동의 나이 여덟 살이라. 상하 모두 칭찬하지 않는 이 없고 대감도 사랑하시나, 길동은 가슴에 원한이 맺혀 부친을 부친이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매 스스로 천생됨을 자탄하더니, 추칠월 보름날에 밝은 달을 대하여 섬돌 아래 배회하더니, 가을바람은 쌀쌀하고 기러기 우는 소리는 외로운 심사를 돕는지라. 홀로 탄식하여

“대장부 세상에 나매, 공맹의 도학을 배워 출장입상하여 대장 인수를 요하에 차고 대장단에 높이 앉아 천병만마를 지휘 중에 넣어두고, 남으로 초를 치고 북으로 중원을 정하며, 서로 촉을 쳐 사업을 이룬 후에 얼굴을 기린각에 빛내고 이름을 후세에 유전함이 대장부의 떳떳한 일이라. 옛 사람이 이르기를 ‘왕후장상이 씨 없다’ 하였으니, 날을 두고 이르는 것인가. 세상 사람이 낡은 도포 걸친 처지라도 부형을 부형이라 부르되, 나는 홀로 그러치 못하니 이 어인 인생으로 그러한고.” 하며 홀로 통탄하더니, 마침 승상이 지나다가 이 말을 듣고 들어오시며 이르시되,

“밤이 이미 깊었거늘 네 무슨 즐거움이 있어 이러느냐?” 길동이 칼을 던지고 부복하여 대답하였다.

“소인이 대감의 정기를 타 당당한 남자로 났사오니 이만 즐거운 일이 없사오되, 평생 설워하옵나는 아버님을 아버님이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못하와 상하 노복이 다 천히 보고, 친척 고구도 손가락질하오니, 이 어찌 남아의 설운 일이 아니오리까.”

“재상가 천생이 너뿐 아니라. 가장 방자한 마음을 두지 말라. 이후에 다시 그런 말을 번거이 하는 일이 있으면 눈앞에서 용납하지 못하리라.” 하시니, 길동은 한갓 눈물 흘릴 뿐이라. 이윽히 물러나와 모친 침소에 들어가 고하였다.

“모친은 소자와 전생 인연으로 이 생에 모자 되오셨으니, 구로지은을 생각하면 호천망극하오나, 남아 세상에 나서 입신양명하여 위로 향화를 받들고 부모의 양육지은을 만분의 하나라도 갚을 것이어늘, 이 몸은 팔자 기박하여 천생이 되어 남의 천대를 받으니, 대장부 어찌 구구히 근본만 지켜 후회를 두리요. 이 몸이 당당히 조선국 병조판서 인수를 띠고 상장군이 되지 못할진대, 차라리 몸을 산중에 붙쳐 세상 영욕을 모르고자 하오니, 바라옵건대 모친은 자식의 사정을 살피사 아조 버린 듯 잊고 계시면, 후일에 소자 돌아와 오조지정을 이루올 날이 있사오니 이만 짐작하옵소서.” 하니, 모친이 눈물을 흘리며 위로하셨다.

“재상가 천생이 너뿐 아니라.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되, 어미의 간장을 이대도록 상케 하느냐. 어미의 낯을 보아 아직 있으면, 내 두의 대감이 처결하시는 분부 없지 아니하리라.” 길동이 이르되,

“부형의 천대는 고사하옵고, 노복이며 동유의 이따금 하는 말이 골수에 박히는 일이 허다하오며, 근간에 곡산모의 행색을 보오니 자기보다 뛰어난 자를 염탐하여 과실 없는 우리 모자를 구수같이 보와 살해코자 도모하는 빛이 있사오니, 소자가 목숨을 보전치 못할까 두렵나이다.” 모친이 놀라며 이르시되,

“네 말이 가장 그러하냐, 곡산모는 인후한 사람이라. 어찌 그런 일이 있으리요.” 길동이 이르되,

“세상사를 헤아리지 못하나이다. 소자의 말을 헛되이 생각지 마시고 장래를 보옵소서.” 하더라.

원래 곡산모는 곡산 기생으로 대감의 총첩이 되어 몹시 방자하기로, 노복이라도 불합한 일이 있으면 한 번 참소에 사생이 관계하여, 사람이 못되면 기거하고 승하면 시기하더니, 대감이 길동을 낳아 사람마다 일컫고 대감이 사랑하시매, 일후 총을 잃을까 하며, 또한 대감이 이따금 희롱하시는 말씀이 “너도 길동 같은 자식을 낳아 내 모년 자미를 도우라” 하시매, 가장 무료하여 하는 중에 길동의 이름이 날로 자자하므로 초낭 더욱 크게 시기하여 길동 모자를 눈의 가시같이 미워하여 해할 마음이 급하매, 흉계를 자아내어 재물을 흩어 요괴로운 무녀 등을 불러 모의 말하고 축일 왕래하더니, 한 무녀가 이르되,

“동대문 밖에 관상하는 계집이 있사오되, 사람의 상을 한 번 보면 평생 길흉화복을 판단하오니, 이제 청하여 약속을 정하고 대감 전에 천거하여 가중 전후사를 본 다시 이른 후에 인하여 길동의 상을 보이고 어차어차히 아뢰어 대감의 마음을 놀라게 하면 낭자의 소회를 일로 좇아 이룰까 하나이다.” 초낭이 대희하여 즉시 관상녀에게 통하여 재물로써 데려오고, 대감댁 일을 낱낱이 가르치고 길동 제거할 약속을 정한 후에 날을 기약하고 보내니라.

하루는 대감이 내당에 들어가 길동을 부른 후에 부인을 대하여 이르시되,

“이 아이가 비록 영웅의 기상이 있으나 어따 쓰리요.” 하시며 희롱하시더니, 문득 한 여자가 밖에서부터 들어와 당하에 뵈거늘, 대감이 괴이히 여겨 그 연고를 물으신대, 그 여자가 엎드려 아뢰되,

“소녀는 동대문 밖에 살더니, 어려서 한 도인을 만나 사람의 상 보는 법을 배운 바, 두루 다니며 관상처로 맞아 장안을 편람하옵고, 대감 댁 만복을 높이 듣고 천한 재주를 시험코자 왔나이다.” 대감이 이르시되,

“네 어서 올라 내 평생을 확론하라.” 하시니, 관상녀가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고 당에 올라 먼저 대감의 상을 살핀 후에 이왕지사를 역역히 아뢰며 내두사를 보는 대로 논단하니, 털끝도 대감의 평생에 어긋남이 없는지라.

“소녀가 열읍에 주류하며 천만 인을 보았사오되, 공자의 상 같은 이는 처음이어니와, 알지 못하겠나이다, 부인의 기출이 아닌가 하나이다.” 대감이 웃음을 감추지 못하여 이르시되,

“그는 그러하거니와 사람마다 길흉영욕이 각각 때 있나니, 이 아이의 상을 각별히 논단하라.” 하니, 상녀가 이윽히 보다가 거짓 놀라는 체 하거늘, 괴이히 여겨 그 연고를 물으신대, 함구하고 말이 없더라.

“길흉을 털끝도 기이지 말고 보이는 대로 의논하여 내 의혹이 없게 하라.” 관상녀가 이르되,

“이 말씀을 바로 아뢰오면 대감의 마음을 놀라게 할까 하나이다.” 대감이 이르시되,

“옛적에 곽분양 같은 사람도 길한 때 있고 흉한 때 있었으니 무슨 여러 말이 있느뇨. 상법 보이는 대로 기이지 말라.” 하이니, 관상녀 마지못하여 길동을 치운 후에 그윽히 아뢰되,

“공자의 내두사는 여러 말씀 발이옵고, 성하면 군왕지상이요, 패하면 헤아리지 못할 환이 있나이다.” 하였다. 대감이 크게 놀라 이윽히 진정한 후에 상녀를 후히 상급하시고 이르시되,

“이대여 말을 삼가 발구치 말라.” 엄히 분부하시고 이르시되,

“제 늙도록 출입하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니, 상녀가 이르되,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있으리이까.” 대감이 누누이 당부하시니, 관상녀 공수하고 수명하여 가니라.

대감이 이 말을 들으신 후로 내심에 크게 근심하시어, ‘이 놈이 본래 범상한 놈이 아니요, 또한 천생 됨을 자탄하여 만일 범남한 마음을 먹으면 충절로 이름난 가문에 누를 끼치리로다.’ 하시고 길동의 처치를 깊이 근심하시더라.

“길동이 관상녀의 말씀같이 왕기 있어 만일 범남한 일이 있사오면 가화가 장차 헤아리지 못할지라. 작은 혐의를 생각지 마시고 큰 일을 생각하와 저를 미리 없이 하심만 같지 못할까 하나이다.” 하니, 대감이 진노하시며 이르시되,

“이 말을 경솔히 할 바 아니어늘, 네 어찌 입을 지키지 못하느뇨. 도시 내 집 가운은 네 알 바 아니이라.” 하시니, 초낭이 황공하여 다시 말씀을 못하고, 내당에 들어가 부인과 대감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모계를 꾸미더라.

“대감이 관상녀의 말씀을 들으신 후로 사렴에 선처하실 도리 없어 침식이 불안하시더니, 일념에 병환이 되시기로 소인이 일전에 여차여차한 말씀을 아뢰온즉 꾸중이 낫삽기로 다시 여쭙지 못하옵고, 이번에 소인이 홀로 모계를 세워 길동을 없이하고자 하오니 마마께서 윤허하시면 소인이 거행하겠나이다.” 부인이 이르시되,

“일은 그러하거니와 인정천리에 차마 할 바 아니라.” 하시니, 초낭이 다시 여쭙되,

“이 일이 여러 가지 관계하오니, 하나는 국가를 위함이요, 둘은 대감의 환후를 위함이요, 셋은 홍씨 일문을 위함이오니, 어찌 작은 사정으로 우유부단하여 여러 가지 큰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부인이 마침내 허락하시더라.

이적에 길동은 나이 십일 세라. 기골이 장대하고 용맹이 절륜하며, 시서백가를 모불통지하나, 대감 분부에 밖에 출입을 막으시매, 홀로 별당에 처하여 손자병법을 통달하여 귀신도 헤아리지 못할 재주를 익히더라.

“까마귀 세 번 ‘객자, 객자’ 하고 서쪽으로 날아가니 분명 자객이 오는지라. 어떤 사람이 날을 해코자 하는고, 어서 방신지계를 하리라.” 하고, 방 중에 팔진을 치고 각각 방위를 바꾸어, 남방의 이허중운을 북방 감중연에 옮기고, 동방 진하연은 서방 태상절에 옮기고, 건방의 건삼연은 손방 손하절에 옮기고, 곤방의 곤삼절은 간방 간상연에 옮겨, 그 가운데 풍운을 넣어 조화 무궁케 벌이고 때를 기다리니라.

이적에 특자가 비수를 들고 길동 거처하는 별당에 가 몸을 숨기고 그 잠들기를 기다리더니, 난데없이 까마귀 창 밖에 와 울고 가거늘, 마음에 크게 의심하여 이르되,

“이 짐승이 무슨 앎이 있어 천기를 누설하는고? 길동은 실로 범상한 사람이 아니로다. 필연 훗날에 크게 쓰이리라.” 하고 돌아가고자 하다가, 재물 욕심이 앞을 가려 몸을 돌아보지 못하고 비수를 들고 길동 처소에 뛰어들어가니, 길동이 나서 꾸짖어 이르되,

“너는 어떠한 사람이기에 이 깊은 밤에 비수를 들고 누구를 해코자 하느냐?” 특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 분명 길동이로다. 나는 너희 부형의 명령을 받아 너를 취하러 왔노라.” 하고 비수를 들어 던지니, 문득 길동은 간 데 없고 음풍이 대작하고 벼락이 진동하며 중천에 살기뿐이라. 중심에 크게 놀라 어쩔 줄 모르더니, 길동이 공중에서 내려 이르되,

“내 남의 재물을 욕심내다가 사지에 빠졌으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허물하리요.” 하며 길이 탄식하더니, 문득 이윽고 길동이 비수를 들고 공중에서 내려와 이르되,

“필부는 들으라. 네 재물을 탐하여 무죄한 인명을 살해코자 하니, 이제 너를 살려두면 이후에 무죄한 사람이 허다히 상할지라. 어찌 살려 보내리요.” 하니, 특자가 애결하여 이르되,

“과연 소인의 죄 아니오라 공자댁 초낭자의 소위오니, 바라옵건대 가련한 인명을 구제하옵셔 이후에 개과하게 하옵소서.” 길동이 더욱 분을 이기지 못하여 이르되,

“네 악행이 하늘에 사무쳐 오늘 내 손을 빌려 악한 무리를 없이 하게 함이라.” 하고, 말을 마치자 특자의 목을 베어버리고, 신장을 호령하여 동대문 밖에서 상녀를 잡아다가 수죄하여 이르되,

“네 요망한 계집으로 재상가에 출입하며 인명을 상해하니 네 죄를 네 아느냐?” 관상녀가 제 집에서 잠들다가 풍운에 싸여 호호탕탕이 아무 데로 가는 줄 모르더니, 문득 길동의 꾸짖는 소리를 듣고 애결하여 이르되,

“이는 다 소녀의 죄가 아니오라 초낭자의 가르침이오니, 바라건대 인후하신 마음에 죄를 관서하옵소서.” 하거늘, 길동이 이르되,

“초낭자는 내의 의모라 의논하지 못하련이와 너 같은 악종을 내 어찌 살려두리요. 후 사람을 징계하리라.” 하고, 칼을 들어 머리를 베어 특자의 주검 한데 던지고, 분한 마음을 걷잡지 못하여 바로 초낭의 침소로 달려가더라.

“이제 밤이 이미 깊었거늘, 네 어찌 자지 아니하고 부삼 연고로 이러하느냐.” 길동이 슬피 울며 대답하였다.

“가내에 흉한 변이 있사와 목숨을 도망하여 나가오니 대감 전에 하직차로 왔나이다.” 대감이 놀라 심내에 헤아리시되, ‘필연 무슨 곡절이 있도다.’ 하시고, 이르시되,

“무슨 일인지 날이 새면 알려니와, 급히 돌아가 자고 분부를 기다리라.” 하시니, 길동이 부복하여 아뢰되,

“소인이 이제로 집을 떠나가오니 대감 체후 만복하옵소서. 소인이 다시 뵈올 기약이 망연하나이다.” 대감이 헤아리시되 길동은 범류가 아니라 말려도 듣지 않을 줄 짐작하시고 이르시되,

“네 이제 집을 떠나면 어디로 가려느냐.” 길동이 부복하여 아뢰되,

“목숨을 도망하여 천지로 집을 삼고 나가오니 어찌 정처가 있사오리이까마는, 평생 원한이 가슴에 맺혀 설원할 날이 없사오니 더욱 서럽나이다.” 하거늘, 대감이 위로하시되,

“오늘로부터 네 원을 풀어주는 것이니, 네 어디 사방에 주류할지라도 부디 죄를 지어 부형에게 화를 끼치지 말고 수히 돌아와 내 마음을 위로하라. 여러 말 아니 하니 부디 겸렴하여라.” 하시니, 길동이 일어나 다시 절하여 사은하고 이르되,

“부친이 오늘날 적년 소원을 풀어주시니 이제 죽어도 한이 없사올지라. 황공무지오니 바라옵건대 아버님은 만세무강하옵소서.” 하며, 이내 하직을 고하고 나와 바로 그 모친 침실에 들어가 어미를 대하여 이르되,

“소재가 이제 목숨을 도망하여 집을 떠나오니 모친은 불효자를 생각지 마르시고 계시오면 소자 돌아와 뵈올 날이 있사오니 달리 염려 마옵시고 삼가 조심하와 천금 귀체를 보중하옵소서.” 하고, 초낭의 작변하던 일을 낱낱이 고하니, 모친이 이르시되,

“네 이제 나가 잠깐 화를 피하고 어미 낯을 보아 수히 돌아와 날로 하여금 실망하는 병이 없게 하라.” 하며 못내 서러워하니, 길동이 무수히 위로하며 눈물을 거두어 하직하고 문 밖에 나서니, 광대한 천지가 자기 것이더라.

이적에 부인이 자객을 길동에게 보낼 줄 아시고 밤이 맞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무수히 탄식하시니, 장자 길현이 위로하여 이르되,

“소자도 시러곰 마지못한 일이오니 저 죽은 후이라도 어찌 한이 없사오리까? 제 어미를 더욱이 후대하여 일생을 편케 하옵고, 제 시신을 후장하여 야박한 마음을 만분지 일이나 덜을까 하나이다.” 하고 밤을 지내더니, 이튿날 아침에 초낭이 별당에 날이 밝도록 소식 없음을 괴이 여겨 사람을 보내어 탐지하니, 길동은 간 데 없고 목 없는 죽염 둘이 방중에 거꾸러져 있거늘, 자세히 보니 특자와 관상녀라. 초낭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급히 내당에 들어가 이 사연을 부인께 고하니, 부인이 대경하여 장자 길현을 불러 길동을 찾되 종시 거처를 알지 못하는지라. 대감을 청하여 수말을 아뢰며 죄를 청하니, 대감이 대책하여 이르시되,

“가내에 이런 변고를 지으니 화 장차 무궁할지라. 간밤에 길동이 집을 떠나노라 하고 하직을 고하기로 무슨 일인지 모랐더니, 원내 이 일이 있음을 어찌 알리요.” 하시고, 초낭을 대책하여 이르시되,

“네 앞에 괴한 말을 자아내기로 꾸짖어 물리치고 그때 말을 다시 내지 말라 하였거늘, 네 종시 마음을 고치지 아니하고 가내에 있어 이렇듯이 변을 지으니, 죄를 의논컨대 죽기를 면치 못하리라. 어찌 내 집을 이 꼴로 만드느냐.” 하시며 초낭을 내치시니라.

이적에 길동이 집을 떠나 사방으로 주류하더니, 하루는 한 곳에 이르니 만첩 산장이 하늘에 닿은 듯하고, 초목이 무성하여 동서를 분별하지 못하는 중에 햇빛은 서양이 되고 인가 또한 없으니 진퇴유곡이라. 방황하더니 문득 저편에서 떠드는 소리 나거늘 바삐 그리로 찾아가니, 수백 명 무리가 군웅을 다투며 앉아 있더라.

원래 이 촌은 적굴이라. 이날 마침 장수를 정하려 하고 공론이 분분하더니, 길동이 이 말을 듣고 내심에 헤아리되, ‘내 지처 없는 재주로 우연히 이 곳에 당하였으니 이는 날로 하여금 하늘이 지시하심이로다.’ 하고 의젓하게 나아가 앉으며 좌중을 돌아보고 이르되,

“나는 경성 홍승상의 아자로서 사람을 죽이고 망명도주하여 사방에 주류하옵더니, 오늘날 하늘이 지시하사 우연히 이 곳에 이르렀사오니, 녹림 호걸의 으뜸 장수 됨이 어떠하뇨?” 하며 자청하니, 좌중 제인이 이 말을 듣고 비웃어 이르되,

“우리 수백 인이 다 절인지력을 가졌으되 지금 두 가지 일을 행할 이 없어 유예 미결하거니와, 너는 어떠한 아이로서 감히 우리 연석에 들입하여 언사 이렇듯 괴만하뇨. 인명을 생각하여 살려 보내니 빨리 나가거라.” 길동이 자색도 변치 않고 이르되,

“용이 얕은 물에 잠겼으니 어별이 침노하며, 범이 깊은 숲을 잃으매 여우와 토끼의 조롱을 받는 것도 있도다. 오래지 않아서 풍운을 얻으면 그 변화 헤아리기 어려우리로다.” 하였더니, 한 군사가 그 글을 등서하여 좌중에 보이거늘, 한 사람이 이르되,

“그 아이 거동이 비범할 뿐 아니라, 더욱이 홍승상의 자제라 하니 수자를 청하여 그 재주를 시험한 후에 처치함이 해롭지 아니타.” 하니, 좌중 제인이 응낙하여 즉시 길동을 청하여 좌상에 앉히고 이르되,

“지금 우리 의논이 두 가지라. 하나는 이 앞에 초부석이라 하는 돌이 있으니 무게가 천여 근이라. 좌중에서는 쉽게 들 사람이 없고, 둘은 경상도 합천 해인사에 누거만재 이스도 중이 수천 명이라 그 절을 치고 재물을 탈취코자 하나, 능히 할 이 없어 장수를 정치 못하거니와 네 만일 이 두 가지를 능히 하면 장수로 모시리라.” 길동이 이르되,

“대장부 세상에 처하매 마땅이 상통천문하고 부찰지리하고 중찰인의할지라. 어찌 이만 일을 겁하리요.” 하고, 직시 팔을 걷고 그 돌 앞에 나아가, 초부석을 들어 팔 위에 얹고 수십 보를 행하다가 도로 그 자리에 놓으니, 좌중이 일시에 환호하여 이르되,

“실로 장사로다.” 하고, 상좌에 앉히고 술을 권하며 장수라 일컬어 치하 분분한지라. 길동이 군사를 명하여 백마를 잡아 피를 마셔 맹세할새, 제군에게 호령하여 이르되,

“우리 수백 인이 오늘부터 사생고락을 한 가지로 할지니, 만일 약속을 배반하고 영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시행하리라.” 하니, 제군이 일시에 청령하고 즐기더라.

수일 후에 제군에게 분부하여 이르되,

“내 합천 해인사에 가 모책을 정하고 오리라.” 하고, 서동 복색으로 나귀를 타고 종자 수인을 데리고 가니 완연한 재상의 자제이라. 해인사에 통문하되,

“경성 홍승상댁 자제 공부차로 오신다.” 하니, 사중 제승 통문을 듣고 의논하되,

“재상가 자제 절에 거처하시면 그 심이 적지 아니하리로다.” 하고, 일시에 동구 밖에 마져 문안하니, 길동이 흔연이 사중에 들어가 좌정 후에 제승을 대하여 이르되,

“내 들으니 네 절이 경성에 유명하기로 소문을 높이 듣고 먼 데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한 번 구경도 하고 공부도 하려 하여 왔으니, 너희도 괴로이 생각지 말 뿐더러 사중에 머무는 잡인을 일제히 물리치라. 내 아무 고을 관아에 가 본관을 보고 백미 스무 섬을 보낼 것이니 아무 날 음식을 장만하라. 내 너희로 더불어 승속지분의를 버리고 동락한 후에 그날부터 공부하리라.” 하니, 제승이 이르되,

“어느 절에서나 명 받들어 보내더라.” 이르니라. 제승이 어찌 대적의 흉계를 알리요. 행여 분부를 어길까 염려하여 그 백미로 즉시 음식을 장만하며 일변 사중에 머무는 잡인을 다 보내니라.

기약한 날에 길동이 제적에게 분부하되,

“이제 해인사에 가 제승을 다 결박할 것이니 너희 등이 근처에 매복하였다가 일시에 절에 들어와 재물을 수탐하여 가지고 내 가르치는 대로 행하되 부디 영을 어기지 말라.” 하고, 장대한 하인 오륙인을 앞세워 해인사로 들어가니라.

이때 제승이 동구 밖에 나와 대후하는지라. 길동이 들어가 분부하여 이르되,

“사중 제승이 노소 없이 하나도 빠지지 말고 일제히 절 뒤 벽계로 모여라. 오늘은 너희와 함께 종일 포취하고 노리라.” 하니, 중들이 먹기도 할 뿐더러 분부를 어기면 행여 죄 있을까 두려워하여 일시에 수백 명이 모이더라. 길동이 좌상에 앉아 제승을 차례로 앉힌 후에 각각 상을 받아 술도 권하며 즐기다가, 이윽고 식상을 드리거늘, 길동이 소매에서 모래를 꺼내어 입에 넣고 씹으니 돌 깨지는 소리에 제승이 혼비백산하는지라.

“내 너희로 더불어 승속지분의를 버리고 즐긴 후에 유하여 공부하련더니, 이 완만한 중놈들이 나를 수히 보고 음식에 부정함이 이 같으니 가이 통분한지라.” 데려온 하인을 호령하여,

“제승을 일제히 결박하라.” 재촉이 성화 같은지라. 하인이 일시에 달려 절 승을 결박할새, 어찌 일분 사정이 있으리요.

이때 제적이 동구 사면에 매복하였다가 이 기미를 탐지하고 일시에 달려들어 고를 열고 수만금 재물을 제것 가져가듯 우마에 싣고 가되, 사지를 요동치 못하는 중들이 어찌 금단하리요. 다만 입으로 원통하다 하더라.

이때 사중에 한 목공이 있어 이 중에 참여치 아니하고 절을 지키다가 난데없이 도적이 들어와 고를 열고 제것 가져가는지라, 급히 도망하여 합천 관가에 가 이 연유를 아뢰니, 합천 원이 대경하여 일변 군사를 거느리고 해인사로 달려가는지라.

“너희 어찌 내 비계를 아느뇨. 염려 말고 남편 대로로 가라. 내 저 오는 관군을 북편 소로로 가게 하리라.” 하고, 법당에 들어가 중의 장삼을 입고 꽃갓을 쓰고 높은 봉에 올라 관군을 불러 외쳐 이르되,

“도적이 북편 소로로 갔사오니 이리로 오지 말고 그리 가 포착하옵소서.” 하며, 장삼 소매를 날려 북편 소로를 가리키니, 관군이 오다가 남로를 버리고 노승의 가르치는 대로 북편 소로로 가거늘, 길동이 내려와 당당히 남편 대로로 가더라.

이적에 합천 원이 관군 몰아 도적을 추동하되 자취를 보지 못하고 돌아오매 일 읍이 소동하는지라. 이 연유를 감영에 장문하니, 감사 듣고 놀라 각 읍에 발포하여 도적을 잡되 종시 형적을 몰라 도리 분주하더라.

하루는 길동이 제적을 불러 의논하여 이르되,

“우리 비록 녹림에 몸을 붙쳤으나 다 나라 백성이라. 세대로 이 나라 수토를 먹으니, 만일 위태한 시절을 당하면 마땅히 시석을 무릅쓰고 임금을 도울지니, 어찌 병법을 심쓰지 아니하리요. 이제 군기를 도모할 모책이 있다.” 하고 제인에게 의논하더라.

“능소에 불이 났사오니 급히 구완하옵소서.” 감사 잠결에 대경하여 나서보니 과연 화광이 창천한지라. 하인을 거느리고 나가며 일변 군사를 조발하니, 성중이 물 끓듯 하는지라. 백성들도 다 능소에 가고 성중이 공허하여 노약만 남았는지라. 길동이 제적을 거느리고 일시에 달려들어 창곡과 군기를 도적하여 가지고 축지법을 행하여 순식에 동중으로 돌아오니라.

이적에 감사 불을 끄고 돌아오니 창곡 지킨 군사 아뢰되,

“도적이 들어와 창고를 열고 군기와 곡식을 도적하여 갔나이다.” 하거늘, 크게 놀라 사방으로 군사를 발포하여 수탐하되 형적이 없는지라. 변괴인 줄 알고 이 연유를 나라에 주문하니라.

이날 밤에 길동이 동중에 돌아와 잔치를 베풀고 기뻐하여 이르되,

“우리 이제는 백성의 재물은 추호도 탈취하지 말고 각 읍 수령과 방백의 준민고택하는 재물을 노략하여 혹 불쌍한 백성을 구제할지니, 이 동호를 활빈당이라 하리라.” 하고, 또 이르되,

“함경감영에서 군기와 곡식을 잃고 우리 종적은 알지 못하매 저간에 애매한 사람이 허다히 상할지라. 내 몸에 죄를 지워 애매한 백성에게 돌려보내면 사람은 비록 알지 못하나 천벌이 두렵지 아니하랴.” 하고, 격서를 지어 조정에 올리되,

“창곡과 군기 도적하기는 활빈당 장수 홍길동이라.” 하였더라.

하루는 길동이 생각하되, ‘내 팔자 무상하여 집을 도망하여 몸을 녹림 호걸에 붙쳤으나 본심이 아니라. 입신양명하여 위로 임금을 도와 백성을 건지고 부모에게 영화를 뵈일 것이어늘, 남의 천대를 분히 여겨 이 길에 들어선지라. 차라리 이로 인하여 큰 이름을 얻어 후세에 전하리라.’ 하고, 초인 일곱을 만들어 각각 군사 오십 명씩 거느려 팔도에 분발할새, 다 각기 혼백을 붙여 조화 무궁하니 군사도 서로 의심하여 어느 도로 가는 이가 참 길동인 줄을 모르더라.

각각 팔도에 횡행하며 불의한 사람의 재물을 빼앗아 불쌍한 사람을 구제하고, 수령의 뇌물을 탈취하고, 창고를 열어 백성을 진휼하니, 각 읍이 소동하여 창고 지킨 군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지키나, 길동의 수단이 한 번 움직이면 풍우대작하며 운무 자욱하여 천지를 분별치 못하니, 수직하는 군사 손을 묶은 다시 금제치 못하는지라. 팔도에서 작난하되 명백히 일컬어 “활빈당 장수 홍길동이라” 제명하며 횡행하되 뉘 능히 종적을 잡으리요.

“홍길동 대적이 능히 풍운을 부려 각 읍에 작난하되, 아무 날은 이러이러한 고을에 군기를 도적하고, 아무 때는 아무 고을에 창곡을 탈취하였사오되, 이 도적의 자취를 잡지 못하여 황공한 사연을 앙달하나이다.”

이후로는 길동이 혹 쌍교를 타고 다니며 수령을 임으로 출척하고, 혹 창고를 통개하여 백성을 진휼하며, 죄인을 잡아 다스리며, 옥문을 열고 무죄한 사람은 방송하며 다니되, 각 읍이 종시 그 종적을 모르고 도뢰 분주하더라.

“이 어떠한 놈의 용맹이 한 날에 팔도에 다니며 이같이 작난하는고. 나라를 위하여 이 놈을 잡을 자 없으니 가히 한심하도다.” 하시니, 계하에 한 사람이 출반주하여 이르되,

“신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 일지병을 주시면 홍길동 대적을 잡아 전하의 근심을 덜이이다.” 하거늘, 모다 보니 이는 곧 포도대장 이업이라. 전하가 기특이 여기사 정병 일천을 주시니, 이업이 즉시 궐하에 숙배 하직하고 이르되,

“너희는 이러이러한 곳으로 쫓아 아무 날 문경으로 모여라.” 하고, 미복으로 행하여 수일 후에 한 곳에 이르니, 날이 장차 저물거늘 주점에 들어 쉬더니, 이윽고 어떠한 소년이 나귀를 타고 동자 수인을 거느리고 들어오더라.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곳이 없고, 그 땅의 백성 치고 왕의 신하 아닌 이 없다 하였거늘. 이제 대적 홍길동이 팔도에 작난하여 민심을 요란케 하매, 전하가 진노하사 팔도에 행관하여 방곡에 지위하여 잡으라 하시되 종시 잡지 못하니 분완한 마음은 일국이 같거늘, 그대 같은 용사가 어찌 나서지 않소.” 이업이 감탄하여 이르되,

“장하도다, 이 말이여. 충의를 겸한 사람이로다. 내 비록 용렬하나 죽기로써 그대의 뒤를 도울 것이니 나와 함께 이 도적을 잡음이 어떠하뇨.” 하였는데, 그 소년이 또한 위사하고 이르되,

“그대 말씀이 그러할진대 이제 나와 함께 가 재주를 시험하고 홍길동의 거처하는 데를 탐지하리라.” 하니, 이업이 응낙하고 그 소년을 따라 함께 깊은 산중으로 가더니, 그 소년이 몸을 솟구쳐 층암 절벽 위로 뛰어오르며 이르되,

“그대 힘을 다하여 날을 잡으면 그 용역을 가히 알리라.” 하거늘, 이업이 생전의 기력을 다하여 그 소년을 잡으니, 그 소년이 몸을 돌아앉으며 이르되,

“장사로다. 이만하면 홍길동 잡기를 염려하지 아니하리로다. 그 도적이 지금 이 산중에 있으니 내 먼저 들어가 탐지하고 올 것이니 그대는 이 곳에 있어 내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거늘, 이업이 허락하고 그 곳에 있더니, 문득 사방에서 귀신 같은 무리가 일시에 달려들어,

“네 포도대장 이업인다. 우리 지부대왕의 명을 받아 너를 잡으러 왔노라.” 하고, 일시에 달려들어 철쇄로 묶어 가니, 이업이 혼불부신하여 지하인지 인간인지 모르고 가더니, 경각에 한 곳에 이르니 의희한 곳이더라.

“네 감히 활빈당 장수 홍길동을 수히 보고 잡기로 자당할다. 홍장군이 하늘의 명을 받아 팔도에 다니며 탐관오리와 비리로 취하는 놈의 재물을 빼앗아 불쌍한 백성을 구휼하거늘, 너희 놈이 나라를 속이고 임금으로 하여금 원망을 듣게 하니 그 죄 어찌 작다 하리요.” 하고, 이르되,

“이업을 잡아 풍도에 부쳐 영불출세케 하라.” 하니, 이업이 머리를 땅에 두드리며 사죄하여 이르되,

“과연 홍장군이 각 읍에 다니며 작난하여 민심을 소동케 하시매 국왕이 진노하시기로 신자의 도리에 앉아있지 못하와 발포차로 명을 받들어 나왔사오니 인간에 무죄한 목숨을 안서하옵소서.” 무수히 애결하니, 좌우 제인이 가련히 여겨 이업을 놓아주며, 이르되,

“그대 머리를 들어 날을 보라. 나는 곧 주점에서 만났던 사람이요, 그 사람은 곧 홍길동이라. 그대 같은 이는 수만 명이라도 나를 잡지 못할지라. 그대를 유인하여 이리 오기는 우리 위엄을 보이게 함이어니와 그대가 이미 온 이상 살아 돌아가리라.”

“너희를 일병 베일 것이로대 이위 이업 살려 돌려보내기로 너희도 방송하나니, 돌아가 이후에는 다시 홍장군 잡기를 생각하지 말라.” 하니, 이업이 그제야 인간인 줄 알아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를 숙여 잠자코 나오더라.

“나는 어떠한 소년에게 속아서 이러이러 하였거니와 너희는 어찌 된 연고냐?” 물으니, 그 군사들이 서로 웃으며 이르되,

“소인 등은 아무 주점에서 자옵더니 어찌하여 이 곳에 이른 줄 알지 못하나이다.” 하고, 사면을 살펴보니 장안 북악 일대라. 이업이 이르되,

“허망한 일이로다. 삼가 발구치 말라.” 하더라.

이적에 길동의 수단이 신출귀몰하여 팔도에 횡행하되 능히 알 자 없는지라. 수령의 간상을 적발하여 어사로 출도하여 선참후계하며, 각 읍 진공 뇌물을 낱낱이 탈취하니 장안 백관이 구차하기 막심하더라. 혹 초헌을 타고 다니되 아무도 잡지 못하고, 조정에서 올리는 장계에 이르되,

“신이 듣사오니 도적 홍길동은 전 승상 홍모의 서자라 하오니, 이제 홍모를 가두시고, 그 형 이조판서 길현으로 경상감사를 보위하옵셔 날을 정하여 그 서제 길동을 잡아 바치라 하오면, 제 아무리 불충무도한 놈이나 형이 죄를 당하는 것을 보고 어찌 나서지 아니하오리까.” 상이 옳게 여기사 즉시 거행하시니라.

이적에 홍승상이 길동이 한번 떠난 후로 소식이 없어 거처를 모르며 내심에 무슨 일이 있을까 염려하시더니, 천만 몽매 밖에 길동이 나라 도적이 되어 이렇듯 작난하매, 놀라운 마음이 어찌 할 줄 모르고, 이 사연이 이미 천하에 낭자하니 명공거경으로 남의 이목이 부끄러워 두문불출하시더니, 이윽고 조명을 받아 투옥하시더라.

판서가 궐하에 나아가 대죄하니 상이 이르시되,

“경의 서제 길동이 나라의 도적이 되어 범남함이 이 같으니 그 죄를 의논하면 마땅히 연좌할 것이로되 고위안서하나니, 이제로 경상도에 내려가 길동을 잡아 홍씨 일문의 환을 면케 하라.” 하시니, 길현이 부복하여 아뢰되,

“천한 동생이 일찍 사람을 죽이고 도망하여 나갔사매 종적을 모르옵더니, 이렇듯 중죄를 지으니 신의 죄 마땅히 벨 즉 하오며, 신의 아비 나이 팔십에 천한 자식이 나라의 도적이 되었사매, 이로 병이 더하여 내당에 누웠사오니 이 정경이 오죽하오리까.” 하고 울며 하직하더라.

“대범 사람이 세상에 나매 오륜이 있으니 오륜 중에 군부가 으뜸이라. 사람 되고 오륜을 버리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니, 이제 너는 지혜와 식견이 범사람보다 더하되 이를 모르니 어찌 애답지 아니하리요. 우리 세대로 국은을 입어 자자손손 녹을 받으니 망극한 마음에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 보답하더니, 우리에게 미쳐서는 너로 말미암아 역명을 장차 어느 곳에 미칠 줄 모르게 되니 어찌 한심타 뿐이며, 난신과 역적이 어느 때 없으리요마는 우리 문호에서 날 줄은 진실로 뜻하지 못하였도다. 네 죄목을 전하 진노하시니 마땅히 극형을 행하실 것이로되, 가지록 성은이 망극하사 죄를 더하지 아니하시고 날을 명하사 너를 잡으라 하옵시니 망극한 마음 도리어 황공하며, 팔십 노친이 백수 모년에 너로 하여금 주야 우려하시던 중에 네 이렇듯 변괴를 지어 죄를 나라에 얻으니 놀라신 마음이 병이 되어 이제 눕고 장차 일어나지 못하게 되시니, 부친 만일 너로 인하여 세상을 버리시면 네 살아서도 역명을 입고, 죽어 지하에 간들 천추만대에 불충불효지죄를 유전할지라. 이제 마땅히 천명을 순순히 따라 조정 처분을 기다릴 뿐이니 또 어찌하리요. 네 일찍 돌아오기를 바라노라.” 하시니, 길동이 이르되,

감사 도임 후에 공사를 폐하고, 전하의 근심과 부친의 병세를 염려하여 수심으로 날을 보내며 항여 길동이 올까 바라더니, 하루는 하인이 아뢰되,

“어떠한 소년이 밖에 와 통재한다.” 하거늘, 즉시 마져 들이니, 그 사람이 섬 위에 엎드려 죄를 청하는지라. 감사 고이히 여겨 그 연고를 물으니, 대답하여 이르되,

“형장은 어찌 소제 길동을 모르시나이까?” 하거늘, 감사 경희 중에 나서 길동의 손을 잡고 이끌어 방에 들어와 좌우를 치우고 한숨 지으며 이르되,

“이 무상한 아이라. 네 어려서 집을 떠난 후에 이제야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도리어 슬프도다. 네 저러한 풍도와 재주로 어찌 이렇듯 불측한 일을 즐겨하여 부형의 은애를 끊게 하느냐. 향곡의 우미한 백성들도 임금께 충성하고 아비에게 효도할 줄 아는지라. 너는 성정이 총명하고 재주 높아 범인과 크게 다르니 마땅히 더욱 충효를 숭상할 사람으로서 몸을 그릇된 데 버려 충효에 당하여는 범인만도 못하니 어찌 한심치 아니하리요. 그 부형 되는 자 그같이 고명한 자제를 두다 하여 심독희재러니 도리어 부형에게 근심을 끼치느냐. 네 이제 충의를 취하여 사지에 돌아가도 그 부형은 애처로운 마음이 있을지라. 하물며 역명을 무릅쓰고 죽게 되니 그 부형의 마음이야 다시 어떠하랴. 국법이 사정이 없으니 아무리 구원코자 하여도 어찌 못하고 위하여 서러워한들 무슨 효험이 있으랴. 너는 부형의 낯을 보와 죽기를 감심하고 왔으나, 나는 두렵고 비척한 마음이 너 아니 본 때에서 더한지라. 너는 네 지은 죄니 하늘과 사람을 원망치 못하여도, 부친과 나는 목전에 너를 죽이는 줄로 명도를 탓할 뿐이라. 네 어찌 이를 깨닫지 못하고 이렇듯 범람한 죄를 지었느냐. 천추를 역수하여도 생리사별이 오늘 밤에 빛이 못하리로다.” 길동이 부복하여 이르되,

“이 불초한 동생 길동이 본래 부형의 훈계를 듣지 말고자 함이 아니오라, 팔자 기박하여 천생 됨을 평생 한일 뿐더러 가중에 시기하는 자가 있어 보전치 못하매, 몸을 산림에 붙쳐 초목과 함께 늙자 하였더니, 천만 몽매 밖에 몸이 적굴에 떨어지매 이미 활빈당 두목이 되었사오니, 이로부터 이러이러한 연유가 있었나이다.” 하고 전후 사연을 고하니, 감사 눈물을 흘리더라.

이적에 팔도에서 다 각기 길동을 잡았노라 장문하고 나라에 올리니, 사람마다 의혹하고 도리 분주하여 구경하는 사람이 길이 메어 그 수를 알지 못하더라.

전하가 친히 임하사 여덟 길동을 국문하실새, 여덟 길동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네가 무슨 길동인다? 내가 참 길동이로다.” 하고, 서로 팔을 붙잡으며 한데 어우러져 구르니, 도리어 일장 구경이더라. 만조 제신이며 좌우 나장이 그 진위를 알지 못하는지라. 제신이 아뢰되,

“지자는 막여부오니, 이제 홍모를 패초하사 그 서자 길동을 아라드리라 하옵소서.” 상이 오래 여기사 즉시 홍모를 부르시니, 승상이 조명을 받아 부복하니, 상이 이르시되,

“경이 일찍 한 길동을 두었다 하더니 이제 여덟이 되었으니 어찌 된 연고인지 경이 자세히 가려내어 형소를 착란케 말라.” 하시니, 승상이 슬피 울며 아뢰되,

“신이 행실을 지키지 못하와 천첩을 가까이한 죄로 천한 자식을 두어 전하의 근심이 되옵고 조정이 분운하오니 신의 죄 만 번 죽어도 마땅하나이다.” 하며, 백수에 눈물이 이음차 길동을 꾸짖어 이르되,

“네 아무리 불충불효한 놈이라도 위로 성상이 친임하시고, 버금 아래로 아비 있거늘, 지척 천위하에 군부를 기롱하니 불측한 죄 더욱 큰지라. 빨리 형벌에 나아가 천명을 순수하라. 만일 그러치 아니하면, 네 비록 내 자식이나 이제 인연을 끊겠노라.” 하시니, 여덟 길동이 어찌 할 줄 모르더라.

“신의 천자 길동은 왼편 다리에 붉은 점 일곱이 있사오니 이를 증험하와 적발하옵소서.” 하니, 여덟 길동이 일시에 다리를 걷고 일곱 점을 서로 자랑하는지라. 승상이 그 진위를 가리지 못하고 우구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인하여 기절하거늘, 상이 놀라사 급히 좌우를 명하여 구완하시되 회생할 기미 없더니, 여덟 길동이 각기 낭중에서 대추 같은 환약 두 개씩 내어 서로 다투어 승상의 입에 넣으니, 이시 후에 회생하는지라. 여덟 길동이 울며 아뢰되,

“신의 팔자 무상하와 홍모의 천비의 배를 빌려 났사오매, 아비와 형을 임으로 부르지 못하옵고, 겸하여 가중에 시기하는 자가 있어 보전치 못하매, 몸을 산림에 붙쳐 초목과 함께 늙자 하였더니, 천만 몽매에 몸이 적굴에 떨어지매 이미 무리의 두목이 되어 이런 짓을 하였나이다. 그러나 소신이 아무 백성의 재물도 취하지 아니하고, 다만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불쌍한 백성을 구제하옵고, 또한 군기와 병량은 잠시 빌린 것이니 이를 죄라 하오면 심히 억울하나이다.”

“네 무고한 재물은 취치 아니 한다 하면, 합천사 중을 속이고 그 재물을 도적하고, 또 능소에 불을 놓고 군기를 도적하니 이만 큰 죄 또 어디 있느냐.” 길동 등이 엎드려 아뢰되,

“불도라 하는 것이, 세상을 속이고 백성을 혹하게 하여, 갈지 아니하고 백성의 곡식을 취하며, 짜지 아니하고 백성의 의복을 속여, 부모의 머리털을 상하여 오랑캐 모양을 숭상하며, 군부를 버리고 부세를 피하는 것이라. 이는 나라에 해가 될 뿐 아니라 실로 국법을 어김이니, 죄를 논함에 마땅히 별지라 하나이다.” 하고, 여덟 길동이 한데 어우러져 죽으매, 좌우가 괴이히 여겨 자세히 보니, 참 길동은 간 데 없고 짚으로 만든 초인 일곱뿐이러라. 상이 길동의 기망한 죄에 크게 노하시어, 경상감사에게 조서를 내리시어 길동 잡기를 더욱 재촉하시니라.

이적에 경상감사 길동을 잡아 올리고 심회 둘 곳이 없어 공사를 전폐하고 경사 소식을 기다리더니, 문득 교지를 내렸거늘, 북궐을 향하여 사배 후에 택견하니, 교지에 이르시되,

“길동을 잡지 아니하고 초인을 보내어 형부를 착란케 하니 허망 기군지죄를 면치 못할지라. 아직 죄를 의논하지 아니하나니 십일 내로 길동을 잡으라.” 하시고 사례하는 뜻으로 엄절하게 이르시니라. 감사 황공무지하여 사방에 지위하더니, 하루는 길동이 방문하매 감사 왈,

“네 갈수록 죄를 키워 끝내 화를 일문에 끼치고자 하느냐. 지금 나라에서 엄명이 막중하시니 너는 나를 원치 말고 일찍 천명을 순수하라.” 길동이 부복하여 대답하였다.

“형장은 염려하지 마르시고 명일 소제를 잡아 보내시되, 장교 중에 부모와 처자 없는 자를 가려내어 소제를 압령하시면 좋은 모책이 있나이다.” 감사 그 연고를 알고자 하는데, 길동이 대답하지 아니하니 감사 그대로 거행하더라.

“길동이 문안에 들거든 일시에 총을 놓아 잡으라.” 분부하니라.

이적에 길동이 풍우같이 자피여 오더니 어찌 이 기미를 모르리요. 동작이를 건너며 부적을 세 장 써 공중에 날리니 총구를 막더라. 길동이 남대문 안에 드니 좌우의 포수 일시에 총을 놓으되 총구에 물이 가득하여 하릴없이 설계치 못하더라.

“너희 나를 영거하여 이곳까지 왔으니 그 죄 죽기는 아니하리라.” 하고, 몸을 날려 수레 아래 내려 완완이 걸어 가는지라. 오군문 기병이 말을 달려 길동을 쫓으려 하되, 길동은 한양으로 가고 말은 아무리 채쳐 몰아도 한 걸음도 따르지 못하더라.

“홍길동의 평생 소원이 병조판서오니 전하 하해 같은 은택을 드리우사 소신으로 병조판서 유지를 주시면 신이 스스로 자피이다.” 하였더라. 이 사연을 묘당에서 의논할새, 혹자는 이르되,

“제의 원을 풀어주어 백성의 마음을 안돈하자.” 하고, 혹자는 이르되,

“제 무도 불충한 도적으로 나라에 촌철지공은커녕 오히려 만민을 소동케 하고 성상의 근심을 끼치는 놈을 어찌 일국 대사마를 주리요.” 하여 의논이 분운하여 결단치 못하였더니.

하루는 동대문 밖 유벽한 처에 가서 육갑 신장을 호령하여 진세를 일위라 하니, 이윽고 두 집사 공중으로서 내려와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고 좌우에 서니, 난데없이 천병만마 아무 곳으로부터 오는 줄 모르되, 일시에 진을 일우고 진중에 호령 소리 뇌성 같더라.

“조정에서 길동을 참소하는 자의 심복을 잡아 들이라.” 하니, 신장이 영을 듣고 이윽한 후에 십여 인명을 철사로 결박하여 드리니, 비건대 소뢰기가 병아리 잡아오는 모양이더라. 단하에 끌어내려 수죄하여 이르되,

“너희는 조정의 좀이 되어 나라를 속여 끝내 홍길동 장군을 해코자 하니, 그 죄 마땅히 베일 것이로되 인명이 가긍하기로 안서하노라.” 하고 각각 군문 곤장 삼십 도씩 쳐 내치니 겨우 죽기를 면하더라. 길동이 이르되,

“내 몸이 조정에 처하여 법을 자받으면 먼저 불법을 없애어 각 도 사찰을 훼폐하려더니, 이제 오래지 아니하여 조선국을 떠날지라. 그러나 부모국이라 만 리 타국에 있어도 잊지 못할지라. 이제로 각 사에 가 혹세무민하는 중놈을 일제히 잡아오고, 또한 장안 재상가의 자식이 세를 끼고 간약한 백성을 속여 재물을 취하고 불의한 일이 많으며 마음이 교만하되 심처에 가려 쳐다보지 못하게 하고, 간신이 나라의 좀이 되어 성상의 총명을 가리우니 가히 한심한 일이 허다한지라. 장안의 호당지도를 낱낱이 잡아들이라.” 하더라.

“너희는 다시 세상을 보지 못하게 할 터이로되, 내 몸이 나라의 조명을 받아 국법을 자분한 바 아니기로 고위안서하거니와, 이후에 만일 고치지 아니하면 너희 비록 수만 리 밖에 있어도 잡아다가 베리라.” 하고 엄히 분부하여 내치더라.

길동이 우양을 잡아 군사를 호궤하고 진용을 정제하여 훤화를 금단하니, 창천만리에 백일이 고요하고, 팔진 풍운에 호령이 엄숙한지라. 길동이 술을 나누어 반취한 후에 칼을 잡아 춤을 추니, 검광이 분분하여 햇빛을 가리는지라.

이후로는 다시 길동을 잡는 영이 더욱 급하되 종적을 보지 못하고, 길동은 적군을 보내어 팔도에서 장안으로 가는 뇌물을 빼앗아 먹으며, 불쌍한 백성이 있으면 창곡을 내어 진휼하여 신출귀몰하는 재주를 사람마다 말하더라.

“이 놈의 재주는 인력으로 잡지 못할지라. 민심이 이렇듯 요동하고 그 인재 기특한지라. 차라리 그 재주를 취하여 조정에 두리라.” 하시고, 병조판서 직첩을 내어 걸고 길동을 부르시니, 길동이 초헌을 타고 입궐하여 성은에 감사하며 이르되,

“천은이 망극하와 분외의 은택이 대사마에 오르오니 망극하온 신의 마음이 성은을 만분지 일도 갚지 못할까 황공하나이다.” 하고 돌아가더니, 이후로는 길동이 다시 작난하는 일이 없는지라. 각 도의 길동이라 일컫던 자가 일시에 자피어 나오니 모두 허수아비더라.

삼 년 후에 상이 월야를 당하사 환자를 거느리시고 월색을 구경하시더니, 하늘로서 한 선관이 오운을 타고 내려와 부복하는지라. 상이 놀라사 이르시되,

“귀인이 누지에 임하여 무슨 허물을 이르고자 하나이까?” 하신대, 그 사람이 아뢰되,

“소신은 전 병조판서 홍길동이로소이다.” 상이 놀라사 길동의 손을 잡으시고 이르시되,

“그대 그간은 어디를 갔던요?” 길동이 아뢰되,

“산중에 있었사옵더니, 이제는 조선을 떠나 다시 전하 뵈올 날이 없사오매 하직차로 왔사오며, 전하의 너부신 덕택에 정조 삼천 석만 주시면 수천 인명이 살아나겠사오니 성은을 바라나이다.” 상이 허락하시고 이르시되,

“네 고개를 들라. 얼굴을 보고자 하노라.” 길동이 얼굴을 들고 눈은 뜨지 아니하여 이르되,

“신이 눈을 뜨면 놀라실까 하여 뜨지 아니하나이다.” 하고, 이윽히 모셨다가 구름을 타고 가며 하직하여 이르되,

“전하의 덕하에 정조 삼천 석을 주시니 성은이 가이록 망극하신지라. 정조를 명일 서강으로 수운하여 주옵소서.” 하고 가는지라. 상이 공중을 향하여 이윽히 바라시며 길동의 재주를 못내 차석하시고, 이튿날 대신에게 분부하여 서강에 정조 삼천 석을 수운하시니, 길동이 그 정조를 받아 배에 싣고 가더라.

이날 길동 삼천 적군을 거느려 망망대해로 떠가더니, 성도라 하는 도중에 이르러 창고를 짓고 궁실을 지어 안돈하고, 군사로 하여금 농업을 심쓰고, 각국에 왕래하여 물화를 통하며, 무예를 숭상하여 병법을 가르치더라.

하루는 길동이 제군에게 분부하여 이르되,

“내 망당산에 들어가 살촉의 발을 고칠 약을 캐어 오리라.” 하고 떠나 낙천현에 이르니, 그 땅에 만석꾼 부자 있으되 성명은 백능이라. 남자 없고 일찍 한 딸을 두었으니, 덕용이 겸전하여 침어낙안지상이요 폐월수화지태라 사방에 소문이 자자한지라. 능이 방을 내어 이르되,

“아무 사람이라도 자식의 거처를 알아 지시하면 인하여 사위를 삼고 가산을 반분하리라.” 하더라.

이적에 길동이 망당산에 들어가 약을 캐더니, 날이 저문 후에 방황하며 향할 바를 알지 못하더니, 문득 한 곳을 바라보니 불빛이 비치며 여러 사람의 떠드는 소리 나거늘, 반겨 그 곳으로 찾아가니 수백 무리가 음식을 먹으며 즐기더라. 문득 한 군사가 앞을 막고 이르되,

“그대 어떠한 사람이기에 이 곳에 왔느뇨?” 길동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조선국 사람으로 이 산중에 약 캐러 왔다가 길을 잃고 이 곳에 왔노라.” 하니, 그 짐승이 반기는 빛이 있어 이르되,

“그대 능히 의술을 아느냐? 우리 대왕이 새로이 미인을 얻고 어젯날 잔치하며 즐기더니, 난데없는 화살이 들어와 우리 대왕의 가슴을 맞쳐 지금 사경에 이르렀는지라. 오늘날 다행이 그대를 만났으니 만일 의술을 알아 우리 대왕을 살리면 후히 사례하리라.” 길동이 이르되,

“내 비록 편작의 재주는 없거니와 좀체 병에는 의심하지 아니하노라.” 하니, 그 군사 크게 기뻐하여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윽하여 청하거늘, 길동이 들어가 좌정 후에 그 장수 짐승이 신음하며 이르되,

“복의 명이 조모를 보전하지 못할러니 천우신조하사 선생을 만나오니 선약을 가르쳐 잔명을 구제하옵소서.” 길동이 그 상처를 살피고 이르되,

“이는 어렵지 아니한 병이라. 내게 좋은 약이 있으니 한 번 먹으면 비단 상처에 이할 뿐 아니라 백병이 소제하고 장생불사하리라.” 하였는데, 을동이 대희하여 이르되,

“복이 스스로 몸을 삼가지 못하여 자취지환을 당하여 명이 황천에 돌아가게 되었삽더니 천우신조하사 명의를 만났사오니, 선생은 급히 선약을 시험하소서.” 길동이 금낭을 열고 약 한 봉을 내어 술에 타서 주니, 을동이 먹고 이내 벌떡 일어나더니, 문득 얼굴빛이 변하며 이르되,

“내가 너와 더불어 원수 진 일이 없거든 무슨 일로 나를 해하여 죽이려 하느냐?” 하며, 제 동생 등을 불러 이르되,

“천만 몽외에 흉적을 만나 명을 끊치게 되니 너희 등은 이놈을 놓치 말고 내 원수를 갚으라.” 하고 이내 죽으니, 모든 을동이 일시에 칼을 들고 내달아 꾸짖어 이르되,

“내 형을 무슨 죄로 죽이느냐. 네 칼을 받으라.” 하거늘, 길동이 냉소하여 이르되,

“제 명이 그뿐이라. 내 어찌 죽였으리요.” 하는데, 을동이 대로하여 칼을 들어 길동을 치려하거늘, 길동이 대적코자 하나 손에 척촌지검이 없어 사세 위급하매 몸을 날려 공중으로 달아나니, 을동이 본대 오랜 요귀라 풍운을 부리고 조화 무궁한지라. 무수한 요귀 바람을 타 올라오니, 길동이 하릴없어 육정육갑을 부르니, 문득 공중으로 좇아 무수한 신장이 내려와 모든 을동을 결박하여 땅에 꿇이니, 길동이 그놈의 칼을 빼앗아 무수한 을동을 다 베고, 바로 들어가 여자 삼인을 죽이려 하니,

“첩 등은 요귀 아니요, 불행하여 요귀에게 잡히어 와 죽고자 하나 틈을 얻지 못하여 죽지 못하였나이다.” 길동이 그 여자의 성명을 물으니, 하나는 낙천현 백능의 여자요, 또 두 여자 정통 양인의 여자라.

“은혜를 갚을 길이 없으니 각각 여자로 시첩을 허하나이다.” 길동이 나이 이십이 되도록 봉황의 짝을 모르다가 일조에 삼 부인 숙녀를 만나 친근하니 은정이 교칠하여 비할 데 없더라. 백능 부체 사랑하기로,

이내 길동이 삼 부인과 백능 부체이며 일가 제족을 다 거느리고 섬도로 들어가니, 모든 군사 강변에 나와 마져 원로에 평안히 행차하심을 위로하고, 호위하여 섬도 중에 들어와 대연을 배설하고 즐기더라.

세월이 여류하여 섬도에 들어온 지 거의 삼 년이라. 하루는 길동이 월색을 사랑하여 월하에 배회하더니, 문득 천문을 살피고 그 부친 졸하실 줄을 알고 길이 통곡하니, 백씨 물어 이르되,

“낭군이 평생 서러움이 없더니 오늘 무슨 일로 낙루하시나이까?” 길동이 탄식하여 이르되,

“나는 천지간 불효자라. 내 본대 이곳 사람이 아니라 조선국 홍승상의 천첩 소생이라. 집안에 천대 자심하고 조정에도 참예치 못하매, 장부 울희를 참지 못하여 부모를 하직하고 이곳에 와 은신하였으나, 이제 천문을 보니 아버님이 돌아가셨도다. 불효한 자식이 임종에도 뵙지 못하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요.” 하며 구슬피 통곡하더라.

이때에 길동이 군사를 거느리고 일봉산에 들어가 산기를 살펴 명당을 정하고, 날을 가려 역사를 시작하여 좌우 산곡과 분묘를 능과 같이 하고 돌아와 모든 군사를 불러 이르되,

“모월 모일 대선 한 척을 준비하여 조선 서강에 와 기다리라.” 하고,

“부모님을 모셔 올 것이니 미리 알아 거행하라.” 하였는데, 모든 군사 청령하고 물러가 거행하니라. 이날 길동이 백씨와 정통 양인을 하직하고 소선 일척을 재촉하여 조선으로 향하니라.

각설. 이때에 승상이 나이 아흔에 졸연 득병하여 구월 망일 더욱 중하여 부인과 장자 길현을 불러 이르되,

“내 나이 구십이라. 이제 죽은들 무슨 한이 있으리이마는, 길동이 비록 천첩 소생이나 또한 내 골육이라. 한번 문외에 나매 존망을 알지 못하고 임종에 상면하지 못하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요. 나 죽은 후에 만일 길동이 들어오거든 천비 소생으로 알지 말고 동복 형제같이 하여 부모의 유언을 저버리지 말라.” 하시고, 또 길동의 모를 불러 가까이 앉으라 하며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려 이르시되,

“내 너를 잊지 못함은 길동이 나간 후에 소식이 돈절하여 사생존망을 모르니 내 마음에 이같이 사렴이 간절하거든 네 마음이야 더욱 헤아리랴. 길동은 녹록한 인물이 아니라 만일 살았으면 너를 저버리지 아니하리라. 부디 몸을 가부이 버리지 말고 안보하여 좋이 지내라. 내 황천에 돌아가도 눈을 감지 못하리로다.” 하시고 인하여 별세하시니, 부인이 기절하시고 좌우가 다 망극하여 곡성이 진동하더라. 길현이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이 비오듯 하며, 부인을 붙들어 위로하여 진정하신 후에 초상 등절을 예로써 극진히 차리니라.

이내 졸곡 후에 명산지지를 구하여 안장하려 하고, 각처에 사람 놓아 여러 지관을 데리고 산지를 사방으로 구하되 마땅한 곳이 없어 근심하더니, 이적에 길동이 서강에 다달아 배에 내려 승상댁에 이르러 바로 길현을 찾으니라.

“네 어려서 집을 떠나 이제야 들어오니 석사를 생각하면 도리어 창괴한지라. 그러나 네 그 사이 삼사 년은 종적을 아주 끊어 어디로 갔던다? 대감이 임종 시 말씀이 이러이러 하시고 너를 보지 못함을 한하시더라.” 하거늘, 길동이 부복하여 이르되,

“소제 그간은 산중에 은거하여 지리를 잠심하와 대감의 말년 유택을 정한 곳이 있었삽더니, 아지 못게라, 이미 소점이 있었나이까.” 그 형이 이 말을 듣고 더욱 반겨 아직 정치 못한 말을 설화하더라.

“이 곳이 소제의 정한 땅이로소이다.” 길현이 사면을 살펴보니, 중중한 석각이 험악하고, 누루한 고총이 수없는지라. 심내에 불합하여 이르되,

“소제의 높은 소견은 알지 못하되 내 마음은 이 곳에 모실 생각이 없으니 다른 땅을 점복하라.” 길동이 거짓 탄식하여 이르되,

“이 땅이 비록 이러하오나 누대 장상지지임만은 형장의 소견이 불합하오니 개탄이로이다.” 하고, 도채를 들어 수 적을 파하니, 오색 기운이 일며 청학 한 쌍이 날아가는지라. 그 형이 이 거동을 보고 크게 뉘우쳐 이르되,

“우형의 소견 절언 대지를 잃으셨으니 어찌 애답지 아니하리요. 바라나니 다른 땅이 없느냐?” 길동이 이르되,

“여기서 한 곳이 있어도 길이 수천 리라 그로 염려하나이다.” 길현이 이르되,

“이제 수만 리라도 부모의 백골이 평안할 곳이 있으면 그 원근을 취사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는데, 길동이 함께 집에 돌아와 그 말씀을 설화하니, 부인이 못내 애달파 하시더라.

날을 가려 대감 영위를 모시고 도중으로 향할새, 길동이 부인께 여쭈오되,

“소자 돌아와 모자지정을 다 펴지 못하옵고, 또한 대감 영위의 조석 공향이 난처하오니, 어미와 함께 이번 길에 함귀함이 좋을까 하나이다.” 부인이 허락하시거늘, 즉일 발행하여 서강에 다다르니 도중 사람들이 일시에 강변에 나와 맞으며, 대연을 베풀어 원로에 수고하셨음을 위로하더라.

“형장은 의심하지 마옵소서. 이 곳은 조선 사람이 출입하는 곳이 아니하며 그 자식 되는 자가 부모를 후장하여서 죄될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안장 후에 도중에 돌아와 수 월 머물더니, 그 형이 고향을 돌아가고자 하거늘, 길동이 길을 차릴새, 이별을 고하여 이르되,

“형장을 다시 보올 날이 막연하온지라. 어미는 이미 이 곳에 왔사오니 모자 정리에 차마 떠나지 못하오며, 형장은 대감을 생전에 모셨사오니 한할 바 없는지라, 사후 향화는 소제가 받들어 불초한 죄를 만분지 일이나 속하오리이다.” 하고 눈물을 흘리더라. 길현이 이르되,

“슬프도다. 이별이 오래리라. 소제는 내 사정을 살펴 상전에 대감 산소를 다시 보게 하라.” 하며 하염없이 눈물이 옷깃을 적시는지라. 길동이 또한 눈물 지으며 이르되,

“형장은 고국에 돌아가와 부인을 모시고 만세무강하옵소서. 다시 모일 기약을 정하지 못하오니, 남북 수천 리에 나뉘어 강금에 이불이 차고, 척영에 날이 고단하매, 속절없이 북으로 가는 기러기를 탄식하며, 동으로 흐르는 물에 회포를 부치오이다.” 하고 서로 하직하더라.

차설. 길동이 그 형을 이별 후에 제군을 권하여 농업을 심쓰고 군법을 일삼으며 그럭저럭 삼 년 초토를 지내매, 양식이 넉넉하고 수만 군졸이 무예와 기보하는 법이 천하에 최강하더라. 근처에 한 나라이 있으니 이름이 율도국이라. 산천이 수려하고 인물이 번성하며, 토지가 기름지고 풍속이 순후하며, 또한 왕이 어질어 군왕의 도리가 있더라. 길동이 제인에게 이르되,

“우리 어찌 이 도중만 지키어 세월을 보내리요. 이제 율도국을 치고자 하나니, 각각 소견에 어떠하뇨?” 제인이 즐겨 원치 아니할 이 없는지라. 즉시 택일 출사할새, 삼호걸로 선봉을 삼고, 김인수로 후군장을 삼고, 길동이 스스로 대원수 되어 중영을 총독하니, 기병이 오천이요 보졸이 이만이라. 금고 함성은 강산이 진동하고, 기치검극은 일월을 가리웠더라. 군사를 재촉하여 율도국으로 향하니, 이른 바 당할 자 없어 단사호장으로 문을 열어 항복하는지라. 수 월 지간에 칠십여 성을 정하니 위엄이 일국에 진동하는지라. 도성 오십 리 밖에 진을 치고 율도왕에게 격서를 전하니, 그 글에 하였으되,

“의병장 홍길동은 삼가 글월을 율도왕 좌하에 드리나니, 나라는 한 사람이 오래 지키지 못하는지라. 이런 고로 성탕은 하걸을 치고, 무왕은 상주를 내치시니, 다 백성을 위하여 난대를 평정하는 바라. 이제 과인이 율도국을 취하고자 하니,”

“백성을 위하여 수히 항서를 올리면 일방 봉작으로 사직을 망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이적에 율도왕이 뜻밖에 이름 없는 도적이 칠십여 주를 항복받으매, 향하는 곳마다 당적지 못하고 도성을 범하매, 비록 지혜 있는 신하라도 위하여 꾀하지 못하더니, 문득 격서를 드리매 만조 제신이 아무리 할 줄 모르거늘, 한 신하가 아뢰되,

“이제 도적의 대세를 당하지 못할지라. 싸우지 말고 도성을 굳이 지키고, 기병을 보내어 그 치중 군량 수운하는 길을 막으면, 적병이 나와서 싸움을 얻지 못하고, 또 물러갈 길이 없사오면, 수 월이 못하여 적장의 머리를 얻으리이다.” 하였는데, 파수하는 군사가 급히 아뢰되,

“적병이 벌써 도성 십 리 밖에 진을 쳤나이다.” 율도왕이 대분하여 정병 십만을 조발하여 친히 대장이 되어 삼군을 재촉하여 호수를 막아 진을 치니라.

이적에 길동이 형지를 수탐한 후에 제장과 의논하여 이르되,

“명일 오시면 율도왕을 사로잡을 것이니 군령을 어기지 말라.” 하고, 제장을 분발할새, 삼호걸을 불러 이르되,

“그대는 군사 오천을 거느려 양관 남편에 복병하였다가 호령을 기다려 이러이러 하라.” 하고, 후군장 김인수를 불러 이르되,

“그대는 군사 이만을 거느려 양관 우편에 매복하였다가 호령을 기다려 이러이러 하라.” 하고, 또 좌선봉 맹춘을 불러 이르되,

“그대는 철기 오천을 거느려 율왕과 싸우다가 거짓 패하여 왕을 인도하여 양관으로 달아나다가 추병 양관 어귀에 들거든 이러이러 하라.” 하고, 대장 기치와 백모황월을 주니라. 이튿날 평명에 맹춘이 진문을 열고 나아가 꾸짖어 이르되,

“무도한 율도왕이 감히 천명을 항거하니 날을 당적할 재주 있거든 빨리 나와 자웅을 결단하라.” 하며, 진문에 달려들며 재주를 뽐내니, 적진 선봉 한석이 위엄 있게 말을 몰고 나서며 이르되,

“너희는 어떠한 도적으로 천위를 모르고 태평 시절을 불란케 하느냐? 오늘날 너희를 사로잡아 민심을 안돈하리라.” 하고, 말을 마치자 양장이 합전하여 싸우더니, 수 합이 못하여 맹춘의 칼이 빛나며 한석의 머리를 베어 높이 들고 꾸짖어 이르되,

“율왕은 무죄한 장졸을 상하지 말고 수히 나와 황복하여 잔명을 보전하라.” 하니, 율왕이 선봉 패함을 보고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녹색 도포와 구름무늬 갑옷에 자금 투구를 쓰고, 좌수에 방천극(긴 창)을 들고, 절리대완마를 재촉하여 진전에 나서 크게 꾸짖어 이르되,

“적장은 잔말 말고 내 창을 받으라.” 하고, 급히 맹춘을 취하여 싸우니, 십여 합에 맹춘이 패하여 말머리를 돌려 양관으로 향하니, 율도왕이 꾸짖어 이르되,

“적장은 달지 말고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말을 재촉하여 맹춘 따라 양관으로 가더니, 적장이 골 어귀에 들며 군기를 버리고 산골로 달아나는지라. 율도왕이 무슨 간계 있는가 의심하다가 이르되,

“네 비록 간사한 꾀가 있으나 내 어찌 겁하리요.” 하고, 군사를 호령하여 급히 따르더니, 이적에 길동이 장대에서 보다가 율도왕이 양관 어귀에 듦을 알고 신병 오천을 호령하여 대군과 합세하여 양관 어귀에 팔진을 쳐 돌아갈 길을 막으니라. 율도왕이 적장을 좇아 골에 드매 방포 소리 나며 사면 복병이 합세하여 그 세 풍우 같은지라. 율도왕 꾀여 싸진 줄 알고 세 궁하여 군사를 돌려 나오더니, 양관 어귀에 미치니 길동의 대병이 길을 막아 진을 치고 항복하라 하는 소리 천지 진동하는지라. 율왕이 심을 다하여 진문을 헤치고 들어가니, 문득 풍우 대작하고 뇌성벽력이 진동하며 지척을 분별치 못하여 군사 크게 어지러워 갈 바를 모르더니, 길동이 신병을 호령하여 적장과 군졸을 일시에 결박하였는지라. 율왕이 아무 할 줄 모르고 크게 놀라 급히 헤친들 팔진을 어이 벗어나리요. 필마단창으로 동서를 모르고 횡행하더니, 길동이 제장을 호령하여 결박하라 하는 소리 추상 같은지라. 율왕이 사면을 살피니 군사 하나도 따르는 자 없으매, 스스로 벗어나지 못할 줄 알고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자결하는지라.

길동이 삼군을 거느려 승전고를 울리며 본진으로 돌아와 군사를 호궤한 후에 율도왕을 왕례로 장사하고, 삼군을 재촉하여 도성을 에워싸니, 율도왕의 장자 흉변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이내 자결하니, 제신이 할 일 없어 율국 새수를 받들어 항복하는지라. 길동이 대군을 몰아 도성에 들어가 백성을 진무하고, 율왕의 아들을 또한 왕례로 장사하고, 각 읍에 대사하고 죄인을 다 방송하며, 창고를 열어 백성을 진휼하니 일국이 그 덕을 칭하지 아니할 이 없더라.

날을 가려 왕위에 즉하고, 승상을 추존하여 태조대왕이라 하고, 능호를 현덕능이라 하며, 그 모친을 왕대비를 봉하고, 백능으로 부원군을 봉하고, 백씨로 중전 왕비를 봉하고, 정통 양인으로 정숙비를 봉하고, 삼호걸로 대사마 대장군을 봉하여 병마를 총독케 하고, 김인수로 청주절도사를 하이시고, 맹춘으로 부원수를 하이시고, 그 나머지 제장은 차례로 상사하니 한 사람도 칭원할 이 없더라.

신왕이 등국 후에 시화년풍하고 국태민안하여 사방에 일이 없고 덕화 대행하여 도불습유하더라.

태평으로 세월을 보내더니, 수십 년 후에 왕대비 승하하시니 시년 칠십삼이라. 왕이 못내 애훼하여 예절에 지내는 효성이 신민을 감동하시더라. 현덕능에 안장하니라. 왕이 삼자이녀를 두시니, 장자 항을 세자로 봉하고 나머지도 다 봉작하여 차례로 세우더라.

“칼을 잡고 우수에 비계서니 남명이 몇 만 리뇨. 대붕이 날아나니 부요풍이 이는도다. 춤추는 새 바람을 따라 표표함이여, 우이 동편과 매복 서편이로다. 풍진을 쓸어버리고 태평을 일삼으니, 경운이 이러나고 경성이 빛나는도다. 맹장이 사방을 지켜 있으매여, 도적이 지경을 엿볼 이 없도다.”

도성 삼십 리 밖에 월영산이 있으되, 예로부터 선인 득도한 자 왕왕이 머물러, 갈홍의 연단하던 부엌이 있고, 마고의 승선하던 바위 있어, 기이한 화훼와 한가한 구름이 항상 머무는지라. 왕이 그 산수를 사랑하고 적송자를 좇아 놀고자 하여, 그 산중에 삼 간 누각을 지어 백씨 중전으로 더불어 처하시며, 곡식을 물리치고 천지 정기를 마셔 선도를 배우시는지라. 태자가 왕위에 즉하여 한 달에 세 번씩 거동하여 부왕과 모비 전에 문후하시더라.

하루는 뇌성벽력이 천지 진동하며 오색 운무 월영산을 두르더니, 이윽하여 뇌성이 걷히고 천지 명랑하며 선학 소리 자자하더니, 왕과 모비 간 곳이 없는지라. 왕이 급히 월영산에 거행하여 보니 종적이 막연하거늘, 신하들이 서로 이르되,

“우리 대왕은 선도를 닦아 백일승천하시도다.” 하더라.

왕이 백성을 사랑하사 덕화를 심쓰니 일국이 태평하여 격양가를 일삼으니, 성자신손이 계계승승하여 태평으로 지내고, 조선 홍승상 댁 대부인이 말년에 졸하시니, 장자 길현이 예절을 극진이 하여 선영에 안장하고 삼년 초토를 지낸 후, 조정에 집권하여 초입사에 한림학사 대간을 겸하고, 연속 승차하여 병조정랑에서 홍문관 교리 수찬을 겸하고, 연하여 승직하여 승상을 지내니라. 이렇듯이 발복하여 삼태육경을 지내니 영화 일국의 으뜸이나, 매일 친산을 생각하고 동생을 보고자 하되 남북에 길이 갈려 슬퍼함을 마지 아니하더라.

아름답도다, 길동의 행어사여. 쾌달한 장부로다. 비록 천생이나 적원을 풀어버리고 효우를 완전히 하여 신수를 쾌달하니, 만고에 드문 일이기로 후인이 알게 한 바이로다.

Chapter 1 of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