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아이구, 무슨 장마가 그렇게 심해요.”
하며 담배를 붙이는 뚱뚱한 마님은 오래간만에 오신 사돈 마님이다.
“그러게 말이지요. 심한 장마에 아이들이 병이나 아니 났습니까. 그동안 하인도 한번 못 보냈어요.”
하며 마주앉아 담배를 붙이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이마에 주름살이 두어 줄 보이는 마님은 이철원(李鐵原)댁 주인 마님이다.
“아이구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나 역시(원문은 ‘역’) 그랬어요. 아이들은 충실하나 어멈이 어째 수일 전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오늘은 일어나 다니는 것을 보고 왔어요.” “어지간히 날이 더워야지요. 조금 잘못하면 병나기가 쉬워요. 그래서 좀 걱정이 되셨겠습니다(원문은 ‘되셨겠습니까?’).” “인제 나았으니까(원문은 ‘나았으니까요’) 마음이 놓여요. 그런데 애기가 일본서 와서 얼마나 반가우셔요.”
하며 사돈 마님은 잊었던 일을 깜짝 놀라 생각하는 듯이 말을 한다.
“먼 데다가 보내고 늘 마음이 놓이지 않다가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오니까 집안이 든든해요.”
주인 마님 김 부인은 담뱃대를 재떨이에 탁탁 친다.
“그렇다마다요. 아들이라도 마음이 아니 놓일 텐데 처녀를 그러한 먼 데다 보내시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몸이나 충실했었는지요.” “네. 별병은 아니 났나 보아요. 제 말은 아무 고생도 아니 된다 하나 어미 걱정시킬까 보아 하는 말이지, 그 좀 주리고 고생이 되었겠어요. 그래서 얼굴이 꺼칠해요.”
하며 뒤꼍을 향하여,
“아가, 아가, 서문안 사돈 마님이 너 보러 오셨다.”
한다.
“네.”
하고 대답하는 경희는 지금 시원한 뒷마루에서 오래간만에 만난 오라버니댁과 앉아서 오라버니댁은 버선을 깁고 경희는 앉은 재봉틀에 자기 오라버니 양복 속적삼을 하며 일본서 지낼 때에 어느 날 어디를 가다가 하마터라면 전차에 치일 뻔하였더란 말, 그래서 지금이라도 생각만 하면 몸이 아슬아슬하다는 말이며, 겨울이 오면 도무지 다리를 펴고 자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다리가 꼿꼿했다는 말, 일본에는 하루걸러 비가 오는데 한번은 비가 심하게 퍼붓고 학교 상학 시간은 늦어서 그 굽 높은 나막신을 신고 부지런히 가다가 넘어져서 다리에 가죽이 벗겨지고 우산이 모두 찢어지고 옷에 흙이 묻어 어찌 부끄러웠었는지 몰랐었더란 말, 학교에서 공부하던 이야기, 길에 다니며 보던 이야기 끝에 마침 어느 때 활동사진에서 보았던 어느 아이가 아버지가 장난을 못 하게 하니까 아버지를 팔아 버리려고 광고를 써서 제 집 문밖 큰 나무에다가 붙였더니 그때 마침 그 아이만한 6, 7세된 남매가 부모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다가 꼭 두 푼 남은 돈을 꺼내 들고 이 광고대로 아버지를 사려고 문을 두드리던 양을 반쯤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오라버니댁은 어느덧 바느질을 무릎 위에다가 놓고 “하하, 허허.” 하며 재미스럽게 듣고 앉았던 때라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묻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얼른 다녀 오.”
간절히 청을 한다.
옆에 앉아서 빨래에 풀을 먹이며 열심히 듣고 앉았던 시월이도 혀를 툭툭 친다.
“아무렴 내 얼른 다녀오리다.”
경희는 이렇게 대답을 하고 제 이야기에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 기뻐서 웃으며 앞마루로 간다.
경희는 사돈 마님 앞에 절을 겸손히 하며 인사를 여쭈었다. 일 년 동안이나 잊어버렸던 절을 일전에 집에 도착할 때에 아버지 어머니에게 하였다. 하므로 이번에 한 절은 익숙하였다. 경희는 속으로 일본서 날마다 세로 가로 뛰며 장난하던 생각을 하고 지금은 이렇게 얌전하다 하며 웃었다.
“아이구, 그 좋던 얼굴이 어쩌면 저렇게 못 되었니, 오죽 고생이 되었을라고.”
사돈 마님은 자비스러운 음성으로 말을 한다. 일부러 경희의 손목을 잡아 만졌다.
“똑 시집살이한 손 같구나. 여학생들 손은 비단결 같다는데 네 손은 왜 이러냐.” “살성이 곱지 못해서 그래요.”
경희는 고개를 칙으린다.
“제 손으로 빨래해 입고 밥까지 해 먹었다니까 그렇지요.”
경희의 어머니는 담배를 다시 붙이며 말을 한다.
“저런, 그러면 집에서도 아니하던 것을 객지에 가서 하는구나. 네 일본 학교 규칙은 그러냐?”
사돈 마님은 깜짝 놀랐다. 경희는 아무 말 아니한다.
“무얼요. 제가 제 고생을 사느라고 그러지요. 그것 누가 시키면 하겠습니까. 학비도 넉넉히 보내주지마는 그 애는 별나게 바쁜 것이 재미라고 한답니다.”
김 부인은 아무 뜻 없이 어제 저녁에 자리 속에서 딸에게 들은 이야기를 한다.
“그건 왜 그리 고생을 하니.”
사돈 마님은 경희의 이마 위에 너펄너펄 내려온 머리카락을 두 귀밑에다 끼워 주며 적삼 위로 등의 살도 만져 보고 얼굴도 쓰다듬어 준다.
“일본에는 겨울에도 불도 아니 때인대지. 그리고 반찬은 감질이 나도록 조금 준 대지. 그것 어찌 사니?” “네, 불은 아니 때나 견디어 나면 관계치 않아요. 반찬도 꼭 먹을 만치 주지 모자르거나 그렇지는 아니해요.” “그러자니 모두가 고생이지. 그런데 네 형은 그동안 병이 나서 너를 못 보러 왔다. 아마 오늘 저녁 꼭은 올 터이지.” “네, 좀 보내주세요. 벌써부터 어찌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암 그렇지. 너 왔다는 말을 듣고 나도 보고 싶어하였는데 형제끼리 그렇지 않으랴.”
이 마님은 원래 시집을 멀리 와서 부모 형제를 몹시 그리워 본 경험이 있는 터라, 이 말에는 깊은 동정이 나타난다.
“거기를 또 가니? 인제 고만 곱게 입고 앉았다가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재미드랍게 살지 그렇게 고생할 것 무엇 있니?”
아직 알지 못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일러 주는 것같이 경희에 대하여 말을 하다가 마주 앉은 경희 어머니에게 눈을 향하여 ‘그렇지 않소? 내 말이 옳지요.’ 하는 것 같았다.
“네, 하던 공부 마칠 때까지 가야지요.” “그것은 그리 많이 해 무엇하니. 사내니 고을을 간단 말이냐? 군주사(郡主事)라도 한단 말이냐? 지금 세상에 사내도 배워 가지고 쓸 데가 없어서 쩔쩔 매는데…….”
이 마님은 여간 걱정스러워 아니한다. 그리고 대관절 계집애를 일본까지 보내 이 공부를 시키는 사돈 영감과 마님이며 또 그렇게 배우면 대체 무엇하자는 것인지를 몰라 답답해한 적은 오래 전부터 있으나 다른 집과 달라 사돈집 일이라 속으로는 늘 ‘저 계집애를 누가 데려가나.’ 욕을 하면서도 할 수 있는 대로는 모른 체하여 왔다가 오늘 우연한 좋은 기회에 걱정해 오던 것을 말한 것이다.
경희는 이 마님 입에서 ‘어서 시집을 가거라. 공부는 해서 무엇하니.’ 꼭 이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속으로 ‘옳지, 그럴 줄 알았지.’ 하였다. 그리고 어제 오셨던 이모님 입에서 나오던 말이며 경희를 보실 때마다 걱정하시는 큰어머니 말씀과 모두 일치되는 것을 알았다. 또 작년 여름에 듣던 말을 금년 여름에도 듣게 되었다. 경희의 입술은 간질간질하였다.
‘먹고 입고만 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알아야 사람이에요. 당신댁처럼 영감 아들간에 첩이 넷이나 있는 것도 배우지 못한 까닭이고 그것으로 속을 썩이는 당신도 알지 못한 죄이에요. 그러니까 여편네가 시집가서 시앗을 보지 않도록 하는 것도 가르쳐야 하고 여편네 두고 첩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르쳐야만 합니다.’ 하고 싶었었다. 이외에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도 하고 싶었었다. 그러나 이 마님 입에서는 반드시 오늘 아침에 다녀가신 할머니의 말씀과 같은 “얘, 옛날에는 여편네가 배우지 않아도 수부다남(壽富多男)하고 잘만 살아 왔다. 여편네는 동서남북도 몰라야 복(福)이 많단다. 얘, 공부한 여학생들도 보리 방아만 찧게 되더라. 사내가 첩 하나도 둘 줄 모르면 그것이 사내냐?” 하던 말씀과 같이 꼭 이 마님도 할 줄 알았다. 경희는 쇠귀에 경을 읽지 하고 제 입만 아프고 저만 오늘 저녁에 또 이 생각으로 잠을 못 자게 될 것을 생각하였다. 또 말만 시작하게 되면 답답하여서 속이 불과 같이 탈 것, 자연 오랫동안 되면 뒷마루에서는 기다릴 것을 생각하여 차라리 일절 입을 다물었다. 더구나 이 마님은 입이 걸어서 한 말을 들으면 열 말쯤 거짓말을 보태어 여학생의 말이라면 어떻든지 흉만 보고 욕만 하기로는 수단이 용한 줄을 알았다. 그래서 이 마님 귀에는 좀처럼 한 변명이라든지 설명도 조금도 곧이가 들리지 않을 줄도 짐작하였다. 그리고 어느 때 경희의 형님이 경희더러 “얘, 우리 시어머니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더구나 시집 이야기는 일절 말아라. ‘여학생들은 예사로 시집 말들을 하더라. 아이구 망측한 세상도 많아라. 우리 자라날 때는 어디서 처녀가 시집을 해 보아.’ 하신다. 그뿐 아니라 여러 여학생 험담을 어디 가서 그렇게 듣고만 오시는지 듣고 오시면 똑 나 들으라고 빗대 놓고 하시는 말씀이 정말 내 동생이 학생이어서 그런지 도무지 듣기 싫더라. 일본 가면 계집애 버리느니 별별 못 들을 말씀을 다 하신단다. 그러니 아무쪼록 말을 조심해라.” 한 부탁을 받은 것도 있다. 경희는 또 이 마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보아 마음이 조릿조릿하였다. 그래서 다른 말이 시작되기 전에 뒷마루로 달아나려고 궁둥이가 들썩들썩하였다.
“이따가 급히 입을 오라범 속적삼을 하던 것이 있어서 가 보아야겠습니다.”
고 경희는 앓던 이가 빠지기나 한 것만큼 시원하게 그 앞을 면하고 뒷마루로 나서며 숨을 한번 쉬었다.
“왜 그리 늦었소? 그래서 그 아버지를 어떻게 했소.”
오라버니댁은 그동안 버선 한 짝을 다 기워 놓고 또 한 짝에 앞볼을 대이다가 경희를 보자 무릎 위에다가 놓고 바싹 가까이 앉으며 궁금하던 이야기 끝을 재우쳐 묻는다. 경희의 눈살은 찌푸려졌다. 두 뺨이 실쭉해졌다. 시월이는 빨래를 개키다가 경희의 얼굴을 눈결에 슬쩍 보고 눈치를 채었다.
“작은아씨, 서문안댁 마님이 또 시집 말씀을 하시지요?”
아침에 경희가 할머니가 다녀가신 뒤에 마루에서 혼잣말로 “시집을 갈 때 가더라도 하도 여러 번 들으니까 인제 도무지 싫어 죽겠다.” 하던 말을 시월이가 부엌에서 들었다. 지금도 자세히는 들리지 않으나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작은아씨의 얼굴이 저렇게 불량하거나 하였다. 경희는 웃었다. 그리고 바느질을 붙들며 이야기 끝을 연속한다.
안마루에서는 여전히 두 마님이 서로 술도 전하며 담배도 잡수면서 경희의 말을 한다.
“애기가 바느질을 다 해요?” “네, 바느질도 곧잘 해요. 남정의 웃옷은 못하지요마는 제 옷은 꿰매어 입지요.” “아이구 저런, 어느 틈에 바느질을 다 배웠어요. 양복 속적삼을 다 해요. 학생도 바느질을 다 하나요.”
이 마님은 과연 여학생은 바늘을 쥘 줄도 모르는 줄 알았다. 더구나 경희와 같이 서울로 일본으로 쏘다니며 공부한다 하고 덜렁하고 똑 사내 같은 학생이 제 옷을 꿰매어 입는다는 말에 놀랐다. 그러나 역시 속으로는 그 바느질 꼴이 오죽할까 하였다. 김 부인은 딸의 칭찬 같으나 묻는 말에 마지 못하여 대답한다.
“어디 바느질이나 제법 앉아서 배울 새나 있나요. 그래도 차차 철이 나면 자연히 의사가 나나 보아요. 가르치지 아니해도 저절로 꿰매게 되더구먼요. 어려운 공부를 하면 의사가 틔우나 보아요.”
김 부인은 말끝을 끊었다가 다시 말을 한다. 이 마님 귀에는 똑 거짓말 같다.
“양복 속적삼은 작년 여름에 남대문 밖에서 일녀(日女)가 와서 가르치던 재봉틀 바느질 강습소(講習所)에를 날마다 다니며 배웠지요. 제 조카들의 양복도 해서 입히고 모자도 해서 씌우고 또 제 오라비 여름 양복까지 했어요. 일어(日語)를 아니까 선생하고 친하게 되어서 다른 사람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는 것까지 다 가르쳐 주더래요. 낮에는 배워 가지고 와서는 밤이면 똑 열두시, 새로 한시까지 앉아서 배운 것을 보고 그대로 그리고 모두 치수를 적고 했어요. 나는 그게 무엇인가 하였더니 나중에 재봉틀 회사 감독이 와서 그러는데 ‘이제까지 일어로만 한 것이어서 부인네들 가르치기에 불편하더니 따님이 만든 책으로 퍽 유익하게 쓰겠습니다.’ 하는 말에 그런 것인 줄 알았어요. 좀 가르치면 어디든지 그렇게 쓸 데가 있더구먼요. 그뿐 아니라 그 점잖은 일본 사람들에게도 어찌 존대를 받는지 몰라요. 그 애가 왔단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감독이 일부러 일전에 또 찾아왔어요. 일본서 졸업하고는 기어이 자기 회사의 일을 보아 달라고 하더래요. 처음에는 월급 일천오백 냥은 쉽대요. 차차 오르면 3년 안에 이천오백 냥을 받는다는대요. 다른 여자는 제일 많은 것이 칠백쉰 냥이라는데 아마 그 애는 일본까지 가서 공부한 까닭인가 보아요. 저것도 그 애가 재봉틀에 한 것입니다.”
하며 맞은편 벽에 유리에 늘어 걸어 놓은, 앞에 물이 흐르고 뒤에 나무가 총총한 촌(村) 경치를 턱으로 가리킨다. 경희의 어머니는 결코 여기까지 딸의 말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한 것이 자연 월급 말까지 하게 된 것은 부지중에 여기까지 말하였다. 김 부인은 다른 부인네들보다 더구나 이 사돈 마님보다는 훨씬 개명(開明)을 한 부인이다. 근본 성품도 결코 남의 흉을 보는 부인은 아니었고 혹 부인네들이 모여 여학생들의 못된 점을 꺼내어 흉을 보든지 하면 그렇지 않다고까지 반대를 한 적도 많으니 이것은 대개 자기 딸 경희를 몹시 기특히 아는 까닭으로 여학생은 바느질을 못한다든가, 빨래를 아니한다든가, 살림살이를 할 줄 모른다든가 하는 말이 모두 일부러 흉을 만들어 말하거니 했다. 그러나 공부해서 무엇하는지 왜 경희가 일본까지 가서 공부를 하는지 졸업을 하면 무엇에 쓰는지는 역시 김 부인도 다른 부인과 같이 몰랐다. 혹 여러 부인이 모여서 따님은 그렇게 공부를 시켜서 무엇하나요? 질문을 하면 “누가 아나요, 이 세상에는 계집애라도 배워야 한다니까요.” 이렇게 자기 아들에게 늘 들어 오던 말로 어물어물 대답을 할 뿐이었다. 김 부인은 과연 알았다. 공부를 많이 할수록 존대를 받고 월급도 많이 받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번질한 양복을 입고 금시곗줄을 늘인 점잖은 감독이 조그마한 여자를 일부러 찾아와서 절을 수없이 하는 것이라든지, 종일 한 달 30일을 악을 쓰고 속을 태우는 보통학교 교사는 많아야 육백스무 냥이고 보통 오백 냥인데 “천천히 놀면서 일 년에 병풍 두 짝만이라도 잘만 놓아주시면 월급을 꼭 사십 원씩은 드리지요.” 하는 말에 김 부인은 과연 공부라는 것은 꼭 해야 할 것이고, 하면 조금 하는 것보다 일본까지 보내서 시켜야만 할 것을 알았다. 그러고 어느 날 저녁에 경희가 “공부를 하면 많이 해야겠어요. 그래야 남에게 존대를 받을 뿐 아니라 저도 사람 노릇을 할 것 같아요.” 하던 말이 아마 이래서 그랬던가보다 하였다. 김 부인은 이제부터는 의심 없이 확실히 자기 아들이 경희를 왜 일본까지 보내라고 애를 쓰던 것, 지금 세상에는 여자도 남자와 같이 많이 가르쳐야 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김 부인은 이제까지 누가 “따님은 공부를 그렇게 시켜 무엇합니까?” 물으면 등에서 땀이 흐르고 얼굴이 벌겋게 취해지며 이럴 때마다 아들만 없으면 곧이라도 데려다가 시집을 보내고 싶은 생각도 많았었으나 지금 생각하니 아들이 뒤에 있어서 자기 부부가 경희를 데려다 시집을 보내지 못하게 한 것이 다행하게 생각된다. 그러고 지금부터는 누가 묻든지 간에 여자도 공부를 시켜야 의사가 나서 가르치지 아니한 바느질도 할 줄 알고 일본까지 보내어 공부를 많이 시켜야 존대를 받을 것을 분명히 설명까지라도 할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사돈 마님 앞에서 부지중 여기까지 말을 하는 김 부인의 태도는 조금도 주저하는 빛도 없고 그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하고 그 눈에는 ‘나는 이러한 영광을 누리고 이러한 재미를 본다.’ 하는 표정이 가득하다.
사돈 마님은 반신반의로 어떻든 끝까지 들었다. 처음에는 물론 거짓말로 들을 뿐만 아니라, 속으로 ‘너는 아마 큰 계집애를 버려 놓고 인제 시집보낼 것이 걱정이니까 저렇게 없는 칭찬을 하나 보구나.’ 하며 이야기하는 김 부인의 눈이며 입을 노려보고 앉았다. 그러나 이야기가 점점 길어 갈수록 그럴듯하다. 더구나 감독이 왔더란 말이며, 존대를 하더란 것이며, 사내도 여간한 군주사(郡主事)쯤은 바랄 수도 없는 월급을 이천 냥까지 주겠더란 말을 들을 때는 설마 저렇게까지 거짓말을 할까 하는 생각이 난다. 사돈 마님은 아직도 참말로는 알고 싶지 않으나 어쩐지 김 부인의 말이 거짓말 같지는 아니하다. 또 벽에 걸린 수(繡)도 확실히 자기 눈으로 볼 뿐 아니라 쉴새없이 바퀴 구르는 재봉틀 소리가 당장 자기 귀에 들린다. 마님 마음은 도무지 이상하다. 무슨 큰 실패나 한 것도 같다. 양심은 스스로 자복(自服)하였다. ‘내가 여학생을 잘못 알아 왔다. 정말 이 집 딸과 같이 계집애도 공부를 시켜야겠다. 어서 우리 집에 가서 내외시키던 손녀딸들을 내일부터 학교에 보내야겠다.’고 꼭 결심을 했다. 눈앞이 아물아물해 오고 귀가 찡한다. 아무 말 없이 눈만 껌뻑껌뻑하고 앉았다. 뒤꼍으로 불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 중에는 젊은 웃음소리가 사접시를 깨뜨릴 만치 재미스럽게 싸여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