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
제4장
안협집은 보자기를 가지고 삼돌이를 따라서 뽕밭을 향하여 간다.
날이 유달리 깜깜하여 앞의 개천까지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돌부리가 발부리를 건드리면 안협집은 에구 소리를 내며 천방지축으로 다리도 건너고 논이랑도 지나고 하여 길 반쯤 왔다.
삼돌이란 놈은 속으로 궁리를 하였다.
'뽕을 따기 전에 논이랑으로 끌고 가?'
'아니지, 그러다가는 뽕두 못 따가지고 오면 어떻게 하게!'
'저도 열녀가 아닌 다음에 당하고 나면 할 말 없지. 아주 그런 버릇이 없는 년 같으면 모르거니와.'
'옳지, 수가 있어, 뽕을 잔뜩 따서 이어 주면 제가 항우의 딸년이라고 한번은 중간에서 쉬렷다. 그러거든.'
이렇게 궁리를 하다가 너무 말이 없으니까 심심파적도 될 겸 또는 실없는 농담도 좀 해서 마음을 좀 떠보아 나중 성사의 전제도 만들어놀 겸 공연히 쓸데없는 말을 지껄인다.
"삼보는 언제나 온답디까?"
"몰라, 언제는 온다 간다 말이 있이 다니나."
"그래 영감은 밤낮 나돌아다니니 혼자 지내기 쓸쓸치도 않소."
놈이 모르는 것같이 새삼스럽게 시치미를 뗀다.
"별걱정 다 하네. 어서 앞서 가, 난 길이 서툴러 못 가겠으니……."
"매우 쌀쌀하구려. 나는 임자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그렇지만 김참봉 아들이란 쇠귀신 같은 놈이라 아무리 다녀도 잇속 없습네. 내 말이 그르지 않지."
안협집은 삼돌이가 아주 터놓고 말을 하는 것을 들으니까 분해서 뺨이라도 치고 싶었으나 그대로 참으며,
"무엇이 어째? 말이라면 다 하는 줄 아는군."
하고 뒤로 조금 떨어져 걸어갈 제 전에도 그 녀석이 미웠지마는 남의 약점을 들어 가지고 제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 더 더러웠다.
뽕밭에 왔다. 삼돌이란 놈이 철망으로 울타리 한 것을 들어 주어 안협집이 먼저 들어가고 나중으로 삼돌이란 놈은 그 무거운 다리를 성큼 하여 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다가 발끝에 삭정이 가지를 밟아서 딱 우지끈 소리가 나고 조용하였다.
삼돌이는 손에 익어서 서슴지 않고 따지마는 안협집은 익지도 못한데다가 마음이 떨리고 손이 떨려서 마음대로 안 된다.
삼돌이는 뽕을 따면서도 있다가 안협집을 꾀일 궁리를 하지마는 안협집은 이것 저것을 잊어버리고 손에 닥치는 대로 뽕을 땄다.
얼마쯤 땄다. 갑자기 안협집의 뒤에서,
"누구야!"
하고 범 같은 소리를 지르는 남자 소리가 안협집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삼돌이란 놈은 길이나 되는 철망을 어느결에 뛰어넘었는지 십여 간통이나 달아나서 안협집을 불렀다.
"어서 와요! 어서, 어서."
그러나 안협집은 다리가 떨려서 빨리 나와지지를 않는다. 그러나 죽을 힘을 다하여 달아나려고, 한아름 잔뜩 따넣었던 뽕을 내던지고 철망으로 기어나왔다. 철망을 기어나오기는 나왔으나 치맛자락이 걸려서 잡아당긴다. 거기에 더 질겁을 해서 그대로 쭉 찢고 나오려 할 때, 때는 이미 늦었다. 뽕 지키던 남자는 안협집을 잡았다.
"이 도둑년! 남의 뽕을 네 것같이 따가? 온 참, 이년! 며칠째냐, 벌써. 이렇게 남의 것이라고 건깡깡이로 먹으면 체하지 않을 줄 알았더냐? 저리 가자."
안협집은,
"살려 주소. 제발 잘못했으니 살려만 주소. 나는 오늘이 처음이오. 저 삼돌이란 놈이 날마다 따갔지 나는 죄가 없쇠다."
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듣기 싫어, 이년아! 무슨 변명이냐. 육시를 하고도 남을 년 같으니. 왜, 감옥소의 콩밥 맛이 고소하더냐?"
"그저 잘못했습니다."
삼돌이는 보이지 않고 뽕지기는 안협집 손목을 끌고 뽕밭으로 들어갔다.
"이리 와! 외양도 반반히 생긴 년이 무엇이 할 게 없어 뽕서리를 다녀."
하더니 성냥불을 그어 대고 안협집을 들여다보더니,
"흥."
의미 있는 웃음을 웃어 버렸다.
안협집은 이 웃음에 한가닥 희망을 얻었다. 그 웃음은 안협집의 손아귀에 자기를 갖다 쥐어 준다는 웃음이다. 안협집은 따라서 방싯 웃었다. 그 웃음 한번이 넉넉히 뽕지기의 마음을 반 이상이나 흰죽 풀어지게 하였다.
안협집은 끌려갔다.
'제가 철석 같은 간장을 가진 놈이 아닌 바에…… 한번이면 놓아 줄걸.'
그는 자기의 정조를 팔아서 자기의 죄를 면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는 마지못하는 체하고 끌려갔다.
삼돌이란 놈은 멀리서 정경만 살피다가 안협집을 뽕지기가 데리고 가는 것을 보더니 두 눈에서 쌍심지가 돋았다.
'얘 이놈이 호랑이 삼돌이를 모르는 모양이다. 그러나 대관절 어떻게 할 셈이냐? 이놈 안협집만 건드려 보아라. 정강마루를 두 토막에다 내놀 터이니. 오늘 밤에는 꼭 내 것이던 걸 그랬지. 어디 좀 가까이 좀 가볼까?'
이제는 단판씨름이라 주먹이 시비 판단을 하는 때이다. 다시 철망을 넘어서 들어갔다. 들어가서는 이곳저곳 귀를 기울이더니 이구석 저구석으로 돌아다녀 보았다.
저쪽에서 인기척이 웅얼웅얼하더니 아무 말이 없다. 한 두서너 시간 그 넓은 뽕밭을 헤매고 또 거기 닿은 과목밭, 채마전, 나중에는 그 옆 원두막까지 가보았다. 놈이 뽕나무밭 가운데 부풀덤불을 보지 못한 까닭이다.
그는 입맛만 다시면서 집으로 와서 주인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노파의 눈은 등잔만해지더니 두 손, 두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 한다.
"이거 일났구나. 어쩌면 좋단 말이냐."
좌불안석을 할 제 삼돌이란 녀석은 분한 생각에 곰방대만 똑똑 떨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