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 오 년 뒤 — 공진회 회상
제5장 · 오 년 뒤 · 공진회 회상
이리하여서는 아니 되겠다고 그 날부터 부지런히 인력거 벌이할 새, 새벽에 나가서 저녁까지 술도 아니 먹고 용돈 과히 아니 쓰고 한 냥을 벌든지 열 냥을 벌든지 집으로 가지고 가서 마누라에게 맡겨두고, 밥을 조금 많이 담아도 쌀 많이 없어진다고 말을 하며, 반찬을 조금 잘하여 놓아도 용돈 과히 쓴다고 잔말을 하여 아무쪼록 적게 쓰고 아무쪼록 많이 모으려 하며, 벌이를 할 때에도 동리 사람에게 신실하게 보이고 동무에게 밉지 아니케 굴어 다른 인력거꾼은 열 냥 받아 다니는 데를 김서방은 일곱 냥이를 여덟 냥을 받고 다니며 힘을 들여 인력거를 끄니, 동리 양반들이 인력거를 탈 일이 있으면 김서방을 부르고, 심부름을 시킬 일이 있더라도 김서방을 찾아서 그 신실하고 튼튼한 것을 어여삐 보아 삯전도 많이 주고 행하도 후히 하여, 일 년 지나 빚 다 벗고 이태 지나 인력거 사고 삼 년 지나 돈 모았다. 김 서방이 이렇게 부지런히 벌이하고 열심히 돈을 모으려 하고 신실하게 일을 하려고 할 때에, 그 아내도 또한 바느질하며 남의 집 일도 하여 밥도 더러 얻어다가 끼니를 에우고, 반찬도 더러 얻어다가 남편을 공대할 새 그럭저럭 삼사 년이 지내었더라.
섣달 그믐께는 새해를 맞으려고 사람마다 분주하여 빚 받으러 다니는 사람도 있고, 빚에 쫓겨 피신하는 사람도 있고, 세찬에 봉물에 오락가락 세상이 번화한데, 어떠한 집에는 흰떡하고 인절미하고 차례 차리느라고 야단법석하며 어떠한 집에는 아이들 설빔 하나 못 해 주고 돈이 없어 쩔쩔매는 집도 있도다.
김서방도 이삼 년 전에는 섣달 그믐을 당하면 술값이니 쌀값이니 일수, 월수 돈에 몰려 쫓겨 다니느라고 과세도 변변히 잘못하더니, 금년부터는 형세가 늘어서 집안이 넉넉하여 빚 한 푼 갚을 것 없고, 쌀 한 되 취한 데 없다. 김서방이 동리 양반에게 세찬 행하를 많이 얻어가지고 집으로 들어가니, 그 아내는 과세하려고 흰떡을 하며 만두를 하며 혼잣몸이 분주한지라, 방으로 들어가서 심심히 앉았다가 장롱을 열고 보니 어느 틈에 벌써 두 내외 입을 설빔 의복을 다 하여 놓았더라. 김서방의 입이 떡 벌어져서 혼자 빙긋 웃고 마음에 좋아라고 잠깐 앉았다가 다시 일어서서 바깥으로 나와서 그 아내 의하는 일을 거두쳐 주며 이야기하는 말이,
"여보게 마누라, 이번 설에는 마음이 참 좋아. 재작년 설만 하여도 우리가 빚에 쫓기어 고생을 좀 많이 하였나. 술집 늙은이가 술값 받으러 왔을 때에 돈은 없고 할 수 없어 내가 이불 개어놓은 뒤에 가서 자네 행주치마를 쓰고 숨었더니, 술집 늙은이가 자네더러 옥신각신 말하다가 나 숨은 데를 의심하였던지 늙은이가 하는 말이……. '애고 이상하여라. 저 이불 위의 행주치마가 왜 꿈지럭꿈지럭하여…….' 하는 소리에 떠들어볼까 하여 가슴이 두근두근하였네. 그때 만일 그 늙은이가 떠들어보았으면 내 모양이 어찌 될 뻔하였어. 지금 생각하여도 우습고 기가 막히지, 하하하."
일을 다한 후에 저녁밥을 차려가지고 방으로 들어가서 재미있게 먹은 후에 그 아내가 하는 말이,
"우리가 삼 년 전보다 형세가 늘어서 굶지 아니하고 넉넉하게 살며 명절을 재미있게 잘 세는 것은 당신이 술을 끊고 부지런히 벌이한 까닭인데, 그동안에 백사를 절용하여, 쓸 것을 아니 쓰고 돈을 모아 지금은 어지간히 많이 모였소. 얼마나 되는지 시원하게 세어보시려오."
김서방도 본래 자세히 알지 못하여 궁금하던 터이라, 속마음으로 인력거나 두어 채 사서 다른 사람에게 세로 줄 만한 돈이나 모였는가 생각하고 기꺼이 대답한다.
"그것 참 좋은 말일세. 아마 돈천이나 모였겠지. 당오 만 냥이 되어도 걱정 없겠는데."
그 아내가 벌떡 일어서서 장롱 안에서 무슨 뭉치를 두 손으로 무겁게 들고 꺼내어다가 김서방의 앞에 놓으며 말이,
"이것을 세어보니까 모두 삼천삼백원이니 당오 풀이로 이십일만 오천 냥입니다."
김서방이 깜짝 놀라며,
"웬 돈이 이렇게 많이 모였나."
그 아내는 온순한 태도로 조용히 말하되,
"오늘은 내 죄를 용서하여 주시오. 내가 남편에게 죄를 많이 지었소. 당초에 당신이 인력거를 끌고 나가서 지전 뭉치를 얻어 가지고 들어오셔서 그 이튿날 벌이할 생각은 아니하고 그 전날 밤에 약조한 말과 맹세한 말은 모두 잊어버리고 술 자시기를 시작하시기에, 하릴없이 당신을 속이고 당신 술 취한 것을 이용하여 꿈으로 돌려보내고 그 지전 뭉치를 경찰서로 가지고 가서 모든 사정 말을 하고 임자를 찾아주라 하였더니, 경찰서에서 광고를 붙이고 지전 잃은 사람을 사면으로 찾으나 돈 임자가 나서지 아니하는 고로 수일 전에 나를 부르기에 내가 경찰서에 갔더니, 경찰서장이 그 지전 뭉치를 내어주며 이 돈은 삼 년 지내어도 임자가 나서지 아니한즉 네게로 내어주노니, 그것 가지고 잘 살아라 하옵기 대단히 놀랍고 고마워서 가지고 나왔으나, 그동안 삼 년이나 당신을 속인 일이 여편네 된 도리에 대단히 죄송하오니 용서하시오. 경찰서에서 내어주신 돈은 사천삼십이원 오십전이오 그 나머지는 그동안 우리가 모은 돈이오."
김서방은 그 아내의 말만 듣고 잠잠히 앉았더니 별안간 하는 말이,
"아니여, 이것은 또 꿈이로군. 내가 또 지금 꿈을 꾸는 것이야."
그 아내는 김서방의 하는 말이 한편으로는 딱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또 김서방이 돈 많은 것을 보고 도로 예전 마음이 생기어 술이나 먹고 게을러질까 염려하여 엄연한 태도로 말을 한다.
"아니오, 꿈도 아니고 정말인데, 인제는 이것 가졌으면 전답 사고 추수하여 존절히 쓰고 먹으면 구차치 아니하게 살 터이니 우리가 더욱 마음을 굳게 먹고 규모를 부려가며 잘 사십시다."
김서방은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더니 눈에 눈물이 핑 돌면서 하는 말이,
"내가 오늘 이러한 기쁘고 좋은 말 하게 된 것은 모두 자네 덕일세. 마누라가 그때에 그렇게 아니하였더면 나는 그 돈을 다 썼을 터이오. 구차한 놈이 별안간 돈 잘 쓰는 것을 경찰서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있는가. 징역은 갈 데 없이 하였을 것이오. 또 오늘 이렇게 돈이 남을 수가 있었겠는가. 자―, 나는 부자 되었다고 마음 놓을 수는 없으니, 돈은 다 자네가 가지고 논도 사고 땅도 사게, 나는 인력거 벌이는 내어버리지 못하겠네……."
김서방은 인력거를 끌고 병문으로 나아간다.
공진회를 개최한다는 소문이 있더니, 서울서 공진회 협찬회가 조직이 되었는데, 공진회는 총독 정치를 시행한 지 다섯 해 된 기념으로 하는 것이라 하는 말을 김서방의 내외가 들었던지, 경찰서에서 돈을 내어준 것을 항상 고마워하고 총독 정치의 공명함을 평생 감사하게 여기던 터이라, 공진회 협찬회에 대하여 돈 이백 원을 무명씨로 기부한 사람이 있는데, 이 무명씨가 아마 김서방인 듯하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