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고가네이의 벚꽃
오마치 게이게쓰
쇼무 천황께서 칙원을 내리셨다는 금광명·사천왕·호국 고쿠분지(國分寺)는 폐허가 되어, 유적이라 한들 그저 부서진 기와조각만 보일 뿐이다. 가무 보살이 노닐던 고이가쿠보(戀ヶ窪)는 향골이 흙으로 화하고, 화류의 땅도 들녘으로 변하였으며, 게이세이(傾城) 소나무만이 옛 빛깔 그대로이다. 이노카시라 못이 넓고 그윽한 곳, 누쿠이 벤텐(貫井辨天)이 조금 높이 자리하여 시야가 트인 곳, 그 절세의 공사가 들판을 갈라 맑은 물줄기가 구슬을 튕기듯 흐르는 길이 십수 리, 양안에는 요시노(吉野) 산의 산벚나무가 옮겨 심어져 있어 그 수가 몇천만 그루인지 알 수 없다. 꽃이라면 벚꽃, 벚꽃이라면 무사시(武藏)의 고가네이라 하여, 상수(上水)로 이름 높이 들리는 간토(關左)의 명승. 수돗물의 향기로움을 길어 마실 적에도 마음은 그 상류의 꽃으로 날아가지 않을 수가 없다. 사월 중순이 지나 꽃의 한창때는 놓쳤으나 사람으로 북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그 대신의 장점으로 삼아, 하기노야(萩の舍) 선생과 함께 길을 떠났다.
사카이(境) 정거장을 나서 북으로 칠팔 정(町, 약 800m)을 가니 상수가 나온다. 사쿠라바시(櫻橋)라는 작은 다리가 놓여 있다. 양안의 벚나무는 새로 심어져 나무가 아직 작은데, 십사 정 사이에 고가네이 벚꽃의 뒤를 잇고는 있으나 요시노 종이 아닌지라 담비 꼬리에 개 꼬리를 이은 격이라고 보아야 할까.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니 어린나무가 다하면서 늙은 나무가 모습을 드러내고, 고가네이 벚꽃의 진면목이 비로소 펼쳐지려 한다.
바라보는 상류는 겹겹의 향운(香雲), 돌아보는 하류 또한 겹겹의 향운. 사람은 그 향운이 쌓인 사이를 거닐어 간다. 상수의 양안 모두 벚나무, 줄기는 늙어 굵직한데 그중 작다는 것도 한 아름에 못지않다. 키 높이 우뚝 가지 무성하여, 맑고 푸른 한 줄기 물을 끼고서 서로 어우러지려 하면서도 어우러지지 않으니, 마치 미인들이 붉은 소매를 받쳐 들고 서로 기대려는 모습 같다. 누가 말하랴, 흐르는 물의 폭이 좁다 못해 지나치다고. 좁기 때문에 양안의 벚나무가 서로 안으려 하는 진기한 정경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끝도 모를 꽃의 터널, 흐르는 물에 비치어 위아래가 모두 꽃이요, 둑 위에는 푸른 풀이 모전(毛氈)을 깐 듯하고 붉은 명자나무 꽃이 잇따라 피어 한 가지 꽃무늬를 더하니, 우러르며 굽어보는 풍경이 눈부실 만치 현란하여 거의 응대할 겨를이 없다.
두 줄로 늘어선 벚나무 바깥에는 보리밭이 있고 차밭이 있다. 잡목림이 잇따라 서고, 띠집이 점점이 박혀 있다. 그 사이 곳곳에 갈대발 차일을 두른 찻집을 차려 놓아, 차 끓이는 연기 가벼이 피어오르는 그곳에는 작은 숲의 선탑(禪榻)이 아닌, 빨간 모포를 깐 걸상이 눈부실 만치 늘어서고, 손님을 부르는 젊은 아낙의 목소리마저 교태롭다. 생각한 그대로 꽃의 한창때는 지났으나, 살랑 부는 바람에도 무르게 흩날리는 모양새가 도리어 가련하다. 지치부(秩父) 산자락에서 내려오는 봄바람이 잡목림에 그 여운을 머물게 하여 벚나무에는 강하게 불지 않건마는, 그 잡목림이 끊긴 곳에서는 바람의 기세가 강해 꽃잎이 일제히 흩어져 날린다. 하늘조차 모르는 향설(香雪)이 분분히 얼굴을 때리고, 물에 떨어져 그 물이 이내 비단을 짠 듯이 된다. 참으로 꽃의 한창때를 넘기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라 기뻐하였다. 좌안의 나무가 성긴 곳에는 지치부의 연산(連山)이 그 험준한 모습을 드러내고, 우안에는 하코네(箱根)와 아시가라(足柄)의 산들이 손에 잡힐 듯 보이며, 그 위로 여덟 봉우리 부용봉(芙蓉峯, 후지산)이 거꾸로 흰 부채를 걸어 둔 듯이 솟아, 꽃에 한층의 정취를 더해 주고 있다.
고가네이의 한복판이라 여겨지는 고가네이바시(小金井橋) 근처에서 지팡이를 멈추고, 푸른 깃발이 나부끼는 가시와야(柏屋)로 들었다. 이층 누각이 벚꽃에 파묻혀, 앞도 좌우도 모두 꽃이다. 난간에 기대어 술잔을 기울이며 사방을 둘러본다. 사면의 꽃이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가. 바람이 불 때마다 팔랑팔랑 흩날리는 꽃잎이 이따금 잔 속에 떨어져 들기까지 하니 마음을 알아주는 듯도 하다. 누각 뒤편 나무숲에서 화답하듯 우는 그윽한 새소리가 귀에 도드라질 만큼 또렷하고, 누각 아래를 지나는 행객도 많지가 않다. 따라서 북적이지 않는다. 동냥하며 켜는 샤미센 소리가 적막을 깨는 것도 또한 나쁘지 않다. 한 잔 또 한 잔, 마침내 얼굴이 꽃과 어우러져 서로 비치는 데에 이르러서야 누각을 내려왔다.
계속 내리던 비는 길 위에 옅은 흙탕을 남겨 두었으나, 하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한 점 구름조차 없는 좋은 날씨이고, 햇살이 따사로이 데우는 데에 취기까지 더하여, 도연(陶然)히 걸어간다. 다리를 만날 때마다 길을 바꾸어 가며, 가도 가도 벚꽃은 다하지 않는다. 기헤이바시(喜平橋)에 이르러 갈증을 느낀 김에, 어지러이 흐드러진 벚나무 아래의 찻집에 쉬어 가, 아까는 술잔에 받아 마시던 꽃잎을, 이번에는 찻잔에 받아 마시는 것도 자못 운치가 있다. 사쿠라바시에서 이 다리에 이르기까지 오십 정(약 5.4km)이 넘으리라. 꽃을 보면서 천천히 걸어 왔으니 그 멂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였다. 그 물 위쪽 반 리(里, 약 2km) 남짓에는 벚나무가 아직도 잇따라 서 있다고들 한다. 굽어보는 물은 꽃을 띄우면서 흘러간다. 흐르고 흘러 어디가 봄의 머무는 곳일까. 그 흘러가는 꽃을 보고 인생의 무상을 느끼는 일은 새삼스러운 것이로되, 어쩐지 마음이 슬퍼진다. 아아,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사이, 올해의 사람은 작년의 사람이 아니다. 올해 꽃을 보는 사람이 내년에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꽃은 떨어지기 쉽고 청춘의 꿈은 깨기 쉽다. 사랑은 흐르는 물과 더불어 가 버려, 뜬세상의 거친 물결에 떠도는 인간의 몸이, 꿈이 아니고서는 다시 옛 즐거움을 좇을 수가 없다. 참으로 운명을 한탄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술이 깨어 눈물이 절로 떨어지는 것을 어찌하랴. 떨어지는 꽃은 소리가 없고, 흐르는 물은 말이 없다. 꽃 너머로 들려오는 호카이부시(法界節) 노랫소리도 애달픔을 자아낼 따름이다.
(메이지 3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