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어머니와의 만남
3장. 밤, 어머니와의 만남
밤 아홉시.
효숙이와 나까가와는 목욕탕에 들어가고 영실만이 쯔메쇼에 남아 있어 체온표에다 입원화자들의 체온과 맥박을 푸르고 붉은 연필로 그리고 있다. 손은 종이 위에서 넘노나 맘은 자꾸만 구숭숭해 오고 초조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오늘쯤은 어디서 이 소식을 듣고 나한테 쫓아오다가 길에서라도 졸도를 하지 않았는지 하는 불안이 시시각각으로 커가는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체온표를 철썩 덮어놓았다. 연필이 따르르 떨어진다. 숙직 의사에게 말하고 잠깐 다녀오려니 일일이 사정을 늘어놓아야 할 테고 이해 없는 그들 앞에서 구구한 사정이란 기막히는 노릇이다. 이것들이 웬 목욕을 이리 오래 하누, 하고 층계쪽을 바라보았다. 아래층 당구장에서는 한참 신이 나서 떠들고 있다.
어쩐지 저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곳에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면서 두 손을 볼에 대고 한숨을 푹 쉬었다. 오빠가 사형을…… 거짓말이지. 그럼, 아직 감옥 안에 계시어? 숨이 답답해지고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내일까지 아무 소식이 없으면 휴가를 맡아가지고 경성 가봐야지, 그래야지 아무러면 오빠가 그리 되었을까, 신문에 난 것은 무어야! 그럼 그는 가슴이 오짝해서 일어나 빙빙 돌았다. 시커먼 사형수들의 사진이 얼씬얼씬 나타나고 있다. 참말일까? 그는 주위를 두리두리 살피다가 창 앞으로 왔다. 무의식간에 창문을 와르르 열고,
"참말일까요?"
허공을 향하여 소리쳤다. 밖에는 아무도 없다. 그는 따귀나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하여 우두커니 섰다. 싸늘한 바람이 그의 머리털에 비웃는 듯 조소하는 듯 팔팔 감기고 있다. 어둠을 뚫고 빛나는 전등불이 여기저기 흩어졌고 기기로부터 달려 오는 긴 빛이 그의 눈가에 수없이 꽂히어 눈물을 가득히 어리우게 한다. 원장의 집 곁에 간호부 기숙사가 있고 그 옆에 부원장인 외과의사의 저택이 유난히도 빛나는 전등을 문정에 달고 어둠 속에 뚜렷이 앉아 있다. 필시 지금쯤은 약혼한 계집이 찾아왔겠군, 불시에 이런 생각이 들자 불뚝 치달아 올라오는 질투심에 얼굴이 화끈달았다. 그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러고 창을 등지고 서 버렸다.
영실이, 나는 그대를 떠나서는 한시도 살수가 없소. 내 손이 가기 전에 그 부드러운 흰 손이 더러운 환부를 깨끗이 씻어주었고, 그래서만이 내 손은 환부를 꼭 집어 알 수가 있소. 그 손! 그 이쁜 손은 영원히 내것이요
이러한 한 구절의 편지가 서늘한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온다. "악마!" 그는 부지중에 중얼거렸다. 그리고 창문을 요란스레 닫아버렸다. 이번엔 도다나 속의 수없는 기계들이 의사의 손! 영실의 손! 하고 속삭이는 듯하다.
그는 머리를 푹 숙이었다. 의사의 손과 그의 손이 합하면 어떠한 대수술도 무난히 돌파하지 않았던가. 나부죽한 손톱을 가진 약간 여윈 듯한 의사의 손! 까딱하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알았고 또한 무슨 기계와 무슨 약을 들려 줄 것을 이 손이 알지 않았던가. 그는 얼른손등을 입에 대었다. 그만 탁 찍어 버리고 싶다.
내가 미쳤나? 그는 당구장에서 일어나는 환성에 깜짝 놀라 머리를 들었다. 지금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면서. "영식아! 영식아!" 오빠를 부르는 어머니의 음성이 금방 들리는 듯하다.
"언니 목욕해요"
효숙이와 나까가와는 층계를 올라오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들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었고 하얀 손끝에서는 그림 냄새가 솔솔 풍기었다.
"저 나 잠깐만 집에 다녀올게. 병실에서 오거든 엠직만하면 선생님께 알리지 말고 둘이서 처리해요. 저기 주사기랑 약이랑 준비 다 했으니, 응."
영신이는 도다나를 가리키고 나서 황황히 탈의소로 와서 옷을 갈아입고 층계를 내려뛰었다. 긴 복도를 지나 병원을 나왔다.
밖은 새까맣다. 하늘엔 별들이 싸늘해 있고 이따금 가로등만이 뽀얀빛을 땅에 던지고 있다. 웬일인지 발길이 풍풍 빠지는 듯하고 다리마디가 자꾸만 꺾이려고 하였다. 신발소리만 나면 어머닌가 하여 살피게 되고, 늘 다니던 이 길이건만 어쩐지 처음 가는 골목 같아 한참이나 돌아보곤 하였다. 너무 숨이 차서 가슴을 쥐고 후 하고 숨을 길게 내쉬면 어둠이 새하얀 연기로 변하여 그의 갈한 목에 휘어감기고 있다.
집에 오니 대문은 걸렸다. 얼른 문 사이로 방문을 살피니 불이 희미하다. 어머니가 계시구나…… 맘이 다소 놓여서 대문을 가만히 붙들고 호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까지는 어머니가 모르시는 모양이나 내일이라도 누구에게서 듣고 묻는다면 무어라고 대답할까.
"어머님께는 당분간 숨겨다오 누이야!" 그는 부지중에 털썩 주저앉아다. 비록 오빠가 감옥에 있다 할지라도 모든 일을 이리 가르쳐 주었는데 이제부터는 누구의 지시를 받나! 우선 어머님께는 뭐라구 하나, 오빠 나는 어찌라우. 그는 발버둥쳤다. 어젯밤에도 이리 와서 어머니는 차마 만나지 못하고 간 것이다. 어머니만 뵈오면 울음이 탁 나가서 아무리 숨길래야 숨길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어머님을 만나지 않을 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고 내가 좀 대담해야지, 좀더 침착해야지 하고 가만히 일어났다. 대문을 붙들고 어머니! 하고 부르려니 벌써 눈등이 무거워지고 목이 꽉 메어 음성이 나가지 않는다. 그는 눈등을 한번 부비고 얼결에 대문을 쿵 받았다.
"누구냐!"
어머니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그는 얼른 몸을 피하렸으나 울음이 왁 나오면서 픽 쓰러졌다. 아득히 들리는 신발소리. 그는 혀를 꼭 물고 발딱 일어났다. 이제야말로 정신을 차려서 어머니를 대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하였다. 대문이 삐꺽 열리면서 어머니의 흰옷이 새하얗게 보인다. 그는 아뜩하였으나 두 손에 힘을 주어 울타리를 꼭 붙들고,
"나! 나야 흑!"
말 끝에 흑 소리가 턱을 차고 내달린다. 얼른 목을 꼭 쥐어 비틀고 섰노라니,
"서울서 소식 없니!"
하고 어머니는 딸의 곁으로 다가선다. 소르르 건너오는 잎담배 내에 그는 주춤 물러서며 얼굴을 울타리에 돌려대고 힘껏 부비쳤다. 나무판자 울타리에서 뜨끔 찔리는 볼, 그는 볼에 무엇이 들어박히는 것을 느끼면서도 울음은 자꾸만 쓸어나오려고 한다.
"어젯밤 꿈에 네 오빠가 왔기에 오늘은 무슨 소식이 있는가 해서 아까 기숙사에 갔더니 오늘 네가 당번이 되어 몹시 바쁘다고 장 간호부가 그냥 가라고 하기에 왔다마는, 소식 없니."
딸의 몸을 어루만지려는 어머니. 비틀 하고 어머니에게로 쏠리려는 것을 그는 울타리를 꼭 붙들고 섰으나 자꾸만 쓸어나오는 울음 땜에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그는 휙 돌아서 울타리를 붙들고 걸었다.
"이애야, 너 선생님헌테 무슨 꾸지람을 들었니, 왜 그러니."
쫓아오는 어머니에게 그는 아무 말이라도 하여서 안심시켜야 할 것을 느끼었으나 좀체로 입을 벌릴 수가 없었다. 어머니와 거리가 좀 멀어지자 목을 비틀었던 손을 놓고 입을 벌리고 속으로 울었다.
"이애야, 말이나 시원히 하여."
어둠을 뚫고 들리는 어머니의 음성은 애처로웠다. 휘끈 머리를 돌리고,
"어머니 들어가라우."
하고 말을 내놓았으나 그 말은 어머니의 귀에까지 들린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숨을 몰아쉬고 크게 말을 하였으나 울음이 왁 쓸어나온다. 그는 입을 꼭 다물고 섰다. 귀찮게 흐르는 눈물을 씻고 바라보니 대문 앞에 어머니가 그냥 서 있듯 어머니의 흰 옷이 잡힐 것 같다.
"어머니, 어쩔까!"
그는 울음 섞어 이렇게 부르자 와락 어머니에게로 달려가는 발길을 억지로 멈추고 걷다가 돌아보면 어머니는 아직도 섰는 듯, 그만 우두커니 섰다. 그러다 어머니가 그를 쫓아 병원으로 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마을이라도 가려나 하는 맘이 자꾸만 들었던 것이다.
그는 살금살금 그의 집을 바라보고 걸었다. 대문 앞에 오니 어머니는 들어가신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문을 더듬더듬 쓸어보고야 다소 안심을 하고 돌아서 걸었다. 한참 오다가 보니 또 어머닌 듯 흰 그림자 어둠 속에 뚜렷하였다. 눈을 아프게 쥐어당기고 다시 한번 와 보리라 하고 뛰어온다. 구두가 자꾸만 엎어지려고 해서 구두를 벗어 들고 그의 대문 앞에 와서 문틈에 눈을 대니 방에는 아까보다 불빛이 환하다. 들어가서 어머니를 안심시킬까 하니 벌써 울음이 다투어 기어나오므로 그는 눈에 손을 대고 엎으러질 듯 돌아섰다.
그가 보통학교 앞에 오니 숨이 차 견딜 수가 없다. 그래 잠깐 멍하니 섰노라니 어둠 속에 시꺼멓게 솟아 있는 중앙학교가 맘에까지 소복히 스며드는 것 같았다. 또다시 가슴이 화끈해지며 오빠와 그가 손을 맞잡고 이 길로 학교에 드나들던 것이 어제인 듯 톡 튀어오른다.
노닥노닥 기운 옷에 가방 한 개도 못 가지고 목수건 하나도 없이 어머니가 일본 집에서 얻어온 구멍이 송송 난 메린스 책보를 들고 그 몇 번이나 오르내렸던고.
어머니는 눈만 뜨면 일터로 가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오빠 옆에 붙어 있었다. 오빠에게서 하나 둘을 배웠고 또한 오빠의 등에서 오줌 똥을 싼 것이다. 그러다 자라서 이 학교에 다니게 되니 오빠는 언제나 그의 손을 꼭 잡고 교실에까지 바래다 주고 그의 교실로 들어가던 것이다. 몸이 아파도 오빠에게 하소하였고 동무들과 쌈을 하고도 오빠에게 고하였고 장난하다 손끝이 상하여도 오빠의 입술에 호 함을 받았고. 그렇던 오빠! 오빠! 난 어쩌라우, 그는 어린애같이 발을 동동 굴렀다.
어느 날 하학을 하고 나오니 눈이 와서 성 같이 쌓였다. 오빠는 그를 둘러업고 눈 속을 빠져 집으로 온다.
"눈 꼭 감어."
눈 속을 헤엄치는 오빠는 이렇게 말하고 뛰었다. 눈이 얼굴에 부딪치어서는 녹아 얼굴을 쓰라리게 하고 목덜미에 스며들어 꼭꼭 찌른다. 그는 마침내 앙앙 울었다. 집에 오니 어머니는 아직도 안 돌아왔고 눈 바람에 문풍지가 다 뜯긴 방안은 밖에보다 더 추운 것 같았다. 오빠는 그의 몸에 눈을 떨어주고 얼굴을 소매로 닦아주면서,
"이제 어머니가 과자 얻어온다. 울지 말아야."
이렇게 얼리면서도 오빠도 쿨쩍쿨쩍 울고 문만 바라본다. 바람에 문풍지만 울려도 어머닌가, 옆집에서 무슨 소리만 나도 오누이는 달려 일어나,
"어머니."
하고 문을 열어 잡으면 밖에는 눈만 내리고 그는 발악을 하고 어머니를 부르면 오빠는 그를 업고 방안을 빙빙 돌면서 훌쩍훌쩍 울던 일…… 그는 미친 듯이 일어나 걸었다. 목이 찢어지는 듯 가슴이 막혀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발길이 느려지면서 이 길 위에 오빠의 신발자국이 어딘가 남아 있을 것 같아 펄썩 주저앉는다. 휘끈 돌아보니 저편에서 사람이오므로 화닥닥 일어났다. 꼭 어머니인 듯한 여인이 이리로 온다. 그는 서슴지 않고,
"어머니야."
하고 울면서 쫓아가니 어떤 낯모를 여인이 저즘저즘 하다가 지나친다. 그 여인이 보이지 않도록 바라보면서, 어머니가 지금쯤은 주무실까, 한번 더 가보고 싶어서 발길을 돌리니 몸이 비틀하고 꼬이면서 집에까지 갔다가 돌아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구두를 신었다. 높이 솟은 병원 창문으로 빨갛게 흘러나오는 불빛을 보고 얼른 손에 든 구두 생각이 났고 맨발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기미년 토벌난에 아버지를 잃어, 또 오빠를 이 모양으로 잃어, 우리집안은 무슨 못된 운수인가, 그는 돌연 이러한 생각을 하며 병원 현에 들어서니 병원 안이 떠들썩하였다. 수술 환자가 왔는가 하는 불안이 머리를 아프게 후려치자 두루두루 살피니 저편 수술실에는 전등불이 환하고 수술복을 입은 의사며 조수들 간호부들까지 한참 분주한 가운데 있다. 어쩌나, 그는 잠깐 망설였으나 위층 쯔메쇼로 올라왔다.
"언니! 어서 어서 내려가요, 맹장염 환자가 왔다우, 빨리. 선생님이 자꾸만 부르시어. 우리는 혼났어. 그래서 사실대로 여쭈었더니 아주 성이 났어요, 얼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