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三
이곳에 진치고 있는지 십여 일후에 룡춘장군과 유신장군이 거느린 팔천대군이 행진하기를 시작하였다. 신라 군사들은 모두 기운이 나서 이번 길에는 평양까지 쳐 밀어 버리리라고 팔을 뽐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아니 하였다. 한 삼십리 나가다는 한 오십리 후퇴도 하고 다시 한 칠십리 나가기도 하여 한강과 임진강 사이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안에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또 봄이 왔다 가고 여름이 왔다 가기를 여러번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늙어 죽고 병나서 죽고 활마자 칼마자 죽고 도망하고 도망하다가 붙들려 죽어 군사는 점점 줄고 군사가 줄면 몇 십리 물러가서 새군사 오기를 기다리고 새군사가 오면 또 평양까지 쫓아 들어 가고야 만다고 한 백리나 가다가 또 군사가 줄면 물러오고 밤낮 이 모양으로 오르락내리락 되풀이를 하여 언제 싸움이 끝날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일 년 만에 돌아간다고 떠나온 가실은 벌써 삼년을 지내어도 돌아갈 길이 망연하였다. 새로 오는 군사들 편에 혹 고향 소식을 듣기는 하건마는 고향으로 소식을 전할 길이 없었다. 오는 사람은 있으되 가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소식을 전하랴.
설씨집 소식을 듣기는 삼년째 되던 해 봄이었다. 노인은 여전히 건강하다는 말과 그 딸은 아직도 시집을 아니 가고 자기를 기다린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새로운 군사의 전하는 말을 듣건대 그곳 어느 양반과 혼인을 하게 되어 가을에 성례를 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가실은 이 말을 들을 때에 몹시 슬펐다. 그러나 돌아갈 길이 망연하니 어찌하랴. 삼 년 전에 서울서 같이 떠난 군사중에 하나씩 둘씩 없어지고 이제는 옛 얼굴을 볼 수가 없으니 자기 생명도 풀잎에 이슬이 언제 슬어질는지 믿을 수가 없다. 더욱이 이 가을에는 신라에서도 있는 힘을 다하고 고구려에서도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운다는데 그때 통에는 암만해도 살아 남을 것 같지도 아니하다. 군사들의 말이 고구려에는 나는 장수가 있어 눈에 보이지 아니하게 다닌다 하며 이번에는 그 장수가 나온다 하니 더욱 명년 봄을 살아서 구경할 것 같지도 아니하다.
삼년째되는 구월보름게 랑비성을 쳐들어가자는 군령이 내렸다. 군사들은 모두 지리하고 집생각이 나서 싸울 생각이 없으나 이번만 싸우고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바람에 죽으나 사나 마지막으로 싸워보자고 술과 고기를 잔뜩 먹고 나팔을 불고 북을 치고 먼지를 날리며 랑비성을 향하고 달려 들어갔다. 가실은 정신없이 일변 활을 쏘며 일변 창을 두르며 앞으로 앞으로 나갔다. 랑비성에서는 화살이 빗발같이 쏟아져 달려가던 군사가 모두 뒤로 쫓겼다. 쫓기다가는 활에마저 쓸어진다. 이리하여 가실의 군사는 거의 다 죽다 싶이 하였다. 이때에 가실은 몇아니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앞으로 앞으로 나갔다. 이러는 동안에 어느 사이에 군사는 다 죽고 가실이 하나만 남았다.
“이놈아 너의 군사가 다 죽었는데 그래도 항복 아니할터이야.”하고 활을 당겨서 가실을 향하여 쏘았다.
“이 활을 받아라.”하고 외칠 때에 가실은 교묘히 몸을 돌려 화살을 피하였지마는 다리에 화살을 맞었다. 군사들이 우, 몰려왔을 때에 가실은,
“안 죽었다.”하고 그 군사들을 쳐다보며 대답한다. 다른 군사가 들고 있는 칼로 가실의 가슴을 겨누면서,
“이놈 이 신라놈! 벌써 네 군사는 다 우리 손에 죽고 몇 놈만 살아서 달아났다. 요놈 너도 이렇게 푹 찔러 죽일 테야.”하고 가실의 가슴을 찌르려한다. 가실은 잠간 기다리라는 듯이 손질을 하며,
“얘 너와 나와 무슨 원수 있니! 내가 네 애비를 때렸단 말이냐, 네 소를 훔쳤단 말이냐, 피차에 초면에 무슨 원수로 나를 죽이려드니? 나도 늙은 부모와 젊은 안해가 있다. 내가 죽으면 그것들은 어쩌잔 말이냐.”하는 말에 군사 하나같이 칼든 군사의 팔을 붙들어 잠간 참으라는 뜻을 보이며,
“이놈아 그럼 웨 활을 메고 우리나라에 들어왔어? 맨 몸으로 왔으면 닭 잡고 밥이라도 해먹이지! 이놈아 웨 활을 메고 와서 우리 사람들을 죽여! 너희 신라놈들은 죄다 죽일놈들이야. 괜히 가만히 있는 고구려를 들수성 거려서 우리도 이렇게 전장에 나오게 만들고……”
가실은 의심스러운 듯이,
“고구려 놈들이 괜이 가만히 있는 신라를 들수성거린다는데!”
“누가 그러던?”하고 칼든 군사가 성을 내며
“우리 상감님 말씀이 신라 놈들이 먼저 혼란을 일으킨다는데”
가실은,
“우리 상감님 말씀에는 고구려 놈들이 가만이 안 있고 괜이 남을 들수성 거린다던데.”한다.
세 사람은 말없이 서로 물끄럼이 보고 섰다. 가실은 힘을 써서 일어나 앉었다. 목이 몹시 마르다. 그래 칼든 군사더러,
“내가 목이 말라 죽겠으니 물을 한잔다오.”한즉 그 군사는 어쩔 줄 모르고 한참 어릿어릿 하더니 칼을 칼집에 꼿고 가서 개천 물을 떠다준다. 가실은 꿀떡꿀떡 다 들이켰다. 그리고는 두 군사더러,
“너희들 나를 죽이지 말어라. 나도 오늘 종일 활을 쏘았으니 너희 사람도 상당히 죽었겠다마는 내가 죽일 마음이 있어서 죽였니? 활을 주면서 쏘라니 쏘았지. 그렇치 너흰들 무슨 까닭으로 괜이 사람을 푹푹 찔러 죽여?”하고 곁에 놓인 활을 들어 꺾어버리며,
“자 이러면 활 없이 맨 몸으로 너희 나라에 들어온 사람 아니냐.”하였다.
두 군사는 말없이 서로 마주 보더니,
“어떻게 이놈을 살려?”
“글세 죄다 죽이라고 그러는데……”
“살려주자…… 이놈의 말이 옳구나.”
“글쎄 사로 잡아왔다고 그럴가.”
“응 우리 이놈을 잡아다가 영문에 바치자. 죽이지 말고.”
이리하여 두 군사는 가실을 부축하여 영문으로 잡아 들여다가 장수에게 바쳤다.
장수는 가실의 손과 얼굴이 무식한 농군인 것과 미미한 졸병에 지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구래 죽일 필요도 없다하여 장에 내다가 종으로 팔았다.
마침 어떤 늙은 농부가 가실을 사서 소 등에 올려 앉혀 어떤 시골 촌으로 다려갔다.
얼마 만에 살마진 자리도 나아 가실은 도끼를 메고 나무도 찍으러 다니고 장작도 패고 밤에는 색기를 꼬고 신을 삼았다. 처음에는 신라놈 잡아 왔다고 모두 구경을 오고 아이들도 따라다니며 “신라놈” “당나라 개”하고 놀려먹더니 차차 가실도 자기네와 똑같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되어 일꾼들끼리도 서로 친구가 되고 말았다.
봄이 오면 거름을 져내고 밭을 갈았다. 가실은 신라 사람이라 논농사를 잘하므로 주인집 밭으로 논을 만들어 둘째 해에는 벼를 많이 거두어 맛난 쌀밥을 먹게 하였다 하여 주인 노인도 가실을 종으로 대접하지 아니하고 가족같이 대우하게 되고 동네 사람들도 모두 가실을 청하여다가 논농사하는 법을 배웠다. 고구려에서는 거의 전장이 끝일 날이 없어 농사를 힘쓰지 아니하므로 논밭이 다 황무하고 또 그때까지는 논농사하는 이는 평양근방 밖에는 없었다.
이리하여 가실은 이 동네에만 이름이 날 뿐 아니라 이웃 동네에서까지 이름이 났다. 사람 좋고 힘써 일 잘하고 그중에도 논을 만드는 데는 선생이라 하여 칭찬들이었다.
이렁구렁 또 삼년이 지내었다. 가실은 해마다 가을이 되면 주인 노인더러 놓아 보내주기를 청하였으나 주인은 본국에 돌아가면 도리어 생명이 위태하리라는 것을 핑계로 놓아주지 아니하고 또 지금 열 여섯 살 되는 딸의 사위를 삼으려는 뜻을 가졌다. 원래 이 노인은 아들 형제를 다 전장에 보내고 농사할 사람이 없어 가실을 종으로 사온 것인데 가실이 있기 때문에 농사를 잘하여 집이 부유해졌고 또 가실의 사람됨이 극히 진실하고 부지런하여 족히 자기의 만년의 일생을 부탁할만 하다고 믿으므로 아무리 하여서라도 사위를 삼아 본국에 돌아갈 생각을 끊게 하려 한 것이다. 또 이 노인의 딸도 가실을 사모하였다. 그가 큰 도끼를 두러메어 젖은 통나무를 패는 것과 소에게 한바리나 되고도 남을만한 나무 짐이나 곡식 짐을 지는 것을 볼 때에 처녀는 가실을 사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실은 다만 힘만 쓰는 사람이 아니요 여러 가지 지혜와 재주도 있었다.
톱과 대패를 만들어다 주고 기타 여러 가지 기구도 만들고 자기가 유숙할 사랑채도 자기 손으로 중창하고 처녀의 나막신도 파 주었다. 그 나막신이 아주 모양이 좋고 발이 편하다 하여 노인은 처녀는 시켜서 들기름을 발라 터지지 않게 하였다. 또 농사하는 여가에는 쑥대로 밭을 만들고 멈통을 만들어 붕어와 잔고기와 궤를 잡아 오면 처녀가 앞 개천의 나가 말끔이 세말을 하여다가 풋고추를 두고 조려 먹었다. 노인은 이것을 썩 좋아하였다.
가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아니하고 무엇이나 일을 하였다. 그래서 그 집은 늘 깨끗하고 없는 것이 없었다. 눈이 오기 전에 벌서 산덤이 같이 나무가 쌓이고 집에기와 메투리도 항상 쌓아두고 신었다. 지난겨울에는 처녀가 처음 질삼을 한다하여 가실이 종일 산으로 돌아다니면서 좋은 재목을 구하여 다가 물레같은것과 베틀을 만들었다. 이것은 질삼 많이 하는 신라본이라 고구려것 보다 훨씬 보기도 좋고 편리하였다. 이 밖에도 가실이가 한 일이 많거니와 그의 지혜와 재주는 동네 사람들도 다 탄복하였다. 그래서 가실은 웬 동네에 없을 수 없는 사람이디어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부인네나 아이들까지도 “가실이 더러 좀 해달래야.”하게 되었다.
가실이가 하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도 새잡는 기계와 고기잡이 기계도 만드는 것이 한 재미가 되었다. 또 가실이가 부지런한 것이 동네사람의 모범이 되었고 말이 적으나 한번 말하면 그것은 꼭 참말이요 꼭 그 말대로 하는 것을 볼 때에 동네 사람들은 가실을 믿고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가실에게는 슬픔이 있다. 백년을 약속한 사람의 소식을 알 수 없고 또 만날 기약이 망연하다. 그래서 주인더러 보내달라고만 졸랐다. 허나 일년 일이 다 끝난 가을이 아니면 보내달란 말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봄이되어 농사를 시작할때가되면 다시는 결코 간단 말을 아니하였다. 그러나 금년, 고향을 떠난 지 육년이 되는 금년, 열아홉 살의 떠나가 스물다섯살이된 금년에는 아무리 하여서라도 돌아가리라 하였다. 그래서 하루는 저녁을 먹고 나서 노인을 대하여,
“저를 금년에는 보내 줍시오.”하였다.
노인은 깜짝 놀라는 듯이 돌아앉으며,
“웨 또 간다고 그러나! 내가 지금 자네를 믿고사네. 내 나이 벌써 칠십이야. 자네가 가면 내가 어떻게 사나.”하는 노인의 말소리는 간절하고 떨린다. 곁에서 노파가 역시 떨리는 소리로,
“그러고 말고. 영감이나 내가 장성한 아들 다 전장에 나가 죽고 자네를 우연히 만나서 아들같이 믿고 사는데, 자네가 다면 이 늙은 것들이 어떻게 산단 말인가. 애어 그런 소리 말어요. 우리 양주가 죽거던 다 묻어놓고.”하고 곁에 앉은 딸의 머리를 쓸면서,
“얘 다리고 아무 자네 마음대로 가게 그려 이 딸자식도 자네에게만 맡기면 자네가 아무 데를 데리고 가더라도 마음이 놓여”한다.
처녀는 부끄러운 듯이 슬며시 빠져 부엌으로 나가더니 큰 바가지에 삶은 밤을 퍼가지고 들어와서 방 한가운데 놓고 어머니 등 뒤에 간다. 노파는,
“자 가실이 밤이나 먹게. 이제 안 좋은가. 자네도 부모도 없다니 우리를 부모로 알고, 가족도 없다니 이 애를 안해로 삼고 그리고 벌어먹고 지나면 안 좋은가.”하고 밤을 집어 가실을 주며,
“자 어서어서 먹어요 이 애가 자네 준다고 삶은 것일세.”하고 딸을 등 뒤에서 끌어낸다.
“아니야요 어머니도”하고 딸은 고개를 숙인다. 가실은 밤을 베껴 위선 노인 양주를 들이고 자기도 먹었다. 밤 껍질을 베끼는 가실의 손은 떨렸다. 진실로 가실은 어쩔 줄을 몰랐다. 만일 노인이 강제로 자기를 못하게 한다면 벌써 빠져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불쌍한 세 식구가 자기를 믿고 사랑으로 매어달릴때에 그것은 참아 뿌리치기가 어려웠다. 가실은 힘이 센 것과 같이 정도 세다. 그러나 정이 센 것과 같이 의리도 세다. 정이 센지라 주인을 참아 뿌리치지도 못하거니와 의리도 센지라 설씨의 딸에게 한번 맺은 약속을 깨트리지 못한다. 가실이 연해 밤만 베끼고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노인은,
“가실이가 우리 두 늙은이의 소원을 일러주게! 다시는 늙은 것의 가슴을 조리게 하지 말게.”하고 노인은 손으로 가실의 등을 어루만진다. 노파의 딸은 근심스러운 눈으로 가실만 바라보고 있다.
가실은 굳은 결심을 얻은 듯이 고개를 번쩍 들어 노인을 보며,
“저도 두 어른을 부모로 알고 있읍니다. 부모처럼 저를 사랑해 주시니 부모가 아닙니까.”하는 가실의 말소리는 깊은 감동으로 떨린다. 가실은 눈물 먹음는 어조로,
“그러나 저는 육 년 전 고향을 떠날 때에.”하고 말을 뚝 끊더니 다시 말을 이어,
“제 자랑 같아서 아직 말씀을 아니했읍니다마는.”하고 자기가 설영감이라는 노인 대신으로 전장에 나왔다는 말과 일 년 후에 전장에서 돌아오면 그의 딸과 혼인하기를 약속 하였다는 말을 다하고 나중에,
“제가 무엇이 그리워 고향에를 가고 싶겠읍니까. 백년을 맹세한 사람이 밤낮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러는 것이 올시다.”하고 말을 끊을 때에 가실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노인 양주는 가실이 하는 말을 들을 때에 더욱 가실의 심정이 착하고 아름다운 것을 찬탄하고 가실의 눈물을 볼 때에는 노인 양주도 같이 울었다. 딸도 어머니의 등에 이마를 대고 울었다. 노인은 한 번 더 가실의 등을 어루만지며,
“자네는 하늘이낸 사람일세 과연 큰 사람일세. 어쩌면 남을 대신하여 죽을 자리로 나간단 말인가. 옛말로는 우리 조상 적에 그런 사람이 있었단 말도 들었지마는 오늘날 자네와 같이 큰 사람은 칠십 평생에 처음 보네.”하고 칭찬하기를 말지 아니 하다가,
“내 어째 자네가 웃는 낯이 없고 늘 수심기가 있어 보이기에 그저 고향 생각이나서 그러나 했더니 자네 말을 듣고야 알겠네.”하고 혀를 챈다. 노파도 눈물을 씻고 목메인 소리로,
“내 어째 자네가 차차 수척해 가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그래서 그랬네 그려.”하고 혀를 챈다. 딸은 슬며시 일어나 나가더니 건넌방에서 흑흑 느껴 우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