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십 년쯤 전에 나는 일본화 숭배자이자 서양화 배척자였다. 그 무렵 이잔 군(爲山)과 방화(邦畵, 일본화)·양화(洋畵, 서양화) 우열론을 벌였는데 나는 좀처럼 졌다고 여기지 않았다. 마지막에 이잔 군이 일본화의 둥근 파도는 바다의 파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이어서 일본화의 옆얼굴과 서양화의 옆얼굴을 나란히 그려 그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 아무리 고집 센 나라도 전혀 문외한인 만큼 이 실연 논의를 듣고 절반은 놀라고 절반은 감탄하였다. 특히 일본화의 옆얼굴에는 정면에서 본 듯한 눈이 그려져 있다고 들었을 때엔 몹시 놀랐다. 그러나 형사(形似, 형태가 닮음)는 그림의 솜씨와 무관하다는 논리를 들이대어 그 놀라움을 지워 버렸다. 그 뒤 후세쓰 군(不折)과 함께 『소일본』에 있게 되어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하니, 얼굴을 마주하면 으레 화론을 시작하곤 하였다. 이때도 나는 일본화 숭배였기에 말하는 족족 부딪쳤다. 내가 후지산은 좋은 산이지 않으냐 하면, 후세쓰 군은 속된 산이라 한다. 소나무는 좋은 나무지 않으냐 하면, 그것도 속된 나무라 한다. 달마는 운치 있지 않으냐 하면, 달마는 속되다 한다. 일본의 갑주는 미술적이지 않으냐 하면, 서양의 갑주 쪽이 미술적이라 한다. 일일이 부딪치니, 같은 인간의 감정이 그토록 다른가 싶어 너무도 신기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중 문득 하이쿠(俳句)와 비교해 보고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하이쿠에 후지산을 넣으면 속된 구가 되기 십상이고, 하이쿠에 소나무를 읊은 구도 있긴 하지만 소나무 구에는 속된 것이 많아, 도리어 겨울나무 숲의 구에 운치 있는 것이 많고, 달마 같은 것은 하이쿠에 넣으면 몹시 밉상이 된다. 이 정도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그림에까지 미치게 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하이쿠를 모르는 사람이 후지산 구를 보면 매우 기뻐하는 것과, 우리가 후지산 그림을 보면 까닭 없이 좋아하는 것이 같은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비로소 눈이 트인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일본화 숭배는 변하지 않아, 일본화를 깎아내리고 서양화를 칭찬하면 어쩐지 부아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과 서양의 비교는 그만두고, 일본화 안에서의 비교 평론, 서양화 안에서의 비교 평론이라는 식으로 따로따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하루하루 무언가 알아 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열 달쯤 지난 뒤에는 조금 확실해진 듯도 싶었다. 그때 마음을 비우고 평정하게 생각해 보니, 비로소 일본화의 단점과 서양화의 장점을 알 수 있었다. 끝내 이잔 군과 후세쓰 군에게 항복하였다. 그 뒤로는 서양화를 배척하는 사람을 만나면 부아가 치밀어 크게 논쟁을 벌인다. 마침내 옛날 이잔 군에게 배운 그대로, 일본화의 옆얼굴과 서양화의 옆얼굴을 그려 “이것 보게, 일본화의 옆얼굴에는 이런 눈이 그려져 있다네, 실제로 자네, 이런 눈이 있을 리가 없잖나” 따위로 잘난 척 떠벌이고 있다. 그 잘난 척하는 꼴은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손끝이 무뎌서, 그림은 좋아하면서도 그것을 그리는 일은 하지 못하였다. 보통 아이들이 그리는 대장 그림조차 그리지 못하였다. 요즈음에 이르러 채색의 묘미를 깨달았기에, 채색화를 그려 보고 싶다고 농 삼아 말했더니, 후세쓰 군이 곧장 그림 물감을 가져다준 것이 작년 여름이었지 싶다. 그러나 그것마저 선반에 얹어 놓은 채로 잊고 있었다. 가을이 되어 병이 약간 가벼워지고 오늘은 기분이 좋다 싶은 날, 문득 책상 위에 꽂혀 있는 추해당(秋海棠, 베고니아의 일종)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그림 마음이 떠올라 와서, 부랴부랴 그림 물감을 꺼내게 하고 반지(判紙, 종이의 한 종류)를 펼쳐 다짜고짜 추해당을 사생(寫生)하였다. 잎의 색 따위에는 가장 애를 먹었으나, 처음으로 그림 물감을 써 본 것이 기뻐서, 그 그림을 모쿠고 선생(默語)과 후세쓰 군에게 보였더니 매우 칭찬을 받았다. 이 큰 잎의 색이 재미있다, 따위로 말하니, 애먹은 데까지 칭찬을 받게 된 셈이라 나는 기뻐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처럼 그림이라곤 전혀 모르는 자가 처음으로 추해당을 그렸는데 그것이 추해당으로 보이는 것은 사생 덕분이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이루지 못해 개와 닮게 된다 따위로 말하는 것은 사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생만 하면 무엇이든 그리지 못할 것은 없을 터, 라며 금세 몹시 우쭐해져서, 이번에는 내 왼손에 감을 쥐고 있는 모습을 사생하였다. 감은 엄지와 검지 사이로 보이는 부분이라, 이것을 다 그리는 데에는 매우 고생을 하였다. 그곳에 교시(虛子)가 와서 이 그림을 의기양양 보였더니, 교시는 연신 들여다보고 있더니만 모르겠다는 모양이다. “그건 손에 감을 쥐고 있는 거라네” 하고 설명해 들려주자, 교시는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얼굴로 “그래서 알겠습니다만, 아까부터 말 항문 같다고 생각하면서 보고 있었답니다” 하고 말하였다.

○우리 고향에 보즈마치(坊主町)라는 한적한 동네가 있고 거기에 아사이 선생이라는 한학 선생이 있었다. 그 선생 댁으로 글공부를 하러 다니는 어린아이 하나가 있었는데, 열남짓 된 아이였다. 언제나 그 집을 나설 때 거기 안마당에다 마당 가득 벌거벗은 거구의 사내를 그려 놓는 것이 예사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 댁 사람이 밖으로 나가려 하면 안마당에 거구의 사내가 큰 물건을 안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 번번이 놀라곤 하였다. 오늘도 또 예의 그림이 그려져 있더라며 그 댁 사람이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내가 들은 일도 여러 번이었다. 그때의 어린 익살꾼 화가가 지금의 이잔 군이다.

○내가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하이쿠 따위 그만두겠다.

〔『호토토기스』 제3권 제5호, 메이지 33년(1900)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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