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5

INTRODUCTION.

서문.

『대비』는 전문 배우들로 구성된 극단이 공개 무대에서 상연한 최초의 미국 희곡이다. 그 이전에도 미국 본토 작가들이 쓴 희곡 몇 편이 출간된 바 있으니, 그중 더욱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필라델피아의 토머스 고드프리가 쓴 비극 『파르티아의 왕자』가 있다. 1759년경 집필되어 핼럼 극단에 제출되었으나 상연되지는 않았고, 저자가 세상을 뜬 지 2년 뒤인 1765년에 인쇄되었다.[1]

어느 바나바스 비드웰이라는 사람이 쓴 『돈벌이 결혼』이라는 희극은, 예일 대학 학생들이 에즈라 스타일스 박사(당시 대학 총장)의 후원 아래 상연했다 한다. 던랩은 이 작품이 낭독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언급하나, 그것이 원고본이었는지 인쇄본이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1785년 뉴헤이븐에서 인쇄되었다. 그러나 어느 전문 극단장의 비판적 평가와 승인을 당당히 통과한 것은 『대비』가 최초였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그간 이 작품이 받아 온 무관심과 냉대에서 벗어날 자격이 충분하다. 게다가 이 작품은 제법 만만찮은 내재적 가치를 지녀, 상연용 극작으로서 같은 시대의 여러 영국 희극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줄거리와 사건의 밀도가 다소 성기다 할지언정, 작품은 밝고 해학이 있으며 자연스럽다. 대사는 진정한 재치로 반짝이고, 당시의 폐습과 허식을 겨냥한 풍자는 날카롭고 예리하다. 미국 가정 생활이 지닌 꾸밈없고 소박한 진실성과 가풍(家風)을, 잘 다듬어졌으나 번쩍이는 허식과 야바위로 가득한 외국 상류 사교계와 대비시킨 대목은 정교하게 그려져 있어, 작품의 제목이 여기서 나왔다는 점을 능히 짐작케 한다. 구성과 인물에 있어 온전히 자연스러운 이 작품은, 젊은 작가가 새로운 문학 영역에 내건 담대한 모험이었다.

조너선이라는 인물은 그야말로 독창적인 창안이다. 이후로 익숙해지고 인기를 끌 ‘양키’ 전형은, 이때까지 무대에서도 인쇄물에서도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었다.

『대비』는 1787년 4월 16일 뉴욕시 존 스트리트 극장에서 처음 상연되었고[2], 관객의 호응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같은 시즌 4월 18일, 5월 2일과 12일에 거듭 무대에 올랐고, 후에 필라델피아와 볼티모어와 보스턴에서도 성공리에 재공연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알려진 한에서, 저자의 첫 문학적 시도였다. 저자는 더없이 놀라운 천재요, 우리 문학의 여러 갈래에서 개척자로 꼽힐 인물이면서도, 이 작품이 상연되기 불과 몇 주 전까지 연극 공연이라곤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비』의 저자 로열 타일러는 1758년 7월 18일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뉴잉글랜드의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집안 가운데 하나에 속한 몸이었다. 출생지의 라틴어 학교에서 초등 교육을 받고,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독립전쟁 기간 중, 그리고 그 후 셰이즈의 반란 때는, 벤저민 링컨 장군의 참모진에서 소령 계급의 부관으로 복무하였다. 타일러가 뉴욕에 오게 된 것은 바로 이 반란 때문이었는데, 매사추세츠로부터 이 주로 넘어온 셰이즈의 체포와 관련해 보든 주지사의 파견을 받아 외교적 임무를 수행하러 온 길이었다. 이것이 타일러가 고향 뉴잉글랜드를 처음으로 벗어난 때요, 정식 극장 안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던 때이기도 하다. 서문에서 저자가 극작의 규칙에 서투르다고 밝힌 점, 그리고 작품을 쓴 기간이 매우 짧았다는 점은 이로써 확인되는바, 그가 뉴욕에 도착한 시점은 초연을 불과 몇 주 앞둔 때였기 때문이다.

타일러는 극장에 곧바로 이끌렸던 모양이다. 무대 앞과 뒤를 가릴 것 없이 단골 방문자가 되었고, 모든 배우들, 특히 극단의 저급 희극 배우였던 위그넬과의 친교를 빠르게 얻었다. 그는 위그넬에게 『대비』의 원고를 건네주었고, 같은 해 5월 19일에는 그 배우의 익일 흥행(benefit)을 위해 2막짜리 희가극 『뉴욕의 5월제, 혹은 소란에 빠진 뉴욕』이라는 두 번째 작품을 내놓았다. 얼마 뒤 그는 보스턴의 집으로 돌아갔으며, 몇 해 뒤인 1797년 또 한 편의 작품 『한 건 거래, 혹은 달에 있는 땅』이 상연되었다. 『오월제』와 『한 건 거래』가 인쇄된 일이 있는지 여부는 나로서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희곡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나듯, 문학적 명성에 대한 타일러의 겸손함(혹은 무관심)은 평생에 걸쳐 다른 작품을 대할 때도 그대로 드러났다. 하여 그의 펜에서 나와 인쇄된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표지에 그의 이름이 실린 유일한 책은 버몬트 법률 보고서 모음이다. 그가 젊어 일찍이 문단에서 재치 있고 격조 있는 시인이자 산문가로 이름을 얻기는 하였으나, 금전적으로든 작가로서의 명성으로든 그 글들로 얻은 것이 크다고 할 만한지는 의심스럽다. 그것들은 틀림없이 한가로운 시간의 소일이었고, 힘들이지 않은 듯 이따금 써 놓은 것이라고는 하나, 그 안에는 깊은 사색과 폭넓은 독서의 자취가 또렷이 배어 있다.[3]

타일러는 법조계로 나아가 혼인하였고, 버몬트에 정착하여 성공한 변호사로 이름을 얻었으며, 판사로 선출된 뒤 이어 버몬트주 대법원장을 지냈다. 1826년 8월 16일 그 주의 브래틀버러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비』의 성공은 이 나라에서 희곡과 연극 오락에 대한 정서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 데 기여한 강력한 영향 가운데 하나였다. 이 작품이 처음 등장하기 전까지, 이곳의 극(劇)은 벗을 거의 얻지 못했고 호의도 거의 받지 못했다.

하나뿐이던 영국 배우들의 극단, 이른바 ‘첫 미국 극단’이 청교도와 퀘이커 교도들의 편협과 편견에 맞서 오랜 쓰라린 싸움을 벌인 끝에야, 뉴욕과 필라델피아와 남부 몇몇 도시에서 약간의 호응을 얻어 내었다. 그러나 뉴잉글랜드에서는 일체의 연극 오락에 대한 금지법이 여전히 효력을 가졌고, 엄격히 집행되었다. 대륙회의는 절대 금지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나[4], 극장에 단죄의 도장을 찍어 두었다. 하여 가장 점잖고 준법정신이 투철한 이들은, 설령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의무의 반듯한 길에서 벗어날까 하는 두려움에서 모든 연극 오락을 멀리하였다. 그러나 『대비』의 상연 직후부터, 극에 대한 여론에 근본적인 변화가 또렷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미국 작가들의 희곡이 잇달아 빠르게 쏟아져 나왔고, 극장에 찍혔던 낙인은 서서히 그러나 완전히 지워졌다. 이윽고 합중국 제일의 시민, 불멸의 워싱턴이 대통령으로서 정장 의전을 갖추고 어느 미국 작품의 초연을 관람하기에 이르렀을 때, 이 혁명은 완성되었다. 보스턴에서는 가장 저명하고 지적이며 영향력 있는 시민들이 공공 집회(town meeting)로 모여, 대표들에게 연극 오락 금지법의 즉각적 폐지를 의회에 요구하라 지시하는 결의를 통과시켰다. 그 폐지가 거부되자, 그들은 극장 건립에 필요한 기금을 스스로 출연하여 미국 극단을 보스턴에 초빙, 일련의 공연을 하도록 하였고, 초청은 받아들여졌다. 당국 측의 간섭이 다소 있기는 했으나, 새 극장은 세워졌고 공연은 공공연히 이루어졌으며, 금지법은 사문화되었다.

권두 삽화는 던랩의 그림을 옮긴 것임에 유의할 만하다. 벤저민 웨스트의 문하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영국에서 돌아온 직후에 그린 것임에 틀림없는데, 모리스 부부, 헨리 씨, 위그넬 씨, 하퍼 씨가 이 작품에서 맡은 역 그대로의 초상과, 존 스트리트 극장 첫 시즌 마지막 막의 무대 장치를 담으려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판각 기술이 부족하여 초상으로서의 가치는 크지 않게 되고 말았다.

‘알크노무크의 노래’에 딸린 삽화는 그 희곡과 같은 시기에 간행된 악보에서 취한 것이다. 이 노래는 오래도록 국가적 가락으로 인기를 누렸으며, 금세기 초에는 어느 응접실에서도 친숙한 노래였다. 그 작자는 필립 프리노와, 저명한 영국 의사 존 헌터의 부인 헌터 여사 양쪽 모두에게 돌려져 왔다. 《아메리칸 뮤지엄》 제1권 77쪽에는 프리노의 작으로 실려 있으며(『대비』 수록본과는 약간 다르다), 그러나 프리노 자신은 이 노래를 자기 작품이라 주장한 적이 없고, 『대비』가 간행된 뒤 여러 차례 판을 거듭하여 낸 자신의 시집들에도 한 번도 넣지 않았다. 헌터 부인의 시집은 1806년에야 처음 인쇄되었는데, 거기 실린 판본은 희곡에 수록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같은 노래는 1740년 더블린에서 간행된 『새 스페인, 혹은 멕시코의 사랑』이라는 희곡에도 실렸다. 상당한 조사 끝에 나는 이 ‘알크노무크’가 타일러의 천재가 낳은 소산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토머스 J. 맥키

『대비』

5막 희극

합중국의
한 시민이 쓴 극

프리무스 에고 인 파트리암
아오니오—데둑시 베르티체 무사스.
(내 처음으로 아오니아의 산정(山頂)에서 뮤즈를 조국으로 이끌어 내리라.)

베르길리우스

(의역)

내 먼저 이 땅 위에 탈리아의 권능을 시험하노니,
웃음을 지닌 그 유익한 아가씨를 우리 것으로 맞아들이리.

『대비』

(*미국* 천재가 극예술에서 보인 첫 시도)

이 작품을 삼가 헌정하는 바이니,

그 대상은 다음 단체의 회장과 회원 여러분이시다,

극 협회,

헌정자

그들께 더없이 신세를 진, 그리고 더없이 감사하는 종, 토머스 위그넬

필라델피아, 1790년 1월 1일

서시

뉴욕의 한 청년 신사가 쓰고, 위그넬 씨가 낭독함

환호하라, 애국의 가슴들이여!—오늘 밤 선보이는 것은
우리 것이라 떳떳이 부를 수 있는 한 편의 극,
저 거만한 호칭 “각하여! 전하여!”가
겸손한 미스터와 수수한 선생에게 자리를 내주는 극이니라.
우리의 작가는 이국의 풍경에서
당대의 유행이나 허식을 그려 오지 않고,
제 소재를 밝고 화려한 장면들—
뉴욕의 사교 모임으로 한정하였노라.
본토의 소재로 그의 뮤즈가 솜씨를 펼치니,
결점이 우리 것이라면 미덕 또한 우리 것이라.
어찌하여 우리 생각이 먼 나라로 떠돌리오,
세련됨은 다 집 안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을?
오늘날 누가 부자나 귀족을 흉내 내러 여행을 가며,
마차를 치장하고 위세를 부리러 가며,
기품을 구걸하고 춤을 홀가분히 추러 가며,
위선으로 남의 환심을 사려 애쓰리오?
자유 태생의 우리 조상은 그런 재주를 경멸하셨고,
오직 꾸밈없는 성실만을 귀하게 여기셨느니라.
그들의 마음은 정직한 경쟁심으로 타올라,
겉치레가 아닌 확고한 선에 뜻을 두었느니라.
야심이 더 담대한 불꽃을 일깨울 때면,
준엄한 덕이 흥성하였으니, 나태는 그저 수치였더라.

그러나 요즘의 젊은이는 흉내 내는 감각으로,
옷의 취향을 곧 우월의 증표라 여기며,
투박한 본토의 솜씨를 천하다 내치니,
본토의 옷이 제 값어치를 가린다 하기 때문이라.
한편, 화려와 과시를 노리는 것들은 모조리
유럽에서 와야 하며, 완제품이어야 한다.
괴이하다! 이토록 우리는 본토의 값어치를 스스로 부정하고,
떠오르는 우리 명성의 발걸음을 제 손으로 막는구나.
허나 모방이 온 세상을 주무르는 이때,
한 사람이 더 높은 봉우리를 꿈꾸며 길을 열어 보이나니.
깨어나라, 내 벗들이여! 그 담대한 본보기를 보라.
그대 나라의 시인들이 그대를 본뜨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게 하라!
엄격한 비평가들이 우리 극을 나무랄지라도,
적어도 애국의 가슴은 이리 말하리라.
“우리의 실패 또한 영광스럽도다, 고귀한 뜻으로 한 일이기에.
그 담대한 시도 하나만으로도 갈채를 받아 마땅하노라.”
아직은 희극의 뮤즈가 지닌 지혜가
그대의 공(功)을 드높이든, 그대의 허물을 꾸짖든 할 것이니.
그러나 그 뜻이 가혹함에 있지 않음을 새겨 두라.—
우리 모두 필멸의 존재요, 필멸의 존재이기에 실수하는 것이니.
솔직함이 마음에 드신다면, 우리는 참으로 복된 몸.
악덕은, 드러나 자백을 강요받을 때 떨리는 법이라.
가벼운 비평이 그대 허물에 상처를 주지 않게 하라.
그것의 뜻은 허물을 드러내려 함이 아니요, 바로잡으려 함이니.
이리하여 우리의 작가는 그대의 솔직함에 의탁하나니,
자유로운 이들은 올곧은 만큼 너그러움을 알기 때문이니라.

등장인물

뉴욕 메릴랜드

맨리 대령, 헨리 씨. 핼럼 씨.
딤플, 핼럼 씨. 하퍼 씨.
밴러프, 모리스 씨. 모리스 씨.
제서미, 하퍼 씨. 비들 씨.
조너선, 위그넬 씨. 위그넬 씨.

샬럿, 모리스 부인. 모리스 부인.
머라이아, 하퍼 부인. 하퍼 부인.
러티셔, 케나 부인. 윌리엄슨 부인.
제니, 튜크 양. W. 튜크 양.

하인들

배경: 뉴욕.

『대비』

—————

제1막.

배경, 샬럿의 방.

샬럿과 러티셔의 모습이 드러난다.

러티셔

그러니까, 샬럿, 너 정말로 포켓 후프가 안 어울린다고 보는 거야?

샬럿

아니, 그런 말은 아니야. 비 오는 날 집 안을 어슬렁거리거나, 할머님을 뵈러 가거나, 퀘이커 집회에 가기엔 잘 어울릴지도 모르지. 하지만 잘 차려입은 멋쟁이 쉰 명의 시선을 받으며 미뉴에트를 누비듯 추거나, 산책로를 사뿐사뿐 걷거나, 배터리 광장을 거닐 땐, 나는 그 호사스럽고 산뜻하고 물결치는 벨-후프를 택하겠어. 어제 저녁 나를 봤으면 넌 얼마나 즐거워했을까, 내 귀여운 아가씨! 배터리에서 빌리 딤플과 거니는데, 단상 위에는 젊은이들이 한 무리 모여 있더라고. 그 앞을 지나면서, 네가 본 중 가장 홀릴 만한 헛짚은 걸음으로 살짝 비틀거린 뒤, 어찌나 귀엽게 어수선을 떨며 몸을 추슬렀는지. 그리고 후프 자락을 살짝 날려서 새까만 구두와 반짝이는 버클을 슬쩍 드러냈지. 아이고! 나의 작은 심장이 어찌나 설레었는지, 혼란스러운 환호 소리가 들리는데—“이런, 잭, 이 얼마나 섬세한 발이야!” “허! 장군님, 이 잘 빠진—”

러티셔

아이참! 아이참! 샬럿 [그녀의 입을 막으며], 너 아주 난봉꾼 뺨치겠다, 내가 보기엔.

샬럿

얘, 내 귀여운 요조숙녀님, 우리 모두 그런 난봉꾼 아니니? 내가 미용사 손에 두 시간 고문을 당하고, 화장대 앞에서 한 시간 더 앉아 있을 때, 내 머릿속에 숙모 수전이나 사촌 베치가 떠올랐을 것 같니? 그 두 분이 옷에 관해서는 까다로운 감별가로 꼽히긴 하지만 말이야.

러티셔

얘, 우리가 기쁘게 해 줘야 할 이들은 옷의 진가를 알아볼 사람이 아니면 또 누구겠니?

샬럿

허, 뷔퐁과 수플레도 구별 못 하는 종자는—사내지!—내 러티셔—사내! 우리는 그들을 위해 차려입고, 걷고, 춤추고, 말하고, 혀짤배기가 되고, 나른해지고, 미소 짓는 거 아니겠니? 저 근엄한 《관찰자》지(誌)마저, 우리의 그 칭송받는 조심성과 수줍음과 홍조조차도 결국엔 최대한 빨리 좋은 아내와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것으로 향해 있다고 확언해 주지 않았니? 이 후프 자락을 한 번 휘날리는 것만으로 내가 일주일 안에 발 아래 불러 모으는 멋쟁이의 수가, 저 근엄한 머라이아와 그녀의 감상적인 모임이 머리가 세도록 감상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모으는 수보다 많을걸.

러티셔

그래그래, 너랑은 말씨름 못 하겠다. 매번 네가 말로 나를 이기잖니. 주제를 바꿔 보자. 듣자 하니 딤플 씨와 머라이아가 곧 혼인한다지.

샬럿

네가 제대로 들었어. 내가 그 혼례복 고르는 데에 의견을 물어봐 달라 했거든. 머라이아는 고운 흰 공단으로 혼인할 거고, 이튿날 입을 옷은 무늬 수가 놓인 기막힌 루트스트링 비단을 맞췄지. 우리 감상주의자 아가씨가 얼마나 짐짓 무심한 척 수천 가지 예쁜 물건을 뒤적이던지, 너도 봤으면 흐뭇했을 거야. 다가오는 행복에 가슴이 설레지 않는다는 듯이. 마침내는 마치 자기가 수수한 흰 공단에 수수한 금발 레이스만 걸쳐도 맑은 피부와 검은 머리가 더없이 돋보인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듯이, 그 초연한 태도로 고르고 배열하지 않겠니.

러티셔

그런데 사람들 말이, 그 아이가 옷차림은 물론이고 그 신사분에게까지 무관심한 게 완전히 꾸민 건 아니래.

샬럿

어떻게?

러티셔

머라이아가 딤플 씨에게 손을 내어 준다 해도, 그건 마음 없이 손만 내주는 거라는 소문이야.

샬럿

기개 있는 아가씨의 혼인에서 마음을 주는 것은 우습기 짝이 없는 고려 사항 가운데 가장 뒷전이건만, 그 귀여운 옛날식 요조숙녀가 머릿속에 무슨 케케묵은 관념을 품고 있는지는 한번 들어 보고 싶네.

러티셔

그러니까 너도 알잖니, 늙은 존-리처드-로버트-제이콥-아이작-에이브러햄-코닐리어스 밴덤플링 씨 말이야, 빌리 딤플의 아버지 되시는 (그 양반은 영국 여행 중에 제 예절과 함께 이름까지 줄이는 게 좋겠다 여기셨거든), 머라이아 아버님과 가장 가까운 벗이셨지. 밴덤플링 씨가 돌아가시기 한 해 전쯤, 두 어르신께서 이 혼담을 잡아 두신 거야. 그래서 두 젊은이를 서로 소개해 주고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일러 두셨지. 그때의 빌리는 마음씨 좋고, 옷차림도 단정하고, 우리 재산 있는 집안 청년들이 흔히 지니는 멋 부리는 기질이 조금 섞인 젊은이였어. 그 무렵이라면, 정말이지, 머라이아가 자기가 그를 사랑한다 여겼다 믿어. 그때 혼인했다면, 다른 정직한 부부들이 그러하듯, 그럭저럭 콧노래 섞인 따분한 삶을 평생 이어갔을지도 모르지.

샬럿

그럼 왜 그때 결혼을 안 한 거야?

러티셔

부친이 돌아가시자 빌리는 세상 구경을 하고, 그 패트룬(네덜란드계 대지주)풍의 촌티도 좀 벗어 낸답시고 영국으로 떠났지.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머라이아는 착한 여자답게 자기의 진짜 정인(情人)에게 일편단심을 지키려고 사람들을 피하고, 소일거리로 책과 그리운 빌리의 편지에 빠져 있었단다. 하지만 아이고! 변심이라는 심술궂은 악마가 여인의 마음에 파고드는 길이 한두 가지도 아니거든! 머라이아의 사랑은 바로 그 사랑을 지탱하려 했던 바로 그 수단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지 뭐니.

샬럿

어떻게?—아! 알겠다—그럴듯한 젊은 멋쟁이가 그 애 서재로 가는 길을 알아냈던 거지.

러티셔

진정해라, 샬럿. 머릿속이 죄다 멋쟁이 생각뿐이구나. 그게 아니라, 머라이아는 『찰스 그랜디슨 경』, 『클라리사 할로』, 셴스턴, 그리고 『감상적 여행』을 읽었어. 그 틈틈이 내가 말한 대로 빌리의 편지를 읽었고. 그런데 그 애 안목이 높아질수록, 사랑이 시들해지더라니까. 책 속 훌륭한 분별과 연애편지의 얄팍함 사이에 대비가 너무 선명해서, 자기 손을 내어 줄 때 마음까지 따라가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거야. 그러고 보니 어르신들이 맺어 놓으신 혼담 전체가, 감상이 실종된 것으로 보이고, 마치 물건 꾸러미 흥정하는 것처럼 보였지. 로맨스의 어느 법칙을 따라도, 설령 제가 택한 사내라 할지라도 그런 방식으로 떠맡겨진다면 응당 내쳤어야 했다는 생각에 이르렀지. 클래리 할로였다면 그런 결혼은 경멸했을 거야.

샬럿

그래, 딤플 씨가 돌아왔을 땐 어땠는데? 편지보다는 더 호의적인 대접을 받았어?

러티셔

거기서 거기였지. 바깥에선 그 사람을 정중히 말하면서, 제 방 안에서는 비웃더라고. 그 애가 그 사람 행실과 말씨를 유심히 살피더니, 여행이라는 걸 해서 얻어 온 게라곤 러블레이스의 악덕—그러나 러블레이스의 재치는 없는—과 찰스 그랜디슨 경의 점잔—그러나 그분의 너그러움은 빠진—뿐이더라는 거야. 아침마다 우물가에서 세수하며 영원한 사랑과 정절을 맹세하던 그 혈색 좋은 청년이 이제는 경박하고 창백하고 말만 번드레한 멋쟁이로 둔갑해서, 아침 나절은 몸치장에 바치고, 체스터필드의 서한집 몇 쪽을 읽고는, 그 파렴치한 원칙을 만나는 여자마다에게 시험하려고 거드름 떨며 나다닌다지 뭐야.

샬럿

그렇게 그런 감상적인 도깨비들을 쉬이 불러내는 애라면, 왜 당장 차 버리지 않는 거야?

러티셔

자기 약속이라는 게 너무 신성해서 함부로 희롱할 수 없다고 여기거든. 게다가 아버지라는 분이 돌아가신 친구 기억을 얼마나 소중히 모시는지, 두 사람 결합으로 옛 세월을 다시 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고, 노(老) 밴덤플링의 임종 당부를 되뇌고 또 되뇌시지.

샬럿

참으로 그럴싸한 사연이기도 하지! 그러니까 분별 있는 머라이아가, 덤플링 영지와 다방면에 능한 딤플 남편감을, 그저 경멸하고 혐오한다는 그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 이유 하나로 포기하리라는 말이야? 숙녀라는 게, 남자의 재산을 쓰고, 그의 마차를 타고, 그의 이름으로 불리고, 돈 필요할 때 “내 사랑 여보” 하고 부르는 데에, 그 사내 큰 생명체를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특권을 누릴 수 있잖니. 어머! 얘, 너는 정말 괴물 같은 얌전이로구나.

러티셔

내가 어쩌겠다는 게 아니라, 그 애는 이렇게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걸 알려 주는 것뿐이라니까.

샬럿

아니, 아니, 아니야! 감상이고 뭐고 다 웃기는 소리. 그 애가 딤플 씨와 파혼한다거나 파혼하고 싶어 한다면, 그건 분명 눈에 둔 다른 남자가 있기 때문이야. 여자란 다음 연인이 확실해지기 전에는 좀처럼 먼저 사람을 버리지 않는 법이거든. 러티셔, 너는 내가 딤플의 행동에 얼마나 확실한 실마리를 쥐고 있는지 생각도 못할걸. 그 통 큰 양반이 기꺼이 머라이아한테 밉보이려는 건, 그 애가 자기를 떼 놓고 나에게 구애할 자유를 주려는 거란 말이지. 이 얘기는 그만. (방백을 하며 종을 울린다.)

[하인 등장.]

프랭크, 마차 준비시켜.—결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샐리 블룸스버리가 다음 주에 인디고 씨, 그 부유한 캐롤라이나 사람이랑 결혼한다는 얘기 들었니?

러티셔

샐리 블룸스버리가 결혼을 해!—어머나, 아직 열 살도 갓 넘겼잖아.

샬럿

어쩌다 그리 된 건지는 모르지만, 다 결정된 일이라니까 믿어도 돼. 확실한 출처에서 들은 얘기야. 우리 와이얼리 이모네 한나 있잖아. 한나 알지? 비록 흑인이지만 평생 거짓말이라곤 한 번도 걸린 적 없는 아가씨 말이야. 그런데 한나에게 오빠가 하나 있는데, 그 오빠가 새러라는 애한테 구애를 하거든. 모자 가게 주인 캣것 부인네 아가씨 말이야. 그 애가 한나 오빠한테 얘기했고, 내가 아까 말했다시피 한나는 의심의 여지 없이 정직한 아가씨이니만큼, 그걸 곧장 내게 전해 주었는데, 캣것 부인이 블룸스버리 양을 위해 새 모자를 짓고 있다지 뭐야. 워낙 화려한 물건이라, 십중팔구 혼례용 모자가 분명하지. 자, 그 애가 결혼한다면 인디고 씨 말고 누구겠니? 그 아버지 댁에 드나드는 다른 신사가 없거든.

러티셔

더는 말하지 마, 샬럿. 네 정보란 게 어찌나 직접적이고 탄탄히 뒷받침되는지, 스캔들거리가 못 된다는 게 아까울 지경이네.

샬럿

아! 내가 신중함의 화신이거든. 내가 말수가 없어서 티파티 자리를 썰렁하게 만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자부하지만, 그래도 지인 이야기를—특히 그의 명예에 관한 이야기를—아니, 명예훼손에 관한 이야기를, 내 말은—철저히 파헤쳐 바닥을 보기 전에는 결코 옮기지 않도록 조심한다니까. 사실, 이런 자애로운 탐구엔 무한한 기쁨이 있어. 어머! 얼마나 짜릿한지, 길 잃은 언니의 벗들을 찾아가 위로하거나, 집안의 늙은 과부나 노처녀 이모—스캔들을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가장 가까운 친척의 평판을 대가로 바쳐서라도 그 식욕을 채우지 않고는 못 배기시는 그런 분들—과 은밀히 물러 앉는 게 말이야! 그러고는 온갖 풍성한 정황을 한아름 안고 돌아와, 절대 비밀이라는 엄중한 당부 아래 다음 차례의 지인들에게 소매상 하듯 풀어 놓는 거지—하하하!—그 우울한 이야기에 슬픔에 겨워 고개를 흔들어 가며, 그리고 더욱 구슬프게, “아! 누가 이럴 줄 알았겠어! 저토록 사랑스럽고 저토록 신중한 처녀라고 다들 여겼는데, 이 얼마나 끔찍한 안타까움이야! 그래, 난 내 자신에게 책망할 게 하나도 없어. 친구로서 할 도리를 했고, 그 난봉꾼의 본색을 그 애에게 일러 줬고, 그 결과가 어찌 되리란 걸 말해 줬고, 내가 그리 말했단 말이야, 내가 그리 말했단 말이야.” 끼워 넣는 거지—하하하!

러티셔

하하하! 그건 그렇고 샬럿, 블룸스버리 양의 혼담 얘기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 안 해 주네.

샬럿

어떻게 생각하냐고! 내 생각엔 아마, 그 애가 장난감 달라고 칭얼댔더니 남편을 안겨 준 것 같아. 뭐, 뭐, 뭐, 그 앙앙 우는 계집애한테서 장난감을 빼앗을 수야 없지. 그저 런던 인형을 미국 아기로 바꿔 주는 셈이니까.—아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어펴블 부인의 그 드높은 우아함 타령이 어떻게 끝났는지 들었어?

러티셔

누구, 러블리 양이었던 사람 말이야?

샬럿

바로 그 사람. 스키넥터디의 밥 어펴블과 결혼했잖아. 기억 안 나?

[하인 등장.]

하인

아씨, 마차 준비 다 됐습니다.

러티셔

우리 먼저 상점부터 갈까, 아니면 방문부터 할까?

샬럿

방문하기엔 좀 이른 듯싶은데, 특히 프림 부인은. 그분이 어찌나 까다로우신지 너도 알잖아.

러티셔

그건 그렇고, 어펴블 부인 얘기는?

샬럿

아, 가면서 해 줄게. 자자, 서두르자. 듣자 하니 캣것 부인네에 본 적도 없는 예쁜 모자가 새로 들어왔다지 뭐야. 내가 제일 먼저 보지 않으면 죽어 버릴 거야. [모두 퇴장.]

[빈 면]

[삽화 생략]

제2장

밴러프 영감의 저택 한 방.

머라이아가 책 따위를 놓은 탁자에 시름 겨운 얼굴로 앉아 있다.

노래

1.

해는 밤에 지고, 별은 낮을 피하네.
허나 그 빛이 스러져도 영광은 남으리!
고문하는 자들아, 시작하라! 너희 협박은 헛되니,
앨크노목의 아들은 결코 신음하지 않으리.

2.

그가 활에서 날려 보낸 화살들을 기억하라.
그의 도끼에 쓰러진 너희 추장들을 기억하라.
어찌 그리 더딘가—내가 고통에 움츠리기를 기다리는가?
아니다—앨크노목의 아들은 결코 신음하지 않으리.

3.

우리가 매복했던 숲을 기억하라.
너희 종족에게서 벗겨 가져온 머리 가죽들을 기억하라.
지금 불길은 세차게 치솟고, 너희는 내 고통을 환호하나,
앨크노목의 아들은 결코 신음할 수 없으리.

4.

나는 내 아비가 간 땅으로 가노라.
그의 혼령은 아들의 이름으로 기뻐하리라.
죽음은 벗처럼 다가와, 고통에서 나를 풀어 주나니,
앨크노목이여, 그대의 아들은 신음함을 경멸했노라.

이 노래에는 언제나 내 심정을 불러일으키는 무엇이 있습니다. 용기라는 사내다운 덕, 모진 불운 앞에서도 심장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하는 그 불굴, 고문과 죽음의 도구들 한가운데에 영광의 월계관을 엮어 넣는 그 기개—거기엔 뭔가 고결하고 드높은 것이 있어, 교육으로 받은 편견에도 불구하고, 설령 야만인에게서일지라도 나는 그것을 흠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여성이 군인이라는 인물에 호감을 품기 마련이라는 이야기가 재치꾼들 사이의 단골 놀림거리임은 나도 압니다. 모장(帽章)이며, 접깃 외투며, 깃털 하나면 여자의 마음은 거부할 수 없다고들 하지요. 그렇다 칩시다. 우리 여성의 이 무력한 처지를 헤아려 본 이라면, 우리가 매 순간 보호자를—그것도 용감한 보호자를—필요로 한다는 것을 어찌 못 보겠습니까? 자연의 한결 섬세한 재료로 빚어져, 한결 부드러운 정념만을 타고났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탓에 인간의 간계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줄 모르는 우리의 행복은 흔히 그들의 너그러움과 용기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아! 그러나 그 너그러움은 또 얼마나 드물게 만나지요! 얼마나 모순된 일입니까—남자가 짜고 나서서, 자신의 존경과 경애가 오로지 그것에 달려 있는 그 명예를 파괴하다니요. 수만 가지 유혹이 우리를 꾀고, 수만 가지 정념이 우리를 배반합니다. 그러나 바른길에서 아주 작게라도 비껴나면 남자의 경멸과 모욕이, 그리고 여자의 더 무자비한 동정이 뒤따릅니다. 여러 해의 참회와 눈물도 그 얼룩을 씻어 낼 수 없고, 덕으로 일관한 일생도 그 기억을 지울 수 없지요. 평판은 여자의 생명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지킬 용기는 사내의 것이요 혐오스러운 것이라 여겨지며, 섬세한 여성이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안전한 피난처는 명예를 지닌 남자의 품 안뿐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용감하고 너그러운 이를 사랑함이 얼마나 자연스럽습니까. 덕으로 담금질되고 명예의 인도를 받아 우리를 보호하려 들어 올린 그 팔에, 우리는 또 얼마나 감사로이 축복을 빌어야 하겠습니까! 하늘이시여, 제가 맺어질—제가 맺어질!—그 남자가 부디 그런 이가 되게 하소서. 어디로 내 상상이 나를 데려갔지—이제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나는 이미 “명예의 온갖 의무가, 저의 승낙과 아버님의 재가가 쏟아 놓은 그 온갖 의무가” 풀릴 수 없도록 얽어매어, 결코 내 애정을 나누어 가질 수 없고, 며칠 뒤면 그를 마땅치 않게 여김조차 죄가 될 그런 남자에게—마땅치 않게 여김이라니! 그뿐이라면 얼마나 좋으리—경멸할 수밖에 없는 그런 남자에게 매여 있지 않은가. 가장 타락한 마음에서 우러난 가장 경박한 태도가, 섬세하고 감상 있는 여인에게서 경멸 외의 무엇을 만나겠으며, 또 무엇을 마땅히 받겠습니까?

[밴러프 영감 무대 밖에서. 머라이아!]

아! 아버님 목소리—예!—

[밴러프 영감 등장.]

밴러프 영감

뭐냐, 머라이아, 또 구슬픈 가락이나 흥얼거리고, 그 성가신 책자들이나 들여다보며 시름에 잠겨 있구나.

머라이아

아버님, 틈 나는 시간에 책으로 머리를 기르고, 노래로 울적함을 달래는 게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밴러프 영감

글쎄, 그야 나도 모르겠다, 얘야. 나도 모르겠어. 내가 젊었을 적엔 이런 말이 있었지. 여자란 푸딩 만들 줄 알고, 제 한 몸 불이나 물에 휩쓸리지 않게만 간수할 줄 알면, 아내 노릇엔 그걸로 족하다고 말이야. 그런데 이 책들이 너한테 무슨 덕이 되었느냐? 네 말마따나 울적하게만 만들지 않았느냐? 네 나이에 시름에 빠질 권리가 어디 있어? 네가 마음에 바라는 건 다 가지지 않았느냐? 재산 많은 청년과 혼인하기로 돼 있지 않으냐? 사방 이십 마일의 소작세를 받게 되지 않으냐?

머라이아

그 땅의 백분의 일과, 제가 사랑할 수 있는 남자의 마음 한쪽을 평생 빌려 쓰는 것이면, 저는 족합니다.

밴러프 영감

체, 체, 체! 얘야, 시답잖다, 순전히 시답잖은 소리야. 네 그 소설책들—『찰스 그랜디슨』이니, 『감상적 여행』이니, 『로빈슨 크루소』니, 그런 시시껄렁한 것들—읽은 결과가 바로 이거 아니냐. 아니다, 아니야, 얘야. 말 가게 하는 건 돈이야. 실리에만 눈을 둬라, 머라이아.

머라이아

아버님, 혼인이란 참으로 중대한 일이지요.

밴러프 영감

네 말이 옳다, 얘야. 네 말이 옳아. 나도 그걸 쓰라린 대가로 알게 됐지.

머라이아

제 말씀은, 혼인이 한평생의 몫이요, 우리의 행복이 거기에 너무도 깊이 얽혀 있으니, 반려자를 고를 때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뜻입니다.

밴러프 영감

그렇지, 얘야. 옳고말고. 젊은 여자가 고를 때엔 아주 신중해야 해. 하지만 너처럼 한번 고르고 나면, 귀뚜라미처럼 명랑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 그럴 만한 까닭이 충분하지 않느냐. 솔로몬께서도 이르시기를 “웃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다” 하셨다. 자, 젊은 여자가 웃을 때는 부유한 신랑감을 단단히 거머쥐었을 때야. 네 말대로라면 울 때는 그 신랑감을 고르고 있을 때이겠다만, 내 생각엔 젊은 여자가 울 때는 신랑감을 못 얻을까 낙담한 때이지. 아, 네 어미만 해도 그렇지. 물론 내가 청혼했을 때야 좀 수줍어 보이긴 했다만, 점잖은 처녀들이 으레 그러듯 앞치마 끈이나 내려다보다가 예-에, 하고 늘여 빼고 난 뒤로는 꿀벌처럼 씩씩하고 즐거웠지.

머라이아

어머님은, 아버님, 시름할 까닭이 없으셨지요. 그분은 스스로 고르신 남자와 혼인하셨으니까요.

밴러프 영감

스스로 고른 남자라! 그러고 보니 얘야, 너도 네가 고른 남자와 혼인하는 거 아니냐—이게 무슨 시답잖은 소리야? 이 못된 책들 때문이다 [책들을 내던지며]. 알아 두거라, 머라이아. 네가 밴덤플링의 자제를 네가 고른 남자로 삼지 않겠다면, 내가 고른 남자로라도 그와 혼인해야 할 게야.

머라이아

아버님께서 저를 놀라게 하십니다. 정녕, 아버님, 저는 다 순종합니다. 제 뜻은 아버님의 뜻입니다.

밴러프 영감

그래, 네 어미도 늘 그런 식으로 말했지. “제 뜻은 당신의 뜻이에요, 여보 밴러프 영감, 제 뜻은 당신의 뜻이에요.” 그래 놓고도, 기어이 제 뜻대로 하고야 말았지 뭐냐.

머라이아

돌아가신 어머님의 기억에 그런 말씀은 삼가 주시지요, 아버님—

밴러프 영감

어째서냐, 머라이아, 어째서야? 네 어미는 평생 내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게 막았는데, 이젠 죽어서까지 날 쥐잡듯 하랴? 자자, 훌쩍거리지 말고, 착한 아이가 돼서 실리에 눈을 두거라. 내가 너 잘 자리 잡는 걸 기어이 보고야 말겠다.

머라이아

아버님의 사랑을 의심치 않으며, 아버님께 순종하는 것이 제 도리이옵니다. 제 도리와 제 마음이 함께 가도록 애써 보겠습니다.

밴러프 영감

그래, 그래, 머라이아. 그저 착한 아이가 되어서 실리에 눈을 두고, 마음이니 하는 건 제쳐 놓거라. 글쎄, 오늘 아침 나절에 내가 지하 광에 내려가서, 네가 태어난 주에 사 둔 마데이라주 한 통을 살펴보고 왔다. 네 혼례 날 마개를 뽑으려고 말이지.—그 통 하나 값이 오십 파운드 스털링이었다. 육십 파운드 값어치는 족히 되는 물건이었는데, 내가 벤 벌크헤드 화물책임자를 요리조리 얼러 흥정했지. 전말을 다 들려주마. 그때 말이지만—

[하인 등장.]

하인

나리, 중개인 트랜스퍼 씨가 아래층에 와 있습니다. [퇴장.]

밴러프 영감

자, 머라이아, 가 봐야겠다. 착한 아이 되고, 실리에 눈을 두는 거, 잊지 말거라. [퇴장.]

머라이아, 홀로.

내 처지는 얼마나 서글픈가! 딸자식이 제 마음과 효도를 거슬러 싸워야 한다는 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아버님께서 나를 깊이 사랑하심을 안다. 그런데도 어찌 이토록 마지못해 순종하는가? 부모의 뜻을 거스르거나 불효의 본을 보이는 일은 나로서도 얼마나 꺼리는 일인지, 하늘이 아시리. 아버님의 분부라면, 나는 어색하고 볼품없는 이라도 맞아들일 수 있다. 남편 될 이의 마음이 선량하기만 하다면, 부부 애정의 눈으로 그의 장점을 크게 부풀려 놓아, 그 용모와 태도의 결함쯤은 덕의 빛 속에 묻어 둘 수 있으리라. 아버님의 분부라면, 가난을 품을 수도 있다. 그 가난한 이가 내 남편이라면, 내 몫의 처지에 체념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의 소박한 식탁을 명랑한 기운으로 살려 내며, 미소 하나로 불행을 우리 초가집에서 쫓아내리라. 아버님의 분부라면, 여자의 마음이 가장 굴욕으로 아는 그 일—모자란 남자에게 시집가서 가는 자리마다 남편의 어리석음에 얼굴을 붉히는 일—에도 거의 복종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유일한 덕이라곤 잘 닦은 겉모양뿐인, 타락한 불한당과 혼인한다면—무방비한 이를 정복하는 데서만 사내답지 못한 야심이 움직이고, 애국의 감정에는 무감각한 그 마음이 철없는 아가씨들의 갈채에 부풀어 오르며, 그 월계관이란 것이 자기의 그럴듯한 품행에 속아 넘어간 불쌍한 희생자들의 한숨과 눈물인 그런 사람이라면—다른 집안의 평화와 행복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가, 제 집안의 평화와 행복엔 마땅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겠는가? 하늘이시여, 아버님께서 그토록 성미 급하지만 않으셨더라도! 제가 이 혼담을 사양하는 까닭을 말씀드리기만 하면, 입술로는 정숙히 공경을 맹세한다 해도 마음으로는 한사코 경멸할 수밖에 없을 그런 남자에게 저를 억지로 보내지는 않으시리라. [퇴장.]

제1막 끝.

제2막 제1장

[샬럿과 러티셔 등장.]

샬럿 [들어오면서].

베티, 이 물건들 마차에서 내려서 내 방으로 가져다 놔. 구기지 않게 조심하고. 얘, 정말이지, 모자 가운데 제일 볼품없는 걸로 고른 것 같아. 돌려주고 바꿔 올까 싶을 지경이었다니까.

러티셔

그러면 왜 고른 거야?

샬럿

캣것 부인이 그게 제일 유행이라고 안 그랬니?

러티셔

하지만 얘, 그거 너한테는 도무지 어울리게 얹히지 않을 텐데.

샬럿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캣것 부인이 그게 제일 유행이라고 하는 말, 너도 들었잖아?

러티셔

하얀 잔가지 장식 달린 그 사뿐한 모자 봤지?

샬럿

그럼, 그것을 어찌나 갖고 싶었는지 몰라. 한데 얘, 어떡해? 캣것 부인이 제일 유행이라고 말하는 건 그게 아니지 않았어? 게다가 내가 안 샀으면 그 어설프고 껑충한 샐리 슬렌더가 냉큼 사 버렸을 거 아니니?

러티셔

그 애가 다음 가게에서 물건들을 어찌나 뒤적이더니, 결국 아무것도 안 사고, 그 가엾은 주인한테 수고 인사 한마디 없이 나가 버리던 것 너도 봤지? 근데 세상에 그런 어색한 생물도 또 있을까, 블라우즈 양이 그 무자비한 팔뚝을 그 작은 염소 가죽 장갑 안으로 쑤셔 넣으려고 버둥대던 꼴 봤어?

샬럿

하하하하!

러티셔

그러고선, 그 애와 와스프 양이 만났을 때 그 가증스러울 정도로 뜨거운 우정 보여 주던 것도 눈여겨봤어? 그 둘이 어딜 가든 서로 헐뜯는 걸 얼마나 즐기는지, 우리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데 말이야.

샬럿

아이고! 러티셔,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니? 얘, 너 설마 감상주의자라도 되려는 건 아니지? 험담이란 너도 알다시피, 우리 친구들의 결점이며 약점이며 어리석음이며 평판으로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는 일일 뿐이야. 정말이지, 친구들을 그렇게 활용할 자유도 없다면 친구가 무슨 소용이냐고. 그렇다고 내가 어떤 부인의 결점을 두고 혼자 재미 본다 해서, 만날 때마다 그분 인품과 싸워야 된다고 여길 만큼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정말이지, 얘, 그러다간 우리 지인도 몇 남지 않을걸.

[하인이 들어와 샬럿에게 편지를 건네고—퇴장.]

샬럿

얘, 잠시 실례할게.

[편지를 뜯고 혼자 읽는다.]

러티셔

아, 얼마든지.

샬럿

어머나, 내가 시집가기를 바라는 만큼 확실한 얘긴데, 오라버니 헨리가 이 도시에 와 있다지 뭐야.

러티셔

뭐, 너의 오라버니, 맨리 대령 말이야?

샬럿

응, 얘. 이 세상에 나한테 하나밖에 없는 오라버니.

러티셔

그분은 여기 도시에 오신 적 한 번도 없어?

샬럿

가장 가까이 왔대야 할렘 하이츠 정도야. 거기 연대와 함께 주둔했거든.

러티셔

너의 오라버니는 어떤 분이야? 너처럼 수다스럽고, 예쁘장하고, 발랄한 분이라면, 이 도시 미인의 절반은 그분을 두고 모자나 잡아채며 다투겠는데.

샬럿

오라버니는 나와 정반대의 짝이야. 나는 쾌활하고 오라버니는 장중하고, 나는 가볍고 오라버니는 묵직하지. 나는 늘 웃음거리로 가장 즐거운 것들만 골라내는데, 오라버니는 딱한 것들마다 눈물 한 방울씩 지니고 있거든. 그래서 오라버니가 불행한 이들의 발치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뽑아 주는 동안, 나는 내 발치에 장미꽃을 뿌리고 있는 거지.

러티셔

얘, 너무 시적이지 말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봐.

샬럿

잠깐만, 러티셔. 지금 나한테 비유의 광풍이 올라왔거든. 이렇게 말고는 달리 얘기를 못 해. 오라버니의 마음엔 가장 고결한 감정들이 가득 차 있어. 그런데 그게 꼭—꼭—아이, 이 심술궂은 얘야, 네가 내 생각을 몽땅 엉클어 놨잖아—그게 꼭—아! 찾았다—오라버니의 마음은 꼭 나이 든 노처녀의 모자 상자 같아. 값진 물건들이 더없이 꼼꼼하게 정돈돼 들어 있지. 그런데 문제는, 그것들이 너무 섬세하고 값지고 고색창연해서 일상에 쓰기엔 맞지 않는다는 거야.

러티셔

네 그 꽃밭 같은 묘사에서 내가 건질 수 있는 거라곤, 너의 오라버니는 멋쟁이가 아니라는 점 하나뿐이네.

샬럿

정말로 그래. 그런 인물인 척도 않으셔. 곤경에 빠진 이를 구하거나 나라를 위한 장한 일을 하는 거라면 일백 마일도 마다 않고 달려, 아니 날아가실 양반이야. 그런데 그분 앞에서 네가 부채나 꽃다발을 떨어뜨리면, 방 저 끝에 있는 어떤 멋쟁이가 그것이 떨어진 걸 오라버니보다 먼저 알아채고 주워 드리는 영광을 가로챌 확률이 열에 아홉은 돼. 오라버니의 고색창연하고 반-사교적인 지론 하나를 들려줄게. 언젠가 내가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이 가득 찬 방에서—얘, 믿을 수 있니?—부인들이 죽 둘러앉은 가운데서 말씀하시기를, 신사가 젊은 숙녀에게 존경과 애정을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증거는 친구의 마음으로 그 숙녀의 약점을 바로잡아 주려 애쓰는 것이라는 거야. 정말이지, 내가 오라버니의 누이로 알려져 있다는 걸 생각하니 귀 끝까지 새빨개졌다니까.

러티셔

못 참아 줄 양반이네! 숙녀한테 그분의 결점을 일러 주다니! 그렇게 엄숙한 분이라면, 내가 사로잡을 가망은 없겠네.

샬럿

오라버니의 말씨는 값비싼 옛 문양 비단 같아서, 제 홀로 서 있을 수 있지. 한 문장 한 문장이 다 감상이거든. 그러니 한번 생각해 봐, 아버지 댁에 열두 달 머무는 동안 오라버니와 함께 지내는 게 어땠을지. 순전히 오라비로서의 애정에서 그 긴 훈화를 늘어놓으셨는데, 유행이며 치장이며 시시덕거림이며 교태며, 그리고 내가 죽자사자 좋아하는 줄 아시는 그 밖의 갖은 사랑스러운 것들에 극단으로 빠지지 말라고 말이야. 정말이지, 오라버니 말씀을 듣고 있으면 내가 교회에 앉아 있기라도 한 듯 울적해진다니까. 그래, 내가 교회 가겠다고 기도 드린 건 딱 한 번뿐이었지만, 그 오라비 말씀을 찬송가 한 곡과 설교 한 편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바꾸었을 거야. 교회도 확실히 좀 우울하지. 그래도 거긴 멋쟁이들한테 추파라도 던질 수 있고, “이로써 첫 번째 교훈을 맺나이다” 하는 말 듣는 재미라도 있지. 한데 오라버니의 그 오라비 말씀에는 “맺나이다”가 없는 것 같더라니까. 네가 오라버니를 사로잡는다고! 얘, 오라버니가 이탈리아산 꽃 상자에 연정을 품을 확률이 차라리 크겠다. 아 참, 머라이아가 있지. 그 애가 약혼 상태만 아니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텐데. 아! 폭풍우 치는 밤 뱃사람 아내 두 사람처럼 엄숙한 얼굴을 한 그 우수 한 쌍이 서로 마주 앉아, 현대 시의 졸졸대는 시내처럼 감상을 구불구불 흘려 보내는 대화를 나누는 광경을, 내 얼마나 보고 싶은지.

러티셔

아이, 공상에 젖은 우리 샬럿—

샬럿

쉿! 누가 복도를 건너오는 소리가 들려.

[하인 등장.]

하인

아씨, 아래층에 맨리 대령이라 하시는 신사분이 와 계십니다. 자택에 계시다고 할까요?

샬럿

모셔 들여. [하인 퇴장.] 자, 이제 엄숙한 얼굴을 지을 차례로군.

[맨리 대령 등장.]

맨리

사랑하는 누이 샬럿, 남매의 정으로 다시 한번 너를 품에 안게 되어 기쁘구나. 네가 (사랑스러운 성급함이여!) 부모님 안부부터 묻고 싶어 한다는 걸 안다.—두 분 존엄하신 노부모께서 나를 통해 축복을 보내셨다. 두 분은 잘 살아 온 일생의 끝자락에 서서 비틀거리시며, 자식들이 세상에 자리잡는 걸 보고 나서 평화로이 떠나시기만 바라고 계시다.

샬럿

두 분 모두 건강하시다니 정말 기쁩니다. [쌀쌀하게.] 오라버니, 숙부님 피후견인이자 제 가장 가까운 친구 한 사람을 소개해 드려도 될까요?

[맨리, 러티셔에게 인사한다.]

누이의 벗은 곧 저의 벗으로 여겨 마땅하지요.

샬럿

자, 러티셔, 네 발랄한 기운을 좀 뿌려 줘. 오라버니는 어찌나 감상적이고 엄숙하신지, 정말이지 우리한테 울화증을 옮기실 거야.

맨리

감상과 엄숙이 세련된 사교계에서 추방되었다는 건 나도 안다만, 그래도 오누이처럼 가까운 혈육이 만나는 자리에서는 얼마간 받아 줄 줄로 바랐느니라.

샬럿

정말이지, 오라버니, 그 가락으로 한 걸음만 더 나가시면, 저를 울리고야 마실 거예요. 그러면 아시다시피 눈이 상할 테고, 결국 우리의 착하신 부모님이 그토록 인자하게 바라신 남편감을 저는 영영 얻지 못해—세상에 자리잡지도 못할 거라고요.

맨리

용서하거라, 누이야.—나는 웃음의 적이 아니다. 너의 발랄함을 사랑하고, 언젠가 그것이 어느 훌륭한 사내의 시간을 밝혀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의 존재를 있게 하신 존경스러운 어른들—나의 무력했던 어린 시절을 소중히 품어 주시고 지켜 주신, 나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내어 놓으실 만큼 따뜻한 마음과 애착으로 불타시는 그분들—을 언급할 때에는, 내가 유행과 어울리지 않게 얼마간의 존경과 공경으로 말하더라도 양해해 다오.

샬럿

알겠어요, 오라버니. 그러면 그 쾌활한 얘기도 하지 않겠다고 하신다면 굳이 다투지 않을게요. 원하시는 만큼 엄숙해 볼게요. [엄숙한 체한다.] 그래서, 오라버니, 도시엔 상환 증서를 얼마 바꿔서 작은 즐거움 좀 사 보시려고 오신 거예요?

맨리

그렇지 않다. 내 볼일은 유흥이 아니라 사무다. 나는 술도 마시지 않고 노름도 하지 않으니, 쓸 돈이 대단찮을 게야. 증서를 팔 일은 없겠다.

샬럿

그럼 아주 좋은 일 하실 기회를 놓치시는 거네요. 얘, 여기 버몬트 장군 있잖아—얼마 전에 내려오셔서 그 곰팡내 나는 증서들을 단번에 다 팔아 치우시더니, 그 현금을 몽땅 사랑하는 패니한테 줄 장신구로 바꾸셨어. 나도 열두어 개는 예쁜 물건이 필요한데. 증서 가져오셨어요?

맨리

내 힘이 닿는 한 누이를 꾸미거나 어떻게든 기쁘게 하는 데에 기꺼이 힘을 보태겠다. 그러나 이를 위해 내 증서를 팔아야 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내가 낭만적일지는 몰라도, 그것들을 신성한 예탁물로 간직하고 있다. 그 전액은 정당하게 내게 돌아와야 할 몫이나, 긴 전쟁의 당연한 여파로 재정 곤궁이 닥쳐 나라가 신용을 지탱할 수 없으니, 나라가 그것을 갚을 만큼 넉넉해질 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다. 내 대에서 그 날이 오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우리의 찬란한 워싱턴을 미력하게나마 본받아, 그토록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하는 영광 외에는 어떤 보상도 거두지 않고 조국을 위해 건강과 생명을 내어 놓았노라는, 명예로운 증표로 후세에 전해질 것이다.

샬럿

훌륭한 영웅조 연설이셔라. 아이고, 사랑하는 헨리 오라버니, 어찌나 드높은 말씨로 말씀하시는지, 도시의 세련된 모임에 오라버니를 소개할 생각만 하면 정말이지 덜컥 겁이 난다니까요. 미인들은 오라버니 머릿속이 옛 비극 조각들로 그득 찬 미쳐 버린 배우라고 여길 테고, 멋쟁이들은—무슨 말씀인지 알아듣지 못해서—감탄이나 할 테지요. 하지만 어쨌든, 내가 아는 부인 두세 분에게는 오라버니를 소개해 드려야 할 것 같네요.

러티셔

그러면 그것이 곧 서른, 마흔 명쯤 되는 멋쟁이와도 안면을 트시는 일이 될걸.

샬럿

아이, 오라버니! 얼마나 행복이 쌓여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실 거예요.

맨리

누이야, 그것을 즐길 만한 세련됨이 내게 모자랄까 걱정이다.

샬럿

아이! 즐거워하지 않으실 수가 없으실 거예요.

러티셔

우리 부인들은 어찌나 섬세하고 잘 차려입는지.

샬럿

그리고 우리 멋쟁이들도 어찌나 잘 차려입고 섬세한지.

러티셔

우리 부인들은 수다 떨고 시시덕거리는 것도 어찌나 그럴싸한지.

샬럿

그리고 우리 멋쟁이들은 어찌나 우아하게 씽긋 웃고 허리 숙여 절하는지.

러티셔

머리카락은 또 얼마나 단정하게 다듬어졌는지.

샬럿

그리고 얼굴은 또 어찌나 보드랍고 매끈한지.

러티셔

구두 버클은 또 어찌나 멋지고 반짝이는지.

샬럿

그리고 손은 또 어찌나 가늘고 하얀지.

러티셔

어머, 샬럿, 우리 제법 시적인데.

샬럿

그리고 오라버니, 멋쟁이들 얼굴빛은 또 어찌나 백합처럼 희멀건한지! 그 끔찍한 억센 체질, 그 촌스러운 옥수수 먹고 자란 건강의 홍조—그런 건 전혀 없답니다. 그런 건 결혼 안 한 아가씨한테나 공연히 걱정을 안기고, 결혼한 부인한테는 과부 되는 행복이란 영영 바랄 수 없으려니 하는 우울한 경고로밖에 쓸모가 없죠. 우리 도시 멋쟁이들의 명예를 위해 한마디 해 드리자면, 안색이며 복장이며 태도가 어찌나 섬세한지, 내가 그 사랑스러운 아도니스들의 명예 따위 아예 믿지 않았다손 쳐도, 어떤 처지에서 맞닥뜨리든 조금도 무례를 걱정할 일 없이 그들에게 내 몸을 맡길 수 있을 정도라니까요.

맨리

누이 샬럿!

샬럿

자자, 오라버니 [그의 말을 끊으며], 그 엄숙함 한 줄기로 제 흥을 깨지 마세요. 오라버니 뵈니 어찌나 기쁜지, 기분이 하늘 꼭대기라고요. 아! 오라버니도 우리의 그 오붓한 모임에 함께 가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빌리 심퍼, 잭 채프, 밴티터 대령, 그리고 프로머네이드 양, 탬버 자매 두 분이 다른 부인들 몇 분과 어우러져 극장 옆 특별석에서 모임을 갖기도 하거든요. 모든 게 어찌나 예의 바른지. 먼저 모인 분들께 두루 절하고, 다음에 한 분 한 분께 따로 절하고, 그다음엔 서로 안부 묻기를 여러 번 하고, 만나 뵈어 얼마나 반가운지를 또 여러 번 하고, 마지막 뵌 뒤로 얼마나 여러 세월이 흘렀는지를 또 하고, 기혼 부인이 함께 있으면 그 댁 자제 바비의 백일해에 관해 그렇게 달콤한 논설을 나누는 거예요. 그러곤 막이 오르면 우리의 감수성이 모두 깨어나서, 순전히 상상의 힘으로 어느 악의 없는 표현을 이중 의미로 비틀어 내는데, 그 가련한 작가는 꿈에도 그런 뜻을 품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 뒤 부채에 손이 가고, 얼굴은 붉어지고, 신사들은 서로 쿡쿡 찌르며 부채 밑으로 엿보고는 그지없이 예쁜 평을 주고받지요. 그러고는 우리는 킥킥대고 그들은 씽긋 웃고, 그들이 킥킥대고 우리가 씽긋 웃고, 그러다가 막이 내리고, 그러면 호두며 오렌지며 나오고, 절이 오가고, “자 부인, 어서 드세요” 하고, “아닙니다, 선생, 가지고 계세요” 하고, “아이! 세상에 안 돼요, 선생” 하고, 그러다 막이 다시 오르면 또 붉어지고 킥킥대고 씽긋 웃고 절하고 하는 걸 처음부터 되풀이하는 거예요. 아! 특별석 담소의 감상적인 매력이란! [모두 웃는다.]

맨리

그래, 누이야, 네 웃음에 기꺼이 합류하마. 내 생각에, 어리석음을 웃는 것은 불행을 조롱하는 것이 옳지 않은 만큼이나 정당하니까.

샬럿

한데 오라버니, 정말이지 이 옷차림으로는 오라버니를 소개해 드릴 수가 없어요. 이 웃옷은 그저 제 몸이나 편히 감싸 보자는 시시한 용도로 지은 것 같은 꼴이잖아요.

맨리

이 웃옷은 지난 전쟁 때 내 연대복이다. 우리 주(州)의 공공 소요 사태가 나를 움직여, 한때 세우려고 싸웠던 그 정부를 지키기 위해 다시 칼을 차게 했지. 내가 누이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한때는 이 웃옷이 존경받았던 시절이 있었고, 빵도 의복도 봉급도 없이 조국을 위해 여러 겨울 원정을 견뎌 낸 사내들이라면, 적어도 그 초라한 외양이 조롱당하는 일만은 겪지 않아야 마땅하다고 여기던 이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샬럿

오라버니, 저도 전적으로 같은 생각이에요. 다만 제 입으로 하기는 좀 뭣하지만, 사람을 존경스럽게 만드는 건 옷이거든요. 전쟁 때에, 우리가 거의 기절할 지경으로 겁에 질려 있던 때엔, 오라버니의 그 웃옷이 존경스러웠죠. 즉 유행이었다는 얘기예요. 지금은 다른 종류의 웃옷이 유행이고, 즉 존경스럽다는 얘기예요. 그러니 재단사에게 오라버니 것도 유행의 최정점으로 지으라고 꼭 시키세요.

맨리

내 웃옷이 어떤 모양을 하든 나로서는 별 문제가 아니다만, 유행의 최정점이라는 대목만은 누이야, 양해해 다오. 그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은 너도 알지 않느냐. 나는 이 대목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우리보다 앞선다는 점을 여러 번 개탄해 왔다. 파리에서도 유행은 시작과 성행과 쇠퇴를 겪고, 그날그날의 변덕에 다른 나라에서만큼 휘둘린다만, 거기선 어느 숙녀든 일반의 상류 취향에서 벗어날 권리를, 제 용모에 이로운 범위 안에서 행사한단 말이다. 미국에서는 외치는 소리가 오직 “무엇이 유행인가?” 뿐이고, 그것이 유행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리지 않고 따라가지 않느냐.

샬럿 그렇기 때문에, 커다란 후프가 유행일 때, 후프 페티코트의 그 광대함 속에 파묻혀 버린 통통한 아가씨들이 수두룩이 보이는 거예요. 키가 모자라고 통통하지 못한 결점이야 어떤 다른 옷을 입었다면 결코 드러나지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높이 올린 머리장식이 유행이면, 사과만 한 얼굴 위에 거즈며 깃털이며 리본이 잔뜩 받쳐진 높다란 쿠션이 얹힌 꼴을 또 얼마나 보게 되는지요! 큼직하고 둥글넓적한 얼굴의 부인이, 실은 큰 머리장식을 얹었더라면 그럭저럭 단정해 보였을 분이, 그 말쑥한 작은 모자를 쓰고 군인만큼이나 남자다워 보이는 꼴이라니요.

맨리

그러나 기억해 다오, 사랑하는 누이야—우리나라의 모든 어여쁜 여인들도 마음에 새겨 주기를 바란다만—젊은 숙녀가 유행에 과하게 빠져드는 데 유일하게 내놓을 수 있는 변명은, 그 유행이 그녀를 과하게 아름다워 보이도록 하는 경우뿐이라는 점을.—부인들, 아침 안녕히 보내시지요.

샬럿

하지만 오라버니, 저희와 한집에 머무실 거지요?

맨리

정말로 그럴 수가 없구나. 숙부님을 이미 뵙고 그 일은 말씀드렸다.

샬럿

그럼 저희와 저녁 식사라도 하세요. 네 시 반쯤 식구끼리 들거든요.

맨리

스페인 대사와 식사 약속이 있다. 예전 동료 장교를 통해 그분께 소개되었는데, 그분은 열흘 뒤에 식사하러 오라는 차디찬 의례 인사 한 장으로 나를 얼어붙게 하는 대신, 참으로 오랜 카스티야식 솔직함으로, 친구 대하듯 오늘 함께 식사하자 청해 주셨다.—그 영광을 물리칠 수는 없었지. 누이야, 작별하자.—부인, 삼가 인사드리오.—[퇴장.]

샬럿

문까지만 모셔 드릴게요, 오라버니. 드릴 말씀이 좀 있어요. [퇴장.]

러티셔, 홀로.

저 두 남매라니!—여자 쪽은 시시덕거림의 화신이요, 남자 쪽은 엉뚱하고 음울한 모든 것의 정수로다.—딤플 씨에 관해 내가 말해 준 투로 샬럿을 완전히 속였다 싶다. 저 애는 머라이아의 친구니 도무지 믿고 말해 줄 상대가 못 되지. 그 양반이 머라이아와 갈라서고 내게 손을 내밀려고, 일부러 머라이아에게 거슬리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음이 분명해. 지난번 대화에서 그 섬세한 양반이 바로 이 대목을 넌지시 비쳤었지. [퇴장.]

제2장. 산책로.

[제서미 등장.]

정말이지 이 산책로는 참 예쁜 곳이야. 시민들이 보수랍시고 망쳐 놓지나 말았으면. 하기야 러닐러나 복솔 정원과 같은 날 입에 올릴 거리야 못 되지. 그래도 나처럼 젊은 친구가 제 몸가짐을 돋보이게 뽐내기엔 좋은 장소란 말이지. 사실, 여기서는 놓치는 게 없거든. 아가씨들도 안목이 있어서, 나처럼 격조 있는 사내가 자기들 곁을 지나가고 나면 뒤돌아보는 저 우아한 런던식 유행을 받아들였단 말이지—어찌나 반가운지.—아! 누가 오는가? 저 어색한 몸짓을 보니, 양키 대령의 하인임이 틀림없겠군. 한번 말을 걸어 보자.

[조너선 등장.]

제서미

Votre très-humble serviteur, Monsieur. (당신의 가장 겸손한 하인이올시다, 선생.) 듣자 하니 양키 장교이신 맨리 대령께서 귀하의 시중 받으시는 영광을 누리고 계신다지요.

조너선

예에?—

제서미

내 말은 말이오, 선생, 맨리 대령께서 귀하를 하인으로 두시는 영광을 누리고 계신다고 들었단 얘기요.

조너선

하인이라! 여보시오, 지가 검둥이로 보이쇼? 지는 맨리 대령님의 시중꾼이유.

제서미

참으로 양키 특유의 구별이로고, 맹세코, 다를 거 하나 없는 소리를. 아니 보쇼, 선생, 귀하가 하인이 하는 일을 다 하고 있지 않소? 주인 어르신의 장화까지 닦아 드리지 않소?

조너선

야 뭐, 가끔 기름칠 좀 해 드리긴 허유. 그래도 지는 뼛속까지 자유의 아들이구만유. 아부지가 그러셨지유, 맨리 대령님의 시중꾼으로 따라가 보고 세상 구경도 좀 허라구. 그래두 지를 주인 삼을 사람은 없지유. 우리 아부지도 대령님만큼이나 좋은 농장이 있걸랑유.

제서미

그래요, 선생. 이렇게 많은 즐거움을 기약하는 사귐의 문턱에서 호칭 따위로 다툴 건 아니지요.—그러니, sans cérémonie (격식은 빼고)—

조너선

뭐라구유?—

제서미

내 말은, 맨리 대령의 시중꾼을 뵈어 더없이 반갑다는 뜻이외다.

조너선

어유, 맹세컨대, 지두 선생을 뵈어 꽤나 반갑구먼유. 그나저나 당최 이 이상한 말들은 뭣 때문에 필요헌거유? 실례지만 선생은 대체 뉘시유?

제서미

본인은 딤플 씨의 하인, 아니 기꺼이 표현을 바꾸자면, 시중드는 사람으로서의 영광을 맡고 있소이다. 우린 같은 지붕 아래 묵으니, 귀하와 사귀는 영광을 얻게 되면 좋겠구려.

조너선

선생이 시중꾼이라구유! 아이고, 생긴 게 허두 워낙 번쩍번쩍허길래, 지는 선생이 의회에 파견 나온 요원인 줄 알았지 뭐유.

제서미

허, 외양은 저래도 짐승에게 보는 눈이 있군.—실례지만 그렇다면 귀하의 그 허물없는 태도가 의아하오만.

조너선

아 그거유, 저—선생, 근데 성함이 어찌 되유?

제서미

제서미라 합니다, 선생.

조너선

어유, 장담허지만 우리 동네선 양반이니 아니니 크게 나누지 않거든유.

제서미

참으로 평등주의적 원칙이로군.—조너선 씨, 혹시 그 반란군 편에 서진 않았기를 바라오.

조너선

어유, 셰이스 장군이 슬쩍 꽁무니 빼고 우리더러 헛부대나 들고 있으라고 내던져 버린 마당에, 의견을 내놓고 싶진 않어유. 근데 선생, 말 안 헌다고 약속허시쥬—귀 좀 이쪽으로—안 이를 거쥬?—맹세코, 지는 그 철갑상어들이 옳다고 생각했었지유.

제서미

조너선 씨, 나는 매사추세츠 분들은 언제나 손에 총을 들고 논쟁을 벌인다고 알고 있었소만. 그들에게 가담하지 않은 까닭이 뭐요?

조너선

어유, 대령님은 그 신—신—워따 거, 그 떡갈나무 같은 말들을 지는 발음을 못 허겠구먼유—누군지 아시잖아유—그런 사람들 모임이 있구먼유—단춧구멍에 도자기 거위 같은 걸 달구 다니지유—금박 입힌 비슷한 그거 말이유.—아, 그라서 대령님이 아부지랑 형한테 말씀허시기를—아시는지 모르지만, 가만있자—엘네이선, 사일러스, 바나버스, 태비서—아니, 아녀, 걔는 계집애구—뒈지게, 이제 알것네—엘네이선, 사일러스, 바나버스, 조너선, 그게 지구유—그렇게 우리 일곱이쥬. 여섯은 전쟁에 나갔구, 지는 어머니 모시느라 집에 남았걸랑유. 대령님 말씀이, 허친슨 총독이랑 노스 경이랑 악마랑 맞서 싸운 벙커힐의 진짜배기 자유의 아들들이, 우리 모두가 어미 자식 할 것 없이 한 손씩 보태서 만든 정부에 대고 저주받을 먼지를 피워 올리는 데 손을 보탠대서야, 그야말로 얼굴에 불을 놓을 부끄러운 일이라구유.

제서미

거룩하오!—그런데 도착한 뒤로 도시를 좀 둘러봤소?
흥미롭고 볼만한 건 무엇을 보았소?

조너선

아! 지가 좋은 구경거리를 엄청 봤지유. 대리석 사람 둘이랑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깥에 서 있다는 납으로 만든 말을 보러 갔거든유. 근데 가 보니까, 한쪽은 대가리가 없고, 다른 쪽은 아예 없데유. 사람들 말이, 그 납 사람이 빌어먹을 왕당파여서, 난리통에 잽싸게 잔꾀 내어 말 타고 튀어 버렸다구 허지 뭐유.

제서미

그럼 그걸로 나들이가 끝난 건 아니었겠지요?

조너선

아, 그럼유. 홀리 그라운드라는 데에 가 봤지유. 지는 그게 사람들 예배 보러 가는 데인 줄 알았걸랑유. 그래서 찬송가책을 호주머니에 넣구, 목사님마냥 조용허구 경건허게 걸어갔지유. 근데 가 보니까, 무슨 놈의 예배당 하나 볼 수가 있어야지유. 그러다가 드디어 젊은 여자 한 사람이 문 앞 자리 하나 옆에 서 있는 걸 보게 됐지유. 지는 장로님 따님인 줄 알았구, 어찌나 친절허구 싹싹해 보이던지, 지가 가서 설교장 가는 길을 물어봐야지 했지유. 아, 그랬더니만—믿어지실랑가유?—그 여자가 지보고 “여보” 허구, “자기야” 허구, “꿀단지야” 허구 부르는 게, 꼭 지가 그 여자랑 결혼이라도 헌 것 같은 게라. 맹세코, 입이라도 맞출까 헐 만큼 마음이 동했지 뭐유.

제서미

그래, 그래서 어떻게 끝났소?

조너선

아, 그 여자랑 서서 얘기허구 있는데유, 뱃사람들이랑 어린 놈들이 한 무더기 둘러싸구서, 그 쑥대가리 놈들이 지를 어찌나 발로 차구 욕을 퍼붓던지, 참말루 걸음아 날 살려라 허구 꽁무니에 불이 난 듯 분필 가루 날리듯 곧장 집으루 내뺐지유.

제서미

어허, 친애하는 친구, 귀하가 도시를 잘 모르시는구려. 당신이 본 그 아가씨는 말이지—[귓속말을 한다.]

조너선

아이구, 내 영혼에 자비를! 그 젊은 여자가 매춘부였단 말이유!—어유! 뉴욕의 홀리 그라운드(거룩한 땅)가 이 모양이면, 홀리데이 그라운드(명절 땅)는 대체 어떨 것이여!

제서미

너무 성급히 이 도시를 판단하면 안 되오. 이곳엔 사내의 여가를 참으로 즐겁게 지나게 해 줄 우아하고 훌륭한 아가씨들이 여럿 있소이다. 귀하를 그 가운데 몇 분에게 소개할 수 있다면 영광으로 알겠소.—저런! “소개”라니, 세련된 낱말이로군. 어디서 주웠는지.

조너선

지는 그런 여자들 알구 싶지 않어유.

제서미

자자, 친애하는 친구, 내가 귀하의 오락을 지도하는 영광을 떠맡아야겠구려. 자연이 우리에게 정념을 주었고, 젊음과 기회가 그것을 풀어 주라 부추기오. 사내가 가벼운 연애로 제 즐거움 좀 돋우는 것이, 친애하는 푸른살 양반, 무어 부끄러울 일도 아니외다.

조너선

계집 사냥이라! 지는 통 모르겠구먼유. 그런 놀이는 해 본 적이 없지유. 다람쥐 사냥이야 헐 줄 알지만, 계집들이랑은 아무 놀이도 못 허유. 지는 결혼한 거나 매한가지걸랑유.

제서미

천박하고 끔찍한 짐승 같은! 결혼한 몸으로 아내랑 백 마일도 더 떨어져 있으면서, 그걸 핑계로 만나는 여자마다 구애 안 할 까닭 삼다니! 틀림없이 읽어 보지도 못했을 게야. 그래, 이 몸이 그 거룩한 체스터필드의 책 한 권과 한 방에 있어 본 적도 없을 거야.—그래 귀하는 결혼을 했소?

조너선

아녀, 그렇게 말 안 했쥬. 지는 결혼헌 거나 매한가지라구 혔쥬, 일종의 언약이 있다구유.

제서미

결혼한 거나 매한가지라!—

조너선

어유, 그라서유. 집에 태비서 와이먼이라구 장로님 따님이 있걸랑유. 그 애랑 지랑 오래도록 연애해 왔구, 사람들이 그러드만유, 우리가 결혼헐 거라구. 그래서 헤어질 때 동전 한 닢을 반으로 쪼갰지유. 그 애는 지 없는 동안 솔로몬 다이어랑은 얼씬두 안 허기로 약속했구유. 선생이라구 지더러 일편단심 애인한테 거짓말허라구는 안 허시것지유?

제서미

어쩌면 그 정절에 또 다른 이유가 있겠구려. 혹시 그 아가씨에게 재산이 있소? 하! 조너선 씨, 실한 매력이란 이런 것이지. 사랑의 사슬은 고리가 금으로 되어 있을 때만큼 단단히 사람을 묶지 못하오.

조너선

어유, 재산 얘기라면유, 지가 허는 말씀이, 그 애 아부지가 꽤 엄청나게 부자지유. 작년에는 우리 동네 대의원으로 뽑히셨구유. 그 양반이 그 애한테 주실 게—가만있자—사 곱절의 칠이—칠 곱절의 사—영 받아 올려서 하나—그 양반이 그 애한테 이십 에이커 땅을 주실 거유—쬐까 돌밭이긴 헌디유—성경책 한 권허구, 암소 한 마리유.

제서미

돌밭 이십 에이커에, 성경책 한 권과, 암소 한 마리라! 아이고, 친애하는 조너선 씨, 이 도시엔 하녀들—아니, 귀하가 좀 더 우아하게 표현하시자면 시중드는 아가씨들—이 있는데, 그녀들은 그보다 많은 걸 한 해 동안 마님들의 헌옷만으로도 모은다오.

조너선

설마 그럴라구유!—

제서미

그렇대도요. 내 그중 한 분을 소개해 드리리다. 옆집에 사는 한 포동포동하고 섬세한 살덩이가 있는데, 머라이아 양의 시중드는 아가씨요. 우리 자주 현관 앞에서 그녀를 보오.

조너선

근데 그 여자가 지가 구애해도 받아 줄까유?

제서미

의심할 것 없소이다. 명심하시오, 심지가 약한 자는 결코—혓바닥에 물집이 잡힐라, 하마터면 저속한 속담을 읊을 뻔했군. 체스터필드의 권위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내 말인즉, 귀하의 빛나는 진가가 호의적인 환영을 틀림없이 얻어 낼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오.

조너선

그러먼유, 그 여자한테 지가 뭐라구 말해야 혀유?

제서미

그녀에게 뭐라 하느냐! 친애하는 친구, 다른 온갖 주제에 관한 귀하의 깊은 지식은 내가 흠모하오만, 한마디 해 드리면—기회가 모자라서 여성의 마음만은 귀하의 날카로운 통찰을 피해 갔다는 걸 용서하시오. 그녀에게 뭐라 하느냐! 어허, 사내가 구애를 나서서 성공을 바란다면, 그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시작해야 하는 법이외다.

조너선

그럼 지가 뭘 해야 혀유?

제서미

그야, 소개받으면 먼저 우아한 절을 대여섯 번 해야지요.

조너선

우아한 절 여섯 번이라! 그건 알겠구먼유. 여섯 번, 말씀이쥬? 거 참—

제서미

그런 뒤엔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입을 맞추시오. 그다음 또 꼭 쥐고 입 맞추고, 이렇게 그녀의 입술과 볼까지 나아가는 거요. 그런 뒤에는 “심장, 화살, 불꽃, 감로(甘露), 신찬(神饌)”에 관해 되도록 많이 지껄이시오.—뒤죽박죽일수록 좋소이다.

조너선

근데유, 만약에 그 여자가 지한테 화라두 내면 어쩐대유?

제서미

허, 만약 그녀가 짐짓—조너선 씨, 잘 듣고 계시오—짐짓 성난 체를 한다면, 귀하는 이렇게 해야 하오. 아니, 이런 상황에서 우리 주인어른이 어떻게 처신하셨는지 말씀드리지. 주인어른이 열여덟 살 젊은 숙녀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짓궂은 손길로 젊음과 미모의 꽃을 함부로 꺾고 계셨소. 숙녀께서 그 열기를 제지할 필요가 있다 여기시어 아름다운 얼굴에 한 줄 찌푸림을 불러내셨는데, 그 찌푸림이 어찌나 거부할 수 없이 유혹적이던지, 늙은이의 얼어붙은 가슴조차 녹일 만했지요. “기억하세요,” 그분의 그 가냘픈 팔을 우리 주인어른의 팔 위에 얹으며 말씀하시기를, “당신의 평판과 저의 명예를 기억하세요.” 우리 주인어른은 즉시 무릎을 꿇으셨소. 눈은 사랑으로 일렁이고, 뺨은 갈망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지극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시더이다. “사랑하는 캐럴라인, 몇 달만 지나면 우리의 손은 제단 앞에서 풀릴 수 없도록 묶일 것이오. 내 느끼기에 우리의 마음은 이미 그러하오. 그대가 지금 애정의 증거로 허락하는 이 호의는 참으로 호의지요. 그러나 일단 예식이 지나가고 나면, 지금 환희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그때는 의무로 여겨지고 말 것이오.”

조너선

그러구서유, 결말은 어찌 됐대유?

제서미

결말!—아! 용서하시오, 친애하는 친구, 허나 당신 뉴잉글랜드 신사분들은 모든 일의 밑바닥까지 보려고 드는 참으로 칭찬할 만한 호기심을 지니셨구려.—솔직히 말씀드리면, 약 열 달 뒤에 그 결말이라는, 꽃봉오리처럼 피어난 아기 천사가 천사 같은 어미의 품에서 방긋 웃는 모습을 내가 보았소이다.

조너선

그라믄유, 선생 일러 주신 대루, 절 여섯 번 허구 뭐 다 허구 나면, 지두 그런 쪼그만 아기 천사 결말이 생기나유?

제서미

의심할 바 없소이다.—무엇을 그리 골똘히 생각하시오?

조너선

선생이 꼭 지를 그 여자한테 소개해 주신다구유?—아, 지가 지금 생각허구 있던 게유, 이 반 토막 난 은전을 어떻게 써먹을까 궁리허구 있었지유. 이거루 설탕 물 한 잔은 살 수 있겄쥬?

제서미

그게 뭐요, 그 장로님 따님이 주신 사랑의 증표요?—허, 용감하게도 나오시는구려. 하지만 나는 서둘러 주인어른께로 가 봐야겠소. 작별이오, 친애하는 친구.

조너선

잠깐만유, 제서미 선생—그 여자한테 소개받을 때 지가 뽀뽀(buss)를 허야 한대유?

제서미

말씀드렸잖소. 키스(kiss)를 하라고 했소이다.

조너선

그거야 그런데유, 뽀뽀(buss)는 허야 한대유?

제서미

허, 키스하는 거나 뽀뽀하는 거나, 뽀뽀하는 거나 키스하는 거나, 다 한 가지요.

조너선

아! 친애허는 선생, 선생이 온갖 것에 깊은 지식이 있구 고난에 날카로운 혓바닥을 가졌대두, 세상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닌가 보우. [퇴장.]

제서미, 홀로.

이만하면 내 실력도 늘고 있음에 틀림없지. 주인어른께서도 당신이 경멸하는 사내의 마음속으로 이만큼 솜씨 좋게 파고드시지는 못하셨으리라. 자, 이제 이 덜렁이 개가 제 역겨운 손질로 제니를 질리게 해서, 오로지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그녀가 내 품으로 뛰어들게 될 것이야. 덜렁이 조너선과 궁정풍의 다방면에 능한 제서미 사이의 그 대비가 얼마나 달콤할 것인가!

제2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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