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4

가실 — 一

때는 김유신이 한창 들랄리던 신라말단이다. 가을볕이 째듯이 비추인 마당에는 벼낫가리, 콩낫가리, 메밀낫가리들이 우뚝우뚝 섰다. 마당 한쪽에는 겨우내 때일 통나무덤이가 있다. 그나무덤이 밑에 어떤 열 일곱 살 된 어여쁘고 튼튼한 처녀가 통나무에 걸터 앉어서 남쪽 행길을 바라보고 울고 있다. 이때에 어떤 젊은 농군 하나이 큰 도끼를 메고 마당을 들어오다가 처녀가 앉어 우는 것을 보고 우뚝 서서,

“아기 웨 울어요?”하고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다.

처녀는 행길을 바라보던 눈물고인 눈으로 젊은 농군을 쳐다보고 가만히,

“나라에서 아버지를 부르신개야요.”하고 눈물고인 자기의 얼굴을 감추려는 듯이 외면하고 돌아서니 길게 따아느린 머리가 치렁치렁하다.

“나라에서 부르셔요?”

“네, 내일 아침에 골로 모이라고 분부가 내렸어요.” 이 말을 들은 젊은 농군은 무엇을 생각하는것 같더니,

“고구려, 군사가 북한산성을 쳐들어온다더니 그 말이 옳군.”하고 달음질처서, 집에를 갔가다 오더니,

“여러 사람 불렀다는데요. 제길할 것, 큰일 났군. 젊은 사람은 다 죽고 이제는 늙은이까지 내다 죽이랴나. 언제나 마음 놓고 살 세상이 온담.” 하고 처녀의 느껴 우는 어깨를 바라본다. 처녀는 고개도 아니 돌리고,

“가실시는 안 뽑혔나요?”하고 묻는다. 가실은 그 젊은 농군에 이름이다.

“명년 봄에야 나도 부르겠지요. 아직은 나이 한살 부족하니까 남겨놓는 게지요.”하고 팔장을 끼고 한참 생각하더니,

“아버지는 어디 가셨오?”한다.

“골 들어가셨어요. 원님한테 말이나 해본다고. 늙기도 하고 몸에 병도 있고 또 어린 딸자식밖에 없으니 안가게 해달라고 발괄이나 한다고 그리고 아까 가셨어요. 이제는 오실 때가 되었는데……?” 하고 또 행길을 바라본다.

“말하면 되나요! 나라에서 사정을 볼줄아나요”하고 도끼를 들고 나무덤이에서 통나무를 내려 장작 패기를 시작한다.

처녀는 놀란 듯이 눈물이 젖은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장작은 웨 패세요?”하고 가실의 곁으로 한 걸음 가까이 간다.

“우리 장작 막 다 패고 왔어요. 영감님이 힘이 드시겠기에 좀 패들일양으로.”하고 뚝 부르거드니 싯뻘건 두 팔을 머리위에 잔뜩 높이 들었다가 '췌'소리를 치며 나려치니 쩍쩍 소리가 나며 나무가 쪼개져서 장작깨비가 가로세로 뛴다.

처녀는 우둑 허니 서서 가실의 볕에 거른 허리가 굽혔다 폈다 하는 양과 싯뻘건 두 팔뚝이 오르락 나리락 하는 것과 순식간에 자기 앞에 허연 장작덤이가 쌓이는 것을 보고 무슨 생각이난 듯이 섰던니 싸립문으로 뛰어 들어간다. 이윽고 처녀는 큰 사발에 뽀얀 막걸리를 걸너 가지고 나와서 가실이 패던 토막을 다 패기를 기다려,

“술 한 잔 잡수셔요.”하고 사발을 두 손으로 받들어 가실에게 준다. 가실은 도끼를 나무통에 턱 박아놓고 한편 팔구비로 이마에 맺인 구슬땀을 씻으면서 한편 팔로 사발을 받아든다.

“웬 술이 있어요?”하고 그 힘 있고도 유순한 눈으로 술을 물끄럼이 들여다본다.

“콩 걷는 날 했던 술이 항아리 밑에 좀 남았기에 새로 물을 길어다가 걸넜어요. 아버지 잡수실 것 좀 남겨놓고……”하고 치마자락에 젖은 두 손을 씻으며 처녀는 만족한 듯이 빙그레 웃는다.

가실은 사발을 입에 대고 꿀꺽 꿀꺽 단숨에 들이켜더니 주먹으로 입을 씻으면서 사발을 처녀에게 준다. 처녀는 사발을 받아들고 가실을 물끄럼이 보더니 돌아서 달음박질 뛰어가 부엌으로 들어간다. 가실은 처녀의 뛰어가는 양을 보고 들어가는 뒷모양이 안보일 때까지 보더니 다시 도끼를 들어 장작을 팬다. 얼마 만에 처녀가 치마자락을 손에 움켜쥐고 뛰어 나와서 가실의 곁에 선다. 가실이, 자기를 돌아보는 기회를 타서,

“밤 잡수셔요. 내가 아람 주워 다가 묻어 두었던 것이야요.”하고 적은 손으로 한줌 집어 가실을 주며 “왕밤이야요”한다. 가실은 도끼를 자기 다리에 기대어 세워놓고 잇발로 밤 껍데기를 베낀다. 처녀도 입으로 껍데기를 베껴 먹는다.

“아버지 오시네”하고 처녀가 치마에 쌓던 밤을 땅에 내버리고 행길로 마주나간다. 가실은 고개를 돌려 행길을 내다보았다. 늙은 수양버들 그늘로 수염이 허옇게 세인 설영감이 기운 없이 걸어온다. 영감은 마당에 들어와 가실을 보고,

“장작 패주었나?”하고 감사한 빛을 보인다.

“네. 우리 것 다 패고……”하고 수집은 듯 하면서도 만족한듯한 웃음을 띠운다. 영감은 장작개비 하나를 깔고 앉어서 휘유 긴 한숨을 쉰다. 처녀는 어느새 부엌에 들어가서 술 사발을 들고 나와서,

“아버지 술 잡수.”하고 아버지를 준다.

“응 술이 남았든?”하고 딸에게서 술 사발을 받으며,

“이 사람 한잔주지.”

“한 사발 들었어요. 아버지 잡술 것 남겨놓고.”하면서 처녀는 가실을 본다. 가실은,

“저는 잘 먹었습니다. 어서 잡수시우. 아직도 무엇을 하려면 더운데요.”하고 영감의 피곤한 듯한 얼굴을 본다. 영감은 쉬엄쉬엄 한 사발을 들이키고 아랫입술로 윗수염 끝에 묻은 술을 빨아들이면서 마당에 떨어진 밤을 집어 베낀다. 처녀는 아버지가 오늘 골 갔던 결과를 듣고 싶으나 남의 앞이 되어서 묻지도 못하고 가실이가 물어 주었으면 하고 기다린다. 가실도 그 눈치를 알고, 자기도 영감 곁에 쭈그리고 앉으며,

“그래 골 갔던 일은 잘되셨어요.””하고 묻는다.

“안된대 내일 아침에는 떠나야 하겠네.”한참 말이 없다.

처녀는 그만 울음을 참지 못하여 치마자락으로 얼굴을 싸고 돌아선다. 가실도 고개를 푹 숙으린다. 영감도 고개를 숙으렸다가 번쩍 들어 울고 돌아섰는 딸을 보며 가실더러,

“그렇지 않아도 내가 자네를 찾아 보려했네.”하고 물끄럼이 가실을 보더니,

“자네도 알거니와 내가 떠나면 저 어린 것 혼자 남네그려. 저것이 불상해! 제 어멈은 어려서 죽고……. 오라범들 다 전장에 나가 죽고…… 내가 이제 나가면 어떻게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리. 싸워 죽지 않으면 병들어 죽겠고 병들어 죽지 아니하면 늙어서 죽지 않겠나. 나도 스므살 때에 군사에 뽑혀서 설흔살에야 집에 돌아오니 부모 다 돌아가시고, 그런 말은 해서 무엇 하나. 아무러나 내가 이번 가면 살아 돌아 올리는 만무하고……. 저것이 내 혈육 이라고는 저것 하나밖에 안남었네 그려. 저것을 두고가니 내 마음이 어떻겠나.”하고 그는 억지로 울음을 참는다. 처녀는 그만 장작덤이에 쓸어져 운다. 가실도 운다. 노인은 다시 소리를 가다듬어,

“그러나 다 팔자니 어쩌나……. 내가 보니 자네가 사람이 좋아! 그러니 내 딸을 부탁하네, 아내를 삼게, 그리고 이집 가지고 벌어 먹고 살게. 논하고 밭하고 나무판하고 자네 두 식구가 잘 벌면 먹고 살 걱정은 없을 것이니 그러게.”하고 일어나 장작덤이에 엎드려 우는 딸의 팔을 잡아 일으키며,

“아가 들어가 저녁 지어라. 닭 한 마리 잡고 반찬도 좀 많이 하고 술도 걸너라. 가실이도 함께 저녁 먹고 마지막으로 이야기나 하게 하자.”한다. 처녀는 일어나 두 손으로 눈물을 씻어가며 안으로 들어간다. 노인은 딸에 들어가는 양을 보고 돌아서서 다시 가실에 곁에 앉으며,

“가실이 내 말대로 하려나?”하고 손으로 가실에 땀에 젖은 등을 두드린다. 가실은 고새를 들어 노인을 쳐다보며 말하기 어려운 듯이 머뭇머뭇 하더니, 간단하고 힘 있게

“너무 황송합니다”할 뿐이다.

노인은 일어나 가실에 곁에 놓인 도끼를 들어 통나무 한 토막을 패기 시작한다. 가실이가,

“제가 패겠습니다.”하는 것을,

“가만있게, 이게 다 마지막 해 보는 것일세.”하고 “쒸”, “쒸”하면서 팬다. 비록 늙었으나 이전 하던 솜씨가 남었다. 가실이 만큼 힘 있게는 못하여도 그 보다 더 익숙하게 한다. 그 토막을 다 패어 놓고 도끼를 가실에게 주면서,

“에, 한참 장작을 패었더니 기운이 나네.”하고 땀을 씻으면서,

“저 고개 넘어 논 두말지기 않있나. 그게 다 내 손으로 만든걸세. 내가 이 가을에는 거기 세흙을 좀 들여 펴고 또 그 곁에 한말지기 더 풀려고 했더니 못하게 되었으니 자네가 내일부터라도 하게. 그리고 저 소 오양깐은 저쪽으로 옴기게.”하고 아무 근심없는듯이 벙글벙글 웃더니 문득 무슨 근심이 생기는 모양으로,

“내가 혼인 하는 것을 못보고 가서 않되었네마는 이 벼나 다 타작을 하거든 동네 사람들이나 청해서 좋은날 받아서 잔치나 잘하게.”하고는 퍽 언짢은 빛을 보인다. 가실은 다만 들을 따름이오 아무 대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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