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물의 사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강당에서 이재민 위문회가 열리던 날 오후였다. 1학년 병조(丙組) 교실에 들어서니 — 그날은 이 방을 우리, 즉 졸업생과 재학생의 사무소로 쓰고 있었다 — 우에하라 군과 이와사 군이 벌써 방 한복판에 책상을 들여다 놓고 무언가를 부지런히 쓰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우에하라 군의 얼굴이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붉게 물들어 있다. 입구 쪽 책상에서는 시치조 군, 시모무라 군, 그리고 내가 이름을 모르는 졸업생 여러 분이 기증받은 유카타며 수건이며 표백 무명천이며 아사쿠사 종이를 이재민에게 나눠 줄 준비에 바삐 손을 놀리고 있었다. 감색 무명을 걸친 두 사람이 바지런히 표백 무명천을 접어서는 손수건 크기로 자르고, 그것을 차색 고쿠라 하카마 차림의 사람이 열심히 모서리를 맞혀 접어서는 가지런히 쌓아 올리고 있었다. 저쪽 구석에서는 하라 군과 오노 군이 책상 위에 소금 전병 봉지를 펼쳐 놓고 부지런히 개수를 세고 있다.

요다 군도 그 옆에서 커다란 단팥빵 봉지를 열어 바지런히 “에또 다섯, 열ㅡ, 스물” 하고 세고 있는 게 보였다. 어쨌든 소금 전병에 단팥빵까지 합치면 4엔어치나 되는지라, 세 사람 모두 셈에는 조금씩 질려 버린 눈치였다.

교단 쪽을 보면, 새끼줄로 묶은 아사쿠사 종이 더미며 아직 자르지 않은 수건들이 어지럽게 흩어진 가운데, 히라쓰카 군과 구니토미 군과 시미즈 군이 칠판에 이재민 수며 소금 전병 개수며를 적어 가며 열심히 빼고 나누고 하고 있었다. 급히 쓰는 탓인지 숫자들까지 분주히 허둥대는 꼴이어서 우스웠다. 그러자 히로세 선생님이 오셨다. 잠깐, 두어 마디 나누더니 바로 또 바지런히 나가 버리신다. 그러는 사이에 빵이 모자라자 열심히 사러 내보내고, 부지런히 선생님께 통신부 개설 교섭을 하러 가고, 가이세이샤에 전화해서 분주히 엽서를 가져오게 한다. 누구나 다들 열심히 한다. 뭘 하든 간에 부지런히 한다. 그 대신 일이 척척 해결되는 것도 대단했다. 창밖으로 운동장을 내다보면, 군데군데 물이 빠진 자리에 질척질척한 붉은 흙을 남긴 채, 아직도 흙탕물을 녹인 듯한 색깔의 물이 8월의 파란 하늘을 비추며 출렁이지 않고 잔잔하게 고여 있었다. 그 물속을 여윈, 털이 긴 검은 개 한 마리가 콧소리를 내며 흠뻑 젖은 채 달려간다. 개까지 건방지게도 부지런히 바빠 보이는 느낌이 든다.

위문회가 열린 건 세 시쯤이었다.

회색 벽에 음침한 유리창들로 둘러싸인, 법당처럼 넓고 텅 빈 강당에는 수백 명의 이재민 여러분이 뒤섞여 지친 얼굴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때가 탄 유카타 차림에 살결에 흰 버짐이 핀 사내아이를 업은 아주머니도 있었다. 더럽고 얇은 홑옷에 수건을 허리띠 삼아 두르고 눈 가장자리가 헌 할머니도 있었다. 흰 메리야스 셔츠와 속바지만 입은 젊은 남자도 있었다. 크게 터진 무늬 반텐에 허리에 삼 척 천을 칭칭 감은 젊은 여자도 있었다. 색이 바랜 붉은 담요를 허리에 두른, 코가 빨간 할아버지도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들 모두가, 누렇게 뜨고 탄력을 잃은 얼굴을 교단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교단 위에서는 축음기가 코맹맹이 같은 소리를 내며 갓포레(당시 유행한 익살 민요)인지 뭔지를 틀어 대고 있었다.

축음기가 끝나자 이쓰노 씨의 개회사가 있었다. 꽤 긴 내용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죄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다음에 또 축음기가 한 곡 끝나자, 데이스이의 강담 〈까치까치 진베에〉가 시작됐다. 들떠 웃는 얼굴이 여기저기서 피어난다. 이 사람들에게는 이런 웃음소리도 며칠 만에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리라. 학교가 위문회를 연 것도, 어쩌면 바로 이 웃음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유리창 너머 직사각형의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이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까닭 모를 슬픔이 가슴을 죄어 들었다.

강담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이재민 여러분은 좁은 입구를 빠져나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그 길목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어른 분들께는 비스킷 봉지를, 소년소녀 분들께는 소금 전병과 단팥빵을 드렸다. 구청 직원이며 흰 제복의 젊은 순사가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려”라며 재촉하는 바람에, 이재민 여러분은 일일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셨다. 그중에서 열한두 살쯤 되어 보이는 빨간 띠를 맨 작은 여자아이가, “감사하다고 말씀드려” 소리에 그대로 마루바닥에 무릎을 꿇고, 우리가 구두 신고 걷는 그 모래 먼지 가득한 바닥에 이마를 짚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을 때는, 저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위문회가 끝나자마자 사무실에서 통신부를 시작했다. 편지를 쓰지 못하는 분들을 대신해 써 드리는 창구였다. 하라 군과 오노 군과 내가 같은 책상에 앉아 쓴다. 복도 쪽 유리 장지문을 떼어 내고 안으로 도서실의 긴 책상과 강당 벤치를 들여다가, 세 사람이 나란히 자리를 잡은 것이다. 바깥 벽에는 다카다 선생님이 써 주신 ‘무료로 편지 대신 써 드립니다’라는 게시글을 붙여 두었더니, 금세 많은 분들이 이 창구 밖에 줄을 섰다. 막상 엽서에 연필을 달리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문구야 떠오르겠지 하는 느긋한 배짱으로 버텼건만, 이 꼴이 되고 보니, “아뢰옵나이다”며 “삼가 아룁니다”며 “황공하오나 부디 심려 놓으시기를”로 어찌어찌 꿰어 맞춰도 도저히 감당이 안 됐다. 두세 번째쯤 내 쪽에 오신 할아버지였는데, 여쭤 보니 고마쓰가와의 어느 병원 회계 담당 삼촌의 여동생의 딸이, 그 할아버지 누나의 아들 며느리 친정 분가의 차남에게 시집을 갔는데, 고마쓰가와에 물이 나서, 그 할아버지 누나의 아들 며느리 친정 분가의 차남 쪽에서도, 예전부터 신세진 주인의 아들이 가진 물방아간으로 어쩌고 했더니, 그 병원 회계 담당 삼촌의 여동생이 어쩌고 했다더라, 그러니 잘 봐서 그 영감의 아들 친구의 삼촌이 간다 사루가쿠초에 가진 자물쇠 수리점으로 어쩌고 했다더라, 아니 어쩌더라, 뭐라 하더라 하는 식이라, 몇 번을 되물어도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아 영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질려 버렸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엽서에 대체 무슨 내용을 썼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건 하라 군 쪽에 오신 할머니 이야기인데, 하라 군이 “받으실 분 이름은요?”라고 물으니, 헤이고로 씨라는지 뭐라는지 하셨다. “성씨는 어떻게 되세요?”라고 다시 여쭤 봤더니, 성씨는 모르지만 헤이고로 씨라면 동네방네 다 아니까 성씨 없어도 분명 닿을 거라며 보증을 서는 것이었다. 그 하라 군도 “그냥 헤이고로 씨라고만 해서는 안 닿겠는데요”라며 진땀을 뺐지만, 결국 손을 들고서 ‘어딘가 마을 몇 번지 헤이고로 님’이라고 써 버렸다. 그게 무사히 헤이고로 씨 댁까지 닿았다면, 아무리 헤이고로 씨라도 잘도 닿았다며 누구라도 감탄할 게 분명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스웠던 건, 누구 쪽에 오셨는지 잊었는데, 수신인 주소에 “しようせんじのだやすつてん”이라고 적혀 있어 아무도 한자로 옮기질 못한 경우였다. 결국 “슈젠지 노다야 지점”이겠거니 하는 결론이 났지만, 이런 일본어 히라가나·한자 번역 문제가 입시에 나온다면 어느 학교 수험생이든 낙제할 게 뻔하다.

통신부는 해 질 녘에 닫았다. 평소 은행원이 와서 수업료를 처리하던 작은 창구 쪽에서도 우에하라 군, 이와사 군 및 그 밖의 졸업생 여러분이 대필의 수고를 맡아 주셨다. 이쪽도 거의 같은 시각에 창구를 닫았다. 우리가 돌아갈 때는 주변이 이미 어스름했다. 2층 창에서는 희미한 등불빛이 새어 나오고, 미루나무 가지에서 가지 사이로 걸어 놓았던 빨래도 벌써 죄다 걷혀 있었다.

통신부는 그 후로도 계속 열렸다. 앞서 이름을 적은 여러분을 제외하고, 히라쓰카 군, 구니토미 군, 스나오카 군, 시미즈 군, 요다 군, 시치조 군, 시모무라 군, 그 밖에 지금은 내가 잊어버려 이 자리에서 표창하는 영광을 잃은 것이 안타까운 수많은 여러분이, 열성으로 대필의 수고를 맡아 주셨음을 특히 기록해 두거니와, 전후 600장에 달하는 엽서가 이를 위해 쓰인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이 자리에 밝혀 두고 싶다.

그 이틀 뒤 오후, 의연금 일부를 털어 마련한 400여 벌의 사루마타를 이재민 여러분께 기증하게 되었다. 다들 사루마타 한 다스를 넣은 상자를 하나씩 들고 방방마다 돌아다녔다. 집시처럼 작달막한 구청 직원이 장부와 대조하며 한 사람씩 이재민 여러분을 불러내면, 우리가 한 벌씩 사루마타를 건네는 방식이었다. 아쉽게도 어느 방에서 어떤 분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딱 하나 기억나는 건 5학년 병조 교실에 들어갔을 때다. 어두컴컴한 구석에 색이 바래고 굵은 검은 줄무늬가 든 파란 담요가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담요를 둥글게 개어 놓은 줄 알았는데, 그 집시 직원이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자 그 담요가 꿈틀꿈틀 움직이더니, 안에서 회색의 긴 수염이 나왔다. 그다음에는 눈이 흐리고 얼굴이 불그레한 노인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회색으로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나왔다. 잠시 우리를 바라보다 다시 눈을 감아 버렸다. 곁에 다가가니 술 냄새가 났다. 왠지 그 담요 밑에 보드카 병이라도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층 방을 돌고 온 히라쓰카 군 말에 따르면, 5학년 갑조(甲組) 교실에 정신이 이상한 여자가 있어서 양동이의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빗물 자국이 얼룩진 회색 벽에 기대어, 쪽머리를 한 여자가 닳아 빠진 케슈수(毛繻子) 띠 사이에 손을 끼운 채 고개를 숙이고 양동이의 물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상상하니, 영락없이 소설 속 한 장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루마타를 다 나눠 주었을 때, 마에다 후(侯)로부터 큼직한 매화 문양이 새겨진 나무궤(長持)에 넣은 기부 물품이 한가득 왔다. 낙간(落雁)인가 했더니 셔츠와 복대라고 했다. 역시 마에다 후다운, 스케일이 다른 기부였다.

이재민 여러분이 며칠 만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시는 날 오전, 우리는 모은 의연금의 잔액을 들여 여러분을 위해 제비뽑기 행사를 열기로 했다.

경품은 전날 밤에 주문해 두었다. 당일 아침 내가 학교 사무실에 갔을 때는 벌써 우리 쪽 사람들이 잔뜩 모여 한창 제비를 만들고 있었다. 종이 꼰 끈을 솜씨 있게 꼬는 사람이 적다 보니, 히로세 선생님과 마사키 선생님이 도와주신다. 우리 중에서는 스나오카 군이 잘 꼰다. 나는 “오호, 손재주가 좋네”라며 감탄하며 바라보기만 했다. 물론 나는 꼬지 못한다.

사무실 안에는 온갖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전날 밤 이것들을 사러 갔을 때 오노 군이 입이 닳도록 그 효용을 보증했던 거북이 수세미도 있다. 된장 걸러 내는 역할까지 맡는다고 했던 어떤 채반도 있다. 양갱 미라 같은 빨래비누도 있다. 풀빗자루도 있고 국자도 있다. 나막신도 있고 식칼도 있다. 빨간 옷을 입은 인형이며, 로펜 섬 물개 같은 얼굴을 한 흙 강아지며 갖가지 장난감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 대여섯 개, 양철로 만든 은빛 피리가 있는 건 아마도 하라 군의 추천으로 산 것인 듯싶다. 경품 설명은 이쯤 해 두기로 하지만 한 가지만 더 적자면, 노란색 노시로 칠기 젓가락이다. 그게 몇 백 켤레인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나중에 몇 켤레씩 나누는 단계가 되자, 그 옻 냄새가 언제까지고 손에 남아서 질려 버렸다. 잠깐 맡기만 해도 속이 메슥거렸다. 제비뽑기 경품에 노시로 칠기 젓가락은 손자 대까지도 절대 금물임을 뼈저리게 깨달은 건 바로 이때였다.

제비가 다 만들어지자, 하라 군과 요다 군이 각 방을 돌아다니는 수고를 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제비를 든 사람들이 줄줄이 몰려왔다. 사무실에서 오른쪽 입구로 들여보내 평소 닫혀 있는 오른쪽 문을 열어 내보내는 방식으로 했다. 경품은 빗자루·채반·비누로 한 세트, 거북이 수세미·어떤 채반·국자로 한 세트, 나막신에 젓가락 한 켤레로 한 세트, 그리고 가장 손해인 건 노시로 칠기의 냄새나는 젓가락 한 켤레로 한 세트였다. 그것만은 제비가 당첨되더라도 나라면 사양하겠다고 생각했다.

스나오카 군과 구니토미 군이 낭독 역을 맡아, 제비를 받을 때마다 큰 소리로 읽어 올렸다. 중에는 한 가족 다섯 명이 모두 나막신에 당첨된 사람도 있었다. 한 가족 열 명쯤이 죄다 노시로 칠기의 냄새나는 젓가락에 당첨된다면 꽤 우스울 것 같아서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차례 제비뽑기를 마친 뒤에도 경품이 꽤 남았다. 그래서 남은 경품 전부에 꽝을 더해 다시 한번 제비뽑기를 열었다. 그것이 끝난 건 마침 정오였다. 이재민 여러분은 이미 슬슬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부러 인사를 하러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충분한 보람과 약간의 피로를 안고, 며칠을 분주히 보낸 사무실을 떠날 때, 창으로 목을 내밀어 내다보니, 진흙 투성이 자갈 위에는 잎이 마르기 시작한 편백나무며 키 낮은 미루나무가 또렷한 짧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한낮의 햇살이 붉게 달군 회색 교사의 벽에는 아연판이며 빗자루가 기대어져 있는 게 보였다. 아마 내일부터 뒤처리 청소가 시작되는 것이리라.

(메이지 43년, 도쿄부립 제3중학교 학우회 잡지)

Chapter 1 of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