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유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우리 인간은 사건 하나 때문에 그리 쉽게 자살 같은 짓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난 생활 전체를 결산하기 위해 자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큰 사건이었던 것은 내가 스물아홉 살 때 히데(秀) 부인과 죄를 범한 일이다. 죄를 범한 것 자체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않는다. 다만 상대를 잘못 골랐던 탓에(히데 부인의 이기주의와 동물적 본능은 실로 심한 것이었다.) 내 생존에 불리가 생긴 일을 적지 않게 후회하고 있다. 더구나 나와 연애 관계에 빠진 여성은 히데 부인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서른 살 이후로는 새로 정인(情人)을 만든 적이 없다. 이것도 도덕적인 이유로 만들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저 정인을 두는 일의 이해(利害)를 타산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연애를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그때 『고시비토(越し人)』 『소몬(相聞)』 등의 서정시를 짓고, 깊이 빠지기 전에 벗어났다.) 나는 물론 죽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 또한 고통이다. 다른 이는, 부모처자가 있는데도 자살하는 바보를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혼자였다면 어쩌면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양가(養家)에서 자라며, 제멋대로(我儘)다운 제멋대로를 부려 본 적이 없다.(라기보다 차라리 부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 양부모에 대한 “효행 비슷한 것”도 후회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내게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내가 자살하는 것은 일생에 단 한 번의 제멋대로일지도 모른다. 나도 여느 청년처럼 갖가지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결국은 정신 나간 자식이었던 것이리라. 나는 지금 나 자신에게는 물론, 모든 것에 혐오를 느끼고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추신(P.S.) 나는 지나(중국)로 여행하는 것을 기회 삼아 가까스로 히데 부인의 손에서 벗어났다.(나는 뤄양(洛陽)의 객잔(客桟)에서 스트린드베리의 『치인의 참회』를 읽고, 그 또한 나처럼 정인에게 편지를 쓴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쓴웃음을 지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 뒤로는 손가락 하나 댄 적이 없다. 그러나 집요하게 쫓아오는 것에는 늘 곤혹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면서도, 나를 괴롭히지 않은 여신들에게(다만 이 “들”이란 두 사람 이상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까지 돈 후안은 아니다.) 충심(衷心)으로의 감사를 느끼고 있다.

내 자식들에게

一. 인생은 죽음에 이르는 싸움임을 잊지 말지어다.

二. 따라서 너희의 힘을 믿고 의지하지 말 것이며, 너희의 힘을 기르는 일을 본분으로 삼을지니라.

三. 오아나 류이치(小穴隆一)를 아버지로 여길지니라. 그러므로 오아나의 가르침에 따를지어다.

四. 만일 이 인생의 싸움에 패한 때에는 너희의 아비처럼 자살하라. 다만 너희의 아비처럼 남에게 불행을 끼치는 일은 피할지어다.

五. 망망한 천명은 알기 어렵다 하더라도, 힘써 너희의 가족에게 의지하지 말고, 너희의 욕망을 버릴지어다. 도리어 이것이야말로 너희로 하여금 훗날 너희를 평화롭게 하는 길이리라.

六. 너희의 어미를 가엾이 여길지어다. 그러나 그 연민으로 인하여 너희의 의지를 굽히지는 말지니. 이 또한 도리어 너희로 하여금 훗날 너희의 어미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 될 것이라.

七. 너희는 모두 너희의 아비처럼 신경이 예민함을 면치 못할 것이라. 부디 그 사실에 주의를 기울일지어다.

八. 너희의 아비는 너희를 사랑하노라.(만일 너희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너희를 버리고 돌아보지 않았으리라. 너희를 버리고 돌아보지 않을 수만 있었더라면, 살아갈 길 또한 없지 아니하였으리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쿠타가와 후미코(芥川文子) 앞

추기. 이 유서는 나의 죽음과 함께 후미코로부터 세 분에게 보일 것이며, 또한 위 조건이 실행된 뒤에는 불태우는 일을 잊지 말지어다.

재추기. 나는 만일이라도 신초샤(新潮社)에서 항의가 나올 것을 염려하여 별지에 4를 적어 동봉하고자 한다.

4 나의 작품의 출판권은(만일 출판하려는 이가 있다면)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 씨에게 양도할지어다.(나의 신초샤에 대한 계약은 파기한다.) 나는 나쓰메 선생을 사랑하기에, 선생과 출판 책방을 같이 하기를 바라노라. 다만 장정(装幀)은 오아나 류이치(小穴隆一) 씨에게 부탁할 것을 조건으로 할지니. (만일 이와나미 씨의 승낙을 얻지 못할 때에는, 이미 책으로 나온 것 외에는 어떠한 책방에서도 내지 말지어다.) 출판하는 기한 등은 물론 전부 이와나미 씨에게 일임할지어다. 이 문제 또한 다니구치(谷口) 씨의 의지에 기댈 바가 많을 것이라.

一, 살리려는 시도는 절대로 무용함.

二, 절명한 뒤에 오아나 군에게 알릴 것. 절명 전에 알리면 오아나 군을 괴롭히고 아울러 세상을 시끄럽게 할 우려가 있음.

三, 절명할 때까지 손님에게는 “더위먹음(暑さあたり)”으로 알릴 것.

四, 시모지마(下島) 선생과 의논한 뒤, 자살로 처리하든 병사로 처리하든 무방함. 만일 자살로 정해질 때에는 유서(기쿠치 앞)를 기쿠치(菊池)에게 줄 것. 그렇지 않다면 태워 없앨 것. 다른 유서(후미코 앞)는 어떠한 경우에든 펼쳐 보고, 가능한 한 유지(遺志)에 따르도록 할 것.

五, 유품으로는 오아나 군에게 호헤이의 난(蓬平の蘭)을 보낼 것. 또한 요시토시(義敏)에게 송화연(松花硯, 작은 벼루)을 보낼 것.

六, 이 유서는 즉시 태워 없앨 것.

一. 남에게 빌려준 것. 쓰루타(鶴田) 군에게 『아라비아 야화(아라비안 나이트)』 12권 있음.

二. 남에게서 빌린 것. 동양문고(東洋文庫)에서 『포르모사(Formosa, 대만)』 한 권. 가쓰미네 신푸(勝峯晋風) 씨로부터 『조온(潮音, 시 잡지)』 몇 권. 시모지마 선생으로부터 도장 몇 과(印 数顆), 무로 군(室生)으로부터 도장 두 과.(도장은 소지자에게 보여 받을 것.)

三. 오키모토(沖本) 군에게 부탁하여 인보(印譜)를 만들어 받을 것. 나의 추선(追善) 등에 구집(句集)을 더하여 나누어도 좋다.

四. 석탑(石塔)의 글씨는 반드시 오아나 군에게 부탁할 것.

五.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빌고, 모든 사람을 용서하려는 내 마음을 잊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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