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IV
해는 고요한 세상 위로 떠올라, 평화로운 마을에 축복처럼 빛을 내리쬐었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폴리 이모는 가족 예배를 주재하였다. 예배는 성경 구절을 차곡차곡 벽돌처럼 쌓아 올리고 그 사이사이 얄팍한 독창성으로 회반죽을 바른 기도로 시작되었다. 이모는 그 꼭대기에서 모세 율법의 엄한 한 장을, 마치 시나이산에서 내려오듯 선포하였다.
그러고 나서 톰은, 말하자면 허리끈을 질끈 동여매고 “외울 구절”을 붙드는 일에 착수하였다. 시드는 벌써 며칠 전에 제 몫을 다 외워 둔 터였다. 톰은 다섯 구절을 외우는 데 온 힘을 쏟기로 하고, 산상수훈의 한 대목을 골랐다. 그보다 짧은 구절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 시간이 지났건만 톰은 그저 구절의 어렴풋한 윤곽만 붙들고 있을 뿐이었다. 머릿속은 인간 사고의 온 들판을 제멋대로 헤매고 다녔고, 두 손은 자꾸만 딴 놀음에 바빴다. 메리가 책을 받아 들고 낭송을 시켜 보았다. 톰은 안갯속을 더듬거리며 길을 찾아보려 했다.
“복 있도다, 저—어—어—”
“가난한”—
“그래, 가난한. 복 있도다, 저 가난한—어—어—”
“심령이—”
“심령이. 복 있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여, 저희가—저희가—”
“저희 것—”
“저희 것이니라. 복 있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여, 천국이 저희 것이니라. 복 있도다, 애통하는 자여, 저희가—저희가—”
“위—”
“저희가—어—”
“위, 로, 함—”
“저희가 위, 로—에이, 대체 뭔지 모르겠다니까!”
“받을!”
“아, 받을! 저희가 받을—저희가 받을—어—어—받을 애통—어—어—복 있도다, 애통하는 저희가—저희가—어—저희가 받을, 저희가—어—받을 뭐? 메리, 왜 말해 주지 않는 거야? 왜 그렇게 심술궂게 구는 거야?”
“아이고, 톰, 이 답답한 녀석. 괴롭히려는 게 아니야. 내가 그럴 리 있니. 다시 가서 외워 와. 주눅 들지 말고, 톰. 너라면 해낼 수 있어. 해내기만 하면 내가 아주 근사한 걸 줄게. 자자, 이제 착한 아이답게.”
“알았어! 그게 뭐야, 메리, 뭔지 좀 말해 줘.”
“그건 됐고, 톰. 내가 근사하다면 근사한 거야. 알지?”
“그야 그렇지, 메리. 좋아, 다시 한번 붙어 보겠어.”
그리하여 톰은 정말로 “다시 한번 붙어 보았다”. 호기심과 상품에 대한 기대감이라는 쌍두마차가 등을 떠미니, 톰은 제법 투지 있게 덤벼들어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메리는 십이 센트 반짜리 반짝반짝한 신품 “발로” 칼을 상으로 주었다. 환희의 물결이 온몸을 쓸고 지나가며 톰을 뿌리째 뒤흔들었다. 하기야 그 칼은 무엇 하나 제대로 썰지 못하는 물건이었다. 그래도 “진짜배기” 발로였고, 그 사실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서부 소년들이 대체 어디서, 이런 무기를 진품 행세로 위조해 팔 만큼 값어치가 나간다는 발상을 처음 얻었는지—그것은 자못 장엄한 수수께끼로,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톰은 그 칼로 찬장에 상처를 내는 데 성공하였고, 막 문갑을 겨냥해 본격적으로 달려들려던 참에 주일학교 갈 차림을 하라는 호출을 받았다.
메리는 양철 대야에 물을 받고 비누 한 조각을 쥐여 주었다. 톰은 문밖으로 나가 대야를 작은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비누를 물에 잠깐 담갔다가 도로 내려놓고, 소매를 걷어 올리고, 물을 땅바닥에 조심조심 쏟아 버렸다. 이어 부엌에 들어와 문 뒤에 걸린 수건에 얼굴을 열심히 비비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메리가 수건을 낚아채고 말하였다.
“아니, 창피하지도 않니, 톰. 그렇게 꾀부리면 못써. 물에 닿는다고 탈날 일 없으니까.”
톰은 약간 기가 꺾였다. 대야에 물이 다시 채워지자 이번에는 잠시 그 앞에 선 채 각오를 다졌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시작하였다. 이윽고 부엌으로 들어설 때는 두 눈을 꼭 감고 손으로 수건을 더듬고 있었고, 얼굴에서는 비누 거품과 물이 당당한 증거물처럼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수건에서 얼굴을 떼어 놓고 보니 아직 합격점은 아니었다. 깨끗해진 구역이 턱과 턱선에서 가면처럼 뚝 끊기고, 그 아래와 바깥으로는 물 한 방울 닿지 않은 시커먼 황무지가 앞으로는 목을 타고 내려가고 뒤로는 목덜미를 휘감고 있었다. 메리가 톰을 붙잡고 손을 봐 주었다. 일이 끝나자 톰은 피부색 구분이 사라진, 한 사람의 사내요 형제가 되었다. 물기 흥건한 머리칼은 말끔히 빗겨졌고, 짧은 곱슬머리는 정갈하고 균형 잡힌 모양새로 다듬어져 있었다. [톰은 남몰래 그 곱슬을 애쓰고 또 애써서 펴 가지고, 납작하게 머리에 붙여 놓았다. 곱슬머리는 계집애 같은 것이라 여겨, 제 머리의 곱슬이 늘 인생의 쓰라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메리는 지난 두 해 동안 일요일에만 꺼내 입던 옷 한 벌을 가져왔다. 이름하여 그저 “다른 옷”이었으니, 여기서 톰의 옷장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넉넉히 짐작이 간다. 톰이 알아서 입고 나자 누나가 “매무새를 잡아 주었다”. 말쑥한 재킷을 턱까지 단추 채우고, 널찍한 셔츠 깃을 어깨 위로 펼쳐 내리고, 옷자락을 탁탁 털어 주고, 얼룩무늬 밀짚모자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톰은 몰라보게 말쑥해졌고, 동시에 몰라보게 불편해 보였다. 실제로도 보이는 꼭 그만큼 불편하였다. 온전한 옷차림과 청결함이 그를 옥죄었다. 메리가 신발은 잊어 주기를 바랐으나 그 희망도 허무하게 꺾였다. 메리는 관례대로 신발에 쇠기름을 꼼꼼히 먹여 내왔다. 톰은 성질을 부리며, 늘 하기 싫은 일만 시키지 않느냐고 투덜거렸다. 그러자 메리가 달래듯이 말하였다.
“제발, 톰. 그래야 착한 아이지.”
그리하여 톰은 투덜투덜거리며 신발을 구겨 신었다. 메리도 이내 채비를 마쳤고, 세 아이는 주일학교로 향하였다. 톰이 진심으로 싫어해 마지않는 장소였으나, 시드와 메리에게는 그리 좋을 수 없는 곳이었다.
안식일 학교 시간은 아홉 시부터 열 시 반까지였고, 그다음이 예배였다. 세 아이 가운데 둘은 늘 자진해서 설교까지 남아 있었고, 나머지 하나도 언제나 남아 있었다—좀 더 강력한 이유로 말이다. 교회의 등받이 높고 방석 없는 좌석은 삼백 명 남짓 들어갈 규모였다. 건물 자체는 자그맣고 소박했고, 꼭대기에는 소나무 판자로 짠 새집 같은 것이 종탑 대신 얹혀 있었다. 출입구에서 톰은 한 걸음 물러서서, 똑같이 나들이옷 차림을 한 동무를 붙들고 수작을 걸었다.
“야, 빌리, 노란 티켓 있냐?”
“있지.”
“그거 얼마에 넘길래?”
“너는 뭘 줄 건데?”
“감초 사탕 한 조각이랑 낚싯바늘 하나.”
“어디 한번 보자.”
톰이 꺼내 보이니, 물건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거래가 성사되고 소유권이 옮겨 갔다. 이어 톰은 흰 구슬 두 알을 빨간 티켓 세 장과 맞바꾸었고, 자잘한 잡동사니 몇 가지를 파란 티켓 두 장과 맞바꾸었다. 뒤이어 오는 아이들을 길목에서 붙잡아 가며 다양한 빛깔의 티켓을 사들이느라 십오 분가량을 더 썼다. 마침내 말끔하고 떠들썩한 한 떼의 사내아이·계집아이들과 함께 교회 안으로 들어선 톰은 자기 자리로 가서, 가장 손 닿기 좋은 아이에게 시비부터 걸었다. 진중한 노년의 선생이 끼어들어 말렸다. 선생이 잠깐 등을 돌린 틈에 톰은 뒷줄 아이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는, 그 아이가 홱 돌아볼 때는 어느새 책에 열중한 얼굴로 시치미를 뗐다. 곧이어 다른 아이에게 핀을 찌른 것은 순전히 “아얏!” 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고, 덕분에 선생에게서 또 한 번 꾸지람을 들었다. 톰의 반 아이들은 하나같이 판박이였다—엉덩이가 들썩이고, 시끄럽고, 말썽투성이. 낭송 시간이 되자 구절을 제대로 외운 아이는 하나도 없어, 내내 옆에서 읊어 주어야 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고비를 넘기고, 저마다 상을 받았다—성경 한 구절이 적힌 작은 파란 티켓이었다. 파란 티켓 한 장이 낭송 두 구절의 값이었다. 파란 티켓 열 장은 빨간 티켓 한 장과 같아서 바꿀 수 있었고, 빨간 티켓 열 장은 노란 티켓 한 장에 해당하였다. 노란 티켓 열 장을 모아 오는 아이에게 교장은 아주 소박하게 장정된 성경 한 권을 주었다(그 여유로운 시절에 사십 센트 값어치였다). 내 독자 가운데 과연 몇이나 도레 삽화판 성경을 준다 한들 이천 구절을 외울 만한 근면과 집념을 발휘할까? 그런데도 메리는 이런 식으로 이미 두 권을 받아 두었다—꼬박 두 해의 참을성 있는 공력이었다—그리고 독일 혈통의 한 소년은 네 권인지 다섯 권인지 얻어 냈다. 한번은 쉬지도 않고 삼천 구절을 내리 낭송하기까지 하였는데, 정신에 그만큼 과부하가 걸린 탓에 그날부터는 그저 얼빠진 아이나 다름없게 되고 말았다. 학교로서는 가슴 아픈 손실이었으니, 큰 행사 때마다 손님들 앞에서 교장이(톰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제나 이 아이를 끌어내 “한 번 뽐내 보라” 시키곤 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좀 든 학생들만이 간신히 티켓을 모으고 그 지루한 노역을 성경 한 권 받을 때까지 붙들고 있을 수 있었으므로, 이 상품 수여식은 드물고도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수상자는 그날 하루만큼은 어찌나 위대하고 눈부신지, 그 자리에서 모든 학생의 마음에 새로운 야심의 불길이 지펴져 흔히 한두 주는 지속되었다. 톰의 정신적 위장이 그런 상에 진정으로 주려 본 적은 아마 한 번도 없었을 터이나, 상에 따라오는 영광과 화려한 명성에 관한 한, 톰의 온 존재가 오래도록 갈증에 시달려 왔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드디어 교장이 단상 앞으로 나와 섰다. 덮은 찬송가집 한 권을 한 손에 들고, 책장 사이에 집게손가락을 끼운 채 주목을 청하였다. 주일학교 교장이 으레 하는 짧은 연설을 할 때는 손에 찬송가집을 쥐는 것이, 연주회에서 무대 앞으로 나와 독창을 하는 가수의 손에 어김없이 악보가 쥐여 있는 것만큼이나 필수 요소다—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 고초를 겪는 당사자가 찬송가집이든 악보든 실제로 들여다보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교장으로 말하자면, 서른다섯 살쯤 된 비쩍 마른 사람이었다. 모래빛 염소수염에 짧은 모래빛 머리칼, 빳빳하게 세운 옷깃은 그 윗단이 귀에 닿을 듯했고, 뾰족한 두 끝이 입꼬리와 나란히 앞쪽으로 굽어 있었다. 이 울타리 탓에 시선을 앞쪽으로만 곧게 두어야 했고, 옆을 볼 일이 있으면 몸통째 돌려야 하였다. 턱은 지폐만큼이나 넓고 길며 끝자락이 술처럼 갈라진 크라바트 위에 올려져 있었다. 장화 코는 당시 유행에 따라 썰매 날처럼 날카롭게 위로 휘어 있었는데, 이 젊은이들이 몇 시간이고 벽에 발끝을 갖다 대고 앉아 참을성 있게, 공들여 만들어 낸 모양새였다. 월터스 선생은 태도가 자못 진지했고, 본마음도 매우 진실하고 정직하였다. 성스러운 것과 장소에 대한 공경이 어찌나 깊던지, 그것들을 세속의 일과 철저히 구분하는 나머지 본인도 모르는 사이 주일학교용 목소리에 평일에는 전혀 쓰지 않는 독특한 억양이 배어들어 있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 말문을 열었다.
“자, 어린이 여러분. 모두 가능한 한 반듯하고 얌전하게 앉아서, 한두 분 동안 저에게 온전히 집중해 주기 바랍니다. 자—그렇습니다. 착한 남자아이, 여자아이라면 바로 이래야지요. 저쪽에 창밖을 내다보는 여자아이 하나가 보이는군요. 혹시 내가 창밖 어디쯤에 있다고, 어쩌면 저 나뭇가지 위에 올라앉아 작은 새들에게 연설이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눌러 참다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 이처럼 이런 자리에 이토록 많은, 밝고 깨끗한 얼굴들이 모여 옳은 일을 하고 선하게 살 길을 배우는 모습을 보니, 이 마음이 얼마나 흐뭇한지 모르겠습니다.” 어쩌고저쩌고. 나머지 연설까지 옮겨 적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변주 없이 똑같은 틀에서 찍혀 나오는 것이라,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익숙한 것이기에.
연설의 마지막 삼분의 일 구간은 말썽꾼 몇몇이 다시 치고받고 놀기 시작하고, 부스럭거림과 속닥거림이 사방으로 번지면서 어지럽혀졌다. 그 물결은 시드와 메리처럼 외따로 선, 부식되지 않는 바위의 발치까지 슬금슬금 들이쳤다. 그러다 월터스 선생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온갖 소리가 일제히 멎었고, 연설의 결말은 소리 없는 안도의 폭발로 맞이하게 되었다.
속닥거림의 상당 부분은 평소 좀체 있기 드문 사건—방문객의 입장 때문에 빚어진 것이었다. 변호사 태처가 매우 기력 쇠하고 연로한 노인을 모시고 들어왔다. 뒤이어 늠름하고 풍채 좋은 중년 신사가 들어왔는데, 머리칼이 쇠잿빛이었다. 그 곁에는 그의 부인임이 분명해 보이는 위엄 있는 부인이 따랐다. 부인은 한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톰은 내내 안절부절 속을 태우며 초조와 후회에 시달리던 참이었다. 양심에도 콕콕 찔리고 있었다—에이미 로런스의 눈길을 마주할 수 없었고, 그 애정 어린 시선을 견뎌 낼 수 없었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이 작은 아이를 보는 순간, 톰의 영혼은 한순간에 기쁨의 불길로 환히 타올랐다. 다음 순간 톰은 있는 힘껏 “뽐내기” 시작하였다—다른 아이 뒤통수를 쥐어박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가며—한마디로, 여자아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 애의 박수를 받아 낼 법한 온갖 기교를 동원하였다. 이 황홀경에는 한 가지 불순물이 섞여 있었다—이 천사의 정원에서 톰이 겪은 굴욕의 기억이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새겨진 그 기록은, 지금 밀려드는 행복의 파도에 빠르게 씻겨 나가고 있었다.
방문객들은 최상석에 안내되었고, 월터스 선생은 연설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을 학교에 소개하였다. 그 중년 신사는 놀라운 인물이었으니—다름 아닌 카운티 판사, 이 아이들이 여태껏 올려다본 적 있는 창조물 가운데 가장 지엄한 존재였다. 아이들은 저 사람이 대체 어떤 재질로 빚어졌을까 궁금해했고, 한편으론 저 사람이 호통치는 소리를 들어 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정말 호통을 칠까 봐 겁내기도 하였다. 판사는 십이 마일 떨어진 콘스탄티노플에서 왔다—여행을 해 본 사람, 세상을 구경한 사람이었다—바로 저 두 눈으로 카운티 법원 청사를 본 사람이었다. 청사에는 양철 지붕이 얹혀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런 상념들이 자아내는 경외는, 내려앉은 엄숙한 정적과 줄줄이 박힌 응시의 눈길들로 충분히 증명되었다. 이분이 바로 저명한 태처 판사, 우리 마을 변호사의 형님이 되시는 분이었다. 제프 태처는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저 위인을 가까이 모시고 온 학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 위함이었다. 사방에서 오가는 속닥거림을 들을 수만 있었다면 제프의 마음에는 그만한 선율이 없었으리라.
“야, 짐, 쟤 좀 봐! 저기 올라간다. 야—저것 봐라! 판사님이랑 악수하려나 봐—진짜 악수하고 있어! 이거 참, 너라도 제프가 되고 싶지 않냐?”
월터스 선생 또한 “뽐내기”에 돌입해, 온갖 공적인 분주함과 분망함을 연출하였다—이것저것 지시를 내리고, 판정을 선언하고, 목표물만 보이면 이쪽저쪽 사방으로 지시 사항을 쏟아 냈다. 사서도 “뽐냈다”—양팔에 책을 잔뜩 안고 이리저리 쏘다니며, 시시한 권세가 즐겨 내는 그 부산스러움과 야단법석을 실컷 연출하였다. 젊은 여교사들도 “뽐냈다”—방금까지 꿀밤 맞던 아이들 위로 상냥하게 허리를 굽혀 주고, 말썽꾸러기 사내아이들에게는 예쁜 경고의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얌전한 아이들은 사랑스레 토닥여 주었다. 젊은 남교사들도 “뽐냈다”—자잘한 꾸지람을 동원하고, 권위를 드러내는 소소한 연출을 동원하고, 기율 유지에 각별한 정성을 쏟아 가며. 그리고 남녀 가릴 것 없이 교사 대부분은 단상 옆 서가 근처에 처리할 일이 하나씩 생겼다. 그것도 두세 번씩 다시 처리해야 할 일들이(겉으로 잔뜩 귀찮다는 기색을 풍기며). 계집아이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뽐냈고”, 사내아이들은 어찌나 열심히 “뽐냈는지” 공기 중에 종이 뭉치와 옥신각신하는 소음이 빽빽이 들어찼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저 위인이 앉아, 집안 전체를 향해 위엄 있는 판관의 미소를 드리우며 제 영광의 햇살 속에서 몸을 녹이고 있었다—그 자신 역시 “뽐내고” 있었던 것이다.
월터스 선생의 황홀경이 완성되는 데 부족한 것은 딱 한 가지, 성경 상을 수여하고 신동을 선보일 기회뿐이었다. 노란 티켓을 몇 장쯤 가진 학생은 여럿 있었으나, 충분한 수를 지닌 자는 아무도 없었다—이미 우수 학생들 사이를 돌며 수소문해 본 뒤였다. 지금 같아서는 그 독일 소년을 제정신 채로 되돌려 받을 수만 있다면 세상 전부라도 내놓을 심정이었다.
바로 이 순간, 희망이 사멸한 그 찰나에, 톰 소여가 노란 티켓 아홉 장, 빨간 티켓 아홉 장, 파란 티켓 열 장을 들고 걸어 나와 성경 한 권을 요구하였다. 맑은 하늘에 떨어진 벼락이었다. 월터스 선생으로서는 앞으로 한 십 년 안에는 이런 출원이 이쪽에서 날아들리라 예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피할 도리가 없었다—눈앞에 약속어음이 증빙된 상태로 놓여 있고, 액면가대로 지불이 보증된 터였다. 그리하여 톰은 판사와 다른 귀빈들이 있는 자리로 등극하였고, 대본영에서 큰 소식이 발표되었다. 십 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놀라움이요, 그 파장이 얼마나 깊었던지 새 영웅을 판관의 위격으로까지 들어 올렸으니, 이제 학교는 하나가 아닌 둘의 경이를 우러러보게 되었다. 사내아이들은 전부 시샘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그 가운데서도 가장 쓰라린 통증을 겪은 자들은, 울타리 흰 칠의 권리를 팔아 톰이 거머쥐었던 재화를 티켓과 맞바꿔 주느라 바로 이 밉살맞은 영광에 자기들도 한몫 보탠 장본인임을 뒤늦게야 깨달은 아이들이었다. 저 스스로를 경멸할 수밖에, 교활한 사기꾼에게, 풀숲에 숨은 교묘한 뱀에게 단단히 속아 넘어간 멍청이로.
교장은 정황이 허락하는 한 최대치로 감격을 펌프질해 올려서 톰에게 상을 수여하였다. 그러나 어딘가 진짜 감격의 울컥함이 모자랐다—가엾은 이의 본능이, 여기에는 아마도 햇빛에 잘 드러낼 수 없는 어떤 수수께끼가 도사리고 있다고 일러 주었기 때문이다. 이 소년이 성경 지혜 이천 묶음을 자기 안에 창고처럼 쌓아 두었다는 것은 가당찮은 소리였다—설령 열두 묶음만 된다 해도 이 녀석 용량이 벅찰 것이 분명하였다.
에이미 로런스는 자랑스럽고 흐뭇해서 그 마음을 톰에게 얼굴로 읽히려 애썼다—그런데 톰이 도무지 쳐다봐 주지 않았다. 에이미는 의아해했다. 그다음엔 한 톨만큼 심란해졌다. 이어 흐릿한 의심이 하나 다가왔다가 사라지더니 다시 다가왔다. 에이미는 가만히 살폈다. 슬쩍 훔친 한 번의 눈길이 천만 마디 말을 일러 주었다—그러자 에이미의 가슴이 무너졌다. 질투가 나고, 화가 나고, 눈물이 차올랐고, 온 세상 사람이 다 미워졌다. 누구보다도 톰이 미웠다(라고 그 애는 여겼다).
톰은 판사에게 소개되었다. 그러나 혀가 굳고, 숨이 잘 나오지 않았으며, 심장이 벌렁거렸다—부분적으로는 그 어른의 엄청난 위엄 때문이었으나, 더 큰 이유는 그가 그 애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어둠 속이었다면 엎드려 경배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판사는 톰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훌륭한 꼬마 사내라고 칭찬하고는 이름을 물었다. 소년은 더듬거리고 숨을 몰아쉬다가 겨우 입 밖으로 냈다.
“톰이요.”
“오, 아니 아니, 그냥 톰이 아니겠지—그건—”
“토머스요.”
“그래, 그거로구나. 아무래도 더 있을 것 같더라니. 아주 좋다. 그런데 성이 하나 더 있을 테지. 나한테도 말해 주지 않겠느냐?”
“신사분께 나머지 이름도 말씀드려 보거라, 토머스.” 하고 월터스 선생이 일렀다. “그리고 ‘나리’를 잊지 말고. 예의를 지켜야지.”
“토머스 소여—나리.”
“그렇지! 참으로 착한 아이로구나. 훌륭해. 훌륭하고 사내다운 꼬마로고. 이천 구절이라니, 정말 많은 구절이야—참으로, 참으로 대단하게 많은 구절이지. 또한 그 구절들을 외우느라 기울인 수고를 네가 훗날 후회할 일은 결코 없을 게다. 앎이야말로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값진 것이니까. 앎이 위대한 사람, 선한 사람을 만드는 법이지. 너도 언젠가 위대한 사람, 선한 사람이 될 것이다, 토머스. 그리하여 훗날 뒤를 돌아보며 말하겠지. ‘이 모든 것이 어린 시절의 귀한 주일학교 덕분이올시다—이 모든 것이 나를 가르쳐 주신 사랑하는 선생님들 덕분이올시다—이 모든 것이 나를 격려하고 돌보아 주시고, 아름다운 성경을—호화롭고 우아한 성경 한 권을 영원히 제 것으로 주신 훌륭하신 교장선생님 덕분이올시다—이 모든 것이 올바른 가정교육의 덕분이올시다!’ 그대로 말하게 될 게다, 토머스. 그리고 너는 그 이천 구절을 단돈 얼마에도 팔지 않을 것이니라—그럼, 그러고 말고. 자, 이제 이 부인과 나에게 네가 배운 것을 좀 들려주어도 괜찮겠느냐—그래, 나는 네가 마다하지 않을 줄 안다—배울 줄 아는 어린 사내를 우리는 자랑스레 여기니까. 자, 너는 물론 열두 제자의 이름을 다 알고 있을 테지. 처음 부름받은 두 사람의 이름을 말해 보지 않겠느냐?”
톰은 단춧구멍을 만지작거리며 멋쩍은 낯으로 서 있었다. 이윽고 얼굴을 붉히며 눈을 내리깔았다. 월터스 선생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속으로 되뇌었으니, 이 녀석이 가장 쉬운 질문에도 답할 수 있을 리 없건만—판사님은 대체 왜 그런 걸 하필 얘한테 물으셨단 말인가? 그래도 한마디 보태지 않을 수 없어 입을 열었다.
“신사분께 답해 드리거라, 토머스—겁내지 말고.”
그러나 톰은 여전히 머뭇거렸다.
“저런, 네가 말해 줄 줄 안단다.” 부인이 말하였다. “처음 두 제자의 이름은—”
“다윗과 골리앗이올시다!”
이쯤에서 나머지 장면에는 자비의 장막을 드리워 두는 편이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