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그 시절

구니키다 돗포

자, 메이지 어대(御代)도 더없이 번창하여, “그 시절은 재미있었지” 하며 학교 시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신사들이 제법 많아졌습니다.

서로 마주칠 때마다 갖가지 이야기가 오갑니다. 몇 번이고 거듭되지요. 거듭하고 또 거듭해도 싫증을 모르는 것이 또한 이 회구담(懷舊談)으로, 뜬세상의 풍파에 시달려 눈가 어딘가에 고투의 흔적을 남긴 분들도, “그 시절” 이야기만 나오면 저도 모르게 청춘의 핏기가 다시 한 번 그 뺨에 오르고, 눈은 빛나며 목소리에까지 윤기가 돌고, 가엾어라, 눈물마저 솟구칩니다.

제가 상경한 것은 열아홉 살 때였지요. 조호쿠 대학이라 하면 지금이야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그 하나를 차지할 만한 기세로 교사(校舍)도 훌륭해졌고, 그 둘레의 논과 밭도 어느덧 시가지가 되어 버렸지만, 이른바 “그 시절”에는 그야말로 요즈음 분들로서는 상상조차 못 할 광경이었으니, 땡 하고 시업(始業) 종이 울리면 그 소리가 논과 숲, 밭을 건너 울려 퍼졌고, 그 종소리에 실내용 짚신 차림 그대로 민가 하숙을 뛰쳐나가, 논두렁 좁은 길에서는 거름통을 진 농부에게 길을 양보받으며 다니는 그런 형편이었습니다.

어느 날, 히구치라는 같은 하숙의 청년이 어디선가 앵무새 한 마리를 아름다운 새장에 든 채로 들고 돌아왔습니다.

이 청년은 어쩐지 그 무렵 학교를 쉬고 있었는데, 이렇다 할 일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요. 저로서는 별로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오후 세 시쯤 학교에서 돌아오니 제 방에 친구 셋이 모여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같은 방에 책상을 나란히 놓고 지내는 기무라라는 과묵한 구주(九州) 출신의 청년이고, 다른 둘은 같은 집에 하숙하는 청년으로, 정치과와 법률과에 다니는 혈기왕성한 무리였지요. 저를 보자마자 정치과의 다카미가 목소리를 낮추어,

“구보타 군, 구보타 군, 진담(珍談)이 있네”라며 “어제부터 안 보이던 히구치가 어디선가 앵무새를 들고 왔는데, 자네 아직 못 봤지, 어서 가서 보고 오게나” 하고 말하기에 저는 곧장 히구치의 방으로 갔습니다. 뒤뜰 밭 쪽으로 난 여섯 장짜리 다다미방에서, 히구치와 이 집 주인인 마흔일고여덟 된 후가(後家)가 마주 앉아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참이었지요. 이 후가를 두고 저희는 모두 어머니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자못 난처한 얼굴로 히구치를 바라보고 있었고, 히구치는 평소의 버릇대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다시 혀끝으로 핥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앵무새 새장이 책장 위에 놓여 있었지요.

“히구치 씨, 히구치 씨” 하고 느닷없이 앵무새가 어딘가 모자란 듯한 가락으로 울었기에,

“야, 이놈 참 기특하구나. 히구치 군, 어디서 사 왔나, 이거 재미있구먼” 하며 저는 아직 어린 마음에 정말로 재미있었던 터라 새장 옆으로 다가가 들여다보았습니다.

“음, 재미있는 새지” 하고 히구치는 쓸쓸한 웃음을 흘리며 잠깐 돌아보았지만, 곧 다시 고개를 숙여 버렸지요.

어쩐 일인지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저를 나무라기라도 하듯 “구보타 씨, 그런 걸 보시려면 저쪽으로 가져가세요”.

“괜찮은가, 자네” 하고 임자인 히구치에게 물으니, 히구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제가 앵무새를 들고 오자, 드러누워 있던 정법(政法)의 두 사람은 벌떡 일어났습니다.

“어떻든가” 하며 다카미는 앵무새 새장과 제 얼굴을 견주어 보면서, 게다가 웃어 가며 묻기에, “어떻든가라니, 무어가 어떻단 말인가”.

“히구치 방에 어머니가 있었지”.

“있었네” 하고 저는 무심히 답했지만, 분위기가 묘했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법의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지요. 소리는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새장 위에 묶여 있는 다홍 비단 곱창 끈을 만지작거리며, “이런 끈까지 달고 오니 더 못쓰지, 들통 날 빌미요,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 아닌가” 하고 법과의 우에다가 사각진 얼굴을 한층 자못 의젓하게 굳히며 말하자, 다카미가,

“그렇지만 히구치한테는 무엇보다 이 끈이 기쁠 걸세, 한번 맡아 보게나, 어떤 향기가 나는지”.

“바보 같은 소리, 히구치도 아니고 말이지” 하고 우에다의 목소리가 조금 컸던 탓에, 앵무새가 한 가락 높이 “히구치 씨” 하고 외쳤습니다.

“이 짐승이?” 하고 다카미가 으르렁거리듯 말했지만, 앵무새는 천연덕스레,

“오타마 씨”.

“사람을 놀리고 있군!” 하고 우에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오타마 씨…… 히구치 씨…… 오타마 씨…… 히구치 씨……” 하고 울려 퍼지는 높은 가락으로 앵무새가 잇달아 외쳐 대니, 정법도, 기무라도, 저도 어이가 없어 멍해 있는데, 뛰어들어온 것은 시로라는 이 집의 열다섯 살 난 사내아이였습니다.

“앵무새를 돌려달라고 하셔서요” 하더니, 새장을 들고 가 버렸습니다. 이 시로는 저와 사이가 좋아서, 머지않아 뒤뜰 논에서 기러기 낚시를 하기로 약속해 두었던 참이었지요. 그런데 그날 밤, 어머니와 히구치는 어느 비탈진 동네에 살 것이 있다며 나갔고, 정법의 두 사람은 학교 강당에서 열리는 학우들의 연설회에 갔으며, 기무라는 기도회에 가고, 집에 남은 사람은 식모 대신 와 있는 친척집 처녀와 시로, 그리고 저뿐이라 자못 적적했던 터라, 기러기 낚시의 실행에 착수했습니다.

미리 시로와 둘이서 마련해 둔, 그러니까 논도랑에서 잡아 둔 미꾸라지를 낚싯바늘에 꿰어, 집을 서쪽으로 나서면 바로 있는 어느 논의 여기저기에 던져 두었지요. 그 논은 옛날 어느 다이묘의 별저(別邸) 연못 터를 메운 것인 모양이라, 둘레에는 축산(築山) 같은 둔덕이 몇 군데 솟아 있어 기러기에게는 더없이 좋은 은신처라, 그 무렵 매일 밤이면 한 떼의 기러기가 내려앉곤 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헤어져 멀고 먼 도성에 와 타오르는 듯한 공명심에 채찍질하며 학문에 정진하는 몸이었으나, 저는 아직 정말 어린아이였던 까닭에 이런 장난도 시로와 한마음으로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열 몇 개의 낚싯바늘을 연줄에 매고 그 끝을 한 가닥으로 묶어 밤나무 밑동에 동여매고는, 자, 됐다 하며 시로와 둘이 저도 모르게 별빛 차가운 너른 하늘 한쪽을 우러러보던 그때의 마음만은 언제까지고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기러기가 낚일 리 없으니, 그 뒤로 두 밤쯤 더 시도해 보았지만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만 될 뿐, 시로와 저 모두 단념했지요. 슬픈 일이지만 이 시로는 그 뒤 얼마 안 있어 척수병에 걸려, 불구나 다름없는 목숨을 두세 해 부지하다가 세상을 떴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도 지금은 알지 못합니다. 단념될 듯하면서도, 막상 떠올릴 때마다 끝내 단념하지 못하고 가슴 깊은 이별의 정에 잠기는 것이 바로 이런 일들이지요. 그래서 저는 “연(緣)이 얕다”는 말의 슬픔을 사무치게 몸으로 느낍니다.

바로 얼마 전의 일입니다. 저는 교우회 자리에서 오랜만에 다카미와 우에다를 만났습니다. 하기야 이 두 사람은 저마다 도쿄에서 직업을 얻어 그럭저럭 터를 잡고 있어, 한 해에 두세 번은 보게 되지만, 저와는 분야가 달라 그리 자주 왕래하지는 않는 사이지요. 그래도 만나기만 하면 언제고 옛날 그대로의 학우 기질로 거리낌 없는 입을 놀려 댑니다. 이날도 다카미가 돌아가는 길에 꼭 들르라 권하기에 우에다와 함께 셋이 동행하여, 부인이 손수 마련하신 요리치고는 좀 과한 대접에다 술까지 곁들이며 “그 시절”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다카미는 옛날의 쾌활한 가락 그대로,

“참, 히구치라는 친구는 어찌 되었을꼬” 하며 이야기는 앵무새 사건으로 옮겨 갔습니다.

“어찌 됐을지, 시골 구석에 묻혀 곰팡이가 슬어 있거나, 아니면 죽어 버렸을지도 모르지. 오래 살 것 같지 않던 사내였잖나” 하고 법률의 우에다는 여전히 옛날처럼 매서운 소리를 합니다.

“가엾은 소리도 다 하는군. 그렇지만 정말로 그 친구는 어딘가 모르게 그림자가 옅은 사람이었지, 구보타 군”.

하는 다카미의 말처럼 저도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말수가 별로 없고, 안색이 희멀건, 이마가 좁고 자그마한 체구에, 나이는 스물한둘쯤이던 그 청년을 떠올려 보면, 도무지 그 둘레에 생기 도는 빛이 없어, 마치 잿빛 안개가 둘러싸고 있던 것처럼만 여겨집니다.

“그래도 염복(艶福)이라는 점에서는 우리가 히구치한테 멀찍이 미치지 못했지” 하고 우에다가 차갑게 웃자, 다카미가,

“이야, 그런 사내일수록 여자에게 사랑받는 법일세. 여자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라 주다가도, 그래도 사내인지라 슬쩍 버티어 보이고는 하지. 이른바 ‘뻗대기’라는 게야. 여자란 그런 사내를 마음대로 하기도 하고, 또 마음대로 휘둘리기도 하면서 푹 빠져드는 법이거든. 그러니 보라구, 그 쉰 살 다 된 할멈이 부끄럼도 체면도 다 잊어버리고 있었잖나. 앵무새의 임자가 어떤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유녀(遊女)일 거라고 나는 짐작한단 말일세”.

“뭐, 그쯤 되겠지. 어쨌든 후가 할멈, 한껏 통(通)을 부리는 척하며 히구치를 놀게 해 주었으니 우습지 않은가. 다카미 군이 말한 그 ‘마음대로 휘둘려 본’ 격이겠지마는, 앵무새까지 들이게 되고 ‘오타마 씨, 히구치 씨’ 주거니 받거니 하는 소리까지 듣게 되어, 가엾게도 할멈은 끝내 진력이 나서, 히구치 없는 틈에 앵무새를 놓아 버렸으니, 구보타 군, 그 우스꽝스러운 광경 기억하나”.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히구치가 앵무새를 들여온 날로부터 이틀쯤, 사흘쯤 지난 뒤였지요. 이제는 우에다도 다카미도 ‘할멈’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시절의 어머니가 앵무새 새장을 열어 새를 내쫓아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히구치가 돌아와서 몹시 화를 낸 모양이었지만, 얼마 안 되어 앵무새가 제풀에 새장으로 돌아와 버렸기에, 그대로 매듭이 지어진 듯했지요.

“그래도 자네는 그 뒤의 일은 잘 모를 걸세. 머잖아 자네가 기무라와 둘이서 다른 하숙으로 옮겨 가 버렸으니까…… 무어, 자네와 기무라가 떠나고 일주일도 채 안 되어서야. 할멈, 견디지 못하게 되어 끝내 히구치를 달래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만 것은 말일세. 할멈, 울고불고 한껏 그 귀여운 사내를 신바시까지 배웅했다는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가엾기도 하지. 그러지 않아도 그 김 빠진 듯한 히구치가 점점 더 멍해져서 새파래진 채로 앵무새 새장과 함께 인력거에 올라, 그 후줄근한 대문을 빠져나가던 뒷모습은 아직도 내 눈에 어른거리네” 하고, 그 매섭던 우에다도 감회를 견디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히구치 이야기뿐만 아니라, 기무라의 일도 화제에 올라, 밤 열한 시 무렵까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는데, 저는 돌아오는 길에 기무라를 떠올리고 그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어찌 지내고 있을까, 어떻게든 한번 만나 보고 싶건만, 누구에게 물어 본다면 그 사람의 형편이며 거처를 알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돌아왔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민가 하숙을 나온 것은 순전히 기무라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앵무새 사건으로 기무라는 비로소 씁쓸한 사정을 알게 되어, 저에게 넌지시, 말 없이도 말하듯 짤막하게 이사를 권했고, 저도 동의하여 둘이서 다른 하숙으로 옮긴 것입니다.

기무라는 갸름한 얼굴에 눈초리가 길게 째진, 작은 입을 가진 사내로, 키는 보통 사람만큼 컸지만 야위고 호리호리한 데다가 단이 짧은 옷을 입고 있어, 자못 초라한 행색이었지마는, 제 눈에는 그것이 어쩐지 고맙게 비치어, 성자(聖者)의 풍모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그는 반드시 성서를 읽었지요. 그러고는 일요일 아침 예배에도, 금요일 밤 기도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일요일 밤 설교까지 들으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숙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기무라가 오늘 밤 설교를 들으러 가지 않겠느냐 하고 묻습니다. 그것도 굳이 권한다기보다는, 그의 버릇대로 살짝 얼굴을 붉히며 머뭇거리다가 정중히 한 마디 “안 가시겠습니까” 하고 청한 것이지요.

저는 싫다고는커녕 반갑기까지 한 마음에 곧 응했습니다.

눈발이 흩날리는 밤이었습니다.

기무라의 교회는 고지마치 구에 있어, 한 리(里) 길은 족히 됩니다. 두 사람은 기무라의 색이 바랜 붉은 모포를 머리부터 푹 뒤집어쓰고, 어깨와 어깨를 맞댄 채 길을 나섰습니다. 이따금 멈춰 서서 모포에 쌓인 눈을 털어 가며 걸음을 옮겼지요. 저도 그 이전에 기독교 회당에 들어간 적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밤만큼 깊이 마음에 남은 적은 없으니, 따라서 그날 밤 처음으로 회당에 간 듯한 기분이 지금까지도 듭니다.

길을 걸으며 두 사람이 갖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을 테지만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머리에 남아 있습니다. 기무라가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사람을 다그치는 듯한 목소리로,

“자네는 베들레헴에서 나신 인류의 구주, 예수 크리스트를 믿지 않는가”.

별로 이상한 문구도 아닙니다만, ‘베들레헴’이라는 말에는 어떤 힘이 깃들어 있어, 제 마음에 이제까지 없던 무엇인가를 느끼게 했습니다.

회당에 다다르니, 입구에 모포를 둘둘 말아 던져 두고는, 기무라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는데, 우선 화려하게 휘황한 등불 빛이 회당 안에 가득한 데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이는 한 리 길을 어두운 야마노테(山の手) 길을 더듬어 왔기 때문이겠지요. 그다음으로 폭신하니 따스한 공기가 차가워진 얼굴에 기분 좋게 닿았습니다. 이는 활활 스토브를 피우고 있어서지요. 이어서 부인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드리우고, 새하얀 꽃을 꽂은 소녀와 그 외에도, 어쩐지 부끄러워 잘 보이지 않았으나, 그저 한결같이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높은 천장, 흰 벽, 그뿐 아니라 강단 위에는 철 아닌 풀꽃과 장미꽃이 어여쁜 꽃병에 꽂혀 있었고, 그 탓인지 어떤지, 가벼우면서도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이따금 따스한 공기에 실려 떠와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이었지요. 아직 어린 청년, 사람 마음의 사악함이며 세상의 험준함 같은 것은 조금도 알지 못하고, 몸에 날개가 돋친 듯 마음 가는 대로 아름다운 것, 높은 것, 깨끗한 것, 그리고 꿈만 같은 것들만을 생각하던 저로서는,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마음을 흔들어 놓았겠습니까.

기무라가 저를 앞 좌석으로 이끌려 했지만, 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잠자코 뒤편 자리에 몸을 작게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목사가 찬미가의 번호를 알리자, 회당 한구석에서 자못 묵직하고도 낮은 가락의 오르간 한 가닥이 울려 퍼졌고, 그것을 신호 삼아 일동이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그러고는 남자의 굵은 소리와 부인의 맑고 낭랑한 소리가 어우러지며, 사람의 목소리가 높고 낮게 정교한 악기에 이끌려 흘러갔지요. 그리하여 “묘하신 은혜”니 “참된 힘”이니 “사랑의 샘”이니 하는 말씀들로 짜인 몇 절의 노래를 들으며 서 있노라니, 온몸에 어떤 떨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고 나서 목사의 기도와 간곡한 설교가 이어졌고, 모든 것이 끝나자 회당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묵도(默禱)에 들었으니, 이때 잠시 동안의 고요했던 광경…… 저는 마치 다른 세계를 본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입니다.

돌아가는 길에는 눈보라가 일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모포 속에서 끌어안다시피 하고, 사각사각 쌓인 눈을 밟으며 걸었지요. 저는 거의 꿈결에 잠겨 추위마저 잊은 채, 기무라와는 변변히 말도 나누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어찌했던가, 성서라도 읽었던가, 찬미가라도 불렀던가,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다만 이 일들만이 또렷하게 머리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기무라는 그 뒤 두어 달쯤 지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돌아갔습니다.

그 이유야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학자(學資) 사정이었으리라고 저는 짐작합니다. 그리고 저로서는 기무라가 설령 그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머지않아 어딘가에 숨어 도시인으로서 사람들 가운데 얼굴을 내미는 사람은 되지 못하였으리라 여겨집니다. 기무라가 일부러 내밀지 않으려 한 것도 아니요, 그저 그 자신의 흐름이 그리되도록 되어 있는 것처럼 저에게는 비치는 것입니다. 히구치도 마찬가지로, 기무라도 끝내 “그 시절”의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며칠 전 밤 다카미의 집에서 히구치 이야기를 하던 중에 다카미가 문득,

“히구치는 무엇을 공부하고 있었을꼬” 하고 두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기억력 좋은 우에다도 고개를 갸웃하며,

“글쎄, 무얼 읽고 있었을꼬, 설마 아주 놀고만 있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생각해 보는 듯하더니,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은 자주 보았지마는, 무엇을 전공으로 삼고 있었는지는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는군. 구보타 군, 자네는 기억나는가” 하고 물었지만, 저도 히구치와는 반년 넘게 같은 하숙에서 친히 지냈음에도, 막상 돌이켜 보니 히구치가 무엇을 진지하게 공부하고 있었는지 끝내 떠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기무라를 떠올림에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기무라는 늘 책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서를 읽고 있었던 것만은 지금도 떠오르지만, 그 밖의 일은 기억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히구치도 기무라도 어딘가 닮은 성정이 있는 듯이 여겨집니다만, 그것이 성정이 닮은 것인지, 아니면 그 무렵 청년들의 비슷한 기풍에 함께 물든 것인지, 저로서는 분명히 가려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어딘지 비슷한 빛깔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 시절은 저도 아침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학교 과업 외에 닥치는 대로 독서를 해 댔습니다. 유럽의 정치사도 읽고, 스펜서도 읽고, 철학서도 읽고, 전기도 읽고, 한 시간에 서른 쪽 비례로 하루에 열 시간씩, 삼백 쪽을 읽고도 아직 독서 속도가 느리다 여긴 적조차 있었지요. 그리고 그저 갖가지 일들을 끝도 없이 생각하며 사색에 잠기곤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그저 어지러이 읽었을 뿐, 히구치나 기무라와 마찬가지로 꿈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그 시절은 누구나 모두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 댔지요. (끝)

Chapter 1 of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