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전원의 사모
이시카와 다쿠보쿠
어느 독일 소설가가 그의 소설 속에서, 전원을 버리고 너도나도 매연과 먼지로 탁해진 도시의 공기 속으로 흘러들어 가는 사람들의 운명을 비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슬픈 이주자들은, 고향과의 인연을 미련 없이 끊고 왔건만, 도시의 땅에 한 발 내딛는 순간 이미 그 낡았지만 평온했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신경이 둔한 시골 사람이라도, 다량의 함유물이 섞인 도시의 공기를 호흡하기에는 자신의 폐 조직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만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전원 사모(田園思慕)는 새로운 생활의 첫날부터 시작되어, 일생에 걸친 길고 격렬한 노고와 함께 점점 깊어져 간다. 그들은 도시 어느 구석에서도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두 번 다시 그것을 빼내지 못하는 것이, 도시라 불리는 문명의 수렁이 지닌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따뜻한 전원 사모의 마음을 품은 채 차가운 도시의 인정 속에서 죽어 간다. 그 자식 세대가 되면, 직접 보지는 못했더라도 잠자리 이야기로 들은 고향의 면영——산, 강, 높은 하늘, 드넓게 펼쳐진 들판, 맑은 공기, 싱싱한 채소, 곡식의 꽃, 그리고 거기 사는 소박한 사람들의 어울림——화창한 이 이미지들은, 마치 동화 속 ‘행복의 섬’처럼, 격렬한 삶에 피폐해진 그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하다. 이 세대 역시 그 아버지가 죽은 것처럼 죽어 간다. 더 나아가 그 자식, 즉 슬픈 이주자의 3세대가 되면, 사정은 꽤 달라진다. 그들과 그들 조상의 고향 사이의 거리는, 단지 공간에서만이 아니라 시간에서도 이미 아득히 멀어져 있다. 게다가 앞선 두 세대에 작용한 진화의 법칙과, 그들이 세상에 첫 울음을 울린 이래 끊임없이 받아 온 교육은, 차츰 그들의 폐의 조직을 복잡하게 만들고, 그들의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어 왔다. 감각의 예민화와 덕성의 마비는 도시 생활의 두 가지 큰 요소이다. 실로 그들은, 사모해야 할 전원을 잃음과 동시에 그 아름다운 양심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사모해야 할 전원뿐만 아니라, 사모해야 할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그들의 삶의 비참이, 그 아버지의 비참보다도, 그 할아버지의 비참보다도 한층 더 비참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이야기를 나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지, 깡그리 잊어버렸다. 혹은 누군가에게 들은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서 읽은 것인지도 모른다. 작자의 이름도 소설의 이름도 모른다. 아는 것은 다만 위의 이야기뿐이다. 한번은 독일의 새로운 소설에 정통한 친구에게 물어보았지만, 역시 알 수 없었다. 정말 두서없는 일이나, 그럼에도 나는 이상하게도 이 이야기를 오래도록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떠올릴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자신의 현재와 과거 사이에 마음을 헤매게 한다.——나 역시 ‘슬픈 이주자’ 중 한 사람이다.
지방에 가보면, 어느 마을에도, 어느 시골에도, 도시 생활을 동경하여 일에 마음이 붙지 않는 젊은이들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안다. 안타깝다고도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도, 꼭 도시의 전원 사모자들과 마찬가지로, 열 명 중 아홉 명은 일생 그 사모의 마음을 채우지 못한 채 죽는다. 그러나 거기에는, 두 유형 사이에 굳이 구별을 짓자면 짓지 못할 것도 없다. 전원에 있으면서 도시를 사모하는 이의 사모는, 더 나은 삶의 존재를 믿고 그것에 닿으려는 사모이다. 낙천적이고, 적극적이다. 도시에서의 전원 사모자는 그렇지가 않다. 그들도 일찍이 한때는 도시를 사모했던 이들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사모는, 더 나쁜 삶으로 떨어진 자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사모이다. 설령 그 사모가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이 반드시 진정한 행복은 아님을 알면서도 품는 사모이다. 그만큼 기댈 곳 없는 사모이다. 절망적이고, 소극적이다. 그만큼 슬픔이 깊은 것이다.
산업 시대라 일컫는 근대 문명은, 나날이 도시와 전원 사이의 도랑을 깊게 파 왔다. 지금도 깊게 파고 있다. 앞으로도 더욱 깊게 팔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전원에 있는 이의 도시 사모는 나날이 깊어지고, 도시에 사는 이의 전원 사모 역시 나날이 깊어진다. 이런 모순은 도대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이런 모순은 마침내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사모해야 할 그 무엇도 갖지 못한 상태로 걸어 들어가게 하는 것은 아닐까.
폐의 조직이 복잡해진 사람들, 감각만이 홀로 예민해진 사람들은, 내가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전원을 사모하는 것을 보고서, “저것 봐라, 저기에 저런 딱한 이상주의자가 있다”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비웃음을 사도 상관없다, 나는 나의 사모를 버리고 싶지 않다, 더욱 깊이 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에 있어서는, 단지 나의 감정에서가 아니라 권리에서이다. 나는 현대 문명의 전 국면에 나타나는 모순이, 언젠가는 우리의 손에 의해 남김없이 사라지는 시대가 오리라는 신념을 잊고 싶지 않다. 안락을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권리이다. (메이지 43년 10월 20일 아침, 도쿄에서)
(메이지 43년 11월 5일, “田園(전원)” 창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