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수다 경쟁

사카구치 안고

하나

지난 9월 말, 우노 코지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교롭게도 나는 마침 자리를 비운 참이었는데, 급한 이야기가 있으니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 중에 만나고 싶다, 한번 와 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으나, 그달 “문예통신”에 마키노 신이치의 자살에 얼마간 빗대 볼 수 있는 일을 소재로 한 소설을 막 썼던 참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분명 거슬릴 법한 소재이니, 어쩌면 그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소설은 가장 핵심이 되는 대목이 심하게 복자(伏字) 처리가 되어 있어서, 나로서는 복자로 가려진 부분을 쓰기 위해 나머지 오십 매를 썼다고 해도 좋을 만큼이었으니 낙담이 컸다. 그 소설 쪽으로 생각이 흐르기만 해도 마음이 영 가라앉아 버리는 듯했다. 그런데 우노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말을 듣자, 무슨 근거로 그 용건을 다짜고짜 이 소설과 결부 지어 버렸는지 나도 분명하지 않지만, 우노 씨가 영락없이 이 소설의 소재에 대해 한마디 하려는 모양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나는 복자에 대한 낙담이 아직 생생할 때였으니, 마음이 어쩐지 격해져서 용건이 그 일인지조차 모르는 사이에, 우노 씨에게 잔뜩 반발할 마음만 다져 두고 만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은 폭우가 쏟아졌지만, 나는 혼고에서 우에노 사쿠라기쵸의 우노 씨 댁까지 다 떨어진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갔다.

내가 아는 이들 가운데 우노 코지 씨를 수다의 왕좌에 앉히지 않을 도리가 없다. 상대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자기 혼자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것이다. 아마도 잠자코 있는 것이 갑갑해서, 침묵이 마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추악한 괴수라도 되는 양 못 견디게 불쾌한 모양이다.

우노 씨는 수다를 떤다기보다 말에 홀려 있다는 느낌이다. 한마디 내뱉는다. 그러면 우노 씨의 머릿속에는 그 말을 둘러싸고 즉시 무시무시한 허무의 폭풍이 일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허둥지둥 또 한마디를 내뱉는다. 그 위에 다시 허무의 고통이 겹친다. 그렇게 그칠 줄 모르고 끝없이 떠들어 대는 모양이다. 보고 있자면 몹시 피곤하겠다 싶다. 듣고 있는 나부터가 몹시 피곤해져 버리니까.

우노 씨는 사람 만나는 일을 싫어하는 모양이다. 이렇게나 신경을 곤두세워 떠들어 대고, 떠들어 댄 끝에 허무감만 깊어지는 식이라면, 사람 만나는 일이 고통스러운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싶다. 우노 씨 댁 대문에는 늘 자물쇠가 걸려 있다. 초인종을 누르면 가정부 방의 격자창이 반쯤 열리고, 마치 강 건너 여인처럼 가정부가 얼굴을 내민다. 이름과 용건을 묻고는 도로 쏙 들어가, 한참 만에야 겨우 대문이 열리지만, 어떻게든 만나지 않고 끝내려 하는 속내인 듯하다. “문학계” 수필에서, 잡지 일로 고바야시 히데오가 찾아오겠다고 미리 알려 와서 굳이 올 것까진 없으니 편지로 끝내 달라 일러 두었는데도 끝내 찾아와 버렸다는 사연을, 몹시 못마땅한 투로 적어 놓은 대목을 읽고 우스워서 견딜 수 없었다. 저런 식으로 떠들어 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만난다는 것도 어지간한 고행이 아니라는 짐작이 간다.

우노 씨도 사람 만나는 일이 곤혹스럽겠지만, 나도 우노 씨와 마주 앉는 일이 곤혹스럽다. 피곤한 것이다. 혼자 떠들어 대다 혼자만의 씨름에 지쳐 버리는 우노 씨야 자업자득이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남의 수다를 듣다가 허무하게 지쳐야 한다니, 보통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니다.

나는 우에노 숲을 걸으며, 우노 씨의 끊임없는 다변에서 비롯되는 그 피로와 허무감을 어떤 방법으로 격퇴할 것인가 하고 줄곧 궁리했다. 멀거니 손 놓은 채 그의 다변에 휘말려 포로 신세가 되어, 이 폭우 쏟아지는 날에 또다시 더할 나위 없이 우울한 수십 분을 보낸다는 것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궁리해 보았으나,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상대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다짜고짜 이쪽이 먼저 마구 떠들어 버리는 것이다.

돈 빌리러 나선 초보자는 으레 혼자만의 씨름으로 쓸데없는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모양이다. 당장의 형편과 동떨어진 옛이야기에 매달리기도 하고, 상대가 가부를 답할 틈도 없을 만큼 다급하게 들이대기도 한다. 그리 많은 말을 늘어놓지 않고도 빚 부탁을 능숙히 꺼낼 줄 안다면 그 길의 대가일 것이다. 나는 아직 초보자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허둥지둥 떠드는 일에는 의외로 익숙하다. 머지않아, 빌려주는 쪽이 도리어 허둥거릴 만큼 태연하게, 거의 입도 떼지 않고 돈을 빌려 보리라 마음먹고 있다.

어느 황혼 무렵의 일이었다. 푼돈을 손에 쥐고 번화한 거리를 걷고 있는데 문득 깨달음 비슷한 것이 왔다. 예술가로서는 벙어리처럼 과묵해도 좋겠으나, 한편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이상 한껏 비위 맞추는 말도 해야 한다. 차라리 어릿광대처럼 한껏 굴어 보는 편이 낫다. 사람과 마주 앉아 있는 시간이라는 것은 이미 낭비되고 있는 시간이니, 우스개를 신나게 늘어놓아 남을 즐겁게 해 주어 봤자 본전이 축날 일은 없다. 희생적 정신을 발휘했다고 자위하며 기분이라도 좋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 잠자코 술잔이나 기울이던 어느 오뎅집으로 뛰어들어가, 그 집 안주인을 붙들고는 엉터리 여행담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내 쪽이 재미없는 거야 진작에 예정된 일이었지만, 상대도 영 재미없는 듯, 맞장구를 어찌 칠지 곤혹스러워했다. 그 뒤로 의식적으로 수다를 떨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우노 씨가 한마디 하면 열 마디로 받아치리라 결심했다. 본래 어지간한 용건은 편지로 해결된다. 회담은 극력 피하고 만사 편지로 처리하려는 정신은, 우노 코지의 탄생으로 비로소 완성을 보았다 해도 좋을 텐데, 그런 사람이 굳이 면담을 청해 온다니 요괴 같은 섬뜩함이 있었다. 나는 용건이 있다는 전화를 받기만 해도 그것만으로 이미 압도된 셈이니, 굳은 결심을 가슴에 품고 당당히 쳐들어가지 않고서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그런 상태이기도 했다.

지난번 우노 씨를 만난 것은 내 출판기념회 자리에서였다. 나와 우노 씨는 공교롭게도 옆자리에 나란히 앉을 운명이었고, 우노 씨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자살을 주제 삼아 처음부터 끝까지 떠들어 대고 또 떠들어 댔다. 자살 원인으로 짚이는 데가 열 가지쯤 있다는 것이었다. 광적인 집착의 형태였고, 어쩐지 섬뜩했다. 이때 마찬가지로 우노 씨와 말을 섞은 가와카미 데쓰타로가, 아무래도 우노 씨가 또 미친 게 아닐까 하고 말을 꺼냈다. 아무튼 작가는, 설령 미쳤다 한들 소설만 미치지 않았으면 미친 것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미치지 않고서는 소설은 쓸 수 없다.

우노 씨 댁에 가니, 예의 격자창에서 강 건너 여인처럼 가정부가 얼굴을 내밀었다가 쏙 들어갔다. 우노 씨는 온몸에 백반이 돋아난 듯한 모습이었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사실은 말이지요, 어젯밤 전화를 걸고 나서 굉장히 후회했단 말이지요. 마키노 신이치의 자살에 대해 당신의 감상을 들어 두고 싶었는데, 막상 전화를 걸고 나니 갑자기 아차 싶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듣지 말 걸 그랬다 싶었지요. 전에도 아쿠타가와의 자살에 대해 써 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사실을 너무 많이 알아 버리면 쓸 때 죽어 버리지 뭡니까. 당신도 그런 경향이 있을 듯한데, 아무튼 말이지요, 나는 사실을 모르는 편이 오히려 생생하게 쓸 수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당신 이야기를 듣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어, 실은 어젯밤부터 어찌나 망설였는지…….”

분명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방 안으로 들이고 싶지 않은 듯, 현관 마루턱에 방석을 가져다 놓았다. 그 방석에 앉지 않고 다짜고짜 ‘안녕히 계세요’ 하고 휙 돌아서 나와 버리는 편이, 우노 씨를 위해서는 좋겠다 싶기도 잠깐 들었다. 그러나 떠들어 줘야 한다는 내 굳은 결심이 반발하듯 쑥 앞으로 나서 버리고 말았다.

나는 마루턱 방석에 엉덩이를 붙였다. 마키노 신이치의 자살에 대해 시시콜콜 자질구레, 있는 일 없는 일 죄다 뒤섞어 청산유수로 줄줄 늘어놓았다. 스스로 들어도 참 잘도 떠든다 싶었다. 도대체 마루턱에 털썩 주저앉아 비에 젖은 옷자락을 한 손으로 걷어 올리고 무릎까지 드러냈으니, 이건 이미 연극의 행패꾼이나 빚 받으러 온 자의 자세이고, 마땅히 떠들도록 짜여 있는 셈이다. 나는 끝내 수다로 이겨 버렸다.

자살에 관한 이야기였으니, 이야기는 자연스레 가장 노골적인 성생활에까지 미치기도 했다. 나는 신이 나서 그런 쓸데없는 데까지 기세 좋게 늘어놓았다.

부엌 쪽에 부인의 기척이 있는 통에, 그 대목에 이르자 우노 씨는 갑자기 목소리를 죽인다. 나도 덩달아 목소리를 죽이니, 아니 아니, 당신은 큰 목소리로 하라는 눈짓을 황급히 보내는 것이었다.

삼사십 분쯤 만에 이야기를 끊고 내가 일어서자, 우노 씨는 안도하는 얼굴을 했다. 밖으로 나오니 비는 가늘어져 있었지만, 마치 그것이 인생의 진상이라도 되는 양 머리를 맞대고 자살 이야기 따위나 하다 돌아왔다는 것이, 나는 별안간 부아가 치밀었다. 나는 화가 나서 걸음을 멈췄다. “우노 씨. 자살 이야기는 시시해요.” 그렇게 호통이라도 치러 돌아갈까 싶었다. 화풀이라기보다는, 우노 씨의 냉랭한 예술가 근성에 잠깐 어리광이라도 부려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단념하고 다시 걸음을 떼니, 음악학교의 연습 소리가 분노를 누그러뜨리려는 듯 달큰하게 흘러나왔다. 그런 것에 응석을 부릴 만큼 내 근성은 무르지 않다, 하고 점점 더 화가 난 채로 돌아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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