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고독지옥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 이야기를 나는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자신의 큰외숙부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이야기의 진위는 알지 못한다. 다만 큰외숙부 본인의 성정과 행실로 미루어, 이런 일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큰외숙부는 이른바 다이쓰(大通, 에도 풍류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막말의 예인이며 문인들 사이에 친한 벗의 수가 많았다. 가와타케 모쿠아미(河竹黙阿弥), 류카테이 다네카즈(柳下亭種員), 젠자이안 에이키(善哉庵永機), 같은 호의 도에이(冬映), 9대 단주로(九代目団十郎), 우지 시분(宇治紫文), 미야코 센추(都千中), 겐콘보 료사이(乾坤坊良斎) 같은 이들이다. 그중에서도 모쿠아미는 『에도자쿠라 시미즈 세이겐(江戸桜清水清玄)』에서 기노쿠니야 분자에몬(紀国屋文左衛門)을 그릴 때, 이 큰외숙부를 분본(粉本, 본보기)으로 삼았다. 죽은 지 어느덧 오십 년이 되어 가지만, 생전에 한때는 이마키분(今紀文, 현대의 분자에몬)이라 별호로 불린 적이 있으니, 지금도 이름만은 들어 본 이가 있을지 모른다. 성은 호소키(細木), 이름은 도지로(藤次郎), 하이쿠 호는 코이(香以), 통칭은 야마시로가시 쓰후지(山城河岸の津藤)라 일컬은 사내이다.

그 쓰후지가 어느 때 요시와라(吉原)의 다마야(玉屋)에서 한 승려와 가까이 사귀게 되었다. 혼고(本郷) 부근의 어느 선종 절(禅寺) 주지로, 이름은 젠초(禅超)라 했다고 한다. 그 또한 표객(嫖客, 유곽 손님)이 되어, 다마야의 니시키기(錦木)라는 오이란(華魁)을 단골로 두고 있었다. 물론 육식(肉食)과 처대(妻帯)가 승려에게 금해지던 시절의 일이라,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출가한 몸이 아닌 것으로 행세했다. 기하치조(黄八丈)에 검은 하부타에(黒羽二重) 몬쓰키(紋付, 가문 문장 박은 옷)를 갖춰 입고서 사람들에게는 의원이라 자칭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와 우연히 가까이 사귀게 된 것이다.

우연이라 함은, 등롱 시분(燈籠時分, 백중날 등롱 켜는 무렵)의 어느 밤, 다마야 이층에서 쓰후지가 변소에 다녀오는 길에 무심코 복도를 지나는데, 난간에 기대어 달을 바라보는 사내가 있었다. 빡빡 깎은 머리에 어느 쪽이냐 하면 키가 작고 살이 없는 사내였다. 쓰후지는 달빛에 비친 그를 평소 드나들던 호칸(幇間, 유흥 도우미) 의사 다케우치(竹内)로 여겼다. 그래서 지나치는 길에 손을 뻗어 슬쩍 그 귀를 잡아당겼다. 놀라 돌아보는 얼굴을 보고 한바탕 웃어 줄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돌아본 얼굴을 보고는 도리어 이쪽이 놀라고 말았다. 빡빡 깎은 머리라는 점을 빼면, 다케우치를 닮은 구석은 한 군데도 없었다. 상대는 이마가 넓은 데 비해 눈썹과 눈썹 사이가 험상궂게 좁혀져 있었다. 눈이 크게 보이는 것은 살이 빠져 있기 때문이리라. 왼쪽 뺨에 있는 큰 점은 그때에도 또렷이 보였다. 게다가 광대뼈가 높았다. 이만한 얼굴 생김새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황망히 쓰후지의 눈에 들어왔다.

「무슨 볼일이시오.」 그 승려는 화를 낸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얼마간 술기운도 띤 듯했다.

앞서 적는 것을 잊었지만, 그때 쓰후지에게는 게이샤가 한 사람, 호칸이 한 사람 따라붙어 있었다. 이런 무리가 쓰후지더러 사과하라 하고 그저 잠자코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하여 호칸이 쓰후지를 대신하여 그 손님에게 무례를 빌었다. 그러는 사이 쓰후지는 게이샤를 데리고 슬그머니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아무리 다이쓰라 한들 어색한 자리였던 게 분명하다. 승려 쪽에서는 호칸으로부터 잘못된 사정을 듣자마자 이내 기분을 풀고 큰소리로 웃었다고 한다. 그 승려가 젠초였음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그 뒤에 쓰후지가 과자 받침을 들려서 저쪽으로 사죄를 보냈다. 저쪽에서도 송구해하며 일부러 답례하러 왔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의 교분이 맺어졌다. 다만 맺어졌다고 해도 다마야 이층에서 만날 뿐, 서로 왕래는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쓰후지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으나 젠초는 도리어 큰 술꾼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냐 하면 젠초 쪽이 소지품(持物) 차림에 사치를 다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여색에 침면(沈湎, 빠져 헤어나지 못함)하는 것 또한 젠초 쪽이 더 심했다. 쓰후지 자신이 이를 두고, 어느 쪽이 출가한 자인지 알 수 없다고 평했다. 거구에 살이 찌고 용모도 추한 편이었던 쓰후지는 5푼 사카야키(月代, 정수리를 짧게 깎은 머리)에 은사슬 걸이 부적을 두른 차림으로, 평소에는 즐겨 메쿠라지마(めくら縞, 검푸른 줄무늬 무명) 옷에 흰 목면 삼척 띠를 매고 있었다는 사내다.

어느 날 쓰후지가 젠초를 만나니, 젠초는 니시키기의 시카케(しかけ, 유녀의 겉옷)를 걸치고 샤미센을 켜고 있었다. 평소에도 혈색이 좋지 않은 사내였으나 그날따라 더욱 좋지 않았다. 눈도 충혈되어 있었다. 탄력 없는 살갗이 이따금 입가에서 경련했다. 쓰후지는 곧장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게 아닐까 짐작했다. 자신 같은 자라도 의논 상대가 될 수 있다면 부디 그리해 달라. 그런 어조를 비춰 보았으나 딱히 털어놓을 일도 없는 듯했다. 다만 평소보다 말수가 줄어들고, 자칫하면 이야깃거리를 놓치기 일쑤였다. 그리하여 쓰후지는 이를 표객이 걸리기 쉬운 권태로 풀이했다. 주색을 일삼는 사람이 빠진 권태는 주색으로 나을 리가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두 사람은 여느 때와 달리 차분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젠초는 갑자기 무엇인가 떠올린 듯한 모양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불설(仏説)에 따르면 지옥에도 갖가지가 있으나, 무릇 우선 근본지옥(根本地獄)·근변지옥(近辺地獄)·고독지옥(孤独地獄), 이 셋으로 나눌 수 있는 듯하다. 또한 ‘남섬부주하과오백유선나내유지옥(南瞻部洲下過五百踰繕那乃有地獄)’ 곧 ‘남섬부주를 지나 오백 유선나 아래에 지옥이 있다’는 구절이 있으니, 대개 예부터 지하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으리라. 다만 그 가운데 고독지옥만은 산간이든 광야든 나무 아래든 허공이든, 어느 곳에든 홀연히 나타난다. 말하자면 눈앞의 경계(境界, 마음에 비치는 환경)가 곧 그대로 지옥의 고난을 눈앞에 펼쳐 보이는 것이다. 나는 이삼 년 전부터 이 지옥에 떨어졌다. 모든 일이 조금도 오래가는 흥미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든 한 경계에서 또 한 경계를 좇으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그래도 지옥은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고 경계를 바꾸지 않고 있으면 도리어 더 괴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역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그날그날의 괴로움을 잊는 듯한 생활을 이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끝내는 괴로워진다고 한다면, 죽어 버리는 일밖에는 길이 없다. 옛날에는 괴로워하면서도 죽기가 싫었다. 지금은······

마지막 구절은 쓰후지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젠초가 다시 샤미센의 가락을 맞추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젠초는 다마야에 오지 않게 되었다. 누구도 이 방탕 삼매에 빠진 선승이 그 후 어찌 되었는지 아는 자가 없다. 다만 그날 젠초는 니시키기 곁에 금강경(金剛経)의 소초(疏抄, 경전 주석서) 한 권을 두고 갔다. 쓰후지가 후년에 영락하여 시모우사(下総) 사무카와(寒川)에 칩거할 적, 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책 가운데 하나가 이 소초였다. 쓰후지는 그 표지 안쪽에 ‘제비꽃 들에 이슬에 정신이 드는 마흔 살이로다’라는 자작 하이쿠를 써넣어 두었다. 그 책은 이제는 남아 있지 않다. 그 구절도 이제 기억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리라.

안세이 4년(1857) 무렵의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지옥’이라는 말의 흥취 때문에 이 이야기를 기억해 두셨던 듯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서재에서 지내는 나는, 생활의 면에서 말하자면 큰외숙부와 이 선승과는 전혀 교섭이 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흥미의 면에서 말해도, 나는 도쿠가와 시대의 희작이나 우키요에에 특별한 흥미를 지닌 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내 안에 있는 어떤 마음은 자칫하면 ‘고독지옥’이라는 말을 매개로 그들의 삶에 동정을 쏟으려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거부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 또한 고독지옥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이쇼 5년 2월)

Chapter 1 of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