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산월기

나카지마 아쓰시

농서(隴西)의 이징(李徴)은 박학재영(博學才穎)하여, 천보(天寶) 말년에 젊은 나이로 이름을 호방(虎榜)에 올렸고, 이어 강남위(江南尉)에 임명되었으나, 성품이 견개(狷介)하여 자기를 믿는 바가 자못 두터워 천한 벼슬에 만족하기를 떳떳이 여기지 않았다. 머지않아 관직을 물러난 뒤로는 고향 산하인 괵략(虢略)에 돌아가 은거하며, 사람들과의 사귐을 끊고 오로지 시 짓기에 골몰하였다. 하급 벼슬아치가 되어 길이 무릎을 속악한 고관 앞에 굽히기보다는, 시인으로서의 이름을 죽은 뒤 백 년에 남기리라 한 것이다. 그러나 글로 떨친 이름은 쉽사리 일지 않고, 살림은 날을 좇아 어려워진다. 이징은 차츰 초조에 사로잡혀 갔다. 이 무렵부터 그 용모도 깎인 듯 모질어지고, 살은 빠지고 뼈가 두드러지며, 눈빛만이 부질없이 형형(炯炯)하여, 일찍이 진사에 등제(登第)하던 무렵의 풍요한 뺨을 한 미소년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몇 해 뒤,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처자의 의식을 위하여 마침내 절개를 굽혀, 다시 동쪽으로 가서 한 지방 관리의 직을 받들게 되었다. 한편 이는 자기 시업(詩業)에 절반쯤 절망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예전의 동기들은 이미 멀찍이 높은 자리에 나아가, 그가 옛적에 둔물(鈍物)이라 하여 입에 담을 가치도 두지 않았던 그 무리들의 지시를 받들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지난날 수재였던 이징의 자존심을 얼마나 상하게 하였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는 앙앙(怏怏)하여 즐겁지 못하였고, 광패(狂悖)한 성정은 더욱더 누르기 어려워졌다. 한 해 뒤, 공무로 길을 떠나 여수(汝水)의 물가에 묵었을 때, 마침내 발광(發狂)하였다. 어느 한밤중, 갑자기 안색을 바꾸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외치면서 그대로 아래로 뛰어내려 어둠 속으로 달려 나갔다. 그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부근의 산야를 뒤져 보아도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그 뒤로 이징이 어찌 되었는지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듬해, 감찰어사(監察御史)인 진군(陳郡)의 원참(袁傪)이라 하는 사람이 칙명을 받들어 영남(嶺南)에 사신으로 가는 길에 상오(商於)의 땅에 묵었다. 다음 날 아침 아직 어두운 가운데 출발하려 하니, 역리(驛吏)가 이르되, 이로부터 앞 길에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가 나오니, 길손은 한낮이 아니고서는 지나갈 수 없습니다. 지금은 아직 새벽이 이르오니 좀 더 기다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원은 그러나 거느린 일행이 많은 것을 믿고 역리의 말을 물리치며 출발하였다. 새벽달의 빛에 의지하여 숲속의 풀밭을 지나갈 때, 과연 한 마리의 사나운 호랑이가 덤불 속에서 뛰쳐나왔다. 호랑이는 자칫 원에게 덮쳐들 듯 보였으나, 홀연 몸을 돌이켜 본디의 덤불에 숨었다. 덤불 속에서 사람의 목소리로 「위태로울 뻔하였다」 하고 거듭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그 목소리에 원은 들은 기억이 있었다. 놀라움 가운데에서도 그는 순간 짚이는 데가 있어 외쳤다. 「그 목소리는 내 벗 이징군(李徴君)이 아니신가?」 원은 이징과 같은 해에 진사에 급제하였고, 벗이 적었던 이징에게는 가장 가까운 벗이었다. 온화한 원의 성격이 준초(峻峭)한 이징의 성정과 부딪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덤불 속에서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흐느끼는 듯 들리는 희미한 소리가 이따금 새어 나올 뿐이다. 한참 만에 낮은 목소리가 답하였다. 「과연 나는 농서의 이징이라네」 하고.

원은 두려움도 잊고 말에서 내려 덤불에 다가가, 그리워하며 그동안의 정을 나누었다. 그러고는 어찌하여 덤불에서 나오지 않는가 하고 물었다. 이징의 목소리가 답하여 이르기를. 나는 이제 다른 무리의 몸이 되어 있다네. 어찌 면목 없이 옛 벗 앞에 이 비참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게다가 또 내가 모습을 드러내면, 반드시 자네에게 두려워 꺼리는 마음을 일으키게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일세. 허나 지금 뜻하지 않게 옛 벗을 만날 수 있어, 부끄러움마저 잊을 만큼 그립다네. 부디, 그저 잠깐만이라도 좋으니, 내 추악한 지금의 외형을 꺼리지 말고, 일찍이 자네의 벗 이징이었던 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 주지 않겠는가.

나중에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었으나, 그때 원은 이 초자연의 괴이를 실로 순순히 받아들이고는 조금도 의심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부하에게 명하여 행렬의 진행을 멈추게 하고, 자신은 덤불 곁에 서서 보이지 않는 목소리와 마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성의 소문, 옛 벗들의 소식, 원의 지금의 지위, 그에 대한 이징의 축사. 청년 시절에 가까웠던 이들끼리의, 그 격의 없는 말투로 그것들이 오간 뒤, 원은 이징이 어찌하여 지금의 몸이 되기에 이르렀는가를 물었다. 풀숲의 목소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지금으로부터 한 해쯤 전, 내가 길을 떠나 여수의 물가에 묵었던 그 밤의 일일세. 한숨 자고 나서 문득 눈을 떠 보니, 문밖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더군. 목소리에 응하여 밖으로 나가 보니,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자꾸만 나를 부른다. 자기도 모르게 나는 목소리를 좇아 달려 나갔지. 정신없이 달려가는 동안에 어느덧 길은 산림으로 들어섰고, 게다가 어느 사이엔가 나는 좌우의 손으로 땅을 짚으며 달리고 있었네. 무언가 온몸 안에 힘이 넘쳐나는 듯한 느낌으로, 가뿐하게 바위를 뛰어넘어 가더군. 정신이 들고 보니, 손끝이며 팔꿈치 언저리에 털이 자라난 모양이야. 조금 밝아진 뒤에 골짜기 시내에 다가서서 모습을 비추어 보니, 이미 호랑이가 되어 있었네. 나는 처음에 눈을 믿지 않았지. 다음에는 이건 꿈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네. 꿈속에서 이건 꿈이로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듯한 꿈을, 나는 그때까지도 꾼 일이 있었기 때문일세. 도무지 꿈이 아니라고 깨닫지 않을 수 없었을 때, 나는 망연자실하였네. 그러고는 두려웠지. 정녕 어떠한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로구나 생각하여, 깊이 두려웠네. 허나 어찌하여 이런 일이 되었을까. 알 수가 없네. 정녕 무엇 하나 우리에게는 알 길이 없다네. 까닭도 모른 채 떠맡겨진 것을 얌전히 받아 들고, 까닭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살아 있는 자의 운명일세. 나는 곧 죽음을 떠올렸다네. 허나 그때 눈앞을 한 마리의 토끼가 달려 지나가는 것을 본 순간, 내 안의 인간은 홀연 모습을 감추었네. 다시 내 안의 인간이 눈을 떴을 때, 내 입은 토끼의 피로 물들어 있었고, 둘레에는 토끼의 털이 흩어져 있었네. 이것이 호랑이로서의 첫 경험이었네. 그 뒤로 이제껏 어떠한 짓을 거듭해 왔는지, 그것은 도저히 입에 담기에 차마 못할 일일세. 다만, 하루 가운데 반드시 몇 시간은 인간의 마음이 되돌아온다네. 그런 때에는 지난날과 똑같이, 사람의 말도 다룰 줄 알고, 복잡한 사고도 견뎌 낼 수 있으며, 경서(經書)의 장구도 외울 수 있네. 그 인간의 마음으로, 호랑이로서의 내 잔학한 행위의 자취를 보고, 내 운명을 돌이켜보는 때가 가장 한심하고 두렵고 분하다네. 허나 그 인간으로 돌아오는 몇 시간도 날이 갈수록 차츰 짧아져 간다네. 이제껏은 어찌하여 호랑이 따위가 되었는가 하고 의아해하였더니, 며칠 전에는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어찌하여 이전에 인간이었는가를 생각하고 있었지. 이건 두려운 일일세. 좀 더 지나면 내 안의 인간의 마음은 짐승으로서의 습관 속에 깡그리 묻혀 사라져 버릴 것일세. 마치 옛 궁전의 주춧돌이 차츰 흙과 모래에 묻혀 가듯이. 그리되면 마침내 나는 내 과거를 까맣게 잊고 한 마리의 호랑이로서 미쳐 날뛰며, 오늘처럼 길에서 자네와 마주쳐도 옛 벗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자네를 찢어 먹고도 어떠한 뉘우침도 느끼지 않게 될 것일세. 도대체 짐승이든 인간이든 본디는 무언가 다른 것이었으리라. 처음에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으나 차츰 잊어버려, 처음부터 지금의 모양이었다고 그리 여기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내 안의 인간의 마음이 깡그리 사라져 버리면, 어쩌면 그편이 나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일세. 그런데도 내 안의 인간은 그것을 더할 나위 없이 두렵게 여기고 있다네. 아아, 정녕 얼마나, 두렵고 슬프고 사무치게 여기고 있을까! 내가 인간이었다는 기억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이 마음은 누구도 모른다네. 누구도 모르지. 나와 같은 처지가 된 자가 아니고서는. 그런데, 그렇다. 내가 깡그리 인간이 아니게 되어 버리기 전에 한 가지 부탁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네.

원을 비롯한 일행은 숨을 죽인 채 덤불 속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신기함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목소리는 이어 말한다.

다른 게 아닐세. 나는 본래 시인으로 이름을 이루리라 하였다네. 게다가 업(業)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 운명에 이른 것일세. 일찍이 지은 시 수백 편은, 본디 아직 세상에 행해지고 있지 않다네. 유고의 소재도 이제는 알 수 없게 되었으리라. 그런데 그 가운데 지금도 외고 있는 것이 수십 편 있다네. 이를 나를 위해 옮겨 적어 주시지 않겠는가. 무어, 이로써 한 사람 몫의 시인 행세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닐세. 작품의 좋고 나쁨은 모르겠으나, 어쨌든 가산을 깨뜨리고 마음을 미치게 하면서까지 내가 한평생 그것에 집착했던 것을, 한 부라도 후대에 남기지 않고서는 죽어도 죽지 못할 것일세.

원은 부하에게 명하여 붓을 잡고 덤불 속의 목소리에 따라 받아 적게 하였다. 이징의 목소리는 덤불 속에서 낭랑히 울려 퍼졌다. 길고 짧은 시 무릇 삼십 편, 격조고아(格調高雅)하고 의취탁일(意趣卓逸)하여, 한 번 읽으매 작자의 재주가 비범함을 느끼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원은 감탄하면서도 막연히 다음과 같이 느끼고 있었다. 과연 작자의 자질이 제일류에 속하는 것임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이대로는 제일류의 작품이 되기에는 어딘가에 (매우 미묘한 점에서) 모자란 데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옛 시를 다 읊은 이징의 목소리는 갑자기 어조를 바꾸어, 자신을 비웃듯이 말하였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금도, 이런 비참한 몸으로 변해 버린 지금도, 나는 내 시집이 장안(長安) 풍류 인사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모습을 꿈에 보는 일이 있다네. 바위 굴 가운데 누워서 보는 꿈에 말일세. 비웃어 주게나. 시인이 되려다 그르치고 호랑이가 된 가련한 사내를. (원은 옛날 청년 시절 이징의 자조벽(自嘲癖)을 떠올리며 슬피 듣고 있었다.) 그렇지. 웃음거리 삼아 지금의 회포를 즉석의 시로 풀어 보여 줄까. 이 호랑이 안에 아직 지난날의 이징이 살고 있다는 표시로.

원은 다시 하급 관리에게 명하여 이를 받아 적게 하였다. 그 시에 이르기를.

偶因狂疾成殊類  災患相仍不可逃
(우연히 미친 병으로 다른 무리가 되었으니, 재앙이 줄지어 따라 피할 길 없도다)

今日爪牙誰敢敵  當時聲跡共相高
(오늘날 이 발톱과 어금니 누가 감히 대적하랴, 그 옛날엔 명성과 자취가 함께 드높았건만)

我爲異物蓬茅下  君已乘軺氣勢豪
(나는 봉모(蓬茅) 아래 다른 짐승이 되었고, 그대는 이미 수레에 올라 기세가 호방하구나)

此夕溪山對明月  不成長嘯但成嘷
(이 밤 골짜기와 산은 밝은 달을 마주하건만, 길게 휘파람 부는 일은 이루지 못하고 다만 울부짖음을 이룰 뿐일세)

때마침 새벽달 빛은 차갑고, 흰 이슬은 땅에 짙으며, 나뭇가지 사이를 건너는 찬바람은 이미 새벽이 가까웠음을 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느덧 이 일의 기이함을 잊은 채 숙연하여, 이 시인의 박행(薄倖)을 한탄하였다. 이징의 목소리는 다시 잇는다.

어찌하여 이런 운명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아까는 말하였으나,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짚이는 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닐세. 인간이었을 때 나는 애써 사람과의 사귐을 피하였네. 사람들은 나를 거오(倨傲)하다, 존대(尊大)하다 하였지. 실은 그것이 거의 수치심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사람들은 몰랐네. 물론 일찍이 향당의 수재였던 자신에게 자존심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네. 허나 그것은 이를테면 겁 많은 자존심이라 할 만한 것이었네. 나는 시로써 이름을 이루리라 생각하면서도, 자진하여 스승을 모시거나, 청하여 시벗과 사귀어 절차탁마(切磋琢磨)에 힘쓰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았네. 그렇다고 또 나는 속물 사이에 끼어드는 일도 떳떳이 여기지 않았네. 모두 내 겁 많은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의 소위(所爲)일세. 내가 구슬이 아닐까 두렵기에 감히 갈고닦으려 하지도 않고, 또 내가 응당 구슬이리라 절반쯤 믿었기에 녹록(碌碌)히 기왓장과 어울리는 일도 하지 못하였네. 나는 차츰 세상에서 떠나고 사람과 멀어져, 분민(憤悶)과 참에(慙恚)로 더욱더 내 안의 겁 많은 자존심을 살찌우는 결과가 되었네. 인간은 누구나 맹수사(猛獸使)이고, 그 맹수에 해당하는 것이 각자의 성정이라 한다네. 내 경우 이 거만한 수치심이 맹수였다네. 호랑이였던 게야. 이것이 나를 그르치고, 처자를 괴롭히고, 벗을 다치게 하고, 끝내는 내 외형마저 이처럼 안과 어울리는 것으로 바꾸어 버린 것일세. 지금에 생각해 보면, 정녕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작은 재능을 헛되이 써 버린 셈이라네. 인생은 무엇 하나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 길고,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 짧다 따위의 입에 발린 경구를 농하면서도, 사실은 재능의 부족을 드러내고 말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각고를 꺼리는 게으름이 나의 모든 것이었네. 나보다 훨씬 모자란 재능을 지녔으면서도 그것을 오로지 갈고닦았기에 당당한 시가가 된 자가 얼마든지 있다네. 호랑이로 변해 버린 지금에야 나는 비로소 그것을 깨달았네. 그것을 떠올리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타는 듯한 뉘우침을 느낀다네. 나는 이제 인간으로서의 생활은 할 수 없네. 설령 지금 내가 머릿속에서 어떠한 빼어난 시를 짓는다 한들 어떤 수단으로 발표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내 머리는 날로 호랑이에 가까워져 간다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헛되이 써 버린 내 과거는? 나는 견딜 수 없게 된다네. 그런 때 나는 저 너머 산꼭대기 바위에 올라 빈 골짜기를 향해 울부짖는다네. 이 가슴을 태우는 슬픔을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일세. 나는 어젯밤에도 그곳에서 달을 향해 포효하였네. 누군가가 이 괴로움을 알아주지 않을까 하여. 허나 짐승들은 내 소리를 듣고 그저 두려워 엎드릴 뿐. 산도 나무도 달도 이슬도, 한 마리 호랑이가 분노하여 미쳐 날뛰며 울부짖고 있다고만 여기지. 하늘로 뛰어오르고 땅에 엎드려 한탄해 보아도, 누구 하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 자는 없다네. 마치 인간이었던 무렵, 내 다치기 쉬운 안마음을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았던 것과 똑같이. 내 털가죽이 젖은 것은 밤이슬 때문만이 아닐세.

차츰 사방의 어둠이 옅어져 왔다. 나무 사이를 건너 어디에선가 새벽 뿔피리가 슬피 울리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작별을 고해야 하네. 취해야 할 때가, (호랑이로 돌아가야 할 때가) 가까워졌으니 하고 이징의 목소리가 말하였다. 허나 헤어지기 전에 또 하나 부탁이 있다네. 그것은 내 처자에 관한 일일세. 그들은 아직 괵략(虢略)에 있다네. 본디 내 운명에 관해서는 알 길이 없네. 자네가 남쪽에서 돌아오거든, 내가 이미 죽었다고 그들에게 알려 주지 않겠는가. 결코 오늘의 일만큼은 밝히지 말아 주게나. 뻔뻔스러운 부탁이지만, 그들의 외롭고 약함을 가엾이 여겨, 앞으로도 노상(道塗)에서 굶주리고 얼지 않도록 헤아려 주신다면, 나에게는 은총이 이보다 더할 것이 없네.

말을 마치고는 덤불 속에서 통곡(慟哭)의 소리가 들려왔다. 원도 또한 눈물을 머금고서, 흔쾌히 이징의 뜻에 따르고 싶다는 뜻을 답하였다. 이징의 목소리는 그러나 홀연 또 아까의 자조적인 어조로 돌아가 말하였다.

실은, 우선 이 일을 먼저 부탁하였어야 했네. 내가 인간이었다면 말일세. 굶주리고 얼어 가는 처자보다도 내 변변치 못한 시업(詩業) 쪽을 마음에 두고 있는 그러한 사내이기에, 이런 짐승으로 몸을 떨어뜨리는 것일세.

그러고는 덧붙여 이르기를, 원이 영남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결코 이 길을 지나지 말아 주게, 그때에는 자기가 취해 있어 옛 벗을 알아보지 못한 채 덤벼들지도 모르니까. 또 지금 헤어진 뒤 앞쪽으로 백 보 떨어진 곳에 있는 저 언덕에 오르면, 이쪽을 돌아보아 주게. 자기는 지금의 모습을 한 번 더 보여 드리겠네. 용맹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닐세. 내 추악한 모습을 보여, 그로써 다시 이곳을 지나 자기를 만나려는 마음을 자네에게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함이네 하고.

원은 덤불을 향하여 곡진히 작별의 말을 베풀고 말에 올랐다. 덤불 속에서는 또다시 견디지 못하는 듯한 비읍(悲泣)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원도 몇 번이고 덤불을 돌아보면서 눈물 가운데 출발하였다.

일행이 언덕 위에 닿았을 때, 그들은 일러둔 대로 돌아보며 방금 지나온 숲속의 풀밭을 바라보았다. 홀연 한 마리의 호랑이가 풀의 무성한 곳에서 길 위로 뛰쳐나오는 것을 그들은 보았다. 호랑이는 이미 흰빛으로 빛을 잃은 달을 우러러 두세 번 포효(咆哮)하더니, 다시 본디의 덤불로 뛰어들어 두 번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Chapter 1 of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