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다미앵 신부
호놀룰루의 하이드 목사께 보내는 공개서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1914
런던
채토 앤드 윈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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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권 소유

시드니,
2월 25일, 1890년.

귀하,—귀하께도 문득 떠오를지 모르겠다. 우리가 만났고, 서로를 방문했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관심을 품고 그리했다. 귀하가 내게 몇 가지 호의를 베풀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실 것이다. 나도 그에 감사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감사에 앞서는 의무가 있고, 벗을, 더욱이 한낱 지인을 정당하게 갈라놓는 죄과가 있다. H. B. 게이지 목사께 보낸 귀하의 편지는, 내가 굶주릴 때 귀하가 내 입에 빵을 넣어 주었다 하더라도, 내 아버지가 임종의 자리에 누웠을 때 귀하가 밤새 곁을 지키며 간호해 주었다 하더라도, 나를 감사의 속박에서 풀어 주기에 충분한 문서이다. 귀하도 시성(諡聖) 절차를 익히 아실 터이니, 다미앵이 세상을 떠난 지 백 년이 지난 뒤에는 악마의 대변인이라는 고통스러운 직책을 맡은 이가 한 사람 나타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의 저 고귀한 형제가, 또한 모든 연약한 진흙 그릇이, 한 세기 동안 안식에 누운 뒤에라야 비로소 한 사람은 그를 고발하고 또 한 사람은 그를 변호한다. 악마의 대변인이 자원자이고, 게다가 곧장 맞서는 교파의 사람이며, 뼈가 식기도 전에 그 추악한 직책을 서둘러 떠맡는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례적이고, 그 취향의 성격은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이례적이고, 내게는 영감을 준다. 내가 진실을 전하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언어를 부리는 기술을 조금이라도 익혔다면, 귀하는 마침내 내게 주제 하나를 공급해 준 셈이다. 다미앵의 명예가 회복되어야 할 뿐 아니라, 귀하와 귀하의 편지가 그 참모습 그대로 세상의 눈앞에 낱낱이 드러나야 하는 것, 이것이 온 인류의 이익이요, 세계 어느 구석에서든 공공의 품격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제대로 해내려면, 우선 귀하의 글을 크게 인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나는 신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 양쪽에서 귀하의 발언을 비평해 나가겠다. 그 과정에서 귀하가 비방하기로 작정한 고인 성인의 성격을 한층 더 구체적으로 다시 그려 볼 것이다. 그 일이 끝나면, 귀하에게 영원히 작별을 고하겠다.

호놀룰루,
8월 2일, 1889년.

H. B. 게이지 목사께.

친애하는 형제여,—다미앵 신부에 관한 귀하의 문의에 답하여,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그 사람을 직접 알고 지낸 우리로서는 그를 지극히 성자 같은 박애주의자로 떠받드는 신문들의 과장된 찬양이 놀랍기만 하다는 것뿐이오. 단순한 진실은 이러하오. 그는 거칠고, 더럽고, 고집 세고, 편협한 사람이었소. 몰로카이로 파견된 것이 아니라 명령 없이 그곳으로 갔소. 나환자 정착지에 머무른 것도 아니고(그 자신이 나환자가 되기 전의 이야기요), 섬 전역을 자유로이 돌아다녔으며(섬의 절반이 채 안 되는 구역이 나환자에게 할당되어 있소), 호놀룰루에도 자주 드나들었소. 시행된 개혁과 개선에는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았소. 그것은 우리 보건국의 사업이었고, 사정이 요구하고 예산이 마련되는 대로 추진된 일이오. 그는 여성과의 관계에서 순결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가 걸려 죽은 나병은 그의 악덕과 부주의 탓으로 돌려야 마땅하오. 다른 이들도 나환자를 위해 많은 일을 했으니, 우리 교파의 목사들, 정부의 의사들 등이 그러하오. 다만 그들은 영생을 공덕으로 얻겠다는 가톨릭식 발상으로 그리한 것은 결코 아니오.—이상,

C. M. 하이드 [1]

이토록 예사롭지 않은 편지를 제대로 다루려면, 서두에서 서명인과 그의 교파에 관해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바를 꺼내 놓아야만 한다. 그것이 다른 이들의 마음에는 거슬릴지 모르나, 귀하에게는 거의 거슬리지 않을 것이다. 귀하 자신이 경쟁자들에 관한 소문을 그토록 부지런히 모으고 그토록 대담하게 공표해 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귀하가 앞으로 읽을 글의 성격을 가장 잘 일러 둘 수 있는 순간일지 모른다. 나는 귀하를, 예의의 절제 따위는 한참 넘어선, 아니 한참 미치지 못한 사람으로 여긴다.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받으리라.’ 귀하에 대해서만큼은, 마침내 검 끝의 덮개를 벗겨 가슴 깊이 찔러 넣는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말하게 될 어떤 구절이 다른 이들, 곧 내가 존경하고 애정으로 기억하는 귀하의 동료들을 상하게 한다면, 그들에게는 유감을 전할 도리밖에 없다. 나는 자유롭지 않다. 훨씬 더 큰 이익을 헤아려 움직이고 있을 따름이다. 또한 내 입에서 나간 어떤 말이 그들에게 입힐 수 있는 고통은, 그들이 귀하의 편지를 읽으며 겪었을 고통에 견주면 실로 하찮은 것이 분명하다. 집안에 불명예를 가져오는 것은 교수형 집행인이 아니라 죄인이다.

귀하는, 한 교파에 속해 있다. 그 교파는 내가 믿기로 나의 교파이기도 하고, 내 조상들이 수고한 교파이기도 하다. 그 교파는 하와이 제도에서 특별한 이점을 누렸고, 또한 그 이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부분도 있다. 첫 선교사들이 왔을 때, 그 땅은 이미 옛 피의 신앙을 제 손으로 씻어 낸 뒤였다. 그들은 상륙과 거의 동시에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들이 감당한 곤란은 하와이인보다는 오히려 백인들에게서 훨씬 더 많이 왔다. 하와이인에게 선교사들은, 거칠게 비유하자면, 신의 자리에 선 사람들이었다. 그 실패의 정도와 원인을 논할 자리는 이곳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만은 관련이 있고, 여기서 솔직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들은, 복음 전도의 소명을 따르던 중에, 아니 그들 가운데 너무 많은 이들이, 부유해졌다. 호놀룰루 거리에서 선교사들의 집이 조롱거리가 되어 있다는 소식을 귀하는 처음 듣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귀하는 다음 이야기는 처음 들을 것이다. 내가 귀하의 정중한 방문에 답방했을 때, 내 마차의 마부가 귀하 댁의 크기와 취향과 안락함을 두고 한마디 거들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날 오후 누가 나에게, 언젠가 이런 일을 활자로 끌어낼 날이 오리라 말했다면, 나 자신에게도 그것은 분명 처음 듣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귀하, 보라. 귀하가 자기보다 나은 사람들을 어떻게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지를. 또한 귀하와 나 사이에서, 다미앵과 악마의 대변인 사이에서 판단을 내리려는 이들이, 귀하의 편지가 지나는 이들의 부러움과 촌평을, 그것도 지극히 당연한 부러움과 촌평을 불러일으킬 만한 집에서 쓰였음을 알아야 한다. 귀하가 쓴 표현 하나를 빌리자면(이 표현을 나는 감탄하여 쓴다), 귀하가 다미앵이 살고 죽은 현장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는 사실은 바로 귀하 자신의 ‘탓으로 돌려야’ 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곳을 다녀오고, 그 광경을 마음에 떠올리며, 귀하의 쾌적한 방을 둘러보았더라면, 귀하의 펜조차 아마 멈췄을 것이다.

귀하의 교파는(이 교파가 나를 조금이라도 인정해 주는 한, 이것은 나의 교파이기도 함을 기억하라) 하와이 왕국에서 세속적으로 부진하지 않았다. 재앙이 그 무고한 교우들 위에 떨어졌을 때, 나병(오늘날에는 한센병으로, 환자를 한센인으로 부른다)이 내려와 여덟 섬에 뿌리내렸을 때, quid pro quo(상응한 대가)가 기대되어야 마땅했다. 그 번창한 선교회, 그리고 그 장식물 가운데 하나인 귀하에게, 신은 마침내 한 기회를 보내 주신 것이다. 여기서 내가 지극히 민감한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귀하의 동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자기 교회의 무기력과, 다미앵의 불쑥 끼어든 결정적 영웅성을 돌이키며, 거의 회한이라 부를 만한 감정에 젖고 있다는 것도 나는 안다. 귀하 자신도 그러하리라 확신한다. 귀하의 편지가 일종의 부러움에서 비롯되었음을 나는 확신한다. 그 부러움은 본질적으로 비천한 것은 아니며, 그 편지 안에서 엿보이는 단 하나의 인간적 흔적이다. 귀하는 놓친 기회를, 지나가 버린 날을, 마땅히 품었어야 했으나 품지 못한 것을, 당연히 감당했어야 했으나 감당하지 못한 봉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한때는, 하는 속삭임이 귀 곁에서 들려왔다. 귀하의 쾌적한 방에서, 분노에 차 쓰고 있던 귀하의 귀에. 적힌 말들은 비길 데 없이 천박했을지언정, 그 분노만은, 다시 말하거니와, 이것이 내가 귀하에게 바칠 유일한 찬사이다, 그 분노만은 거의 덕스러웠다. 그러나 귀하, 우리가 실패하고 다른 이가 성공했을 때, 우리가 방관하는 사이에 다른 이가 뛰어들었을 때, 우리가 아름다운 저택에 앉아 몸을 불려 가는 동안, 어느 평범하고 거친 농부 하나가 신의 눈앞에서 전장에 들어서서 고통받는 이들을 돕고 죽어 가는 이들을 위로하다가, 자기마저 그 자리에서 병을 얻어 명예의 전장에서 죽어 갔을 때, 그 싸움은 귀하의 불행한 짜증이 암시하는 식으로는 되돌릴 수 없다. 진 싸움이다, 그것도 영영 진 싸움이다. 패배 속에서 귀하에게 남은 것이 하나 있었으니, 평범한 명예의 누더기 몇 조각이었다. 그런데 귀하는 그마저 서둘러 내던져 버렸다.

평범한 명예. 무엇 하나 훌륭한 일을 행한 명예가 아니라, 눈에 띄게 추한 일을 저지르지 않은 명예. 무위(無爲)의 명예. 그것이 귀하에게 남은 전부였다. 우리 모두에게 다미앵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기 의무를 더 좁게 생각할 수도 있고, 자기 안락을 더 사랑할 수도 있다. 그런 일로 누구도 그에게 돌을 던지지 않는다. 그러나 귀하와 같은 목사의 직분에 계신 신사에게, 기사(騎士)의 영역에서 한 가지 예를 빌려 오는 것을 허락해 주시겠는가? 두 신사가 한 숙녀의 호의를 두고 경합할 때, 한 사람은 성공하고 한 사람은 거절당한다. 그리고 이따금 그러하듯, 성공한 경쟁자의 체면에 해가 될 만한 사안이 패한 쪽의 귀에 들어간다 해도, 그럴 때에는 그의 입이 거의 필연적으로 닫히는 법이라고 허세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여긴다. 귀하의 교회와 다미앵의 교회는 하와이에서 선을 행하는 경합 속에 있었다. 돕고, 세우고, 신적 본보기를 보이는 일에서. 귀하가 (엄청난 한 사례에서) 실패하고 다미앵이 성공한 이상, 귀하는 침묵을 선고받은 셈이다. 그 드높은 경합에서 앞질러져 자기의 안락 가운데 쾌적한 방에 앉아 영예 없이 남은 이상, 그리고 다미앵은 영광과 참상을 함께 쓴 채 칼라와오의 절벽 아래 자기의 돼지우리에서 수고하다가 썩어 갔던 이상, 귀하, 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은 자는, 스스로 나서서 해낸 자원자에 관한 소문을 모아 퍼뜨리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리지 못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귀하가 보인다. 이 문장들을 쓰면서 나는 귀하를 육체로 그려 보려 애쓴다. 귀하가 ‘돼지우리’라는 말에 발끈 튀어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이 말은 기껏해야 과장된 표현이다. ‘그는 개혁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거칠고 더러운 사람’이었다. 이것은 귀하 자신의 말이다. 그리고 귀하는 내가 새로운 증거로써 귀하를 뒷받침하러 왔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하다. 다미앵은 그간 너무 자주 관습적인 후광과 관습적인 얼굴로 그려져 왔다. 그를 그렇게 그린 이들은 아마 개인을 관찰할 눈이나 표현할 펜을 갖지 못했거나, 너그러운 경탄에 눈이 멀고 입이 다물려진 이들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 경탄을 어느 정도 부러워한다. 귀하 역시, 영혼이 조금이라도 열렸다면 무릎을 꿇고라도 부러워했을 법한 그런 경탄 말이다. 그런 초상법의 가장 작은 결함은, 악마의 대변인에게 길을 열어 주고 중상자가 사실의 상당한 여지를 악용하도록 남겨 둔다는 점이다. 벗들이 눌러 둔 진실은 적의 가장 손쉬운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귀하의 뜻과는 달리, 어쩌면 귀하에게 한 가지 빚을 지게 될지도 모른다. 귀하의 편지가 밀랍 인형 같은 추상을 대신할 믿을 만한 초상을 단번에 세워 주는 계기가 된다면 말이다. 세상이 훗날 귀하를 조금이라도 기억한다면, 몰로카이의 다미앵이 성인으로 선포되는 그날, 오직 한 가지 업적 덕에 기억할 것이다. H. B. 게이지 목사에게 보낸 귀하의 그 편지 덕분에.

귀하는 내가 어떤 권위로 이렇게 말하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다미앵이 아니라 하이드 박사를 먼저 알게 된 것이 내 가혹한 운명이었다. 내가 나환자 요양원을 찾았을 때, 다미앵은 이미 안식의 무덤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정보는 모두 현장에서, 그를 오래 잘 알던 이들과 나눈 대화에서 얻은 것이다. 그중에는 그를 경외하며 기억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와 다투고 말씨름해 본 이들, 후광 따위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를 바라본 이들, 어쩌면 별다른 존경 없이 그를 대하던 이들이었다. 바로 이들의 준비되지 않은, 결코 편파적이라 할 수 없는 증언을 통해, 그 사람의 소박한 인간의 얼굴이 내게 설득력 있게 비쳐 왔다. 내가 가진 지식은 이들이 내게 준 것이며, 나는 그것을 가장 온전하고 예민하게 이해될 수 있는 곳, 곧 칼라와오에서 배웠다. 귀하는 그곳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고, 그곳에 관해 알아보려 애쓴 적조차 없다. 귀하의 편지가 짧기는 하지만, 귀하는 그 안에서도 이 점을 드러낼 방법을 찾아냈다. 귀하는 말한다. “섬의 절반이 채 안 되는 구역이 나환자에게 할당되어 있다.” 몰로카이, 몰로카이 아히나(Molokai ahina), 곧 ‘잿빛 몰로카이’, 높고도 가장 황량한 이 섬은 북쪽 면 전체를 따라 유달리 깊은 바다 속으로 절벽의 얼굴을 곤두박질치듯 내리박고 있다. 이 절벽 줄기가 동에서 서에 이르기까지 섬의 진정한 끝이자 경계이다. 단 한 곳에서만, 삼각형의 거친 구릉 하나가 바다로 내뻗어 있을 뿐이다. 풀이 있고, 돌이 있고, 바람이 있고, 한가운데에는 죽은 분화구를 품은 산이 솟아 있다. 그 전체가 위에 덮여 있는 절벽과 맺는 관계는, 마치 벽과 거기 달린 까치발의 관계와 같다. 이 단서만으로도 귀하는 이제 지도 위에서 나환자 구역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몰로카이의 얼마만큼이 이렇듯 파도와 절벽 사이에 끊겨 있는지, 그것이 절반이 채 안 되는지, 사분의 일이 채 안 되는지, 오분의 일인지, 십분의 일인지, 아니, 이십분의 일이라 해 두자, 귀하가 스스로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번에 귀하가 활자를 터뜨리실 때에는, 그 계산의 결과를 우리와 나눌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내 짐작에 귀하는, 소들과 짐마차 밧줄로 끌고 가도 보러 갈 수 없는 곳을 쾌활하게 입에 올리는 부류의 사람이다. 지도 위의 위치조차 알지 못하면서, 아마도 자극적인 묘사들을 비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귀하는 베레타니아 거리의 쾌적한 응접실에서 두 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내가 어느 이른 아침 그곳 물가로 끌려 닿았을 때, 배 안에는 나와 함께 두 수녀가 앉아 있었다. (다미앵을 겸허히 본받아) 인간 삶의 빛과 기쁨에 작별을 고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중 하나는 소리 없이 울었다. 나도 함께 우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귀하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귀하 안에서도 본성이 이겼으리라 나는 믿는다. 그리고 배가 조금 더 가까워져 우리의 공통된 인간 꼴을 참혹하게 일그러뜨린 형상들이 층계에 가득한 광경을 보았을 때, 악몽의 공포 속에서 이따금 우리를 둘러싸는 그런 군상 한가운데로 자신이 상륙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귀하는 마지못해 돌리는 어깨 너머로 베레타니아 거리의 그 집을 얼마나 수척한 눈으로 돌아보았겠는가! 귀하가 그곳에 더 머물러 보았더라면, 네 사람 중 하나꼴로 얼굴이 풍경의 얼룩처럼 망가진 이들을 마주했더라면, 병원을 찾아 거기 거의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누워 있으되 여전히 숨 쉬고, 여전히 생각하고,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 반토막들을 보았더라면, 나환자 요양원의 삶이란, 눈이 태양의 밝음 앞에서 움츠러들 듯이 사람의 정신의 신경도 움츠러드는 시련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오늘날조차)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조이게 하는 자리요, 머무르기에는 지옥과도 같은 곳임을 느꼈을 것이다. 두려운 것은 감염의 가능성이 아니다. 그것은 방문자를 둘러싼 고통과 연민과 혐오, 그가 숨 쉬는 고난과 질병과 육체적 치욕의 공기에 견주면 사소한 일로 보인다. 나는 보통 이상으로 소심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섬의 곶에서 보낸 낮과 밤(여덟 낮과 일곱 밤)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은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에 마음속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일기에 나는 그 체류를 “갈아 들어가는 경험”이라 적어 두었다. 여백에는 언젠가 “쓰라림, 그것이 맞는 말이다”라고 써 둔 적이 있다. 그리고 모콜리이호(Mokolii)가 마침내 나를 바깥 세상으로 실어 낼 때, 나는 그 의미의 무게를 새삼 깨달으며 그 노래의 소박한 구절을 혼자 되뇌고 있었다.

“이제껏 본 중 가장 비통한 나라라.”

그리고 주목하라. 내가 보고 또 겪은 그곳은, 이미 정화되고 개선되고 아름답게 다듬어진 정착지였다. 새 마을이 세워지고, 병원과 비숍 홈(Bishop-Home)은 훌륭하게 정비되어 있었으며, 수녀들과 의사와 선교사들은 하나같이 고귀한 임무에 지칠 줄 모르고 매진하고 있었다. 다미앵이 그곳에 와서 그 크나큰 포기를 행하고, 썩어 가는 자기 형제들 한가운데 나무 아래에서 첫 밤을 자던 그때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역병과 홀로 맞서며, 상처와 잘린 자리를 싸매는 일생의 나날을, 어떤 용기로, 어떤 애처로운 공포의 떨림과 함께 내다보았는지는 오직 신만이 아신다.

혹 귀하는 말할 것이다.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 암 전문 병원에도 그만한 참혹한 광경이 넘치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날마다 그것을 마주하지 않느냐고. 나는 오래전부터 그 의사와 간호사들을 경탄하고 부러워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칼라와오와 칼라우파파만큼 크고 사람 많은 암 병원은 없다. 이런 일에서는, 오르간 관에 길이 한 치가 더해질 때마다 소리가 한 단계 깊어지듯, 새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인상의 음(音)을 점점 깊게 한다. 바라보는 이를 짓누르는 것은, 자기를 에워싼 인간 고통의 저 괴물 같은 총합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의사나 간호사는 그 게헨나의 문을 단 한 번에 영영 들어서도록 부름받는 일이 없다. 그들은 작별을 고하지도, 슬픈 문지방에서 희망을 버려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한동안 그 숭고한 소명의 자리로 가는 것일 뿐이요, 가면서도 휴식과 기분 전환과 안식을 내다볼 수 있다. 그러나 다미앵은 자기 손으로 자기 무덤의 문을 닫아걸었다.

이제 나는 칼라와오에서 쓴 내 일기에서 세 대목을 뽑아 옮기겠다.

A. “다미앵은 죽었고, 자신이 수고하고 고난을 겪은 현장에서 이미 다소 감사가 모자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으나, 몹시 참견이 많았다,’라고 한 사람이 말한다. 다른 이는 그가 (다른 사제들이 그러하듯 쉽게) 카나카(Kanaka, 하와이 원주민을 가리키던 당시의 호칭)의 생활 방식과 사고 습관 같은 것에 어느 정도 물들어 있었노라고 전해 준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알아챌 만한 기지가 있었고, 또 그것을 [그 문제를] 웃어넘길 만한 양식도 있었다. 소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가 인기 있는 인물이었다는 말은 찾지 못하겠다.”

B. “래그스데일의 사망 이후” [래그스데일은 난폭한 정착지의 이름난 루나(Luna), 곧 감독관이었다] “짧은 기간 다미앵 신부가 그 직을 맡았는데, 그 재임이 한 일이라곤 이 고귀한 사람의 약점을 드러낸 것뿐이었다. 그는 처사에 거칠었고, 통제력이 없었다. 권위가 흐려졌다. 다미앵의 목숨에 위협이 닥쳤고, 그는 곧 물러나기를 갈망했다.”

C. “다미앵에 관해 나는 이제 대략적인 그림을 잡아 가고 있다. 그는 농민 계층에서 나온 사람이었던 듯하고, 분명 농민의 전형이었다. 영리하고, 무지하고, 편협했다. 그러면서도 열린 마음을 품고 있었으며, 꾸지람이 직설적으로 주어졌을 때 그것을 받아 소화해 낼 능력이 있었다. 지극히 관대한 사람이어서, 가장 사소한 일에서나 가장 큰 일에서나 자기 마지막 한 벌 셔츠를 내어 줄 태세였으며(물론 인간적인 투덜거림이 없지는 않았다), 자기 목숨까지 내놓을 태세였다. 근본적으로 경솔하고 주제넘었던 탓에 동료로서는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모든 일에서 군림하려 드는 성향 탓에 카나카들에게 고질적으로 인기가 없었으나, 정작 실제 권위는 빈약하여 그의 ‘아이들’은 그를 비웃었고 그는 뇌물을 방편 삼아 자기 뜻을 관철해야 했다. 그는 의료 시술에 집착을 갖게 되었고, 제대로 된 경쟁자들의 처방에 맞서 카나카들을 부추기곤 했다. 어쩌면 (이런 병의 치료에서 어떤 것이든 문제가 된다면) 그것이 그가 저지른 가장 나쁜 행위였고, 분명 가장 쉬운 행위였다. 그 사람의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은 채프먼 씨의 돈을 다룬 일에서 또렷이 드러난다. 그는 처음에 그 돈을 [쓸 의도였다] 온전히 가톨릭 신자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쓸 생각이었고, 그마저도 현명하지 못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길고도 솔직한 이야기 끝에 그는 자신의 잘못을 완전히 인정하고 목록을 고쳤다. 소년들의 숙소가 처한 슬픈 상태는 한편으로는 그의 통제력 부족에서, 한편으로는 그 자신의 단정치 못한 습관과 위생에 관한 그릇된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료 관리자들은 그곳을 ‘다미앵의 차이나타운’이라 부르곤 했다. ‘이보게,’ 하고 그들은 말하곤 했다. ‘자네의 차이나타운은 점점 커지고 있군.’ 그러면 그는 더없이 선량하게 웃었고, 자기 잘못에는 한없이 완고하게 매달렸다. 이 소박하고 고귀한 우리의 인간 형제요 아버지에 관한 진실을, 나는 그만큼 모았다. 그의 결점은 그 얼굴의 특징이요, 우리가 그를 우리의 동료로 알아보게 하는 흔적이다. 그의 순교와 그의 본보기는 어떤 것으로도 덜어지거나 지워질 수 없다. 그리고 오직 이 현장에 있는 사람만이 그 위대함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보시다시피, 나는 이 사적인 대목들을 아무런 손질 없이 옮겨 적었다. 귀하 덕분에, 대중은 이 글을 그 투박한 그대로 갖게 된다. 이것은 거의 그 사람의 결점 목록이라 할 만하다. 내가 찾고자 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미덕과 그의 영웅적 면모는 이미 나도, 세상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가톨릭 측 증언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품고 있었다. 나쁜 뜻으로가 아니라, 다미앵의 흠모자와 제자들이야말로 비판적일 가능성이 가장 낮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귀하는 더욱 의심을 품을 것임을 나는 안다. 위에 적은 사실은 하나같이, 생전의 신부와 대립했던 개신교인들의 입에서 직접 모은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크게 오해한 것이 아니라면, 이 증언들은 한 사람의 모습을 세워 올린다. 온갖 약점을 지녔으되 본질에서 영웅적이고, 투박한 정직과 관대함과 쾌활함으로 살아 숨 쉬는 한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으시라. 다미앵의 성격 가운데 가장 나쁜 면만을 모은 거친 사적 메모이니, 그와 함께 수고했고 (귀하 자신의 표현대로) ‘그 사람을 알았던’ 이들의 입에서 모은 것이다. 다만 나는 다미앵이 귀하를 두고 안다고 말했을지는 의문이다. 받아 보고 놀라시라. 귀하가 귀하의 소문꾼들에게서는 얼마나 훌륭한 섬김을 받았고, 귀하의 지성과 공감에서는 얼마나 형편없는 섬김을 받았는지를. 사실의 몇 가지 지점에서 우리가 얼마나 일치하는지, 그러면서도 우리의 평가가 얼마나 벌어지는지를. 여기에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 귀하에게든, 나에게든. 이를테면 이런 가능성도 있다. 칼라와오에 그토록 많은 귀를 두고 있는 듯한 귀하가, 채프먼 씨의 돈을 둘러싼 일을 전해 듣고, 오직 다미앵이 본래 품었던 잘못된 사용 계획에만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도 그 일에 충격을 받았고, 그것을 정직하게 적어 두었다. 그러나 나를 훨씬 더 크게 친 것은, 그가 설득당할 만한 마음의 정직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여 두겠다. 그것은 긴 일이었다. 그의 동료 한 사람이 그와 함께 밤늦도록 앉아 온갖 논거와 비난을 쌓아 올렸다. 신부는 여느 때처럼 ‘더없이 선량하게, 한없이 완고하게’ 듣기만 했다. 그러나 마침내 납득이 되자 이렇게 말했다. “그렇소. 내가 당신에게 크게 빚졌소. 당신이 내게 큰 봉사를 해 주었소. 그렇게 했더라면 그것은 절도였을 것이오.” 자신들의 영웅과 성인은 결코 그릇될 수 없는 존재여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가톨릭 신자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이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고통스러울 것이다. 인류의 참된 사랑자, 후원자, 종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우리의 엇갈림을 보여 주는 하나의 전형이라고 본다. 귀하는 결함과 실패에 눈이 밝은 부류의 사람이요, 그것을 찾아내어 공표하기를 즐기는 부류이다. 그렇게 찾아낸 다음에는, 오직 그것이 있었기에 이 일이 귀하의 귀에까지 이르게 된 바로 그 압도적인 미덕과 진정한 성공을, 서둘러 잊어버린다. 이것은 위험한 마음의 틀이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미 귀하를 어떤 자리에 데려다 놓았는지 헤아리실 수 있도록, 괜찮다면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귀하 편지의 여러 표현을 하나씩 짚어 가며, 각 표현을 진실성과 적합성과 자비의 관점에서 솔직하게 따져 보겠다.

다미앵은 거칠었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귀하 덕분에 우리는 나환자들이 안쓰러워진다. 그들에게 벗이요 아버지가 되어 준 사람이 거친 늙은 농부 하나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귀하, 그토록 세련된 귀하는, 어찌하여 그 자리에 있지 않았는가, 문화의 등불로 그들을 밝혀 주러? 한 가지 상기시켜 드려도 되겠는가. 우리에게는 세례자 요한이 고상한 신분이었는지 의심할 만한 근거가 어느 정도 있다. 또 베드로의 경우로 말하자면, 설교단에서 귀하가 필시 찬성하며 다루실 그 생애를 보건대, 그가 “거칠고, 고집 센” 어부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 개신교의 성경에서조차 베드로는 성인으로 불린다.

다미앵은 더러웠다.

그랬다. 이 더러운 동무 때문에 괴로움을 당한 가엾은 나환자들을 떠올려 보라! 한편, 그 깨끗한 하이드 박사는 근사한 집에서 식사 중이셨다.

다미앵은 고집이 셌다.

이 점도 귀하의 말이 옳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 강한 머리와 강한 마음에 대해 신께 감사한다.

다미앵은 편협했다.

나는 편협한 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협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것을 사제의 흠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인가? 다미앵은 자기의 종교를 농부나 어린아이의 단순함으로 믿었다. 귀하가 그와 같이 믿으리라 짐작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점에서만 보면 나는 멀찍이 떨어져 그에게 감탄할 뿐이요, 그것이 그의 전부였다면 살아생전에 그를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미앵에게서 주목할 지점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고 마침내 귀하의 펜과 나의 펜의 주제로까지 세운 그 지점은, 그에게서 바로 그 편협, 그 격렬하고 좁은 신앙이 선을 향해 강력하게 작동했고, 그를 세계의 영웅들과 모범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서게 했다는 사실이다.

다미앵은 몰로카이로 파견된 것이 아니라, 명령 없이 그곳으로 갔다.

이것은 잘못 읽힌 말인가? 아니면 귀하는 정말로 이 말을 비난의 뜻으로 쓴 것인가? 나는 우리 교회의 설교단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이 자발적이었다는 이유로 그분을 본받으라는 말을 들어 왔다. 하이드 박사는 달리 생각하시는가?

다미앵은 정착지에 머물지 않았다, 등등.

그가 여러 편의를 허락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귀하는 그 편의를 이용한 신부를 탓하시는 것인가, 아니면 그 편의를 허락한 관원들을 탓하시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이것은 베레타니아 거리의 그 집에서 내놓기에는 자못 스파르타식의 엄정한 잣대이다. 그리고 귀하는 동조자가 거의 없음을 알게 되리라 나는 확신한다.

다미앵은 개혁에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았다, 등등.

내가 변호 중인 이 사람에 관하여 이미 솔직하게 묘사해 왔음을 귀하 자신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이 조목을 짚어 나가기 전에, 나는 한층 더 솔직해지겠다. 칼라와오에 있는 다미앵의 ‘차이나타운’에서 칼라우파파의 아름다운 비숍 홈으로 건너가는 길만큼 유쾌한 대조의 감각을 맛볼 수 있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 자리에서 나는 귀하에게 모든 면에서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평소의 방침을 깨고 가톨릭 측 증언을 끌어오겠다. 여기 그 차이나타운 방문에 관한 내 일기의 한 대목이 있다. 이를 보면 그곳이 (지금조차도) 바로 그 운영자들 자신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기숙사와 식당 등을 둘러보았다. 어둡고 음울하며, 표면적으로만 깨끗하게 유지되어 있어, 그[더튼 씨, 평수사]도 굳이 변호하려 들지 않았다. ‘그나마 봐줄 만한 꼴이지요,’ 하고 그가 말했다. ‘수녀들이 이리로 오면 전부 바로잡을 겁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이 다미앵이 죽은 뒤로 이미 나아진 상태였고, 그가 홀로 그곳에 있으면서 자기의 (늘 훌륭하다 할 수는 없던) 방식대로 일할 때보다 훨씬 나은 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귀하와 공통의 사실 지반에서 만날 만큼은 다가왔다. 그리고 귀하에게 말하노니, 질투로 편견을 갖지 않은 마음에게는, 이 나환자 요양원의 모든 개혁이, 그가 가장 격렬하게 반대했던 개혁들조차도, 본디 다미앵의 업적이다. 그것은 그의 성공의 증거이다. 꺼리는 이들과 무심한 이들에게서 그의 영웅성이 불러낸 것이다. 그 앞서 그 자리에 있던 이들도 많았다. 이를테면 마이어 씨, 그의 성실한 업적은 우리에게 너무 적게 전해지고 있다. 그 뒤로도 많은 이가 있었고, 세속의 지혜에서는 그보다 나은 이도 있었다. 그러나 헌신에서는 우리의 이 성인만 한 이가 없었다. 그 이전 시기에, 귀하 자신도 인정할 것이다, 그들이 이루어 낸 것은 미미했다. 하나의 충격적인 순교 행위로 모든 사람의 시선을 저 비통한 나라에 돌려놓은 것은, 바로 그의 몫이었다. 단 일격에, 그리고 자기 목숨을 대가로, 그는 그곳을 세상에 알리고 공공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넓게 생각해 보면, 필요한 단 하나의 개혁이었다. 뒤따르는 모든 것을 잉태한 개혁이었다. 그것은 돈을 불러왔고, (모든 개별 기여 가운데 가장 훌륭한) 수녀들을 불러왔고, 감독을 불러왔다. 여론과 공공의 관심이, 그 사람과 더불어 칼라와오에 함께 상륙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개혁을 가져왔고, 개혁을 가져오기 위해 죽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다. 비숍 홈에 깨끗한 잔 하나, 깨끗한 수건 하나 있다 해도, 그것은 더러운 다미앵이 씻은 것이다.

다미앵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순결한 사람이 아니었다, 등등.

귀하는 그것을 어찌 아시는가? 이것이 마부가 지나며 부러워한 베레타니아 거리의 그 집에서 오가는 대화의 성격인가? 몰로카이 절벽 아래에서 수고하는 가난한 농부 사제의 부적절한 처신에 관한 음탕한 세부들이?

나보다 먼저 그 정착지를 찾은 이들이 많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이런 풍문을 들은 바 없는 듯하다. 내가 그곳에 있었을 때 나는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적지 않게 들었다. 내 정보 제공자들이 평신도의 거침 없는 말투로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다미앵에 대한 불평 또한 숱하게 들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이야기만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어찌하여 그 이야기가 귀하 성직자의 응접실 깊숙한 자리까지 당도했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귀하를 속이려는 듯 보이지조차 않겠다. 이 추문은, 귀하의 편지에서 읽었을 때 내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어떻게 들었는지 말씀드리겠다. 사모아로 호놀룰루에서 한 남자가 왔다. 그는 해변의 한 선술집에서, 다미앵이 “여성 나환자들과 성관계를 가짐으로써 그 병에 걸렸다”는 진술을 자진해서 내놓았다. 그 보고가 선술집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귀하에게 말씀드리는 일이 내게는 기쁨이다. 한 남자가 벌떡 일어섰다. 그의 이름을 밝힐 자유는 내게 없다. 그러나 그에 관하여 내가 들은 바로 미루어, 귀하께서 그를 베레타니아 거리의 저녁 식탁에 초대하고 싶지는 않으실 것이다. “이 한심한 작은 -------” (여기 인쇄할 수 없는 말이 하나 있으니, 귀하의 귀에는 너무도 충격적일 것이다). “이 한심한 작은 ------” 하고 그는 외쳤다. “그 이야기가 천 번 사실이라 해도, 감히 그것을 되풀이하는 자네가 그 백만 배 더 저급한 ----- 임을 못 알아보겠나?” 그 보고가 귀하의 집에, 어쩌면 가정 예배를 마친 뒤에 귀하에게 당도했을 때, 귀하의 영혼 안에서도 같은 표현으로 그것을 맞아들일 만한 거룩한 분노가 있었노라고 전해질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차마 인쇄할 수 없는 그 한 마디까지 포함하여 말이다. 그 말은 토비 삼촌의 맹세가 기록천사의 눈물로 지워졌듯이 지워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귀하의 가장 빛나는 의로움으로 귀하에게 돌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귀하는 호놀룰루에서 온 그 남자의 몫을 의도적으로 택했고, 거기에 귀하만의 윤색까지 더하여 연기했다. 호놀룰루에서 온 그 남자는, 비참하고 음흉한 눈초리를 한 자는, 그 이야기를 해변 선술집의 거친 한 떼의 떠돌이 술꾼에게 전했다. 거기서는 (귀하의 금주 사상에 이 정도는 동의하겠다) 사람이 늘 자신의 가장 고귀한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호놀룰루에서 온 남자 자신도 술을 마시고 있었으니, 너그럽게 헤아려 아마 과하게 마셨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귀하는, 귀하의 “친애하는 형제 H. B. 게이지 목사”에게 이 역겨운 이야기를 전하기로 택했다. 그리고 귀하의 풍채 좋은 가슴을 장식하고 있는 금주 표장(藍帶)의 푸른 리본이, 그 짓을 저지를 때 귀하가 취해 있었다는 정상 참작의 변론조차 내가 허락할 수 없게 만든다. 귀하의 ‘친애하는 형제’는, 과연 형제답게, (아마 은총의 수단으로) 귀하의 편지를 종교 신문에 전하기를 서둘렀다. 나는 여러 달이 지난 뒤 그 지면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읽고 놀랐다. 그리고 이제, 다른 이들도 놀라도록 그것을 여기 다시 옮겨 놓았다. 귀하와 귀하의 친애하는 형제는, 이 일련의 동작을 통해, 세부로 들여다볼수록 교훈적인 대조를 세워 놓았다. 한쪽에는 귀하가 저녁 식탁에 부르고 싶지 않은 남자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하이드 목사와 H. B. 게이지 목사가 있다. 한쪽에는 아피아의 선술집, 다른 한쪽에는 호놀룰루의 목사관이 있다.

그러나 귀하는 자신이 동포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를 거의 헤아리지 못하는 듯하다. 그것을 귀하의 마음에 확실히 들여보내기 위하여, 귀하의 이야기가 참이라고 가정해 보겠다. 내가 이렇게 가정하는 것을 신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다미앵이 그의 좁은 의무의 길에서 비틀거리며 넘어졌다고, 고립의 공포 속에서, 어쩌면 발병 초기의 열 속에서, 자신이 서약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행하던 그가 그만 사제 서약의 문자에서 실족했다고, 귀하와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었던 그가, 우리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한 일을 해낸 그가, 역시 우리 공통의 연약함을 맛보고 말았다고 가정해 보겠다. ‘아, 이아고, 이 얼마나 애처로운가!’ 가장 무딘 자라도 눈물에 이르렀을 것이요, 가장 믿지 않는 자라도 기도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런데 귀하가 하신 일이라고는, H. B. 게이지 목사에게 편지 한 통을 쓰신 것이 전부였다!

귀하가 자신의 마음을 어떤 그림으로 그려 놓으셨는지, 조금이라도 분명해지고 있는가? 한 번 더 분명히 해 드리겠다. 귀하에게는 아버지가 계셨다. 이 이야기가 그 아버지에 관한 것이라고, 어떤 정보 제공자가 증거를 손에 들고 귀하에게 가져왔다고 해 보자. 귀하의 감정적 본성을 지나치게 높이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면, 내 짐작에 귀하는 그런 정황을 개탄하셨을 것이다. 아닌가? 그 연약함의 이야기가 귀하를 낳은 분을 욕되게 하는 만큼 귀하는 더욱 뼈저리게 느끼셨을 것이다. 아닌가? 그리고 귀하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그 이야기를 종교 신문에 실리게 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하다. 다미앵이 해내려 한 일을 해낸 사람은 나의 아버지이고, 아피아 선술집의 그 남자의 아버지이며, 선을 사랑하는 모든 이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하느님이 귀하에게 그것을 볼 은총을 주셨더라면, 그 또한 귀하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각주

[1] 시드니 장로교(Presbyterian), 1889년 10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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