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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그거 안됐군. 그러나 나는 갈 수 없는데……."
몸집이 뚱뚱하고 얼굴에 기름이 번질번질한 의사(김초시)는 창문 정면에 놓인 약장에 기대 앉았다.
"에구 초시사, 그래 쓰겠소? 어서 가 봐주오."
문 앞에 황공스럽게 쭈그리고 앉은 여인의 사들사들한 낯에는 어색한 웃음이 떠올랐다.
"글쎄 웬만하문사 그럴 리 있겠소마는, 어제부터 아파서 출입이라군 못 하고 있소. 에헴, 에헴, 악……."
의사는 입에 물었던 담뱃대를 뽑아 들더니 안 나오는 기침을 억지로 끄집어내어 가래를 타구에 뱉는다.
"그게(박돌) 애비 없이 불쌍히 자란 게 죽어서 쓰겠소? 거저 초시게 목숨이 달렸으니 살려 주오."
의사는 땟국이 꾀죄한 여인을 힐끗 보더니,
"별말을 다 하오. 내 염라대왕이니 목숨을 쥐고 있겠소. 글쎄 하늘이 무너진대도 못 가겠소."
하며 담배 연기를 휙 내뿜고 이마를 찡기면서 천장을 쳐다본다. 흰 연기는 구름발같이 휘휘 돌아서 까맣게 그을은 약봉지를 데룽데룽 달아 놓은 천장으로 기어 올라서는 다시 죽 퍼져서 방 안에 찼다. 오줌 냄새, 약 냄새에 여지없는 방 안의 공기는 캐―한 연기와 어울려서 코가 저리도록 불쾌하였다.
"제발 살려 줍시오, 네? 그 은혜는 뼈를 갈아서라도 갚아 드리오리! 네? 어서 가 봐주오."
"글쎄 못 가겠는 거 어찌겠소? 이제 바람을 쏘이고 걷고 나면 죽게 앓겠으니, 남을 살리자다가 제 죽겠소."
"가기는 어디로 간단 말이오? 어제해르, 그래, 또 밤새끈 알쿠서리."
의사의 말 뒤를 이어 정주에서 주인 여편네가 캥캥거린다.
여인은 머리를 푹 숙이고 앉았더니,
"그러문 약이라도 멧 첩 지어 주오."
한다.
"약종이 부족해서 약을 못 짓는데."
의사는 몸을 비틀면서 유들유들한 목을 천천히 돌려서 약장을 슬그머니 돌아본다.
"약값 염려는 조금도 말고 좀 지어 주오."
"아, 글쎄 약종이 없는 것을 어떻게 짓는단 말이오? 자, 이거 보오!"
하더니 빈 약서랍 하나를 뽑아서 땅바닥에 덜컥 놓는다.
"집에 돼지새끼 하나 있으니 그거 모레 장에 팔아 드릴게 좀 지어 주오."
"하, 이 앞집 김주사도 어제 약 지러 왔다가 못 지어 갔소."
의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벌린다.
"그래 못 지어 주겠소?"
푹 꺼진 여인의 눈은 이상스럽게 의사의 낯을 쏘았다.
의사는,
"글쎄 어떻게 짓겠소?"
하면서 여인이 보내는 시선을 피하려는 듯이 미닫이 두껍집에 붙인 산수화(山水畵)를 본다.
"에구, 내 박돌이는 죽는구나! 한심한 세상두 있는게?"
여인의 소리는 애참하게 울음에 젖었다. 때가 지덕지덕한 뺨을 스쳐 흐르는 눈물은 누더기 같은 치마에 떨어졌다.
"에, 곤하군. 아―함, 어서 가보오."
의사는 하품과 기지개를 치면서 일어섰다. 여인은 눈물을 쑥쑥 씻더니 벌떡 일어섰다.
"너무 한심하구먼! 돈이 없다구 너무 업시비 보지 마오. 죽는 사람을 살려 주문 어떠오? 혼자 잘 사오."
여인의 눈에는 이상한 불빛이 섬뜩하였다. 그 목소리는 싹 에는 듯이 아츠럽게 들렸다. 의사는 가슴이 끔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