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가타카나에 관하여
이타미 만사쿠
이런 제목을 내걸면 국어학자로 오해받을 우려가 있으니 미리 밝혀두겠다. 나는 영화 쪽 사람으로, 수년째 자리를 보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병자이다. 그런 자가 왜 가타카나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논하느냐고 의아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이처럼 자기 전문 밖의 일에 참견하여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요즘의 유행이지, 내 독창은 아니다. 가령 우리 영화계만 해도, 무슨 위원회니 무슨 조직이니 생겨날 때마다 중요한 자리를 줄줄이 차지하는 것은 어김없이, 하나같이 영화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뿐이다. 혹시 우리나라에는 “문외한이 전문가를 지배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지만, 아직 조사해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라의 사정이니, 내가 조금쯤 밭이 다른 일에 참견했다 하여 감히 불평을 들을 처지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가타카나 문제는 현재 내 생활과 무척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실제로 나는 요즘 원고를 쓸 때도 편지를 쓸 때도 히라가나라는 것을 쓴 적이 없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우리처럼 드러누운 채로 무언가를 쓰는 사람에게는 아주 사소한 힘의 낭비도 큰 문제가 된다. 그런데 가타카나(カタカナ)와 히라가나(ひらがな)는 힘의 소비가 현저히 다른 것이다. 이 사실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의 글에 가타카나 문장이 많다는 점이나,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가 병중에 쓴 시 「비에도 지지 않고(雨ニモ負ケズ)」가 가타카나로 쓰였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 증명된다. 이에 관하여 다소 엉성하나마 역학적으로 고찰한 글을 다른 지면에 발표했으므로 여기서는 쓰지 않겠다.
내가 여기서 밝혀두고 싶은 것은, 일본 활자에서 히라가나를 없애는 편이 낫다는 사견이다. 너무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보면 별로 기발한 것도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 논거를 밝혀야 하겠는데, 지면이 충분하지 않으니 조목별로 아주 간단하게 쓰겠다.
첫째, 히라가나 활자는 그 자체가 아름답지 않다. 문자로서도 지금의 히라가나보다 변체가나(変体仮名, 헨타이가나)가 아름답고, 변체가나보다 상대가나(上代仮名, 조다이가나)가 더 아름답다. 조금이라도 글씨를 익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바다. 현재의 활자는 그 아름답지 않은 히라가나를 그대로 활자로 옮긴 것으로, 활자에 필요한 양식화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히라가나 활자가 얼마나 추한지는 초호(初号, 가장 큰 크기) 정도의 활자를 보면 누구나 알 것이다.
둘째, 히라가나라는 것은 원래 붓과 화지(和紙, 와시)와 함께 자라온 것으로, 그것들을 떠나서는 거의 생명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는 거의 동시에 태어난 듯하지만, 전자는 붓과 화지에 적합성을 지녔기에 오늘날까지 애용된 반면, 후자는 적합성을 지니지 못하여 천 년 동안 거들떠보지 않았다. 붓을 쓸 기회가 줄고 화지가 거의 사라진 오늘날, 우리의 실생활(취미 생활은 논외로 하고) 어디를 살펴보아도 히라가나에 미련을 남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천 년 동안 끈질기게 오늘을 기다려온 가타카나를 등용할 시기가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항목은 활자 이외의 영역으로 탈선했다.)
셋째, 히라가나라는 것은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한자를 극단적으로 흘려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형태로 보면 초서(草書)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초서와 해서(楷書)는 뒤섞어 배치하면 결코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따라서 해서와 히라가나도 마찬가지로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그러므로 해서 활자와 히라가나 활자 또한 조화를 이루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조화롭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습관으로 인해 감각이 마비되어 있을 뿐이다.
반면 가타카나의 경우는 그 성립의 역사로 보더라도 해서 한자의 일부를 살짝 빌려온 것에 불과하므로, 해서 글자와 나란히 놓이면 마치 부모와 자식이 나란히 선 것처럼 잘 어울린다. 따라서 해서 활자와 가타카나 활자 또한 지극히 조화가 좋다. 만약 이것을 부조화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가타카나에 익숙지 않아서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수학책에 단단히 시달린 기억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원래 히라가나의 구성 단위는 곡선이고, 해서와 가타카나의 구성 단위는 직선이다. 이 사실이 앞서 말한 조화 여부와 깊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넷째, 히라가나는 활자에 적합하지 않다. 그 이유는 아직 나 자신도 분명히 모르지만, 아마도 히라가나를 구성하는 선이 너무 불규칙하여 일정한 법칙에 따라 양식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다 활자라는 것은 박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활자로 쓴 포스터의 큰 글자에 히라가나가 섞여 있으면 잘 알 수 있다. 마치 전쟁터에 소매 긴 옷을 입은 사람이 나온 것처럼 갑갑하고 어색한 느낌이 든다.
다섯째, 가타카나는 히라가나에 비해 보다 확실한 전달 능력을 지닌다. 구성이 단순하고 획이 적으며 선이 직선적이고 규칙적이기 때문에, 쓸 때도 읽을 때도 틀릴 기회가 적다. 현재 가타카나가 일반적으로 쓰이는 것은 수학 서적, 법률 서적, 관보, 군 관련 문서 등인데, 모두 가장 정확을 기해야 하는 종류의 것들뿐이다.
여섯째, 가타카나는 히라가나를 쓸 때에 비해 아마도 절반의 수고로 끝난다. 처음에 잠깐 언급하였듯이, 결국 직선 운동과 곡선 운동의 비교가 된다. 자세한 것은 물리학자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겠지만, 직선 쪽이 보다 적은 에너지로 보다 많은 거리를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활자와 관계없어 보이지만, 원고를 쓰는 경우에는 관계가 생겨난다.
일곱째, 활자의 히라가나를 폐지해도 문화적으로 아무런 손실이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행서(行書) 활자니 초서 활자니 하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그 때문에 조금의 불편도 느끼지 않았다. 한자 활자가 해서 하나로 충분하듯이, 가나 활자도 가타카나 한 종류로 충분하다. 히라가나를 좋아하는 사람, 히라가나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만큼 히라가나를 쓰면 된다. 다만 활자만을 가타카나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제로 사용하는 문자와 활자의 문자가 달라 불편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서양에서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쓰는 문자와 같은 활자를 가진 나라는 없다. 쓰는 문자와 활자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여덟째, 일본어의 학습과 보급이 현재보다 용이해진다. 외국인들도 가나를 한 종류만 외우면 된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밖에 일본 문화의 보급에 기여하는 바도 상당할 것이다.
아홉째, 인쇄 문화 면에서 상당히 큰 이득이 있다. 선명도, 속도 등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자재 면에서도 노력 면에서도 대단한 절감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종류의 일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열째, 세상에는 그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실행이 귀찮은 문제와, 실행은 간단하지만 좀처럼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아마도 후자의 경우일 것이다. 오랜 습관의 힘이란 어이없을 만큼 강한 것이다. 그러나 우선 처음에 신문만이라도 가타카나로 바뀌어 버리면 이후는 비교적 수월할 것이다. 적어도 가나 표기법 문제보다는 훨씬 단순하다.
이상으로 내가 할 말은 대강 다한 셈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썼다고 해서 내가 가타카나 운동이라도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면 곤란하다. 나는 무슨무슨 운동이라는 것에는 일절 취미가 없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의견이지 실제 운동이 아니다. (『일본평론』 쇼와 18년(1943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