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나는 어릴 적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요코하마 야마노테라는 곳에 있었는데, 그 일대는 서양인들만 사는 동네였고 선생님들도 모두 서양인이었습니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는 늘 호텔이며 서양인 회사 같은 건물이 늘어선 해안 거리를 지나야 했습니다. 거리에서 바다 쪽으로 나가 서 보면, 새파란 바다 위에 군함이며 상선이 가득 늘어서 있어서,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배도 있고 돛대에서 돛대로 만국기를 걸쳐놓은 배도 있어서, 눈이 아릴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나는 자주 바닷가에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고는, 집에 돌아오면 기억나는 만큼이라도 최대한 아름답게 그려보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투명하게 스며드는 듯한 바다의 남빛이며, 하얀 범선의 수면 가까이 칠해진 양홍색은 내가 가진 물감으로는 도무지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리고 또 그려도 진짜 풍경에서 보던 그 색깔은 도저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문득 나는 학교 친구가 가지고 있던 서양 물감이 떠올랐습니다. 그 친구도 서양인이었는데, 나보다 두 살쯤 위라 키는 올려다볼 만큼 큰 아이였습니다. 짐이라는 그 아이가 가진 물감은 외국에서 들여온 고급품으로, 가벼운 나무 상자 안에 열두 가지 색이 작은 먹처럼 네모난 모양으로 굳어져 두 줄로 나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어느 색이나 다 아름다웠지만, 그중에서도 남색과 양홍색은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짐은 나보다 키는 큰 주제에 그림은 훨씬 못 그렸습니다. 그런데도 그 물감을 칠하기만 하면, 서툰 그림조차 어쩐지 몰라보게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나는 늘 그것이 부러웠습니다. 저런 물감만 있으면 나도 바다 풍경을 진짜 바다처럼 그려 보일 수 있을 텐데, 하면서 보잘것없는 자기 물감을 원망하곤 했습니다. 그때부터 짐의 물감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마음이 약해져서 아빠한테도 엄마한테도 사 달라는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아, 매일 마음속으로만 그 물감을 떠올리며 며칠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그게 언제쯤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가을이었을 겁니다. 포도가 익어 있었으니까요. 날씨는 겨울이 오기 전 가을에 흔히 그렇듯 하늘 속속들이 맑게 개인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과 함께 도시락을 먹었는데, 그 즐거운 도시락 시간 한가운데서도 내 마음은 어쩐지 안정이 되지 않아 그날의 하늘과는 정반대로 어두웠습니다. 나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누군가 눈여겨보았다면 얼굴빛도 분명 파랬을 겁니다. 짐의 물감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어쩔 줄 몰랐던 것입니다. 가슴이 아플 만큼 갖고 싶었습니다. 짐은 분명 내 마음속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슬쩍 그 얼굴을 보면, 짐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즐겁게 웃기도 하면서 옆에 앉은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웃는 모습이 내 속을 알면서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이야기하는 것이 “두고 봐, 저 일본 아이가 분명 내 물감을 훔쳐 갈 테니까” 하고 말하는 것처럼도 들렸습니다. 나는 마음이 영 불편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짐이 나를 의심하는 것처럼 보이면 보일수록, 나는 그 물감이 갖고 싶어 더욱더 견딜 수가 없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