岡本かの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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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시대의 저는 오라버니와 무척 가깝게 지냈습니다. 오라버니에 관해서는 이런저런 추억이 있습니다. 열여섯이나 열일곱 무렵이었지요, 아무래도 늦가을이었던 듯합니다. 어릴 적부터 노래며 글을 좋아하던 저를, 역시 문학자로 입신할 작정이라며 고등학교에 다니던 오라버니가, 신시샤(新詩社)의 요사노 아키코(與謝野晶子) 부인 댁으로 데려가 주었습니다. 그 무렵 신시샤에서는 지금의 『묘조(明星)』의 전신인, 역시 『묘조』라는 큰 시가 잡지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오라버니는 저를 데려가기 훨씬 전부터 신시샤에 들어가, 노래며 시를 『묘조』에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잘 갠 날이었지요, 높이 맑게 갠 하늘 아래로 마른 풀의 길이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센다가야의 철도 선로를 끼고 놓인 낮은 둑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메뚜기들이 분주히 뛰어다니고, 군데군데 시들고 남은 달개비 꽃이 작게 움츠러든 채 피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데려갈 신시샤가 그곳에서 몇 정(丁)쯤 떨어져 있는지, 요사노 부인이 어떤 분이신지, 저는 그 상상으로 가슴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말수가 적은 오라버니는 아무것도 일러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가스리(絣) 겹옷에 단정히 하카마를 입고, 살짝 때 묻은 제일고등학교 모자의 흰 띠가 거무스름한 오라버니의 둥근 얼굴과 사랑스럽게 대조를 이루고 있었지요. 신시샤는 신주쿠 쪽의 센다가야 밭 한가운데 자리한 지극히 소박한 단층집이었습니다. 오라버니의 등 뒤로, 어깨주름을 잡고 머리를 양쪽으로 땋아 내린 저는, 숨으려는 듯 자리에 앉았습니다. 우리는 집 한가운데의 큰 방, 굳이 말하자면 응접실이라 할 만한 곳에서, 아키코 부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별채의 쇼지(障子, 미닫이 격자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자박자박 마룻바닥 복도를 밟는 부드러운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키 크고 살결 새하얀 아키코 부인이 저희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머리를 무심하게 말아 올리고, 푸른빛 가스리 겹옷에 산뜻한 가을풀 무늬의 메린스(모슬린) 띠를 두르고 계셨지요. 너른 이마는 조개껍데기처럼 매끄러웠고, 작지만 열정적이며 지성으로 빛나는 눈, 앞니가 하나 빠지신 탓인지 말씀하시기 힘드신 듯하면서도, 또박또박 무엇인가 말씀하시는 모습은 다정하면서도 늠름하셨습니다. 그 전체에서 풍기는 청초한 인상은, 후년의 농염한 차림의 부인에게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지요.
좁고 환한 뜰에 서리에 시든 누런 국화 흰 국화가 어수선하게 피어 있는 모습이, 오히려 운치 있는 정취였다고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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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말수가 적은 오라버니가 때때로 무서울 만큼 달변이 되곤 했습니다. 어떤 한 가지 문제에 사로잡히면 좀처럼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격이었지요. 감정가였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럴 때면 상대의 입장 같은 것은 좀체 헤아리지 않는, 일종의 사랑스러운 이기주의자가 되곤 했습니다.
“있잖아, 너, 그렇지 않니, 신이 전능한 힘을 지녔다면, 어째서 그 힘을 부려 이 세상의 악을 그 자리에서 일소하지 않는 거지. 이 의문이 풀리지 않는 한 나는 역시 신의 존재라는 것을 온전히 믿어버릴 수가 없는 거야.”
이렇게 말을 마치고는 괴로운 듯 오라버니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오라버니는 그 무렵, 시가 소설에 너무 빠져든 끝에 신경쇠약에 걸린 결과, 어느 친구의 친절한 권유로 기독교 신자가 되어가던 참이었습니다. 내성적인 오라버니는, 교회의 목사 앞에 마주 서면 마음껏 묻지 못하니 자연 그것이 안으로 답답하게 쌓여, 이윽고 제 쪽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었지요.
“설령 온몸을 다해 믿을 수 있다 한들, 나는 쓸쓸해. 예술의 미와 종교의 선이 도무지 일치하지 않을 테니까.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나에게는 이게 큰 문제야.”
듣고 있던 제가 분명한 답을 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여학교 5학년 학생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오라버니는, 대답 같은 건 어찌 되어도 좋았던 모양입니다. 어떤 경우든 자기를 경애하는 감상적인 누이가 얌전히 곁에 앉아 열심히 자기 말을 들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했지요. 그것은 어느 일요일 오후 산책길의 일이었습니다. 길 저편으로는 오지(王子) 부근 공장의 굵은 굴뚝이, 저 멀리 엷게 흐려진 하늘 위로 우뚝 솟고, 그 아래로 흐릿하게 번진 듯한 거리의 원경이 가로로 길게 보이고 있었지요. 길의 네거리에는 으레 한 무더기씩 쓰레기가 쌓여 버려져 있는 미카와시마(三河島) 들녘을, 오라버니와 누이는 걷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방금 지나온 시골 거리 가게마다 잘 익어 검붉게 빛나던 감의 빛깔이 눈에 남아 있습니다. 베어낸 자리의 볏그루가 진흙 논 위에 듬성듬성 줄을 짓고, 군데군데 베어내지 않은 벼가 게으른 헝클어진 머리칼처럼 보입니다. 작은 시내 다리 어귀에는 무청을 씻는 늙은이 젊은이 남녀들. 그것마저 이윽고 끊어지고, 한 가닥 길이 그야말로 쓸쓸한 초겨울의 상징처럼 망망하게 펼쳐진 들녘 한복판으로, 지나온 길은 아득하게, 갈 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잿빛 하늘은 더욱 낮고 무겁게, 금세라도 한 차례 시구레가 쏟아질 듯한 심란함에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아도, 사람 그림자라 할 만한 것은 거의 보이지 않고, 까마귀가 군데군데 흐릿하게 검은 날개를 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쓸쓸하네요, 오라버니, 투르게네프의 산문시집 안에 이런 게 있지 않았던가요? 어느 늦가을이었던가 초겨울 저녁이었던가, 이런 들판에서 마을 쪽으로, 누런 큰 앞니를 드러낸 한 노파가 백발머리를 풀어헤치고 잠자코 걸어가는, 그런 게 섬뜩하리만치 그려져 있지 않았던가요?”
저는 말을 마치자, 등줄기가 오싹했습니다. 그러고는 그런 요괴 같은 노파가 뒤에서 영락없이 따라오는 듯한 압박감에 갑자기 사로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어깨를 움츠리고 걸음을 재촉하자 오라버니도 쓸쓸한 듯 웃으면서 저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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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끝에서, 너른 안채 이곳저곳의 좁은 길에 여러 줄로 깔아 놓은 정원석들 사이사이로, 흰빛, 붉은빛, 노란빛, 연분홍빛 채송화 꽃이, 가련하면서도 범할 수 없는 강한 기품을 머금고, 작열하는 한여름 한낮의 햇살에 맞서며 피어 있었습니다. 도쿄 근교 어느 명승지의 옛집인 저희 집 안채 객실은, 그날 가신을 여럿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행차한 어느 귀인의 유람길 휴게소였습니다. 하녀가 여럿 있어도, 그러한 귀하신 분의 곁에는 그 집 귀한 따님을 모시게 하는 것이, 그 집 주인의 충근(忠勤)을 상징하는 일이라는 관행이, 거의 흔들 수 없는 시골 옛집의 대를 이어 내려온 법도였습니다. 마침 여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돌아와 있던 제가, 결국 그 역할을 맡아야 했지요. 집안일을 싫어하고 문학 책 같은 것에 빠져 있던 자존심 강한 제가, 그 일을 귀인에게서 강요당하는 일종의 굴욕적인 역할이라 여기고 순순히 받아들이려 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약한 아버지의 간곡한 청에 마지못해 응한 것이었지요. 저는 시집이라도 가는 듯한 화려한 옷차림을 강요받았습니다. 하녀가 옆방까지 차며 과자를 나릅니다. 그것을 제가 받아, 형식적으로 그 귀인의 앞에 올리기만 하면 되었지요. 저의 거동은 아마도 무척 어색하고 무뚝뚝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 쉰 살 가까이 된 귀인은 어인 일인지 무척 기분이 좋아, 주위를 둘러보며 유쾌한 담소와 호탕한 웃음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분은 무엇인가 문득 떠올린 듯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저에게 등을 돌리고는, 유카타 차림의 상반신을 풀어 알몸으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러고는 가신에게 명하여, 툇마루에 떠놓아 두었던 세숫대야 안에서 수건을 짜 가져오게 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순식간의 행동을 주시했지요. 둥글고 짧게 깎은 반백의 머리를 인 짧은 목이, 폭음 탓인지 발갛게 살갗이 그을려 있었습니다. 오뚝한 코로 단단히 다잡힌 단정한 얼굴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는 다소 천박한 인상을 받아, 저는 저도 모르게 눈을 돌렸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분은, 가신에게서 받은 짠 수건을 비틀어 제 쪽으로 내미셨습니다.
“자네, 미안하네만, 내 등을 좀 닦아주지 않겠나.”
저는 순간적으로 발끈했습니다. 그러고는 그 수건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지요.
“아씨, 부디 부탁하네. 자네가 아니면 시원해지지 않는단 말이지.”
그분은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곁에서 말한 가신의 손을, 이렇게 말하며 물리치고는, 제 얼굴을 돌아보며 웃었습니다. 그 웃음은, 지금까지 그분의 얼굴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점잖지 못한 웃음이었지요. 저는 욱했습니다. 다음 순간, 저는 그분의 손에서 빼앗듯 수건을 받아들고는, 그분의 등 한복판, 단 하나뿐인 큰 점을 겨누어, 다짜고짜 그것을 내리쳤습니다. 저는 어안이 벙벙해진 일동을 뒤로하고 불처럼 얼굴을 달구며, 멀리 떨어진 제 방으로 거침없이 들어가 버렸지요. 거기에 뜻밖에도 오라버니가 있었습니다. 오라버니는 제 행위를 듣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습니다. 어머니가 곧 뒤를 따라오셨지요. 그래서 제가 그 일을 이야기하자, 사내아이 같은 쾌활한 어머니는 큰 입을 벌리고 깔깔 웃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 약한 아버지는 안채 객실로 사정을 사뢰러 가셨습니다. 그분은, 과연 유유히 가신에게 땀을 닦이게 하면서,
“하하, 하하, 제법 기개 있는 아씨로구나, 귀공은 재미있는 따님을 두셨구먼. 하하, 하하.” 하고 호탕한 웃음으로 얼버무리고는, 뒤에 조금도 언짢은 기색을 남기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이삼일 동안 아버지의 발칙한 딸인 저에게 결코 말을 걸어주지 않으셨습니다. 평소 제가 친해질 수 없었던 시골 사람들이 저에게 던지던 비난과 험담은, 그분들에게는 신과도 같은 이 귀하신 분에 대한 저의 반역적 행위로 인해 더욱더, 그분들 사이에서 확대되고 굳어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